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와!”
내 손 위에서 발현된 신력을 보고 아니타가 작게 감탄을 터트렸다.
빛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아주 밝게 빛났지만, 신기하게도 태양과는 달리 바라보고 있어도 눈이 부시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로한 감각을 모두 풀어 주는 듯이 편안하기만 했다.
나도 그 빛이 신기하여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잘했다. 금방금방 배우는구나. 곧 더 높은 수준으로도 올라갈 수 있을 거다.]
“정말 놀랍습니다!”
비브르의 말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라이넬 사제가 경이로움을 담아 감탄을 터트렸다.
“미라벨 님은 역시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군요.”
라이넬 사제는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내가 만든 신력을 확인하고 있었다.
괜히 우쭐한 마음에 신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 힘을 집중시켰다.
그 순간.
펑!
큰 소리와 함께 내 손 위에서 밝게 빛나던 빛이 스러져 버렸다. 그 충격에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악!”
“작은 아가씨!”
“괜찮으세요?”
칼리나와 아니타가 다급히 나에게 달려와 내 상태를 살폈다.
갑작스럽게 빛이 폭발한 것 때문에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무사했다.
[괜찮으냐?]
‘아, 응. 괜찮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살피는 칼리나와 아니타를 바라보았다.
“나, 난 괜찮아. 칼리나랑 아니타는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저흰 괜찮아요. 작은 아가씨께서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맞아요. 엄청나게 놀랐어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걱정해 줘서 고마워, 둘 다.”
칼리나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타는 그 작은 손으로 내 엉덩이 부근에 묻은 흙을 재빠르게 털어내 주었다.
“사제님, 이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여전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라이넬 사제에게 물었다.
라이넬 사제는 조금 전 있었던 신력 폭발이 놀라운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라이넬 사제님?”
내가 라이넬 사제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십니까?”
뒤늦게 나를 걱정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괜찮아요. 조금 놀라고, 넘어지는 바람에 엉덩이가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방금은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미라벨 네 신력 조절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란다. 무턱대고 모으기만 하면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니?]
비브르가 지나가듯 설명해 주었다. 뒤이어서 라이넬 사제가 입을 열었다.
“신력이 고르지 않게 응축되어서 흩어진 겁니다. 갑작스럽게 터지느라 놀라셨겠지만, 신력 자체가 사람을 해치는 힘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비브르나 라이넬 사제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제어도 못 하면서 신력만 불어넣다 보니 그만 터져 버리고 만 듯싶었다.
신력이 많기만 해서는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신력을 좀 더 세밀하게 제어하는 능력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론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신력이 너무 뭉쳐져서 터져 버리는 건.”
“네?”
라이넬 사제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미라벨 님의 상태라면 신력을 느끼고 발현하는 것까지는 이미 마친 상태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러니 이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이 신력을 어떻게 세밀하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겠죠.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기다릴게요.”
내 대답을 들은 라이넬 사제가 어딘가로 성큼성큼 가 버렸다.
나는 어딘가로 향하는 라이넬 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가씨께서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 있으신가 봐요. 사제님이 이렇게 놀라실 정도라니.”
내가 비브르의 선택을 받아 성녀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칼리나가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멋쩍은 기분에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칼리나와 아니타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서 있었던 일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 상대가 다니엘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듀아나 신전의 성녀라는 것을 알면 다니엘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도 칼리나와 아니타는 내가 성녀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듀아나 신전을 방문한 것도 일전에 신력에 소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한 것이었으니 내가 신력을 사용한다는 정보가 새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내가 사용하는 신력이 일반적인 것보다 더 강하고 크다는 거였지만.
“그럼요, 작은 아가씨. 저는 작은 아가씨의 하녀인걸요. 염려 마세요.”
“고마워.”
칼리나가 미소 띤 얼굴로 내게 말했다.
“맞아요. 저도 작은 아가씨의 하녀잖아요!”
뒤이어 아니타가 말했다. 마치 결의에 찬 듯한 아니타의 모습을 확인하며 칼리나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멀리에서 다시 라이넬 사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잡담을 그만두고 라이넬 사제를 확인했다.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에는 작은 수정 같은 게 들려 있었다.
