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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9)화 (9/174)
  • 9화

    브라이언과 작은 사건이 있은 뒤로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졌다.

    브라이언은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뿌듯한 듯했고, 엘리엇은 아직까지도 오늘 갑작스럽게 훈련이 추가된 것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크라이튼 대공과 엄마는 그런 두 사람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엄마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기에 나는 딱히 끼어들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사실 나는 지금처럼 내가 아닌 엄마에게 모든 초점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무려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용병 생활을 하며, 줄곧 혼자인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게 관심을 보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의뢰인이나 목표물뿐이었다.

    아니, 그뿐만은 아니었지.

    종종 여자라며 우습게 보고 접근하는 가소로운 인간들이 있었다. 용병이라는 직업을 하찮게 여기며 시비를 걸던 놈들도 많았고, 용병을 때려치우고 딸의 호위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 귀족도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나를 용병대에 영입하고 싶어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 용병왕 같은…….

    “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다들 엄마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중인데도 내 작은 목소리를 바로 캐치한 모양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게냐?”

    “뭐든지 말하거라, 조카야.”

    “식사가 입에 안 맞아? 요리를 새로 내오라고 할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라붙는 시선에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잠시 망설였다.

    내가 엄마의 딸인 것은 맞지만, 이런 일을 부탁해도 되는 걸까?

    저들은 모두 내게 친절하고,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려고 했기 때문에 아마도 부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려웠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가족이라고 바로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혼자서 원망하고 지냈던 과거가 길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대공가에 들어와 있는 지금도 거짓인 것만 같았다.

    크라이튼 대공과 공작인 브라이언이 내 말에 언제나 귀를 기울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엄마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자 엄마가 나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차마 말을 꺼내도 되는 건지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도 돼.”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입을 열 수 있었다.

    “대공 각하,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내가 운을 떼자 크라이튼 대공이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말해 보렴. 그게 어떤 것이든 들어줄 테니.”

    크라이튼 대공이 내가 무슨 부탁을 하든지 가리지 않고 들어주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어떤 아이를 만났어요. 그 애에게 수배가 걸려 있는 것 같은데 대공 각하께서 그걸 좀 해결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꺼낸 이야기는 미래의 용병왕이지만, 지금은 어린 소년에 불과한 제프리 콜먼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제프리는 내 도움이 없어도 수배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혼자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될 미래를 안다고 해서 태연히 그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해 굶고 있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마 그 짐마차에 내가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굶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상단의 식량을 터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먹을 것을 구하면 다행이었고, 운이 나쁘면 상단 직원들에게 걸려 된통 두들겨 맞은 후 길목에 버려질 수도 있었다.

    나는 그런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용병으로 등록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직접 그 생활을 겪어 봤으니까.

    그래서 제프리가 그런 고통을 겪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수배까지 내려져 있으니 한동안은 어디 가서 일을 하지도 못할 것이고, 또 어딘가에 몸을 의탁할 수도 없을 터였다.

    그 까닭에 내가 제프리에게 작은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다.

    뭐, 내 부탁을 크라이튼 대공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겠지만.

    “그 아이 이름이 뭐니? 혹 알고 있는 정보가 있니?”

    “체른 출신의 제프리 콜먼이에요. 남자애인데 나이는 저보다 두 살 위고, 은발에 파란 눈을 하고 있어요.”

    “아가, 너보다 두 살 위면 열한 살이겠구나. 그런 어린아이가 대체 왜 수배가 되었는지…….”

    크라이튼 대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구태여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수배를 풀어 주기 위해 조사하다 보면 크라이튼 대공 역시 알게 될 내용이었다.

    “안 될까요?”

    “안 될 것도 없지.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 문제가 없다면 수배를 풀어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크라이튼 대공이 내 부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준 모양이었다.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만일 제프리가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제프리의 죄도 참작될 소지가 있을 터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크라이튼 대공이 눈을 가늘게 휘어 웃었다. 다정함이 느껴지는 눈빛에 나는 잠시 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다. 언제든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내게 말하렴.”

    “네, 대공 각하.”

