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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사랑받는 손녀님 (3)화 (3/174)
  • 3화

    “근데 넌 왜 이 짐마차에 숨은 거야?”

    제프리가 문득 내게 물었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 내용이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용병왕이라는 칭호까지 받는 이 남자가 왜 짐마차에 숨어 있느냔 말이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달리 아무리 어려도 노역하는 곳에서 종종 심부름꾼으로 부리기도 했다.

    그러니 돈이 없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난 수도로 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탔어.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숨어 있는 거야?”

    나는 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으며 반대로 제프리를 향해 되물었다.

    제프리는 눈을 굴리며 대답하기를 꺼리다가 어깨를 으쓱 추어올렸다.

    “경비대에 쫓기고 있거든.”

    “뭐?”

    하마터면 큰 소리로 되물을 뻔했다.

    제프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목을 매만졌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이기에 너 같은 꼬마애가 경비대에 쫓겨?”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묻자 제프리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꼬마애라니, 나보다 네가 더 꼬마로 보이거든?”

    그건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제프리는 나보다 두 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나보다 2년 더 산 제프리가 나보다 큰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내 정신은 24살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덩치가 크다고 해서 어린애로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꼬마애라고 한 건 취소할게.”

    일단은 제프리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에 순순히 인정하며 말을 철회했다.

    제프리는 순진한 얼굴로 빙긋 웃으며 “그래.”하고 답했다.

    “어쨌든 어떻게 된 건데?”

    “음…….”

    제프리는 대답하는 대신 한동안 입을 다물고 나직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내게 알려 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이토록 고민한 후에도 이야기를 해 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의 사생활이니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쪽이 옳았다.

    “별거 아냐.”

    말해 주기 곤란한 이야기인가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제프리가 말을 이었다.

    “체른 영지에 가이만이라는 놈이 있거든. 그놈한테 부모님이 돈을 빌렸는데, 못 갚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그 녀석한테 맞아 죽었어.”

    가볍게 꺼낸 얘기치고는 이야기의 경중이 무거웠다.

    “경비대에 그놈을 신고했는데, 경비대에서 빚을 진 우리 부모님이 잘못이라고 하지 뭐야.”

    “…….”

    “그래서 내가 그놈을 죽였어.”

    담담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감정이 들어 있을지는 차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미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을 텐데, 내가 괜히 캐물어 아픈 곳을 찔렀다.

    제프리는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는 듯 조용히 숨을 고르다가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괜찮아. 복수는 확실히 했으니까.”

    용병왕이라 불렸던 제프리 콜먼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다.

    성인이 되어 그를 만났을 때는 마냥 가벼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치고, 넌 왜 수도로 가려는 거야? 나처럼 쫓기고 있는 거 같진 않은데.”

    제프리가 기습적으로 물어왔다.

    나는 밝은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제프리를 보며 설핏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우리 엄마의 아버지인데, 사정이 있어서 엄마랑 그분이랑 못 만나고 있거든.”

    “엄마의 아버지? 그럼 할아버지 아냐?”

    태연한 말에 나는 그만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프리의 말이 맞았다.

    엄마의 아버지면 내게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라는 존재 없이 자라 왔던 내 삶이 커서 크라이튼 대공을 쉬이 할아버지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마 엄마가 크라이튼 대공을 만나더라도 나는 크라이튼 대공을 할아버지라 여기기 힘들 것 같았다.

    “맞지. 할아버지.”

    “그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야? 엄마한테 허락은 맡았어?”

    “아니. 따지자면 가출일까?”

    “그럼 안 되지!”

    제프리가 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꾸짖는 듯한 눈길이 귀여워, 나는 그를 보며 작은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왜 웃어?”

    웃음을 터트리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프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비죽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 내었다.

    “그냥, 네가 귀여워서.”

    “뭐?”

    느낀 그대로의 감상을 이야기하자 제프리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말이야, 엄마 몰래 나온 거면 얼른 집으로 돌아가. 네가 갑자기 사라진 거라면 너희 엄마가 널 얼마나 걱정하겠어?”

    나는 제프리의 말에 잠시 고개를 돌려 빛이 들어오는 천막 틈새를 바라보았다.

    벌써 해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많이…… 걱정하시겠지.”

    아마 지금쯤이면 잠에서 깨어나시지 않았을까?

    그럼 내가 남겨 놓은 편지도 확인하셨을 거고, 내가 없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셨을 것이었다.

    그럼 분명 크게 충격받으시겠지.

    나도 엄마를 이런 식으로 상처입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1년 후 엄마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또 한 번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엄마를 눈앞에서 잃게 되겠지.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크라이튼 대공이라면 이 제국에서 알아주는 권력자이자 부호였으니 엄마를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돌아갈 수는 없어. 할아버지를 만나야 해.”

    내가 쓰게 웃자 제프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중요한 일이야?”

    “응. 나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야.”

    엄마를 살리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내게 있을 수 없었다.

    제프리는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제프리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수긍했다.

