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 2부 (12/22)
  • 1.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재경은 더듬더듬 팔을 뻗어 핸드폰 알람을 껐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긴 했지만 앉은 채로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

    “……춥다.”

    달이 바뀌면서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이대로 있으면 다시 눕고 싶어질 것 같아서 재경은 유혹을 뿌리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자 주방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가가서 보니 예상대로 박성범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는 척하며 인기척을 내자 금세 뒤를 돌아보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잘 잤어?”

    “……어. 너는?”

    “나도 잘 잤지. 거의 다 됐으니까 잠깐만 앉아 있어.”

    싱긋이 웃어 보인 뒤에 박성범은 다시금 앞을 바라보며 국자로 냄비 안을 가볍게 휘저었다.

    대략 한 달 전. 서로의 마음이 같음을 확인했던 그날, ‘정말 잘하겠다’고 했던 말을 박성범은 철저하게 지켰다. 오늘처럼 1교시 수업이 없는 날에도 일찍 일어나서 식사 당번을 자처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에 재경은 박성범이 아침 일찍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주방에 서 있는 녀석을 발견했고, 그제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 때문이면 일부러 일찍 일어날 필요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박성범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했다.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데 더 이상 말리기도 뭐해서 이후로는 그냥 상 차리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치이이익-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고 보니 식탁에는 밑반찬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오늘 아침은 밥이야?”

    “어. 어제저녁에 본가에 잠깐 갔다 왔는데 너랑 같이 먹으라고 엄마가 이것저것 싸주셨어. 냉장고 열어보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더 꺼내.”

    이미 식탁에 차려진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재경은 수저통에서 식기를 꺼내 가지런하게 놓았고, 잠시 후에 박성범과 마주 보고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아침엔 주로 빵이나 시리얼로 때우는데 오랜만에 밥을 먹으니 한 공기가 뚝딱이었다. 식후 설거지는 재경의 몫이었다. 이 또한 박성범은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아침마다 식사 준비를 해주는 것도 미안할 때가 있는데 뒷정리마저 떠넘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커피 마실 거지?”

    “응.”

    박성범은 곧 익숙한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향긋한 커피 냄새를 음미하며 설거지에 집중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슬그머니 허리를 껴안는 느낌이 났다.

    “뭐야?”

    “그냥. 좋아서.”

    “…….”

    재경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도로 다물고 말았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지 어느덧 한 달째. 그전에도 워낙 잘해주던 녀석이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긴 했다.

    이런 스킨십이나 달달한 행동들이 아직은 좀 어색한 자신과 달리 박성범은 직설적인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틈틈이 백허그를 하거나 손을 잡는 것은 기본이고, 밤에 알바를 마치고 귀가하면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진한 키스를 하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성범은 자신의 침실에서 함께 자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주말 밤만 같이 보내기로 합의를 봤다. 그리고 그때마다 녀석은…….

    얼굴을 붉히던 재경은 문득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각에 서둘러 박성범의 팔을 붙잡았다. 분명 백허그만 하고 있던 녀석이 슬금슬금 셔츠 자락을 들치며 맨살을 쓰다듬고 있었다.

    “손 떼.”

    “조금만 하면 안 돼?”

    귓가에 다이렉트로 꽂히는 목소리에 솜털이 곤두섰다. 그냥 말해도 못 들을 리가 없는데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했다. 은근히 앞섶까지 밀어붙이는 탓에 재경은 흠칫했지만,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며 팔꿈치로 박성범을 밀어냈다.

    “나 학교 가야 돼.”

    “알아.”

    “아는 사람이…… 흐읏.”

    목덜미에 닿는 입술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촉, 촉, 계속되는 가벼운 입맞춤에 아랫배로 점점 뜨거운 열기가 몰렸다. 자칫하면 완전히 말려들 것 같아서 재경은 서둘러 브레이크를 걸었다.

    “더 하면 오늘 밤은 각방이야.”

    “…….”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는 행동에 재경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것도 잠시, “아쉬우니까 한 번만.”이라며 기어이 입맞춤을 한 뒤에야 박성범은 물러섰다.

