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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65화 (16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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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는데, 아마 거리에서 미아가 되었을 거야. 친부모님의 행방을 계속 알아봤는데 결국 찾아내지 못했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디온은 뜻밖의 사실에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더 말해 보라는 듯 작게 끄덕여 주었다.

    “당시 부모님은 결혼하신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계속 아이가 없었거든. 그래서 날 하늘이 주신 인연이라고 생각하셨대.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의하셨고.”

    아버지 외의 형제는 모두 독립해서 집을 떠난 이후였다. 세이나는 어린 시절을 더듬으며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어렸을 때는 지금과 성격이 아주 달랐어. 할머니는 내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고 하셨으니. 너무 걱정되어서 의사도 많이 만나 보셨대.”

    “그렇군요.”

    “응, 그래서…… 좀 불안해. 지금 흐름으로 봐선 내가 잊고 있었던 과거들을 순서대로 자각할 것 같거든.”

    그녀가 잊었던 전생은 아마도, 죽음을 맞기 직전.

    그 이후부터 어느 날까지의 기억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거의 2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치유’하고 ‘정화’한 지금 이 시점에 떠올랐다면.

    “내가 잃은 기억이 성녀의 힘과 관련이 있다는 거겠지.”

    어떤 작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이나는 끄덕이며 제 결론에 확신을 더했다.

    다음 ‘치유’ 이후에도 과거가 찾아오리라. 그런 직감이 들었다.

    문제는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드는 감정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로힐 부부는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여자아이를 딸로 거두었다. 즉, 누군가는 그녀를 잃어버렸거나.

    버렸다는 뜻이 된다.

    씁쓸함을 느끼며 세이나는 제 머리를 헝클였다. 괜찮다. 상관없다. 주문처럼 외워 봐도 갑갑한 마음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디온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돌연 그가 물었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언제예요?”

    “부모님이 세르벤스 숲으로 떠났을 때…… 아! 부모님!”

    그녀의 눈에 깨달음이 스쳤다.

    왜 잊고 있었지?!

    “후작이 세르벤스 숲에 갔던 게 맞아?”

    “아.”

    그리고 디온도 그제야 떠올린 듯했다. 그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네. 거기서 실험을 이어 갔다고 했습니다.”

    “……역시 내 부모님이 숲을 찾아갔던 시기였겠지?”

    “네. 스승님께 들었습니다.”

    또 새로운 과거가 찾아왔다. 실험? 스승님?

    고개를 갸웃하는 세이나에게 디온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그의 과거 역시 새로웠기에, 그녀는 귀를 쫑긋하고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셀론을 미워할 수만은 없구나.”

    ……라고 말할 땐 디온이 찡그리긴 했으나, 그는 반박하지 못했다.

    디온이 묘사한 후작은 세이나가 그간 생각해 온 것보다 더 쓰레기였다. 겉으로는 진지한 척하지만 속내는 아주 다혈질이고, 자신밖에 모르는.

    “당시 후작은 스키아의 혼을 인간에게 정착하는 실험을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엘렌’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있다고 하셨죠.”

    “세르벤스 숲은?”

    “제가 읽은 기록에서는 실패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혼은, 결국 육체를 집어삼킵니다. 그곳에서 폭주와 비슷한 현상이 있었겠죠. 하지만…….”

    디온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아직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무슨 뜻이야?”

    “후작은 꼼꼼한 성격이죠. 죽은 이들의 수를 다 기록해 둘 만큼.”

    세이나의 눈이 커졌다. 디온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기록에 로힐 부부는 없었습니다.”

    * * *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동굴의 입구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세이나는 떨어지는 빗줄기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목도 딱히 마르지 않지만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저기 저 수풀들을 헤집고 다니면서 바람을 쐬면 이 고민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후우…….”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다정했고, 집은 편안했다.

    비록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하루가 빠짐없이 소중하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떠나는 날 제 머리칼을 쓸었던 손길을 세이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세이나는 그들을 친부모님이라고 여기며 일평생을 살아왔다.

    할아버지에게 했던 말도 진심이었다.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반드시 만나서 그동안 고생했던 것을 모두 투정 부리며 토해 내겠다고.

    ‘괜찮아.’

    세이나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한번 터져 버린 눈물샘은 이전처럼 그녀의 의지를 따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살아 계실 거야.’

    울컥한 감정을 삼킨 그 순간, 옆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디온은 그녀의 옆에 털썩 자리를 잡더니 제 어깨를 가리켰다.

    세이나는 작게 웃으며 그에게 머리를 기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디온이 팔을 뻗어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약 올리는 건 잘하면서 위로는 좀 못할지도.’

    하긴, 이 시점에 그가 무슨 말을 해 주겠는가.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아마도 다음에 그를 치유해 줄 때…….

    “그런데.”

    “네?”

    “정말 입술밖에 없어?”

