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41)화 (41/174)
  • 41화

    “미라벨 네가 황태자 전하랑?”

    엘리엇은 내가 긍정했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나는 순순히 긍정했다.

    “응. 한번 해 보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서 그런데요 숙부님, 대련을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말 중간에 엘리엇에게서 브라이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묻자, 브라이언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지만 미라벨, 아무리 황태자 전하께서 너보다 체구가 작다고 하더라도, 넌 검을 배운 지 이제 사흘밖에 안 되었잖니? 황태자 전하께서는 어리시긴 해도 검을 오래 배웠단다. 혹여나 대련하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브라이언의 걱정이 내게 여실히 전해졌다. 브라이언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검을 오래 배우고 아니고의 차이는 제법 클 테니까. 그렇지만 난 내가 에이드리안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로 위험할 거 같으면 저도 멈출 거고, 황태자 전하도 멈출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숙부님께서 지켜봐 주실 거잖아요. 전 숙부님을 믿어요.”

    내가 신뢰를 담아 브라이언에게 말하자, 브라이언이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알겠다. 그럼 미라벨 너나 황태자 전하나 서로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대련을 하는 거야.”

    “네, 숙부님.”

    “황태자 전하께서도 이해하셨죠? 위험하니 충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알겠어!”

    “좋습니다. 그럼 목검은 저쪽에 있으니 가져오십시오.”

    결국 브라이언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에이드리안과 마찬가지로 목검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가 오늘 아침까지 사용한 목검을 꺼내 들었다.

    사흘 동안 이 목검으로 훈련한 덕에 그나마 다른 목검보다는 손에 익은 상태였다.

    가볍게 옆으로 휘두른 후 에이드리안을 바라보았다. 에이드리안 역시 자기 손에 맞는 목검을 찾은 듯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기야. 알지?”

    목검 무게를 확인하듯 양손으로 들어 본 에이드리안이 확인하듯 내게 말했다.

    “제가 드릴 말씀이에요.”

    말을 마치고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하여 브라이언 역시 목검을 하나 들고 우리를 따라왔다.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브라이언의 뒤를 따르는 엘리엇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에이드리안과 내가 연무장 중앙에 도착하자, 바깥 연무장에서 이곳을 주시하고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울타리 가까이 다가와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황태자 전하 저한테 지시면 창피하실 거예요.”

    “흥, 누가 할 소리! 난 친구라고 해도 안 봐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씩씩거리며 대답하는 에이드리안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침내 에이드리안과 내가 거리를 벌리고 마주 섰다.

    “자, 그럼 이제부터 대련을 시작합니다. 대련은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거나, 더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중단합니다. 그 외에도 크게 다칠 것 같으면 제가 개입할 겁니다.”

    “알겠네!”

    “네, 숙부님.”

    에이드리안과 내가 브라이언을 향해 대답했다. 브라이언은 그 순간까지도 염려스러운 듯이 우리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럼 대련 시작합니다.”

    브라이언의 말과 함께 대련이 시작되었다. 에이드리안은 양손으로 검을 든 채 나를 진지하게 주시했다. 씩씩거리며 흥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름대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에이드리안을 살피며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일부러 발을 삐끗하는 척 몸을 크게 움직였다.

    “핫!”

    에이드리안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내게 성큼 다가서며 검을 휘둘렀다.

    나는 오른발을 내밀며 곧바로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목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악!”

    내게 기습당한 에이드리안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그사이에 검을 회수하여 에이드리안의 목에 겨누었다.

    아무리 에이드리안이 지금의 체격에서 나보다 오래 훈련했고, 브라이언으로부터 체계적인 검술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실전 경험이 10년 가까이 되는 나와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

    게다가 체급으로만 봐도 일곱 살인 에이드리안보다는 내가 훨씬 위였다.

    “어때요? 제가 이겼죠?”

    에이드리안을 향해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자, 에이드리안이 놀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일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 파악이 늦는 모양이었다.

    “미라벨 승!”

    우리의 시합이 끝났음을 알린 것은 브라이언이었다.

    나는 그제야 에이드리안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회수했다. 에이드리안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더니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와아아!”

    그때, 주변에서 큰 함성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하니 우리의 대련을 지켜본 기사들과 병사들이 신이 난 얼굴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작은 아가씨, 대단하신데요?”

    “여기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벌써 황태자 전하를 이기시다니!”

    “공작님처럼 뛰어난 기사가 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런저런 함성들 사이에서 과장되게 나를 칭찬하는 소리에 나는 좀 멋쩍은 기분이 되었다.

