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50화 (150/179)

@150

오웬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비틀거렸다.

“윽!”

눈꺼풀을 열자마자 시야가 흐려졌다. 무릎이 무너진 것은 그가 이마를 짚던 순간이었다. 거친 호흡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고작 몇 초.

그 찰나 속에서 오웬은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옥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토록 혼탁한 의식이라니. 들어 본 바도 없었다. 심지어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컥!”

머리에서 시작한 통증은 곧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오웬은 땅을 물들인 피를 보며 제 입가를 쓸었다. 마치 오물 속에서 살아 나온 느낌이었다.

‘살아는…… 있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의 의식을 파고들 때도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멀쩡한 것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렸을 때 ‘S급’이라는 명예를 손에 넣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상대는 지금껏 봤던 누구보다도 끔찍했다.

강제로 끊어지지 않았다면 결국 잡아먹혔을 것이다. 오싹함을 느끼며 오웬은 다시금 입술의 피를 닦아 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어. 괴물의 기억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의 능력은 대상의 정신적으로 성숙할수록 깊이 파고들기 어려웠다.

이번에 상대한 괴물의 사고 수준은 어린아이 정도. 덕분에 고작 몇 초 사이에 오웬은 그의 기억 대부분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역시 그 괴물은…….

오웬은 기이한 느낌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온통 검고 캄캄했다. 알 수 없는 까만 연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사이에 있는 푸른빛을 발견했을 무렵,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허공에 뜬 채, 바닥을 향해 있는.

“안 돼!”

오웬의 무릎이 다시 추락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두통을 느끼며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의식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졌기 때문에 그는 괴물이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다. 버거운 상대였지만 능력은 제대로 통했고, 그의 동료는 틈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왜.

“윽…….”

왜 세이나가 괴물에게 사로잡혀 있는 거지?

“세이나!”

“도, 도망…… 도망가요.”

세이나는 괴물의 큰 손에 잡힌 와중에도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검날에 서린 푸른빛 위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괴물을 베어 낸 흔적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괴물은 세이나를 붙잡은 팔 외에 다른 곳이 모두 성치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목이.

그제야 오웬은 제 코앞까지 굴러온 괴물의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흰 머리에 탁한 눈. 이마에는 검으로 찌른 듯한 상흔이 남았다.

그래도 괴물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없는 채로, 어마어마한 악력으로 그녀의 몸을 으깨듯 조여 갔다.

‘또 다른 마정석이 있었어?’

아마 세이나는 이마의 눈을 찌른 후 바로 머리를 날렸을 것이다.

이제 진짜 끝난 건가 싶었던 순간, 갑자기 팔들이 움직였고 그중 하나를 크게 베어 내자마자 바로 다른 쪽 손이 그녀를 움켜쥐었으리라.

‘빌어먹을! 대체 몇 개야?’

심장과 이마, 가슴과 목까지. 이렇게나 많은 마정석을 가진 마물 따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곧이어 검은 안개가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머리가 잘려 나간 단면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세이나는 이제 오웬의 시야에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세이나!”

오웬은 손으로 간신히 검을 쥐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더 일어설 여력이 없었다.

능력을 쓴 여파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목덜미와 등줄기를 따라서 오한이, 그러나 속은 불길이 일렁이는 듯 뜨거웠다.

결국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자신이 토해 냈던 피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선밖에 없었다.

“젠장……!”

세이나도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그러나 괴물의 손아귀는 돌처럼 무겁고 단단했다. 곧 오웬은 머리가 없는 괴물의 몸통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괴물은 그대로 세이나를 데리고 자리를 떠날 심산이었다.

박쥐 같은 날개가 펼쳐지고, 세이나가 다시 몸을 뒤흔들었다. 오웬이 경악에 차 소리를 지르려던 그때.

“세이……!”

돌연 또 다른 검이 괴물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콰직!

다시 부서지는 소리. 동시에 오웬의 입이 벌어졌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땐 여전히, 괴물과 오웬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어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거센 바람에 그의 은색 머리칼이 휘날렸고.

“무슨…….”

오웬은 재빨리 뒤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키 큰 사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웬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표정. 그는 달려드는 누군가를 막으려던 듯한 자세였다. 그런 라샤드의 양다리부터 손까지 삼켜 버린 얼음을 확인한 후.

오웬은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디온…… 프라벨.”

* * *

세이나는 좀처럼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어설 수 있겠어?”

라샤드가 내민 손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키고 난 뒤에도 그랬다. 으스러질 듯 아픈 어깨가 이 상황이 현실임을 계속 말해 주고 있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기분이다.

아직 다리도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무릎을 짚고 숨을 가다듬으니 앞이 제대로 보였다.

목이 날아간 괴물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생명을 잃진 않았는지 계속 그 날개가 꿈틀거린다.

이윽고 다리도 움찔거리자 가까이서 그것을 지켜보던 오웬이 뒤로 물러났다. 겨우 몸을 일으킨 그는 어느 때보다도 창백한 낯이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옆.

“이 녀석은 이제 거의 마족과 다름없습니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으니 물러서는 게 좋을 겁니다.”

