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34)화 (34/174)
  • 34화

    “다니엘? 너 혹시 ……작은할아버님 말하는 거야?”

    엘리엇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다니엘을 이름으로 불러서 놀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작은할아버지가 아니라 다니엘의 이름을 말해 버렸다. 조금 아차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말한 내용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엘리엇을 향해 긍정을 표했다.

    “응. 작은할아버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엘리엇이 주변을 경계하듯 살펴보았다. 그리고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에야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부르다가 들키면 혼날 거야. 다음에는 좀 조심하도록 해. 게다가 여긴 식당에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걸.”

    엘리엇이 나에게 충고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충고였다. 다니엘의 성격에 내가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겠지.

    그런다고 해도 크라이튼 대공 때문에 별다른 행동을 하지는 못할 테지만.

    “알았어. 조심할게. 아무튼…… 엘리엇, 넌 싫지 않아?”

    “당연히 싫지. 너도 알잖아. 그분이 어떤 분인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얘기하자면 좀 긴 이야기인데, 간단하게 얘기해 줄게.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용서받기 위해서 편지를 썼다는 건 들었지?”

    내 물음에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들었어. 고모님께서는 대공 각하께 편지를 써 보냈는데 대공 각하께는 도착하지 않았다며. 그거 때문에 오해를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들었어. 미라벨, 네가 아니었다면 다시 만나기도 힘들었을 거라고…….”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그 일에 관해서야.”

    엘리엇 또한 크라이튼 대공가의 사람이고 크라이튼 대공과 엄마 사이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어서 굳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일에 관해서? 편지 때문이야, 아니면 네 덕에 다시 크라이튼 대공가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거 때문이야?”

    의아해하는 엘리엇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편지 때문이야.”

    “응. 말해 봐.”

    재촉하는 엘리엇을 향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엄마가 쓴 편지가 할아버지에게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어.”

    “그걸 조사하겠다고? 미라벨 네가 직접?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듣기로는 인편으로 보낸 편지라 누락되고 분실되어서 그렇게 된 것 같다던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들어 봐, 엄마는 일주일에 두 통씩은 꼭 편지를 써서 보냈어.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편지가 하나도 도착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야 인편이니까…… 분실이 되었을 수도 있고…….”

    대답하던 엘리엇이 문득 입을 꾹 다물었다.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네. 네 말대로라면 적어도 하나 정도는 도착했을 법한데. 편지가 하나만이라도 도착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을 거고.”

    최대한 상황을 좋게 해석해 보려 했던 엘리엇도 이내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고 미간을 찡그렸다.

    “일주일에 두 통씩 보낸다고 하면 일 년이면 백 통은 될 거야. 아무리 인편이라서 분실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매번 다른 용병들과 상인들에게 부탁했는데 그게 전부 분실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렇겠지.”

    “그래서 생각해 봤어. 혹시 저택 내에서 누군가가 편지를 빼돌린 게 아닌지.”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대공 각하께서 벌써 조사하셨겠지.”

    엘리엇의 말을 들으며 팔짱을 꼈다. 이미 한번 크라이튼 대공에게 말씀드린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때 크라이튼 대공과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 보면, 크라이튼 대공은 내부에 굳이 편지를 빼돌릴 자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바로 옆에 음험한 마음을 숨기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안 그래도 할아버지께 말씀은 드려 봤어. 혹시나 조사하시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이미 엄마랑 무사히 만나기도 했고, 저택 내에서 편지를 빼돌릴 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엘리엇이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대답했다.

    “그러실 수 있지. 근데 그거하고 작은할아버님은 무슨 상관이야? 혹시 그 편지를 빼돌린 사람이 작은할아버님이라고 의심하는 거야?”

    “맞아.”

    사실 단지 의심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미래에서 당사자인 다니엘에게 직접 그가 이 모든 일의 배후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왜 편지를 빼돌려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엘리엇에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면, 분명 내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니엘에게는 내가 미래의 일을 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혹여 그가 알게 되어서 무슨 대비라도 한다면 곤란할 터였다.

    엘리엇은 내 대답에 잠시 생각하는 듯이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한 말들이 신빙성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옆에서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끝에 엘리엇이 다시금 나를 바라보았다.

    “미라벨 네 말이 맞다면, 작은할아버님이 왜 편지를 빼돌린 건데? 고모님의 편지를 빼돌린다고 해도 작은할아버님에게 아무런 득 될 것이 없잖아.”

    “없기는 왜 없겠어? 잘 생각해 봐. 우리 엄마가 우리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저택을 떠나기는 했지만, 그 전에 누구와 약혼한 사이였는지는 엘리엇 너도 알고 있잖아?”

    “……황제 폐하셨지.”

    “그래. 엄마가 떠나면서 크라이튼 대공가는 황실과 사이가 크게 틀어졌어. 이건 나보다 엘리엇 네가 더 잘 알 거야.”