    내 대답을 들은 크라이튼 대공이 흐뭇하게 웃다가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코넬리아, 어젯밤 늦게 황제 폐하로부터 서신이 도착했었단다. 널 찾았다는 소식을 어떻게 접했는지 네가 다시 돌아왔다면 꼭 한번 찾아와 달라고 하는구나.”

    “황제라면…… 제임스가요?”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니?”

    엄마는 난처한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햄을 먹기 좋게 잘라 입에 넣었다.

    현 황제 폐하라고 하면 과거 엄마의 약혼자였다. 그리고 엄마가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졸지에 파혼당한 인물이기도 했다.

    엄마의 잘못으로 피해를 본 인물이었으니 엄마가 만나기 껄끄러운 것도 이해가 갔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지 크라이튼 대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코넬리아, 네가 가기 싫다고 한다면 강요하지 않으마. 아니, 네가 황제 폐하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야 코넬리아, 그래도 그때의 일을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지 않겠어? ……미라벨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브라이언이 크라이튼 대공의 말이 끝나고 엄마에게 조언했다.

    “그때 네가 떠나고 우리가 보상하긴 했다만 충분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미라벨도 언젠가는 사교계에 발을 들이게 될 텐데, 네가 황제 폐하와 껄끄러운 사이라면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겠어? 그러니 한번은 네가 직접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응. 그러는 게 좋겠지.”

    엄마는 브라이언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 때문에 수모를 겪었을 테니, 내가 직접 찾아뵙고 사과하는 게 맞을 거야. 아버지, 오늘 황제 폐하를 찾아뵐게요.”

    “그렇게 급하게 할 것 있느냐?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가는 게 좋지 않겠니?”

    “아니에요. 제가 다시 돌아왔다는 걸 황제 폐하께서 아셨으니 이 문제로는 지체 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얘기해 두마.”

    “네. 그리고…… 저 때문에 아버지께서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오빠한테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괴롭게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이 내게는 똑똑히 보였다.

    “아니야. 네가 무사히 돌아온 것만 해도 난 다 괜찮다. 너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그래. 우리가 네 마음을 몰라서 널 다그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니까.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혹시 황제 폐하를 만나러 갈 때 필요하면 같이 가 줄게.”

    “아냐, 고맙지만 괜찮아. 오빠랑 가면 황제 폐하께서도 불편하실 거야. 이건 폐하와 내 일이니까.”

    그래도 다행이라면 엄마가 금세 밝게 웃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안심하고는 디저트로 나온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타르트지와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의 풍미가 잘 어우러졌다.

    에그타르트는 용병 시절에도 카페나 호텔에 들러 먹을 만큼 제법 즐기던 디저트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 크라이튼 대공 저에서 먹는 에그타르트는 이전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다.

    “……맛있다.”

    다시 한 입을 베어 물며 작게 감탄했다.

    특히나 과하게 달지 않은 맛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역시나 대공가쯤 되니 이런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도 굉장히 수준이 높은 거겠지?

    “맛있어?”

    “응? 으응.”

    문득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다른 사람들이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내가 감탄을 터트리는 걸 모두가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민망해졌다.

    “이것도 먹어.”

    엄마가 엄마의 몫으로 나온 에그타르트를 내게 양보하려 했다. 나는 당황해서 엄마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냐, 나는 벌써 다 먹었는걸? 그냥 맛있어서 그런 거였어.”

    “엄마는 배불러서 그만 먹어도 돼.”

    그러나 엄마는 내가 더 먹고 싶은데 사양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코넬리아. 네 몫은 네가 먹으렴. 에그타르트는 내가 바로 더 준비하라 이르마.”

    엄마가 내게 에그타르트를 양보하려는 것을 본 크라이튼 대공이 곧 하녀를 불렀다. 그리고는 에그타르트를 더 내올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녀가 트롤리를 이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하녀는 익숙하게 쟁반을 들고 내게 다가와 내 접시에 에그타르트를 더 놓아 주었다.

    “그래, 미라벨.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먹거라. 네가 먹고 싶다면 무엇이든 구해 줄 테니.”

    나는 괜히 부끄러워서 얼굴을 팩 숙인 채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들렴.”

    이대로 관심을 주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계속해서 나를 주시하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어색하게 에그타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얼른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만족했는지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창피한 와중에도 에그타르트의 달콤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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