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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73)화 (73/174)
  • 73화

    베트람이 막대기일 뿐이던 것에서 순식간에 검을 뽑아내었다. 그러고는 가장 앞에 있던 남자의 검을 받아쳤다.

    “으악!”

    호리호리한 체격을 한 베트람의 힘에 다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베트람의 체격은 마법 아티팩트로 눈속임한 상태일 뿐이니까.

    “뭐 하는 거야? 당장 치지 않고!”

    우리를 조롱했던 자가 베트람의 힘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큰소리치며 당장 공격하라 외쳤다.

    본인이 싸우는 거 아니니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결국 베트람을 둘러싼 인원 중 몇몇이 다시금 칼을 쥐고 베트람에게 달려들었다.

    베트람은 그들이 공격해 올 거리를 미리 아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공격을 검으로 받아냈다.

    어쭙잖은 뜨내기들의 검술과 정식으로 훈련을 받아 성기사가 된 베트람의 수준 차이는 명백했다.

    나는 혹시나 라이넬 사제에게 다른 적들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하며 주의를 기울였다.

    때마침, 베트람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렸던 남자 하나가 목표물을 바꾸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베트람이 현재 다른 이들을 상대하느라 바쁜 와중에 우리를 공격하려는 듯했다.

    “제가 할게요.”

    “예?”

    라이넬 사제가 당황해서 나를 부르려 했다. 나는 빠르게 가까워지는 적의 움직임을 주의하며 레피드를 소환해 냈다. 그리고 라이넬 사제를 향하는 검을 막아냈다.

    챙!

    금속이 맞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어린 내가 그의 검을 받아 내는 것은 무리가 있었는지 어깨가 시큰하니 저렸다. 그러나 그동안의 수련과 검술 훈련이 성과가 있었는지 버티고 있을 만큼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텅!

    기이한 소리가 나와 검을 맞부딪치고 있는 자의 검에서 들려왔다. 그러더니 검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어어?”

    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검의 주인은 창백한 안색이 보일 정도로 크게 놀라며 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레피드를 이용해 남자를 힘껏 밀쳐냈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칼날이 균열대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남자는 당황하여 자신의 검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남자를 향해 도약하여 폼멜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남자는 무어라 반항할 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괜찮으세요?”

    재빠르게 주변을 경계하며 라이넬 사제에게 물었다. 라이넬 사제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가, 감사합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아직 어린 몸이라 상대하기 벅찰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레피드가 남자의 검을 부수는 바람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내가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베트람이 거의 대부분의 적들을 처리한 후였다.

    ‘생각보다 레피드 강도가 일반 철보다는 강한가 봐?’

    새삼스러운 눈으로 레피드를 확인하며 비브르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않느냐? 레피드는 전에 말했다시피 나의 뼈로 이루어진 검이니 한낱 철 따위가 레피드의 상대가 되지는 않는단다.]

    비브르는 빠르게 수긍하며 대답했다.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한 비브르의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으아악! 뭐야, 너희들?”

    자잘한 뜨내기들을 모두 처리한 베트람이 아이와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도 혹시나 이쪽을 향해 급습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라이넬 사제를 데리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베트람이 천천히 다가가자 남자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흙더미에 발이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고도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철창이 그의 등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아이는 주춤거리며 겁에 질린 얼굴로 베트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베트람은 들고 있는 검을 남자를 향해 내리찍었다. 칼은 남자에게 닿지 않고 그의 머리 옆 바닥에 깊게 박혔다. 그러나 남자는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대충 정리된 것 같군요. 아까 한 명이 다가가는 것 같던데 두 분 모두 다친 곳은 없습니까?”

    베트람은 기절한 남자를 확인한 후 우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나저나…….”

    이제 남은 건 울기 직전인 아이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아이는 내 말에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 살려 주세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모아 비는 모습이 퍽 애처롭게 보였다.

    “저는 그냥…… 누군가가 습격하는 걸 알려 주면 저를 풀어 준다고 해서, 그래서 그랬던 거예요.”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하나만 물을게. 이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밖에 더 대기 중이니?”