    이래저래 부산스럽게 뒷정리를 끝낸 뒤에 재경은 박성범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손에는 우산을 하나씩 든 채였다. 부슬비라서 괜찮다고 했지만, 박성범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다며 기어이 차 키를 챙겨 들고 재경을 따라나섰다.

    차에 타서 밤새 쌓인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는데 옆에서 박성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오늘은 좀 늦을지도 몰라.”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작곡 팀 형들이랑 만나기로 했거든. 상황 봐서 적당히 빠져나올게.”

    “늦게 와도 돼.”

    “그럴 수는 없지. 금요일만 손꼽아 기다리는 거 알잖아.”

    갑자기 느껴지는 온기에 재경은 고개를 돌렸다. 왼손으로는 핸들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손에 깍지를 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전에 집중해.”

    “집중하고 있어. 너 태우고 가는데 사고 낼까 봐?”

    잠깐 박성범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재경은 반대편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금요일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인 쾌감도 물론 좋지만, 서로 체온을 나누며 꼭 껴안고 자는 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연애할 생각이 없다며 딱 잘라 말하고 다녔던 게 민망할 정도였다.

    “내일은 데이트하자.”

    “데이트?”

    다시금 옆을 바라보자 박성범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영화 재밌는 거 개봉했대. 근처에서 저녁 먹고 가면 될 거 같은데……. 아니면 영화부터 먼저 볼까?”

    “너 편한 대로 해.”

    지금도 재경은 주말 오전에는 도서관을 찾았다. 공부도 해야 되고 과제도 해야 되고, 또 내년이면 본격적인 취준생 대열에 합류하게 될 텐데 페이스를 늦출 수는 없었다. 다행히 박성범이 그런 사정을 이해해줘서 주말에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럼 밥 먹고 나서 영화 보러 가자. 그리고…….”

    “그리고 뭐?”

    “아니, 맛있는 거 먹자고.”

    잠시 후에 차는 경영관 앞에 도착했다. 재경은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차에서 내렸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 * *

    “아이고, 죽겠다.”

    최용식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재경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 금요일 저녁에는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오늘은 정말 역대급이었다. 테이블을 하나 치우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다른 손님들이 들이닥쳐서 ‘다들 짜고 이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래도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쫓아다니다 보니 시간은 잘 갔다. 어느덧 11시가 된 것을 확인한 최용식이 재경을 보며 말했다.

    “퇴근 시간 다 됐네. 얼른 가서…….”

    까지 말한 순간, 또 한 번 호프집 문이 열리며 손님들이 들어왔다. 하나, 둘, 셋……. 기차처럼 줄줄이 들어오는 통에 최용식의 얼굴은 희게 질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도 차마 먼저 갈 수가 없어서 재경은 카운터 위에 있던 메뉴판을 챙겨 들었다.

    “저 손님들까지만 도와주고 갈게요.”

    하지만 인생은 마냥 뜻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도합 열 명에 달하는 단체 손님들은 메뉴를 정하는 데만 5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다른 테이블에서도 자꾸만 새로운 주문이 들어왔다. 그 탓에 재경은 결국 11시 30분이 넘어서야 유니폼을 벗을 수 있었다.

    “오늘 진짜 수고 많았어. 비 오는데 택시 타고 가.”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최용식은 재경의 손에 만 원짜리 지폐를 쥐여 주었다. 그러고는 쌩하니 호프집 안으로 들어가버려서 재경은 할 수 없이 돈을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원래는 한가할 때 한 번씩 꺼내 보곤 하지만 오늘은 그러기는커녕 화장실에 갈 여유조차 없었다. 메시지를 확인하자 박성범이 보낸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방금 도착했어 많이 바빠?]

    [벌써 보고 싶다♡ 탈출 성공하면 데리러 갈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할 말만 깔끔하게 하는 자신과 달리 박성범은 처음부터 이모티콘을 곧잘 썼지만, 요즘엔 각양각색의 하트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박성범은 문자만 보낸 게 아니었다. 메시지 확인을 끝낸 재경은 11시쯤에 들어온 부재중 전화 기록을 발견하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음이 꽤 오래 이어져도 박성범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종료 버튼을 누른 재경은 ‘지금 간다’는 문자를 보낸 뒤에 우산을 펼쳐 들었다.

