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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51)화 (51/174)

51화

바든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향해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내가 꺼낸 질문이 뜬금없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못 할 정도의 질문은 아니었는데도 유난히 긴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택 내에 엄마의 편지에 대한 말이 이미 돌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가 그를 다그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생각대로 내가 일부러 바든을 떠보고자 말을 건 것은 사실이었다.

바든이 다니엘을 담당하는 집사인 만큼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편지를 보낼 수 있을까 해서.”

당장 그를 다그쳐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편지를요? 누구한테 보내시려는 겁니까?”

“여기 오면서 만난 친구야.”

시치미를 떼며 말하자 굳어졌던 집사 바든의 얼굴이 금세 풀어졌다.

“주소를 아시면 보낼 수 있습니다.”

“아…….”

다정하게 말하는 바든의 앞에서 나는 난감해하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왜 그러십니까?”

“내 친구는 집이 없거든. 지금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어서. 그런 경우에는 편지를 보낼 수가 없어?”

“편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보낼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바든의 말을 듣고 수긍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엄마의 편지는 보내는 곳이 명확했는데 도착하지 않았던 걸까?”

“…….”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바든은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진작 편지가 대공 각하께 전달되었다면 이렇게 돌고 돌아 어렵게 재회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요. 참 아쉬운 일입니다. 그래도 작은 아가씨 덕분에 두 분이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 다행인 일이었죠.”

바든 역시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눈을 빤히 주시했다.

무슨 동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딱히 그런 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친구분께 편지를 보낼 수는 없지만, 수도 경비대에 편지를 맡겨 놓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돈을 좀 주면 그들이 출입하는 사람들을 확인할 때 편지를 전해 줄 겁니다.”

원래 주제로 돌아와서 설명해 주는 바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볼게.”

어차피 편지를 보낼 생각도 아니었고, 수도 경비대에 편지를 남긴다고 해서 제프리가 볼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바든에게서 받았던 찜찜함을 계속 곱씹었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바든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겠지. 지금까지도 다니엘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할 정도로 다니엘과 관련이 깊으니, 만일 내가 다니엘이었더라도 크라이튼 대공가에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바든을 거치는 게 편할 테니까.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자 최소 편지의 처리에 대해서 가장 정보를 접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작은 아가씨, 편지는 저희한테 말씀해 주셔도 돼요.”

바든과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 칼리나가 나에게 말했다.

“응?”

“작은 아가씨께서 지시하시는 일은 모두 저나 아니타를 통해 주시면 됩니다. 굳이 작은 아가씨께서 일일이 방식에 대해 찾아다니지 않으셔도 됩니다.”

칼리나가 상냥하게 내게 조언했다.

칼리나와 아니타가 내 수발을 들고 있으므로 굳이 바든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으응.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

“그런데요, 작은 아가씨.”

대답을 마치자마자 아니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아까 큰아가씨 편지는 무슨 일이에요?”

아니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 그거. 엄마가 대공가를 떠나 있을 때, 계속 이곳으로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닿지 않았거든. 그것만 일찍 도착했으면 할아버지랑 엄마가 이렇게 오래 헤어져 있는 일은 없었을 거잖아. 할아버지는 계속 엄마를 찾고 있었고, 엄마도 돌아올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혹시 편지를 전담하는 부서가 따로 있나 궁금했어. 그런 곳이 있다면 어쨌든 거기를 한 번 거치기는 할 테니까.”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칼리나가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했다.

메이너드 자작 부인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어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칼리나와 아니타를 확인했다.

“작은 아가씨?”

내가 갑자기 계단에서 멈추어 뒤를 돌아보는 것이 이상했는지 칼리나가 나를 불렀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대화 도중에 느꼈던 이상한 점을 깨닫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둘 다, 엄마의 편지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어?”

두 사람 모두 처음 듣는 듯이 말했다.

“작은 아가씨께서 큰아가씨와 대화하시는 걸 듣기는 했습니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몰랐습니다.”

“아니타도?”

“네, 작은 아가씨.”

수긍하는 칼리나와 아니타를 보며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의 정보가 너무 느린 걸까?

확실히 정보가 느리면 모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저택의 주인인 크라이튼 대공이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있으니 이들 역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를 수 있었다.

그럼 바든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연차가 있는 집사라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던 건가?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납득하려 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계속 머리를 들이밀었다.

“작은 아가씨, 이러다가는 수업에 너무 늦겠어요.”

“아, 응. 갈게.”

칼리나가 우려를 담아 내게 말했다. 나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 * *

“소공녀님, 오늘은 도통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시는군요.”

생각이 많기 때문인지 메이너드 자작 부인과의 수업은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메이너드 자작 부인의 말에 나는 난감함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자작 부인. 오늘따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런 무례를 저질렀네요.”

“몸이 많이 안 좋은가요? 그렇다면 어차피 수업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테니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메이너드 자작 부인이 나를 염려하며 제안했다.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빠르게 수긍했다.

“그럼 죄송하지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도 될까요? 모처럼 시간을 내주시는 건데 정말 죄송해요.”

“아니에요. 소공녀님의 건강이 더 중요하죠. 수업은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이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부인.”

결국, 나는 메이너드 자작 부인에게 사과를 표하고 수업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메이너드 자작 부인이 먼저 응접실을 나가고 응접실에는 나와 칼리나, 아니타만 남은 상태였다.

오후에는 듀아나 신전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다.

나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로 바든과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바든은 분명 엄마의 편지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편지를 언급했을 때 긴장했고, 또 엄마의 편지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칼리나와 아니타처럼 반응했겠지.

그렇다는 건 바든이 어떻게든 편지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건가?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니타와 칼리나를 동원한 채 1층으로 내려갔다.

칼리나의 안내를 따라 편지를 관리하는 부서를 찾았다. 그리고 막 칼리나가 문을 두드리려는데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칼리나를 말리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조용히 하자는 의미였다. 칼리나와 아니타가 이해하고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게 좋을 거야.”

“예. 저도…….”

자세히 보니 문이 작은 틈을 두고 열려 있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전부 낯설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문틈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작은 아가씨가 편지에 대해 뭔가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야. 아까 바든 님과 대화하는 걸 들었는데 뜬금없이 편지 얘기를 하더군.”

“작은 아가씨께서 얼마나 아시려고요……. 세드릭 님만 눈감아 주시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러니…….”

“대체 내가 얼마나 눈을 감아 주어야 하겠나? 윌터, 자네가 한 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이었는지 모르는 겐가? 대공 각하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자네를 용서치 않을 거란 말일세. 내가 자네를 눈감아 주었다는 것을 알면 나 역시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대화의 내용이 엄마의 편지 얘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약 들킨다면…….”

“들켜도 어쩔 수 없겠지. 모두 자네가 한 짓이 아닌가? 다만 나는 좀 빼 주게. 내가 한 일이라고는 자네의 죽은 아들을 생각해서 눈감아 준 것뿐이니.”

“세드릭 님! 어떻게 그리 매정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목소리를 줄이게. 밖에 광고할 셈인가? 자네가 큰아가씨의 편지를 몰래 빼돌리고 있었노라고?”

“그런!”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머릿속의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내부를 확인했다. 우편 부서의 내부, 빽빽이 정리된 편지와 서류들을 지나 안쪽으로 향하니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뭘 빼돌렸다고?”

나는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던 두 집사를 향해 물었다.

내 목소리에 그들은 당황한 눈치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나이가 많은 집사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을 떨었다.

“작은 아가씨!”

“자, 작은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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