디온 프라벨은 한없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게 몹시 어색했는지 오웬이 그를 곁눈질했다. 그러든 말든, 디온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세이나를 데리고 빨리 떠나세요.”

시선은 줄곧 아래, 괴물만을 향해 있다. 돌이켜 보면 그는 끼어든 이후부터 한 번도 세이나를 보지 않았다.

그녀가 괴물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주저앉아 있는 동안에도.

“아니.”

지금 이 순간조차.

“다 들어야겠어.”

세이나는 라샤드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을 땐 잠시 통증조차 잊혔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디온은 그녀에게서 반쯤 돌아선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빛에 비친 옆얼굴은 조각상처럼 건조하고 싸늘하기만 했다.

“이 괴물의 정체는 뭐지? 엘렌은? 마물은? 아니, 그보다…… 그보다 왜.”

“…….”

“왜 나를 구했어?”

점점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세이나는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쇳덩이를 삼킨 듯 목이 뜨거웠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그의 푸른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곧 그가 완전히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자 세이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도련님, 혹시 너…….”

보다 못한 오웬이 끼어들려던 찰나, 괴물의 몸이 다시 꿈틀거렸다.

“가세요.”

디온이 오웬에게 턱짓했다.

“이곳은 제가 막겠습니다.”

‘막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숲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울컥 차오른 감정을 삼키던 세이나는 달라진 주변 분위기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느리게 흔들리던 바람의 흐름이 점점 거세어져 가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로브가 어지럽게 흩날렸고, 이상한 불길함이 찾아왔다. 너무 자주 찾아와서 이제는 익숙해진 바로 그 느낌.

‘1년 전과 같아.’

오래지 않아 소리가 들렸다.

“와이번?”

오웬은 단번에 그 정체를 꿰뚫었고, 세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명을 닮은 울음소리가 하늘 저 너머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저만한 소리면…….

“더 올 겁니다.”

“뭐?”

곧이어 쿵, 쿵. 기묘한 울림이 발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땅을 짚어 확인한 오웬은 작은 신음을 흘렸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가 이곳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마물인가?”

“맞아.”

답변은 이상한 곳에서 들려왔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세이나는 말에 올라탄 소녀를 발견했다.

양 갈래로 묶은 갈색 머리를 한 소녀의 뒤로는 놀랍게도 3마리의 말이 따르고 있었다. 모두 안장도 제대로 걸쳐져 있는 훈련된 말들이었다.

“가세요. 당장.”

그리 말할 때조차 디온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기가 차오른 세이나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라샤드가 세이나를 잡아끌었다.

“지금은 아니야.”

“하지만…….”

“일단 빠져나가고 생각하지.”

결국 세이나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소녀는 라샤드까지 모두 말에 오른 것을 확인하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녀를 따라 일행이 모두 자리를 떠나자.

“하…….”

디온은 비로소 깊게 숨을 들이마실 수 있었다.

그가 거칠게 제 얼굴을 쓸어내리는 와중에도 괴물은 계속 꿈틀대고 있었다.

손에 가려진 그의 푸른 눈동자가 온기를 품은 것도 잠시.

곧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제 발치를 뒹굴고 있는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쿵. 다가오는 묵직한 울림을 느끼며 디온은 혀를 찼다.

“기왕이면 그 여자가 같이 왔으면 했는데.”

* * *

“여기서부터는 너희끼리 가.”

소녀가 멈춘 곳은 세 갈래 길 앞이었다.

“어디로 가든 잡히지만 말고. 잡힐 것 같으면 차라리 죽어 버려.”

무뚝뚝하게 말하며 소녀가 고삐를 잡아당겼다. 방향을 보아 디온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세이나는 황급히 외쳤다.

“너! 정보상의 집에서 만났던 여자애지?”

소녀가 세이나를 돌아보았다. 그 신경질적인 표정이 세이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마탑에서도.”

“맞아.”

느닷없이 나타나 길을 안내해 주고 홀연히 사라졌던 바로 그 아이였다. 혹시 우리가 귀신을 본 것인가, 맬빈과 고민했던 바로 그 소녀.

“하, 답답해 보이니까 조금은 말해 줄게. 그 괴물은 오래전에 스키아가 만들었어. 원래는 인간이었지.”

“…….”

“스키아의 힘에 매혹당해서 스스로 실험체가 된 사람이야. 동정하지 않아도 돼.”

“……디온은?”

세이나의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녀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딴 거랑 디온을 비교하지 마.”

소녀가 사나운 눈빛으로 세이나를 쏘아보았다. 세이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는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의지가 느껴졌던 걸까.

소녀가 한숨을 내쉬고 덧붙였다.

“너랑 그 괴물을 대치하게 한 건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어.”

“뭐?”

“그 이마의 눈. 스키아는 괴물을 통해서 이쪽을 보고 있었지. 그리고 괴물이 위기를 맞으니까 마물을 더 부른 거야.”

그러고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이나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지금처럼.”

다음 순간, 수많은 와이번들이 밤하늘을 뒤덮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