    물론 그가 나를 제지한다고 해서 내가 돌아갈 것은 아니었지만, 괜한 소란을 피워서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작게 안도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아니, 뭐…… 내가 뭘 했다고.”

    제프리는 멋쩍었는지 뺨을 긁적였다.

    그때였다.

    꼬르륵.

    어디선가 배를 곯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짐마차 안에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나 아니면 제프리뿐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나한테서 난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제프리를 바라보니 제프리가 빨갛게 물든 얼굴을 짐 사이로 숨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프리는 부모님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고 내내 쫓기는 신세였다고 했다.

    그동안 경비대를 피해 도망치느라 바빴을 테니 제대로 끼니도 해결하지 못했겠지.

    어쩌면 며칠을 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짧은 사이에 깊은 갈등에 빠졌다.

    나에게는 조금이지만 먹을 것이 있었다.

    경험상 델피아 마을에서 수도까지 가는 데 사흘이었기 때문에 그사이에 먹으려고 찐 감자 세 알을 챙겨 왔었다.

    적은 양이지만 하루에 하나씩 먹으며 버틸 요량이었다.

    짐마차로 이동하는 사흘 동안 제프리와 나눠 먹기에는 너무도 적은 양이었다.

    그렇지만…….

    꼬르륵.

    다시 한번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제프리는 소리가 난 뒤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망하고 창피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게 민망하고 창피할 일은 아닌데.

    짧은 고민 끝에 결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제프리를 향해 다가갔다.

    제프리는 내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황한 얼굴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뭐, 뭐야?”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제프리가 나에게 날을 세웠다.

    나는 그런 제프리에게 챙겨 왔던 감자 한 알을 내밀었다.

    “이거 먹을래?”

    “…….”

    제프리가 말없이 내가 내민 감자를 바라보았다.

    포슬포슬하게 잘 쪄진 감자였다.

    “……너는?”

    한참 말이 없던 제프리가 꺼낸 말이었다.

    “집에서 나올 때 감자 세 알 가져왔어. 하나 너 줄게.”

    제프리의 시선이 내 눈과 감자 사이를 오갔다.

    분명 배가 고플 텐데도, 나를 걱정해 주는 제프리가 기특했다.

    나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제프리의 손에 억지로 감자를 쥐여 주었다.

    제프리는 찐 감자를 받아 들고 생각이 많아진 눈치였다.

    “먹어 둬. 갈 길이 멀잖아.”

    앞으로 경비대를 피해 도망치려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 터였다.

    그래도 내가 아는 미래대로라면 제프리는 틀림없이 용병으로 성공하게 된다.

    그때에는 이런 걱정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러니 그때까지는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잘 수 있을 때 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마워.”

    제프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감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채였다.

    “……으윽.”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신음과도 같은 소리에 고개를 돌려 제프리를 확인했다.

    내가 신음이라고 생각한 것은 흐느끼는 소리였다.

    제프리는 울고 있었다.

    울음 탓에 목이 막힐 텐데도 제프리는 한 입, 한 입 감자를 입에 넣었다.

    나는 그런 제프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았다.

    소리를 죽이고 가만히 있으니 촉각과 청각이 유난히 예민해졌다.

    돌부리에 걸린 짐마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승차감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움직임 탓에 몸이 크게 들썩였다.

    또, 짐마차 너머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프리의 울음소리는 그 소리에 조금씩 묻히고 있었다.

    “고마워.”

    제프리가 감자 하나를 다 먹고, 울음을 그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 내게 감사를 표했다.

    그제야 제프리를 돌아보니 그의 얼굴이 배를 곯는 소리가 났을 때만큼이나 붉었다.

    “내, 내가 나중에 이 감자 값은 꼭 갚을게.”

    “겨우 감자 한 알인걸.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니, 갚게 해 줘.”

    유난히 비장한 목소리였다.

    많이 굶어서 그런 건가?

    나도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살았기 때문에 굶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식량을 나눠 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프리에게서 들려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우리 부모님이 가이만에게 돈을 빌린 이유가 뭔지 알아?”

    제프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 얘기가 나오는 로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는 것을 경험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제프리는 이제야 조금 돌아온 얼굴색으로 멋쩍게 웃었다.

    “내가 배고프다고 칭얼거려서야.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먹을 게 없었거든.”

    “…….”

    “그래서 음식으로 빚을 남겨 놓는 건 나한테 죽는 것보다도 더 싫은 일이야.”

    제프리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그 날숨에 제프리의 고뇌와 괴로움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근데 네가 아니었으면 나 정말 죽었을지도 몰라.”

    태연하게 꺼낸 말치고는 목소리가 무겁게 잠겨 있었다.

    “처음으로 음식 빚을 진 거야. 그러니까 갚게 해 줘.”

    이 이상으로 버티면 대화가 계속해서 반복될 것 같았다.

    어차피 감자 값이라고 하면 얼마 되지 않을 거고, 굳이 이 일로 제프리와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커서 감자 두 알로 갚아.”

    용병왕이 되면 감자 두 알 정도는 음식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테니 괜찮겠지.

    내 말이 끝나자 제프리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래, 꼭 두 알로 갚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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