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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49화 (149/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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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바로 공격이 이어졌다.

    그의 검을 재차 받아 내며 라샤드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디온은 더 이상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입을 떼려고 하면 다시 공격. 검을 다룰 줄 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제법 매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검을 매끄럽게 흘려보내며 틈을 파고들자, 디온이 빠르게 그와 거리를 벌렸다.

    ‘도망치고 있어.’

    여러 번 검을 맞부딪쳐 내린 결론이었다.

    디온 프라벨은 라샤드를 이길 정도로 실력이 좋진 않았으나 동작은 기민했다.

    라샤드가 승부를 내려는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이렇듯, 바로 거리를 벌려 버렸다.

    ‘젠장, 빨리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하는데.’

    아직도 주변은 혼잡했다. 날붙이들이 마주치며 내는 굉음에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그 중에는 비명도 섞여 있었다.

    소식을 들은 다른 병사들이 달려온 듯하지만, 전세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수도는 결계로 보호되는 도시다.

    근처에 마물이 나타난다면 일부 기사들과 헌터들이 협력하여 처치한다. 성문 근처에 있는 일반적인 경비병들은 이런 마물이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더는 땅을 뚫고 해골이 올라오는 것 같진 않았지만, 지금 있는 수도 만만치 않았다.

    라샤드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든 말든, 디온은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한번 휘둘러 보였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동작. 마치 대련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왜 마법을 쓰지 않지?’

    검보다는 그편이 당연히 편할 텐데.

    그가 알기로 디온은 큰 준비도 없이 바로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

    저번처럼 얼음으로 라샤드의 다리를 묶어 두고 달려든다면, 상대하기도 훨씬 수월할 테다.

    ‘혹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가?’

    외상을 입은 것 같진 않았다. 동작에 위화감도 없었다.

    무엇보다 실력 차이도 있는데 다쳤다면 지금까지 시간을 끌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을…… 끌어?’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도 쓰지 않고, 검으로 승부를 볼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끄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 왜, 무얼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대체 무슨 꿍꿍이야?’

    푸른 눈은 늘 그렇듯, 속내를 읽기 어려웠다.

    * * *

    세이나는 구르듯 괴물의 공격을 피했다.

    콰직!

    그녀의 옆에 있던 짐마차를 단숨에 박살 내 버리고, 괴물이 손을 거두었다.

    압도적인 크기의 괴물을 올려다보며 세이나는 뒤로 물러섰다. 커다란 손바닥이 움직이자 거센 바람이 일었다.

    휘익!

    그러나 느렸다.

    몸을 옆으로 틀면서, 세이나는 허리춤의 검을 빼 들었다. 그 칼날이 뻗어 온 팔을 베어내기까지는 고작 찰나에 불과했다.

    서걱!

    검은 팔은 보이는 것보다 그리 단단하진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잘린 단면에서 새로운 팔이 솟아났다는 것이었다.

    ‘재생? 인간보단 마물에 가깝나?’

    동시에 벌레의 다리처럼 다른 팔들도 미친 듯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섬뜩한 소리가 재차 들렸다.

    “까드드득. 까드득.”

    ‘대체 뭐라는 거야?!’

    라샤드의 추측이 맞았다면 저자가 일기의 주인일 텐데. 저 커다란 손으로 펜을 제대로 쥘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글을 쓸 만큼의 지능도 없어 보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마물. 그중에서도 꽤 상위를 차지할 만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상대는 재차 팔을 뻗어 왔다.

    같은 공격, 반면 세이나의 대처는 달라졌다.

    챙! 작은 불꽃이 눈앞에서 터졌다.

    괴물의 손을 검으로 그대로 받은 채, 세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대로 짓눌릴 것만 같은 어마어마한 힘이다.

    오래 버티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그들이 눈짓으로 협의한 대로.

    오웬의 검이 괴물의 등을 찔러 들어갔다.

    파직!

    그리고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마정석! 역시 마물이었어.’

    괴물의 힘이 조금 약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이나는 검을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곧이어 두 번째 검이 괴물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괴물은 처절한 비명만큼은 사람에 가까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피를 토했고, 세이나는 더욱 깊이 검을 찔러넣었다.

    재생하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는 마정석을 근원으로 하는 마물과 구성 원리가 비슷했다. 그것이 깨지고 바로 심장도 찔렸으니 살아남기 힘들 테다.

    예상대로, 그의 고개가 서서히 아래로 떨어졌다. 세이나는 괴물의 공허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끝났나?’

    이미 뒤에서는 결론을 내렸는지, 오웬이 검을 빼내는 것이 느껴졌다.