    말을 마치며 엘리엇의 반응을 살폈다. 엘리엇은 순순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지금처럼 황태자 전하를 뵈기도 어려웠어. 아버지는 황태자 전하의 검술 스승이라서 종종 왕래하셨지만.”

    다행히 내가 추론한 것이 맞는 듯했다.

    “그럼 엄마와 내가 돌아온 지금은 어때? 엄마가 돌아오고 직접 황제 폐하를 만나 사과를 드렸고, 또 이번에 열린 환영 무도회에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어.”

    “고모님께서 돌아오신 후로 다시 황실과 틀어진 사이를 회복할 기회가 되었지. 무도회의 일로 증명이 된 거고. 너도 황태자 전하랑 친구가 됐다며.”

    엘리엇이 바로 알아듣고 대답했다.

    나는 그걸 놓치지 않고 바로 그의 말을 받았다.

    “맞아. 엄마가 돌아오지 않길 바랐다는 건, 황실과 크라이튼 대공가가 다시 원만한 사이가 되는 걸 막고 싶었던 게 아닐까? 황실과 크라이튼 대공가가 다시 사이가 좋아지면, 크라이튼 대공가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황실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라면…….”

    내 설명에 혼자 추측하던 엘리엇이 인상을 구겼다.

    “작은할아버님께서 이 대공가에 무슨 짓을 하려 한단 말이야? 그건 불가능해. 대공가에는 대공 각하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계신걸.”

    확실히 엘리엇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법했다.

    브라이언 때문이었다.

    브라이언이 이 집안에 있는 한 다니엘이 크라이튼 대공가에 마수를 뻗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본 미래의 크라이튼 대공가에는 브라이언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대공가 내부 사정이었기에 내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브라이언 크라이튼이 대공가를 비운 틈에 다니엘이 계획을 실행한 것이었다.

    이미 내부는 다니엘에게 매수된 이들뿐이었고, 결국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대공가를 빼앗기게 되었다. 가주인 크라이튼 대공은 목숨마저 잃었고.

    미래에서 그 모든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천천히 내쉬었다.

    “하지만 조사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만약 편지를 빼돌린 사람이 있다면 그자에게 물어서 배후를 알아내면 되고, 아무것도 나오는 게 없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지. 안 그래?”

    “그래. 고모님의 편지를 빼돌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찾아야지.”

    다행히도 엘리엇이 순순히 수긍했다.

    “그러기 위해서 엘리엇 네 도움이 필요해.”

    “어떤 도움?”

    “나는 아무래도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래서 사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알지?”

    내가 확인차 그를 바라보자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지금껏 들키지 않고 저택에 녹아들어 있었다고 생각하면 내 입장에서는 여기서 일하는 모두가 용의자야. 그런데 엘리엇 넌 나와 다르잖아. 여기서 계속 살았으니까 누가 무슨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일을 하는지 대충은 알 테니까 용의자를 추릴 수 있겠지.”

    “그럼 내가 관련되었을 만한 사람을 추리면 되는 거야?”

    “응. 부탁할게.”

    나는 엘리엇의 손을 잡으며 부탁했다. 엘리엇의 손은 어린아이의 손답지 않게 조금 거칠었다.

    엘리엇은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흔쾌히 수긍했다.

    “좋아. 그럼 일단 편지를 빼돌릴 만한 자리에 있는 고용인들을 찾아서 너한테 알려 줄게.”

    “고마워.”

    엘리엇의 협력을 받기로 하니 마음이 놓였다.

    처음부터 내가 홀로 알아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엘리엇의 도움을 받는 게 더 빠를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목록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을 취조하고 조사할 만한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겠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크라이튼 대공이었지만, 일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면, 크라이튼 대공이 나의 부탁으로 고용인들을 조사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면 차라리 크라이튼 대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가령 엘리엇을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브라이언 크라이튼.

    리스트를 추린 다음으로 찾아갈 사람은 브라이언이 되어야 할 터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척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엘리엇은 내 미소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고모님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 이 저택이 얼마나 삭막하고 숨쉬기 힘든 곳이었는지 넌 모를 거야.”

    “응?”

    불현듯 엘리엇이 꺼낸 말에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엘리엇은 손을 들더니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어머님께서 계실 때는 그래도 좀 나았다고 하는데, 어머님께서도 내가 네 나이쯤이었을 때 돌아가셔서……. 내 기억 속에서 이 저택은 삭막하기만 했어. 난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너와 고모님께서 돌아오시고 나서 이곳도 이렇게 따스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어.”

    엘리엇은 아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자상하게 바라보았다. 고작 열두 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고모님과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

    “그럼 난 공부하러 갈 시간이라 먼저 갈게. 목록은 최대한 빨리 추려서 보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엘리엇은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