    * * *

    현관문을 열자 캄캄한 어둠이 재경을 반겼다. 곧장 핸드폰을 확인해봤지만 박성범에게서 온 연락은 없었다.

    “하아, 피곤하다.”

    소파에 널브러지듯 앉자마자 피곤함이 밀려왔다. 이대로 그냥 자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온종일 밖에 있었기에 차마 침대로 직행할 수가 없었다. 유혹을 떨쳐내고 몸을 일으킨 재경은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틀자 금세 뿌연 수증기가 차올랐다. 샤워부터 끝낸 다음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어?”

    박성범의 목소리였다. 재경은 순간적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어. 금방 나갈게.”

    “들어가도 돼?”

    들어온다고? 설마 여기로?

    화장실이 급해서일 수도 있지만, 집에는 욕실이 하나 더 있었다. 어쩐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닐 것 같아서 재경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안 돼. 5분 안에, 아니 3분 안에 나갈게.”

    “들어가고 싶은데.”

    “절대 안 돼. 너도 얼른 씻고 와.”

    다행히 더는 기척이 들리질 않았다. 하지만 언제 저 문이 열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재경은 서둘러 머리를 감은 뒤에 뜨거운 물로 헹궈냈다.

    “으악!”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씻으러 간 줄 알았던 녀석이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계속 여기 서 있었어?”

    “응.”

    팔을 뻗은 박성범이 그대로 재경을 껴안았다. 거리가 좁혀지기 무섭게 술 냄새가 훅 풍겼다.

    “다녀왔어.”

    힘주어 껴안은 탓에 살짝 답답했지만, 재경은 밀어내는 대신 어색하게나마 등을 토닥여주었다.

    “잘 놀다 왔어?”

    “말도 마. 하필 정열이 형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어.”

    “왜?”

    “그 형 술버릇이 옆에 앉은 사람한테 계속 먹이는 거거든. 적당히 쳐냈어야 됐는데, 웃고 떠들다가 나도 모르게 엄청 마셨어.”

    그러고 보니 말투도 느릿한 게 평소와 사뭇 다르긴 했다. 이 와중에도 데리러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에 재경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른 들어가서 자. 내일 아침은 내가 준비할게.”

    그러자 박성범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시선을 마주했다. 얼굴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나 혼자 자라고? 오늘 금요일이잖아.”

    재경은 한 템포 늦게 말뜻을 깨닫고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가끔 보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었다.

    “취해도 오늘이 금요일인 건 기억 나?”

    “당연하지. 일주일 내내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직설적인 대답에 재경은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박성범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알았으니까 가서 자자. 오늘 좀 늦게 마쳤더니 피곤해.”

    “손님이 많았어?”

    “조금.”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끌어안는 손길과 함께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반쯤 예상했던 일이기에 재경은 놀라지 않고 눈을 감으며 키스에 응했다. 하지만 옷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고는 서둘러 박성범의 손을 붙잡았다.

    “씻고 와.”

    “그냥 자면 안 돼?”

    “안 돼. 술 냄새 많이 나.”

    “……맞다. 얼른 씻고 올게.”

    품에서 빠져나온 재경은 먼저 침대로 가서 풀썩 드러누웠다. 그사이 박성범은 허물을 벗듯이 옷을 하나씩 벗었고, 덕분에 재경은 돈 주고도 보기 힘든 스트립쇼를 눈앞에서 보게 됐다.

    셔츠와 청바지에 이어 마지막으로 속옷을 벗을 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이래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설마 제가 같은 남자 몸을 보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탈의를 마친 박성범이 욕실로 들어가자, 재경은 기다린 듯이 눈을 감았다. 온종일 바쁘게 시간을 보냈더니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생각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쪽, 쪽, 하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니 박성범이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일어났네.”

    쪽, 이마에 한 번 더 닿았던 입술이 이번에는 재경의 입술에 닿았다. 재경은 박성범의 목을 껴안으면서 살며시 입술을 벌렸다. 술 냄새 대신 상쾌한 바디워시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으응… 하아….”

    입술과 혀를 움직일 때마다 젖은 소리가 울렸다. 처음엔 몹시 민망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큰 흥분을 자아냈다. 어느 순간 재경은 흠칫하며 허리를 떨었다. 키스하면서 허리께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가락이 위로 거슬러 올라와서 젖꼭지를 살짝 건드린 탓이었다.

