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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33)화 (33/174)
  • 33화

    “그나저나 이번에 무도회에서 사람들을 좀 만나 봤을 텐데…….”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에 다니엘이 엄마를 슬쩍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다니엘을 향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어깨를 한번 으쓱 추어올리고는 엄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코넬리아, 이번에 명문가에서 많이 참여하였는데 다들 너를 보러 온 것 같더구나. 이번 무도회에 참석하면서 혹시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느냐?”

    다니엘이 엄마를 향해 물었다.

    “네?”

    엄마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한번 확인한 후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이 물어보는 내용이 너무도 노골적인 탓이었다.

    다니엘은 마치 조카를 걱정하는 친절한 친척 어른의 모습으로 엄마를 주시했다.

    “혹시나 해서, 가일을 못 잊는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네가 혼자인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랬다. 서운한 질문이었다면 미안하구나. 이해해 주렴.”

    아마 모르는 사람이 보았더라면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던 조카에 대한 걱정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다니엘이 저택으로 들어와 어린 나를 처음 봤을 때 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나를 다른 귀족가에 팔아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상대들로 언급한 것은 나와 나이 차이가 나도 한참은 나는 귀족들이라는 것도 엘리엇을 통해 알고 있었다.

    고작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다니엘인데, 안 그래도 눈엣가시일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안 할 리가 없지.

    다니엘이 왜 뜬금없이 크라이튼 대공에게 나와 엄마의 귀환을 알리는 환영 무도회를 제안하였는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숙부께서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아직은 우리 벨을 두고 다른 사람과 만날 생각은 없어요.”

    엄마는 다니엘의 말을 듣고는 당황했던 얼굴을 부드럽게 풀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정말 다니엘이 엄마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꺼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와 다니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엄마랑 저랑 얼른 다른 사람들에게 시집 보내고 싶은가 봐요.”

    나는 순진한 척 눈을 깜박거리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다니엘은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한 게 있으니 찔리는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아가?”

    크라이튼 대공은 내 말에 눈썹을 비틀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크라이튼 대공과 시선을 마주쳤다.

    “작은할아버지를 이곳에서 처음 뵈었을 때, 작은할아버지께서 저한테 그러셨어요. 바예프 후작가의 영식이 열여섯이 되었으니 저와 결혼시키면 크라이튼 대공가의 권세가 더욱 공고해질 거라고요.”

    “하하! 바예프 후작가의 영식이 어려서부터 능력이 뛰어나고 외모 역시 특출난 건 모두가 아는 일이지 않아? 하여 나중에 미라벨이 성장하였을 때를 생각해서 말한 거였지.”

    내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다니엘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뚱한 얼굴로 그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바예프 후작가의 영식이 아니라면 칼리드 백작가, 그것도 아니라면 조르주 공작. 그렇게 언급하셨는데 제가 틀렸나요?”

    칼리드 백작가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갈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언급된 조르주 공작은 예외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더욱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때도 내가 말하지 않았니? 조르주 공작은 발이 넓은 사람이라 훗날 네 혼처를 정하게 될 때 도움을 구하면 좋을 사람이라고 내가 그때 분명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며 대답하는 다니엘의 말에 크라이튼 대공이 그럼 그렇지, 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인 내가 잘못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뇨. 저도 들었어요. 분명 작은할아버님께서 미라벨을 처음 본 그날 결혼 상대로 그분들을 언급하셨잖아요?”

    다행히 엘리엇이 내 말에 동조해주었다. 다니엘을 바라보는 엘리엇의 시선이 싸늘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엇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의 이런 허접한 말들을 들은 적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다니엘은 잠시 당황하며 나와 엘리엇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이내 미간을 좁혀 난처한 얼굴로 크라이튼 대공을 돌아보았다.

    “저런, 내 말이 두 아이들에게 잘못 전달이 된 듯싶군. 조카손자, 손녀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지는군, 그래.”

    시무룩해서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다니엘을 보며 크라이튼 대공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니엘, 네 의도가 정말 그런 의도였다고는 해도 아이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구나. 이렇게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또 아직 어린 미라벨에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일이지 않느냐. 네가 나서서 걱정할 일도 아니고.”