    바닥에 널브러진 저자들과 협상할 정도라면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수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아이는 베트람의 눈치를 슬쩍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곳을 지키는 건 저 사람들뿐이에요. 가끔씩 이 사람들이 주인님이라 부르는 귀족이 오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이 더 있지는 않을 거예요.”

    “정말이야?”

    “네, 네! 믿어 주세요. 진짜예요.”

    아이는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렇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믿음이 가진 않네요. 일단 도망 못 가게 하고 위로 올라가요.”

    우선은 윌터와 세드릭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베트람은 쓰러진 남자의 옷을 잘라내 그 천으로 아이의 손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윌터를 업어 지상으로 올라갔다.

    밖으로 올라온 다음에야 습격한 인원 외에 다른 인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가 없어 멀리 떨어진 폐가 하나를 찾아 윌터와 세드릭을 그곳에 눕혔다. 베트람은 지하에 놔두고 온 이들이 우리를 보았으니 이 일을 처리하고 와야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여기쯤 왔으니 신력을 써도 되겠죠?”

    “음…….”

    내 말에 라이넬 사제가 고민하는 기색으로 낮게 신음했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라면 티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신전에서도 종종 빈민가에 들러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일이 있으니까요.”

    다행히도 라이넬 사제는 허락을 내려 주었다. 나는 윌터와 세드릭에게 다가가 두 사람에게 손을 하나씩 얹었다.

    그리고 아주 약하게 신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일반 사제들이 사용하는 신력보다도 더 약한 기운으로.

    일단 윌터와 세드릭이 정신을 차려 직접 두 발로 걸을 정도로 회복시킬 생각이었다. 아무리 성기사인 베트람이 있다고는 해도 우리라고 계속 두 사람을 업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으으.”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세드릭이었다. 세드릭은 가늘게 뜬 눈을 몇 번 깜빡인 후에야 주변이 보이는지 눈동자를 돌려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즈음에는 윌터 역시 눈을 떴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의 치료를 받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두 사람에게서 손을 떼었다.

    “여기가 어디…….”

    세드릭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윌터를 발견하고 다급히 윌터를 챙겼다.

    “자네 괜찮은가?”

    “예, 예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입니까? 저희가 있던 곳은…….”

    윌터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며 일어나다가 나와 라이넬 사제를 발견하고 자리에 굳어졌다.

    “윌터. 그리고 세드릭.”

    내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누구십니까?”

    마법 아티팩트로 바꾼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드릭이 물었다.

    아직은 그들에게 나를 보일 생각이 없었기에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들 왜 그 지하에 갇혀 있었던 거지?”

    “…….”

    그러나 내 질문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를 향해 두 사람이 시위를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 사람은 무척이나 우울한 얼굴로 바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아무래도 쉽게 얘기를 꺼낼 것 같지 않아 질문을 바꾸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당신들을 구한 건 우리입니다. 상황 정도는 알아야 우리도 당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이넬 사제는 대답이 없는 두 사람에게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두 사람이 서로를 흘긋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하던 저택에서 쫓겨난 이후로 줄곧 그곳에 있었으나 아시다시피 볕이 들지 않아 며칠이 지났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입을 연 것은 세드릭이었다.

    나는 세드릭의 말을 통해 그들이 벌써 몇 주째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편지를 훔친 죄를 물어 저택에서 내쫓기긴 했어도 그동안 일한 정을 생각해서 크라이튼 대공이 두 사람의 죄를 최대한 면해 주었다.

    그러고 나가서 연락이 끊어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뒤로 줄곧 다니엘에게 붙잡혀 그 지하에 갇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럴 것 같기는 했다.

    그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죄를 숨겼으니, 완전한 범죄를 위해 죄를 뒤집어쓴 자들을 처리해 버리는 건 다니엘의 입장에서 당연한 수순이었을 터였다.

    그것도 모르고 다니엘의 죄를 덮어 주기 위해 나섰을 두 사람이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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