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65)화 (65/174)
  • 65화

    응접실에서 나와 마차가 드나드는 황성의 입구로 향했다. 우리가 타고 왔던 마차는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또 와, 코넬리아. 그리고 미라벨, 너도 언제든 황성에 놀러 와도 되니 편하게 오렴.”

    황후 폐하께서 우리를 직접 배웅해주었다.

    “네, 폐하.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황후 폐하.”

    마차에 올라타기 전에 황후 폐하께 인사를 올렸다.

    엄마와 내가 마차에 올라타자 마부석에서 출발 여부를 확인했다. 엄마가 출발을 지시하자 곧 마차가 천천히 황성을 떠나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황후 폐하께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벨.”

    황후 폐하께 보일지는 모르지만, 나 역시 황후 폐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이에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조금 전과 달리 조금 우려하는 얼굴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말 황제 폐하와 별일 없었던 거지?”

    “응. 아까 말한 대로야. 황태자 전하와 좋은 친구가 되어 달라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엄마는 그제야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슬쩍 엄마를 돌아보니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닌 척하기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엄마와 황제 폐하의 사이를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법했다.

    “그리고 폐하께서 아버지에 대해서 물으셨어.”

    “가일……에 대해서?”

    “응. 좋은 아버지였냐고 물으셔서 저녁에는 나랑 잘 놀아 주고 가끔은 엄마한테 꽃을 꺾어다 주는 아버지였다고 말씀드렸어.”

    “그래…….”

    엄마는 말을 마치며 복잡한 시선으로 황성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가 생각에 빠질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었다.

    마차가 크라이튼 대공가에 도착했다. 우리가 탄 마차가 대공가의 현관에 들어서는데, 곧 우리 뒤를 따라 쌍두마차가 대공가에 도착했다.

    “다녀오셨습니까, 큰 아가씨, 작은 아가씨?”

    엄마와 내가 마차에서 내려서자 현관 앞으로 마중 나온 하인과 하녀들이 우리를 향해 정중히 인사했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은 나는 호기심에 뒤따라 들어오는 마차를 확인했다.

    우리가 탄 마차가 자리를 비켜 주자 마침내 쌍두마차가 현관 앞에 멈추어 섰다.

    조금 머뭇거리고 있으니 금세 마차 문이 열렸다.

    “내 앞에 다른 사람이 도착한 것 같다 했더니 코넬리아와 미라벨이었군.”

    마차에서 나온 인물은 다니엘이었다.

    다니엘은 엄마의 앞이라 그런지 다정한 모습으로 엄마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 황성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잘 다녀왔느냐?”

    다니엘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입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에는 조금도 웃음기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니엘의 눈을 마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다녀왔어요. 작은할아버지도 밖에 나갔다 오신 거 같은데 잘 다녀오셨어요?”

    예의상 장단은 맞춰야 할 것 같아 그에게 인사했다. 다니엘은 잠시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다 이내 엄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코넬리아 네가 미라벨과 같이 다녀온 모양이구나.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아니에요. 이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엄마는 웃으며 다니엘의 걱정을 풀어 주었다.

    ‘비브르.’

    그 사이에 나는 내 어깨에 올라탄 비브르를 불렀다.

    계속 내 어깨에 올라타 있었는데도 다니엘이 비브르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다니엘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불렀느냐?]

    비브르가 머리를 내게 기대며 말했다.

    ‘정말로 네가 안 보이나 봐.’

    [그럴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네가 다니엘과 접촉해도 다니엘은 모르는 거겠네?’

    [그야…… 그럴 거란다. 나도 직접 접촉해 본 적은 없어서 확신하기 어렵구나. 그래도 그 추측이 맞지 않겠니?]

    빠르게 긍정하려던 비브르가 뒤늦게 힘없이 대답했다.

    조금 의외였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이지가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아주 쓸모가 많은 스파이와 다름이 없었다.

    하물며 현재 나나 비브르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확인해 보자.’

    [무슨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가요. 저녁 바람도 찬데.”

    엄마가 다니엘에게 제안했다.

    “그러자꾸나.”

    웃으며 대답한 다니엘은 나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였다. 어지간히 내가 밉보인 모양이었다.

    “벨, 너도 어서 들어오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으니 엄마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티 나지 않도록 비브르를 향해 곁눈으로 확인했다.

    ‘지금부터 다니엘에게 꼭 붙어 있어.’