    잠깐 입술을 떼며 박성범이 재경의 옷을 벗겼다. 다시금 혀를 섞으며 진한 키스를 하다가 목선을 따라 점점이 입을 맞추며 내려와서 작게 솟은 돌기를 입에 물었다.

    초옥, 촉, 작게 울리는 소리에 재경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키스와 포옹은 워낙 자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 이상의 애무는 아직도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지금처럼 젖꼭지를 애무할 때는 조금 더 얼굴이 뜨거워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슴만 만져도 중심부에 힘이 들어가는 까닭이었다.

    반쯤 발기한 성기에 박성범의 손이 닿았다. 틈 없이 감싸 쥐고 부드럽게 흔들다가 이내 눈을 마주보면서 하는 말이 들렸다.

    “나도 해줘.”

    흥분해서 살짝 허스키하게 변한 목소리에 재경은 소름이 돋았다. 이내 더듬더듬 손을 내려 박성범의 것을 손에 쥐었다. 어김없이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주말 밤마다 만지고 예뻐해주는 녀석이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크기였다.

    “대체…….”

    “응?”

    “아니, 뭘 먹으면 이렇게 되나 싶…….”

    아차 하는 마음에 급하게 말을 멈췄지만 이미 늦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는데도 놓치지 않고 들은 박성범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재경. 너 진짜 귀여워.”

    이마에 입술을 부딪치며 하는 말에 재경은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닭살 돋는 말 하지 마.”

    “툴툴대는 것도 귀여워. 이대로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하지 말라니까.”

    질색하며 만류했지만 그러든 말든 박성범은 마이웨이였다. 낯간지럽기 짝이 없는 말을 귓가에 대고 잔뜩 늘어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재경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뭐 해?”

    이상한 느낌에 재경은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화들짝 놀랐다. 허벅지 안쪽을 붙잡은 박성범이 단단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아래쪽에 마구잡이로 비벼대고 있었다. 보자마자 재경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난생처음으로 보는 적나라한 광경이었다.

    “하지 마… 우읍….”

    거절하는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입술이 막혔다. 박성범은 한 팔로 상체를 지탱한 채, 오른손으로는 재경과 제 것을 동시에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으응…, 하아….”

    언제 밀어냈냐는 듯 재경은 박성범의 어깨를 껴안고 키스에 몰두했다. 손끝에 닿는 단단한 피부와 변함없이 뜨거운 체온, 묵직한 무게감까지. 그 모든 것이 재경을 들뜨게 했다. 위아래로 끝없이 가해지는 기분 좋은 감각에 금방이라도 절정에 이를 것만 같았다.

    “놔봐. 할 것, 으응, 같아.”

    “그냥 해.”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하며 박성범은 재경의 중심만 손에 쥐고 더욱 빠르게 훑었다. 그러면서 간간이 음낭을 주무르기도 하고, 손끝으로 회음부를 가볍게 누르며 자극하기도 했다. 덕분에 빠르게 고조되는 쾌감 속에서 재경은 움찔 몸을 떨며 절정에 달했다.

    “하아, 하아….”

    널브러지다시피 한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재경은 다시 한 번 다급하게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내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번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박성범의 손가락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자, 잠깐만. 거긴 좀…….”

    재경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하지만 커다란 손이 허벅지 안쪽을 붙잡듯 누르고 있는 탓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와중에도 버릇없는 손가락은 멋대로 입구 주변을 지분거리고 있었다. 말문이 잠깐 막힌 틈을 타서 박성범이 조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조금만 만질게. 응?”

    “거, 거길 뭘 어떻게 조금만 만져.”

    “끝까지 안 해.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또다시 귓가에 대고 하는 말에 재경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약한 걸 알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 따질 수도 없었다. 그사이 박성범은 계속해서 주름 위를 문질렀고, 급기야 몸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오는 느낌이 났다.

    “……!”

    생경한 감각에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신음을 재경은 간신히 참아냈다.