    크라이튼 대공은 다니엘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오해를 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음부터 두 아이들과 코넬리아에게 그런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미라벨과 엘리엇이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생각할 마음이 들기 전까지는 절대 강요할 생각이 없다. 너도 내 방침에 따라 주었으면 하는구나.”

    말을 끝낸 크라이튼 대공이 나와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엘리엇, 미라벨. 다니엘이 한 말이 너희에게 어떤 오해를 산 건지는 알겠단다. 하지만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게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말렴.”

    이어서 다정하게 꺼내는 말에 나는 슬쩍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엘리엇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의 생각과 크라이튼 대공의 생각이 많이 다른 것은 충분히 잘 알아들었다.

    어쨌든 크라이튼 대공은 이미 한 번 결혼을 강요했다가 딸을 잃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듯 씁쓸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 저희가 잘못 들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대공 각하.”

    엘리엇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나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고 크라이튼 대공만 바라보았다. 크라이튼 대공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다니엘을 보며 다시 훈계하듯 말했다.

    “다시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나도 네게 화를 낼 수밖에 없을게다. 알았느냐, 다니엘?”

    “나는 그냥 조카손녀가 생긴 것이 좋아서 그런 거였는데. 그래도 오해를 산 것을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그런 말 꺼내지 않아야겠어.”

    쓰게 웃으며 대답하는 다니엘의 눈에서 짜증이 언뜻 보이는 듯했다.

    크라이튼 대공은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평소와 같이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리고 코넬리아.”

    “네, 아버지.”

    엄마가 바로 대답하자 크라이튼 대공이 망설이다가 이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란다. 난 다시는 널 잃을 수가 없단다. 10년 전에 네가 떠나고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는지 아니?”

    “…….”

    “너만 괜찮다면 나는 널 내 품에서 보내지 않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널 어디 가지 못하도록 붙잡으려는 것은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았으면 한다. 내 말은, 무슨 일이 있든 너를 믿고 지지해 줄 테니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았으면 해. 결혼 또한 마찬가지다.”

    크라이튼 대공의 말이 끝날 무렵에는 엄마에게서 호흡이 흐트러진 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해요, 아버지.”

    엄마가 대답을 마치고 나서야 멈추었던 식사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 내내 항상 크라이튼 대공과 대담을 나누던 다니엘도 이번만큼은 기분이 상했는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나와 엘리엇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졌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태연히 식사를 이어갔다.

    크라이튼 대공의 의사는 확실히 확인했다.

    적어도 크라이튼 대공이 엄마를 원치 않게 재혼시키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태로라면 다니엘도 엄마에게 쉽게 손을 댈 수는 없을 터였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식사는 정말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었다.

    아마 나중에, 그러니까 이 크라이튼 대공가가 다니엘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엄마는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슬쩍 엘리엇을 확인했다.

    엘리엇은 나와는 달리 크라이튼 대공이 그의 말을 믿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 조금 불만을 가진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엘리엇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니엘에게 적대적이면서, 이 저택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기왕이면 영향력 있는 어른이면 좋겠지만, 크라이튼 대공이나 브라이언은 다니엘에게 큰 반감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렇겠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저택을 먹을 생각을 하고 친절한 숙부의 모습만을 보여 주었을 테니.

    오랜만에 저택으로 돌아온 엄마조차도 다니엘을 견제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엄마는 대공가의 저택을 너무 오래 비워 두었기 때문에 이곳의 실정에 대해서 어두울 터였다.

    그러니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엘리엇이 제격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친 후,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엇.”

    막 자리에서 일어나 오후에 있을 교육을 준비하려는 엘리엇을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야?”

    엘리엇은 의아해하며 내게 물어왔다.

    “나 좀 도와줄래?”

    “도와줘? 뭘?”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리엇의 손을 잡고 복도 바깥으로 나왔다.

    “미라벨?”

    엘리엇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내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있었다.

    그 덕에 무사히 그를 데리고 1층 정원으로 나올 수 있었다.

    대공가의 가솔들은 우리가 정원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자리를 비워 주었다.

    “자리를 좀 비켜 줄래? 엘리엇이랑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

    칼리나와 아니타, 그리고 엘리엇을 따르는 하인들에게 부탁했다.

    그들은 내 부탁에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정원에 우리 둘만 남게 되어서야 엘리엇을 똑바로 주시했다.

    “엘리엇,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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