    세이나는 그를 마주 보았다. 디온은 계속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팔이나…… 다른 쪽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 싫었어요?”

    “아니이…… 그게 아니라. 각성을 위해서 키스하는 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디온의 눈이 가늘어진 그때, 세이나는 팔을 보고 있었다.

    제 손톱으로 꾹 눌러 봤지만 아프기만 할 뿐, 피가 나올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금 누른 순간, 디온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는 어느새 그녀의 뒷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그럼 해 보죠.”

    “뭐? 아!”

    그는 곧바로 그녀의 목을 깨물었다.

    세이나는 빠르게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지만 이미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아직 통증이 남은 살갗 위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윽!”

    “음, 이 정도로는 안 되네요.”

    웃고 있는 게 틀림없는 목소리였다.

    다시 그가 이를 세워 깨물었고, 세이나는 어깨를 꽉 쥐었다. 핥을 때마다 느껴지는 쓰라림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괴롭힘은 턱을 넘어 귓바퀴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입술까지 올라오기 전, 세이나는 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푸른색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역시 여기밖에 없죠?”

    “뭔가 얄밉네…….”

    여기밖에 없죠? 라니. 제대로 깨물지도 않았으면서.

    그는 뻔뻔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 세이나의 목에 입 맞추었다. 마침내 서로의 코끝이 닿은 순간, 세이나는 입술을 열어 그를 받아들였다.

    세 번째 키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이윽고 입술에 작은 상처가 났을 때, 세이나는 어느새 그의 무릎 위에 올라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쁜 숨을 고르자 점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

    “졸려요?”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볼에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세이나는 미안함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시 말해 두겠는데, 지루해서가 아니야…….”

    귓가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곧 부드러운 손길이 등을 쓸어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알아요.”

    “싫은 것도, 아니고…….”

    “응.”

    그러고는 더 말하기가 힘들었다.

    디온의 품에 안긴 채, 세이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그녀가 태어난 곳은 신문도 오지 않는 시골이었다.

    외지인이 방문하는 것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할 일. 어떤 지도에는 표기도 되지 않았다. 그 지역 영주조차 가끔은 존재를 까먹는다는 그곳에서.

    그녀는 작고 동그란 손을 흔들며 생각했다.

    ‘맙소사, 여기가 어디야?’

    분명 길을 걷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흐린 시야 속에서 웬 오래된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통나무집이 나타났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제 상태였다.

    ‘설마 환생이야?’

    믿기지 않지만 그랬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몸.

    하지만 전생의 기억은 그대로였다. 말로만 듣던 그것을 실제로 접하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니면 빙의?’

    빠르게 상황을 알아보고 싶어도 그녀는 너무 작고, 또 배가 고팠다.

    다행히 어머니는 있었다. 이름도 바로 생겼다. 세이나.

    그리고 그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엄숙한 표정의 사내가 그녀를 찾아왔다.

    ‘혹시 아버지인가?’

    그러나 애정 어린 시선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세이나가 의아한 순간, 남자가 묵직한 주머니를 내놓았다.

    ‘팔았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부모와 떨어지게 되었다. 아주 빠르게.

    ‘날 팔았다고?!’

    이윽고 도착한 곳은…… 추측조차 하기 어려웠다. 바로 상자에 갇혀 버렸고, 울다 지쳐 잠들었으니.

    눈을 뜨니 순백색의 공간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대화들이 들렸지만 이곳의 말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 그녀 외에도 다른 소녀들이 몇 있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보살펴 주는 신전인가?’

    하지만 평범한 보살핌치고 신관들은 그들의 교육에 몹시 열을 올렸다.

    매일 아이들을 모아 수업을 하고, 묵직한 책을 주었다. 고작 갓난아이인 세이나를 두고도 빨리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대체 뭐 하는 곳이야?’

    덕분에 세이나는 빠르게 말을 익힐 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수업’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그 첫 수업에서.

    “먼 옛날, 마족이라는 존재가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세이나는 신관들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을 부른 이는 어린 신관이었습니다. 마족은 물었습니다. 소년아, 너는 왜 그렇게 울고 있느냐?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어서 괴롭습니다.”

    “…….”

    “신을 버리고, 양심을 버리고, 또한 자신까지 버린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의 뜻을 받들어 펼치고 싶으나 저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자 마족이 말했습니다.”

    “…….”

    “우리가 네게 힘을 주마. 너의 창이 되어 악인들을 처단하고 너의 날개가 되어 너를 보호해 주겠노라.”

    “…….”

    “……마족들은 부패한 귀족들을 처단했습니다. 미친 왕이라 불리는 존재를 물리치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했습니다.”

    “…….”

    “또한 마족으로 인해서 마법이 탄생하고, 성력과 오러가 발현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큰 세력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죠.”

    ‘설마.’

    “그들은 결코 종말을 부르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정화한 것입니다.”

    ‘미친!’

    그녀는 마족 숭배자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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