    사실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백은 다소 충동적이었지만, 이후로 재경은 박성범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쪽 방면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손만 잡아도 좋아하는 어린애도 아니고, 한창 피가 끓는 청춘인데 키스만으로 만족스러울 리가 없었다. 하물며 술김이긴 해도 더한 행위를 했던 전적이 이미 있으니, 앞으로도 최소한 그 정도는 한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만일 삽입 섹스까지 하게 된다면 틀림없이 제가 아래일 것 같아서 재경은 큰맘 먹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걸 검색해봤다. 남자끼리 할 땐 거길 쓴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상을 보면서 자신을 대입한 순간 볼멘소리를 내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그렇게 간신히 기초 지식을 습득한 뒤에 또다시 주말이 돌아왔다. 서로 만져주며 기분 좋게 한 발씩 뺀 뒤에 재경은 다음을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예상과 달리 박성범은 재경을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그다음 주도 마찬가지였다. 집요할 정도로 물고 빨며 곳곳을 자극하기만 할 뿐 그 이상 진도를 나가는 일은 없었기에, 재경은 ‘거기까진 생각이 없구나.’ 하고 결론을 내렸다. 그랬는데…….

    “자, 잠깐만, 박성범!”

    느닷없이 그쪽을 건드리니 당황스러움이 배가 됐다. 재경은 서둘러 박성범의 팔을 붙잡으며 만류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린애 달래듯 이마에 쪽쪽 입을 맞추더니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안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어딘가에 닿는 순간 재경의 허리가 크게 움찔했다.

    “여기네.”

    “하지 말라니까…!”

    “괜찮아. 그냥 너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

    “안 해줘도 된… 하읏…!”

    또 한 번 같은 곳을 자극하는 순간 아찔한 쾌감이 일었다. 분명 밀어내려던 녀석의 팔을 저도 모르게 붙잡은 채 재경은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제가 아는 박성범은 싫다는 걸 억지로 할 녀석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상황에서 물러서질 않으니 더더욱 당혹스러웠다.

    설마 계속 참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 쳐도 왜 오늘 갑자기…….

    “으, 으읏…!”

    “괜찮아? 아프지는 않지?”

    가시지 않는 민망함에 재경은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아프다고 하면 그만둘 거야?”

    “아니. 안 아프게 해야지.”

    씩 웃어 보인 녀석이 다시금 재경의 성기를 손에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며 어깨를 떠밀었지만 이번에도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완급을 조절하면서 리드하는 손길에 재경은 제 것이 아닌 듯한 신음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몸이 뒤집히면서 엎드리는 자세가 되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뜨겁고 단단한 무언가가 허벅지 사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영문을 파악한 재경은 새된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조금만 비빌게. 끝까지 안 해. 진짜야.”

    이어서 박성범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경은 화들짝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커다란 두 손이 허리를 붙잡고 있어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탈 듯이 붉게 달아올랐다. 박성범이 허리를 튕길 때마다 재경의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이래서야 넣지만 않았을 뿐이지 섹스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 하읏…!”

    문제는 믿을 수 없게도 계속해서 흥분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뜨거운 체온도, 거친 움직임도, 간간이 부르는 자신의 이름도. 모든 것이 더할 수 없는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동안 뒤에서 밀어붙이던 박성범이 마침내 나직한 탄성을 흘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재경의 얼굴이 또 한 번 붉게 달아올랐다. 아래를 흠뻑 적시는 체액이 적나라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으음…….”

    침대에 눕혀짐과 동시에 입술이 내려왔다. 또다시 아래를 쥐고 흔드는 손길에 재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절정에 달했다.

    “하아, 하아….”

    정신없이 가쁜 숨을 내뱉는 동안 박성범은 급하게 벗겼던 재경의 옷가지로 젖은 몸을 대충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우며 뒤에서 재경을 껴안았다. 재경은 설마 하는 생각에 간신히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잘 건 아니지?”

    “내일 내가 씻겨줄게. 지금은 꼼짝도 하기 싫어.”

    허리는 그렇게 잘 움직이더니,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재경은 속으로 조용히 삼켰다. 입 밖으로 냈다가는 곧장 2라운드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슬쩍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꽉 끌어안긴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재경은 벗어나길 포기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안겨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충족감과 포근함이 재경을 감쌌다. 기분 좋은 따스함 속에서 재경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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