    “미라벨, 대단하다! 난 네가 넘어지는 줄 알고 식겁했지 뭐야?”

    엘리엇은 모두의 함성이 들려온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다고 말해 줘서 고마워.”

    박수 치며 말하는 엘리엇을 향해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나저나 진짜 운이 좋았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잖아. 그래도 금세 중심을 잡아서 다행이야.”

    내가 일부러 의도한 거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엘리엇이 내게 말했다.

    나는 굳이 엘리엇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냥 그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 난 후 에이드리안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괜찮으세요?”

    “응?”

    에이드리안은 아직도 좀 정신이 나간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본인이 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일어나세요. 바닥 차가워요.”

    일 합에 이기는 건 조금 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 에이드리안이, 특히나 황태자로 살아온 그가 몇 번이나 실패의 경험을 해봤을지 떠올려 보았다.

    이러다가 괜히 울리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으응.”

    내 제안에 에이드리안이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손에 힘을 주어 에이드리안을 일으켜 세웠다.

    “미라벨 너…….”

    자리에서 일어난 에이드리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싶었더니 곧 그가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세구나!”

    눈을 커다랗게 뜨고 경이로운 듯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을 이긴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에이드리안은 웃음을 지었다.

    “다 훌륭한 스승님 덕분이죠.”

    나는 과거에 오래도록 검으로 먹고 살아왔던 기억이 있노라 털어놓을 수가 없어 공로를 브라이언에게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에이드리안과 대련을 하겠다고 할 때 제일 만류했던 브라이언이 계속 말이 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브라이언을 바라보았다.

    브라이언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랑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숙부님?”

    “미라벨, 한 번 더 대련할 수 있겠니?”

    내가 조심스럽게 브라이언을 부르자, 브라이언이 곧바로 낮은 음색으로 내게 물었다.

    괜한 짓을 벌인 걸까?

    속으로 조금 후회하며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 수 있어요.”

    “좋아. 그럼 엘리엇!”

    “네?”

    자신이 호명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엘리엇이 벙벙한 얼굴로 브라이언을 돌아보았다.

    “목검을 가져와라.”

    브라이언이 엘리엇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엘리엇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요? 저 말씀하는 거 맞으시죠, 아버지?”

    “그래. 얼른 목검 가져와.”

    브라이언은 엘리엇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결국, 브라이언이 엉거주춤하다가 자신의 목검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가져왔습니다.”

    가볍게 목검을 앞뒤로 휘두르며 엘리엇이 보고했다.

    “그럼 미라벨과 대련해봐.”

    “……네? 제가 미라벨하고요? 아버지, 제정신이세요?”

    크게 놀라며 되묻는 엘리엇의 행동에 브라이언이 눈썹을 세웠다.

    “그래. 미라벨과 대련하라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아버지, 미라벨은 이제 고작 아홉 살이에요. 저는 열두 살이고요. 제가 오래 검을 배우기는 했지만, 실수로 미라벨에게 상처라도 입히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방금 미라벨이 넘어질 뻔한 것도 보셨잖아요.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게 다쳤을 거라고요.”

    재차 이어지는 브라이언의 명령에도 엘리엇이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엘리엇은 나와 겨루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럴 법도 했다. 엘리엇이 브라이언에게 훈련받는 모습을 보면 그 나이답지 않게 어느 정도의 수준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브라이언은 한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나와 엘리엇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이내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내가 개입할 테니, 이제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 미라벨, 그래도 괜찮겠니?”

    엘리엇에게는 딱딱하게 말한 브라이언이 내게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네, 전 상관없어요.”

    나야 엘리엇과 겨뤄서 지금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니 나쁠 거 없었다.

    아무리 내게 경험이 많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 몸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얼마만큼의 힘을 쓸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몸놀림이 가능한지 가늠해 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대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솔직히 나보다 작은 에이드리안보다는 나보다 큰 엘리엇과 겨뤄 보는 게 더 이득이었다.

    “엘리엇, 한번 해 보자. 나도 해 보고 싶어.”

    내 말에 엘리엇이 찜찜한 얼굴로 브라이언을 힐끔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엘리엇이 수긍하자 에이드리안이 내게서 멀어졌다.

    이제 중앙에는 엘리엇과 내가 대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렸던 손을 들어 엘리엇을 향해 겨누었다. 엘리엇 역시 평소 브라이언과 대련할 때처럼 검을 들었다.

    “엘리엇, 미라벨. 조건은 아까와 같아. 알겠지?”

    “네, 숙부님.”

    “예, 아버지.”

    “그럼 대련을 시작한다.”

    브라이언이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