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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58화 (15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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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이 가르쳐 준 마법은 후작에게 디온이 진정으로 마족과 동화되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디온은 자연스럽게 후작의 음모에 합류했다. 많은 정보를 공유받고, 후작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결정적인 실험은 전혀 참관할 수 없었다.

    ‘아직도 경계하는 건가.’

    후작은 엘렌이 잠이 들면 그녀의 몸을 실험실로 옮겼다.

    디온은 몰래 레티를 보내 그들을 따르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레티는 그곳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승의 옛 제자 놈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엘렌은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놈을 변화시키는 것 같은데…….’

    마물화는 마족만이 부릴 수 있는 능력.

    그 힘까지 손에 넣는다면 ‘성녀의 피 없이 마족을 부활하는 방법’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후작은 엘렌에게 깃든 마족의 힘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 같았다.

    부디 그의 계획이 실패하기를 바라며, 디온은 초조하게 후작을 살폈다. 그리고 어느 날.

    “성녀를 찾아야겠다.”

    후작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더는 진전이 없어. 성녀를 찾아서 그 피를 흡수하는 수밖에.”

    디온은 기다렸다는 듯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계획이 수립되었고, 후작의 사람들이 곳곳으로 파견되었다. 대륙 전역의 정보가 한곳으로 결집되었다.

    바로 디온에게.

    레티에게 엘렌의 감시를 맡겨 두고 디온은 유클레스 영지를 떠났다. ‘정보상’이란 그때 생긴 신분이었다. 헥터 바실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가명이 생겨났다.

    하지만 성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역대 성녀들에게는 작은 공통점도 없었다. 출신, 인종, 머리 색, 눈동자 색, 성격 등등 모든 것이 달랐다. 어떤 성녀는 성력이 하나도 없었다.

    디온이 직접 만나지 않는 한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대체 어머니는 어떻게 찾은 거야?’

    더 들어 뒀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자신의 비밀에 너무 충격받아서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탐색은 작은 성과조차 없었다.

    몇 년 동안이나.

    그 세월 간, 디온은 정말 다양한 장소에 발을 들였다.

    후작은 성녀를 찾는 것 외에 은밀한 일도 종종 맡겼다. 그 중엔 다소 법을 거스르는 것도 있었으나 디온은 망설이지 않았다. 후작의 신뢰를 받아야 하니까.

    그래도 그 나름의 선도 지켰다. 어머니에게 부끄러운 짓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선’이라는 것도 모호해진 기분이었다.

    술과 담배, 도박이 점차 제 옷처럼 편해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에 맞춰서 매번 다른 가면을 썼다.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상대를 세뇌했다.

    그 몇 년 동안.

    후작이 초조해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돌아가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를 거스르는 이들은 어김없이 나락으로 빠졌다.

    그들을 조롱하듯 비웃으면, 또 그 말이 들리는 것이다.

    “이 악마!”

    ‘오, 어떻게 알았지.’

    자신이 마족에게 완전히 동화되었다는 후작의 생각은 그저 착각이 아닌 듯했다. 사람을 제멋대로 휘두르면서도 죄책감 따위 없었으니.

    아버지도 그걸 느낀 걸까.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남을 약 올리는 일은 퍽 즐거웠다.

    특히, 유클레스 후작이.

    디온은 틈만 나면 비아냥대며 그를 놀렸다. 후작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동안 그가 준 도움 때문에 화를 내지 못했다. 그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엘렌의 가출을 눈감아 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숨 쉴 틈은 있어야지.”

    엘렌은 신전에서 정말 행복해 보였다.

    자는 시간도 거의 없고, 열심히 들판을 뛰어다녔다. 기억을 지우기로 한 그녀의 판단은 아주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저기, 디온. 역시 그냥 두자. 신관들이 저렇게 많으니까…… 마력도 억제가 될 거야.”

    레티는 너무 오래 지켜본 탓에 엘렌을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레티에게 주시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후작을 만나 또 키득대며 잔뜩 놀려 주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온 디온은 문득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외상은 없었다. 누가 그를 감히 해치려 들겠는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급히 마법을 써서 레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작은 요정은 애처롭게도 풀밭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깨어났어!”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다. 레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라고! 스키아가 일어났어!”

    흔적은 뜻밖에도 꽤 먼 거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늪의 마기가 짙어진 것까지 확인한 디온은 황급히 그 옆의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술기운이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헌터로 보이는 어떤 일행을 발견했다.

    디온은 검은 머리의 여자를 보고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황당하게도 그녀는 홀로 동료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어쩌지? 저러다 엘렌이랑 마주치면 죽을 텐데…….”

    “가는 길에 마물이 많아서 멀리 가진 못해. 쓰러지면 숲 밖으로 옮기자.”

    디온과 레티는 기척을 숨기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산은 변화가 시작된 마물들이 우글거렸다. 얼마 가지 않아 주저앉겠지.

    그러나 다음에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다음에도.

    “이제 쓰러지겠지.”

    그다음에도.

    “디온, 어쩌지?”

    “조금만 더.”

    그다음에도.

    “……이제 쓰러질 거야.”

    그다음에도.

