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 재경은 잠에서 깼다. 정신을 차린 뒤에 몸을 일으키자 찌릿한 격통이 아래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어젯밤에도 불타는 시간을 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보통 열에 아홉은 제가 먼저 일어나는 편인데, 박성범이 나간 줄도 몰랐던 걸 보니 어지간히 깊은 잠을 잔 모양이었다.
옷을 꿰입고 밖으로 나가자 박성범이 발소리를 듣고 금세 뒤를 돌아보았다.
“잘 잤어?”
“응.”
“몸은 괜찮아?”
“아니, 안 아픈 데가 없어.”
가감 없는 대답에 박성범이 금세 입가를 올리며 웃었다.
“밥 먹고 나서 마사지해줄게. 다 됐으니까 앉아.”
오늘 아침은 모처럼 한식이었다. 얼마 전에 본가에 다녀온 박성범이 엄마가 또 싸주셨다며 밑반찬을 잔뜩 가져온 덕분이었다.
“매번 얻어먹기만 해서 죄송하네.”
“죄송하긴. 네 덕분에 잘 챙겨 먹는다고 하니까 엄청 좋아하시더라.”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기 좋은 말이긴 했다. 앉을 때만 해도 딱히 입맛이 없었는데 막상 먹기 시작하니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식사를 마친 재경은 빈 그릇과 수저를 챙겨 들고 싱크대로 갔다.
“이거 봐봐.”
뒤따라간 박성범이 딱 붙어 서서 재경의 허리를 안으며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사실은 어제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재경이 귀가하자마자 불이 붙는 바람에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지상파랑 케이블 통틀어서 13관왕이야.”
박성범이 보여준 것은 연예 뉴스였다. 시선을 내리자 정말로 ‘발라드 절대강자 이희찬 13관왕’ 어쩌고 하는 헤드라인이 재경의 눈에 들어왔다.
대략 한 달 전, 라이브 카페에서 들었던 말대로 박성범이 만든 노래는 정식 음원으로 발매되었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재경도 알고 있을 만큼 인지도가 높은 데다가, 특유의 애절한 음색과 서정적인 멜로디, 그리고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 맞물리면서 발라드곡인데도 드물게 롱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제 역할을 다한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에 박성범은 두 손으로 재경의 허리를 결박하듯 끌어안았다.
“오늘도 학교 갈 거야?”
“가야지. 좀 있으면 시험 기간인데.”
“아직 2주나 남았는데 뭘.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나랑 같이 놀자. 13관왕도 했는데.”
은근한 애교가 섞인 목소리에 재경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그거랑 내가 학교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당연히 상관있지. JGL 님이 작곡한 노래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데. 그러니까 기념으로 데이트하자.”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기세였다. 어차피 힘으로는 못 이기는 데다 이길 생각도 없었기에, 재경은 못 이기는 척 녀석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았어. 이따 마트나 같이 가자.”
“응. 그리고 나간 김에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자. 어제 힘 많이 썼으니까 몸보신해야지.”
“몸보신할 일을 안 만들면 안 될까?”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객님. 대신 오늘 종일 풀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박성범은 두 팔로 재경을 번쩍 안아 들었다. 데이트도 좋고 몸보신도 좋지만, 그 전에 약속대로 마사지부터 먼저 해줄 생각이었다.
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침대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두 사람은 느지막이 함께 집을 나섰다.
날씨는 무척 화창했다. 빌라를 나와서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박성범이 아, 하면서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래?”
“폰 놔두고 왔어. 얼른 갔다 올게.”
박성범은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갔다. 유력한 장소인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옆 협탁 위에 핸드폰이 놓여 있었다. 금세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둘이서 느긋하게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낸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아차, 빨리 내려가야지.’
핸드폰을 챙긴 박성범은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땡-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탁 트인 복도가 나타났고, 이내 박성범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분명 빌라 밖으로 함께 나갔던 재경이 현관 안쪽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여기 있어?”
“추운 거 싫어서.”
무심하게 대답하는 모습도 그저 귀엽기만 했다. 가자. 박성범은 이내 재경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햇살처럼 기분 좋게 웃었다. 둘이 함께 만들어가는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