“그게 뭐예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라이넬 사제에게 물었다.
“받으십시오.”
라이넬 사제는 내게 들고 온 수정을 건네주었다.
고개를 숙여 수정을 확인했다. 어딘가 수정이 낯이 익었다.
“처음 신전에 방문하셨을 때 들어가신 방 기억하십니까?”
라이넬 사제의 말에 나는 성자 플레온과 만났던 수정방을 떠올렸다.
“네, 기억해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그 방 안에서 멀쩡히 살아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는 것을 경험했다. 두 번이나 반복되는 삶에서도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는 신비한 수정들이 가구처럼 놓여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뒤늦게 내 손에 쥐어진 수정도 그때 그 수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설마…… 이거 거기에서 가져온 거예요?”
“예, 맞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였다.
“이건 갑자기 왜요?”
수정을 살펴보며 물었다. 투명하고 예뻤지만, 달가운 기억이 없었기에 조금 소름 끼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수정은 신력을 붙잡아 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미라벨 님이 ‘그분’과 만날 수 있었던 거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하마터면 수정을 떨어트릴 뻔했다.
비브르의 말대로라면 그 방은 미래에서 돌아온 플레온을 봉인하던 방이었다.
그리고 그를 봉인한 것은 방 전체를 휘감은 이 수정의 힘인 것 같았다.
내가 차마 수정을 떨어트리지도 못하고 제대로 들고 있지도 못하는 상태로 라이넬 사제를 바라보고 있자 라이넬 사제가 옅게 웃었다.
“이 작은 수정으로는 그만한 효력을 발휘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런가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라이넬 사제가 첨언했다. 라이넬 사제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찜찜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수정이 미라벨 님의 넘치는 신력을 억누르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앞으로는 이 수정을 쥐고 훈련을 할 테니 꼭 가지고 계십시오.”
뒤늦게 라이넬 사제가 왜 내게 이 수정을 주었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자, 그럼 다시 한번 신력을 손끝에 모아 보시겠어요?”
라이넬 사제의 말대로 한 손에는 수정을 꼭 쥐고, 다른 손은 허공을 향해 뻗어 신력을 집중시켰다.
아까는 금세 빛무리를 뿜으며 손끝에 어렸던 신력이 이번에는 아주 희미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가는 실타래처럼 내 손 위에 모여 뭉친 신력을 확인하며 눈을 크게 떴다.
단지 수정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바뀐 변화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좋습니다. 이제부터는 신력을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이넬 사제가 먼저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시범을 보였다.
나는 그를 따라 신력을 최대한 네모나게 보이도록 애를 썼다. 마치 손이 아닌 무언가로 진흙더미를 반죽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신력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몇 번이나 반복하고 노력하는데도 동그란 실타래처럼 엮인 신력은 좀처럼 각진 모양으로 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참 신력을 네모나게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하던 찰나에 라이넬 사제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내 손 위에 모아 두었던 신력을 흩트리며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뺐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어깨가 담이 온 듯이 뻐근했다. 뿐만 아니라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버릇처럼 소매로 땀을 닦으려 하니 황급히 아니타가 손수건을 꺼내어 내 이마를 닦아 주었다.
“고마워, 아니타.”
“천만에요.”
빙긋 웃는 아니타를 보며 나 역시 웃었다.
“오늘 힘드셨을 텐데 이만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 그리고 다음은 언제 오시는 게 편하십니까?”
라이넬 사제가 물었다. 나는 잠시 일정을 생각해본 뒤에야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6일 후 1시에 올게요. 그때는 시간이 빌 거예요.”
“좋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정을 맞춘 후에야 라이넬 사제가 우리를 신전 밖으로 안내해 주었다.
신전을 나와 중앙 시계탑을 확인해 보니 벌써 네 시를 넘기고 있었다.
그동안 시간의 흐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전에 도착한 후로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으로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적당한 속도로 도로를 내달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신력을 운용하느라 달궈졌던 내 몸을 식혀 주는 듯했다.
마침내 마차가 대공 저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릴 때였다.
내가 마차에서 내리는 걸 구경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의아함에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황태자 에이드리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