    “……곧.”

    “곧이면 언제?”

    “아, 아마 저기 즈음……?”

    그다음에도.

    “검이 부서졌으니 돌아가겠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여자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가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을 땐, 디온도 레티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쳐 숨을 헐떡이면서도, 여자는 비틀대지도 않았다.

    “업혀.”

    그러고 씩씩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난 절대 누구도 포기하지 않아.”

    디온은 아연실색했다.

    ‘미친 여자.’

    그것이 세이나 로힐에 대한 그의 첫 소감이었다.

    *

    등에 소년을 짊어지고 가는 것은 당연하게도 순탄치 않았다.

    세이나 로힐의 몸은 갈대처럼 매 순간 기울었다. 어찌나 아슬아슬한지, 보는 사람을 괜히 긴장하게 했다.

    그러나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이제 넘어지는 건가 싶으면 곧 옆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디온은 계속 갈등해야 했다. 도와줄까 싶다가도,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일어서 버리니 말이다.

    ‘도와줘? 왜?’

    문득 든 생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와는 완전히 초면이었다. 무슨 의리로 돕는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 때문에 시간도 낭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그냥 두고 가기가 어려웠다.

    ‘도와줘야……겠지?’

    이윽고 내린 결론에 디온의 발이 무겁게 움직였다. 다시 술기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누구야!?”

    세이나가 휙 그가 있는 방향을 쏘아보았다. 디온은 저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말았다. 레티가 물었다.

    “왜 숨어?”

    ‘그러게. 왜 숨고 있지?’

    어쩐지 다가가기가 무서웠다.

    ‘무섭다?’

    연이어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젓고 몸을 돌리자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꿋꿋하게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도와줄까?”

    레티가 속삭였다. 디온은 마력을 흩뿌려 다른 마물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 정도까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바로 기척을 알아채니.

    ‘마물이 우글대는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도 이상하긴 해. 거리를 두는 편이 좋아.’

    결정적으로 세이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디온은 그녀를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디온은 세이나와 루카스가 산을 다 내려오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정말 여기까지 끌고 나왔잖아?’

    제대로 미친 게 틀림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혼절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여자는 잘도 걸어갔다.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레티는 스스로 말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 여자는 황당하게도 말도 잘 탔다.

    ‘뭐 하는 여자야?’

    디온과 레티는 멍하니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레티가 외쳤다.

    “엘렌!”

    “아, 그렇지.”

    뒤늦게 다시 달려간 산에는 엘렌의 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해 신전으로 돌아간 레티는, 엘렌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벌써 장거리 이동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회복했나.’

    찝찝했지만 일단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먼저였다.

    시신들을 발견한 것은 엘렌의 흔적을 지우던 중이었다.

    “치울까?”

    “……그냥 가자.”

    그 여자도 일행의 생사를 알긴 해야 할 테니.

    디온은 씁쓸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레티를 정령계로 돌려보내 회복에 힘쓰게 하고, 이불을 덮자…….

    다시 그 여자가 떠올랐다.

    ‘잘 돌아갔겠지?’

    ‘충격을 크게 받았을 텐데.’

    ‘하, 그 여자를 지켜보는 게 아니었어. 빨리 엘렌을 찾았다면 분명 막을 수 있었는데.’

    ‘어쩌지? 돌아갈까? 도와줘?’

    ‘그럼 범인이 엘렌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디온은 그대로 내리 이틀을 잠들었다. 레티가 입은 내상까지 회복하느라 힘을 소진한 탓이었다.

    일어나서도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가는 내내 여전히 의문스러웠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괜찮은지만 확인하고 돌아가자.’

    하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최악으로 향하고 있었다.

    세이나가 뺨을 맞은 거리. 그곳에는 디온도 있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멍해진 채로.

    ‘미쳤군.’

    그 여자가 전 재산을 유족에게 보냈을 때는 어찌나 기가 차던지. 한 푼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 생각이란 말인가.

    알면 알수록 갑갑하고 멍청한 여자였다.

    그래도 디온은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녀를 제명하라 글을 쓴 헌터들을 다 찾아가 세뇌하고, 최대한 여론을 잠재웠다. 셀론의 눈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루카스의 부모님을 통해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할 수 없었다. 시도는 했다. 그러나 그의 방문 앞에 설 때마다, 과거 스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한번 세뇌하면 다시는 그 사람을 되돌릴 수 없다.

    아버지만은.

    - 너는 평생 네가 세뇌한 이의 진심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결국 세이나 로힐은 강등되고 말았다.

    헌터로서는 치명적인 이력이었다. 기존의 고객들조차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디온은 하는 수 없이 부하들을 시켜서 세이나 로힐에게 임무를 의뢰했다.

    수도에서, 가장 쉬운 일, 보수는 넉넉하게.

    ‘이걸 마지막으로 그 여자에게도 신경을 꺼야지.’

    그리고 이 죄책감도 덜 수 있을 것이다.

    부하를 보내고 디온은 미소 지으며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받은 소식은.

    “의심스러워서 못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디온은 어쩐지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좋은 조건은 보통 사기이지 않냐고.”

    세이나 로힐은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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