    세이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 뒤에서 인기척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꽤 지위가 높아 보이는 기사였다. 그의 옆에 쌓인 해골들로 보아 실력도 제법 있는 듯했다.

    다가오는 해골들을 해치워 준 걸까. 고마운 사람이었다. 세이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손을 움직였다.

    “네, 고마…….”

    그런데, 검이 뽑히지 않았다.

    그녀의 미간이 확 좁아지고, 물러서던 오웬도 발길을 멈췄다.

    세이나는 다시 힘을 줘 보았으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몸과 하나라도 된 것처럼.

    “무슨 일…….”

    기사가 말을 다 뱉기도 전에 괴물의 팔이 움직였다.

    휘익!

    검을 놓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바로 저 큰 손에 붙잡혔을 것이다. 흙먼지를 피어 올리며 세이나는 몇 걸음 뒤에 착지했다.

    ‘죽은 척했다는 거지?’

    괴물의 커다란 손에는 그녀의 검은 머리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초점 없이 반쯤 감겼던 눈도 이채가 돌아왔다. 다시 고개가 좌우로 움직이며.

    “까드드득, 까득?”

    ‘아주 돌대가리는 아니네.’

    좋지 않은 신호였다. 괴물을 주시하며, 세이나는 빠르게 그것이 할 만한 다음 전략들을 짐작해 보았다. 그 중 가장 최악은 아무래도.

    ‘병사들을 인질로 잡는 거겠지.’

    세이나가 기사에게 말했다.

    “성문 밖으로 유인할게요.”

    “네?”

    “이번엔 따라오시면 안 돼요. 들었죠, 오웬?!”

    기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기색이었으나 설명해 줄 시간이 더 없었다.

    세이나가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하자 다시 괴물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얼마 가지 않아 큰 바람도 일었다. 살짝 뒤를 보니 괴물이 박쥐 같은 날개를 펼쳐 창공으로 오르고 있었다.

    ‘낚아챌 심산인가?’

    독수리의 사냥법이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세이나가 위를 계속 보지 않아도 괴물의 기척을 눈치챌 만큼 예민하다는 사실이었다.

    기대하지 않은 수확도 있었다. 그녀가 빠르게 성문으로 달려가자 해골들의 시선이 갑자기 그녀 쪽으로 기운 것이다. 그리고 하던 싸움을 놓고, 갑자기 몸도 틀었다.

    기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병사들의 창이 매섭게 마물들을 찔러 들어갔다.

    쓰러지는 마물들 사이를 달리면서도, 세이나는 바닥에 있는 검을 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성문도 빠르게 지나칠 수 있었다.

    ‘저기라면 위에서 보기 어렵겠지.’

    오랜만에 마주한 성 밖 풍경은 이전과 그대로였다. 정면에 이어져 있는 대로, 그 옆의 숲.

    커다란 나무를 발견하자마자 세이나는 바로 그 그림자 속으로 달려들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검은 촉수들을 피하면서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괴물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며, 세이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괴물은 이 많은 나무를 단숨에 베어버릴 능력은 없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까드득, 또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상전은 역시 같은 패턴이 좋겠어.’

    세이나가 시선을 끌고, 오웬이 뒤를 친다.

    힘의 근원이 되는 마정석이 몇 개가 되든 다 부숴 버리면 될 것이다.

    이제 오웬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긴장된 손으로 검을 움켜쥐던 세이나는 괴물에게서 전과 다른 변화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눈?’

    이마의 정중앙에 생겨난 눈은 다른 것처럼 매섭게 좌우를 오갔다. 스키아와 디온의 것과 같은 바로 그 푸른빛.

    ‘저게 뭐지?’

    모르겠지만 저것부터 노려야겠다. 그리 다짐했을 때, 갑자기 그의 발치에서 굵은 뿌리들이 뻗어 나와 무릎을 넘어 다리를 움켜잡았다.

    세이나의 눈이 커졌다. 저건 마물? 아니…….

    ‘오웬이 마법도 쓸 줄 알아?’

    붉은 머리칼의 남자는 앞으로 손을 뻗은 채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손목의 형형한 빛을 뿌리는 팔찌를 확인한 괴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의 움직임이 멈춘 것도 잠시.

    툭. 투툭.

    힘껏 발을 움직이자 뿌리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때 오웬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잠깐만!”

    세이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괴물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정신이 없었으리라.

    “오웬! 안 돼요!”

    일전에 디온을 구했던 일족의 능력. 오웬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괴물의 의식을 파고들어, 부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저 괴물이랑 의식이 동화되면 어쩌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쓰면 안 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를 삼키면서, 세이나는 힘껏 도약했다. 내찌른 검 끝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푸른빛이 괴물을 향해 쇄도했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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