    [……내가 잘못 들은 것 같구나. 다시 한번 말해 주겠느냐?]

    비브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목소리로 내게 다시 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저택으로 들어가며 비브르를 향해 다시금 대답해 주었다.

    ‘잘못 들은 거 아니야. 다니엘에게 붙어서 미행하라고 했어.’

    [미, 미행 말이냐?]

    비브르의 목소리가 영 떨떠름했다.

    ‘싫어? 그치만 다니엘이 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 악룡 크립소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저 자를 미행하는 게 제일이야. 근데 나는 그럴 수가 없잖아. 그런데 봐, 넌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잖아. 그럼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어?’

    말을 이어가며 다니엘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 다니엘이 비브르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니엘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순진한 어린아이인 척 다니엘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히 미라벨, 네 말이 맞구나.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할 거야?’

    내 미소에 다니엘이 미간을 찌푸리다 이내 입꼬리만 끌어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비브르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싫은 기색을 내비치다가 이내 머리를 들었다.

    [알겠다. 해 보도록 하마.]

    ‘잘 생각했어. 확인해 보고 뭐 발견하는 거 있으면 다시 돌아와.’

    비브르가 천천히 내 몸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다니엘의 걸음에 맞추어 그의 다리에 올라탔다.

    다니엘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비브르가 올라타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하긴, 내가 어깨에 올려놓았을 때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깃털처럼 가벼워서 종종 어깨에 비브르가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혹시라도 다니엘이 멈추어 서면 어떡하나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라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브르 역시 다니엘이 반응할까 걱정이 되었던 건지 다리에 올라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비브르는 다니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슬금슬금 다니엘의 몸을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의 정수리 위로 올라간 후에야 나를 내려다보았다.

    루비처럼 붉은색 눈을 빛내는 비브르의 모습이 마치 마지막 전투를 앞둔 용병의 눈빛처럼 결연해 보였다.

    [뭐라도 찾으면 금방 돌아오마.]

    ‘잘하고 와.’

    비브르를 향해 작은 응원을 남겼다.

    비브르는 대답 대신 꼬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작은할아버지가 좋아서 자꾸 쳐다보는 거야?”

    내가 비브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오해한 엄마가 짓궂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사적으로 다니엘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응. 작은할아버지 수염이 너무 신기해서.”

    머리 위에 자리를 잡은 비브르를 보고 있었다 할 수는 없으니 대충 그의 얼굴에 있는 수염을 언급했다.

    “이렇게, 이렇게 생겼잖아!”

    나는 엄마를 잡은 손까지 풀어 일부러 과장된 손짓으로 얼굴에 다니엘의 수염을 표현했다.

    제법 묘사가 잘 되었던 건지 엄마는 입을 가리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던 하녀와 하인들까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여기서 언짢은 사람은 오직 다니엘뿐이었다.

    “아, 배고프다. 빨리 들어가요!”

    다니엘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적으로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 배고프니?”

    “응. 그러니까 얼른 가자.”

    나는 괜히 어린아이가 보채듯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는 순순히 내가 이끄는 손길을 따라 주면서도, 황성에서 간식을 많이 먹고도 배가 고프다고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엄마와 다니엘을 대동한 채 식당에 들어섰다.

    “벨!”

    내가 식당에 들어서자 엘리엇과 브라이언이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으냐? 혹시 황제 폐하께서 너에게 화를 내고 그러지는 않으셨니?”

    얼른 내 앞까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굽혀 앉은 브라이언이 걱정스럽게 나를 살피며 물었다.

    그 옆으로 엘리엇이 다가와 섰다.

    “멀쩡해 보인다. 다행이야.”

    가장 먼저 내 상태를 확인한 엘리엇이 나를 보며 한시름 놓은 얼굴을 했다.

    브라이언의 손에는 반쯤 모습을 보였던 검이 다시금 검집 안으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그제야 브라이언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 없었다니 정말 잘된 일이구나. 그런데 폐하께서는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실 거면서 널 부른 게냐?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이…….”

    브라이언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의아해하는 그에게 몇 번인가 반복해 말한 내용을 입에 올렸다.

    “황태자 전하와 좋은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려 부른 거였대요.”

    “친구?”

    “네.”

    “친구라…….”

    잠시 생각을 하던 브라이언이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만도 하겠지. 별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어서 앉자.”

    브라이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제안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 내 자리에 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