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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46화 (14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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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는 아무리 잘 말해도 훈련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한다. 기도문을 읽는 것은 옆에 있는 신관들의 몫.

    뭔가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바로 눈총이 날아들어 온다.

    세이나의 역할은 기도실 앞에 있는 여신의 동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된다는 지시도 없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라고 했던가.

    그땐 자신이 있는 것만으로도 성력이 막 흘러나오나 싶었지만, 오웬의 어조를 들어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녀를 구해 줬던 대신관, 하이든은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첫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따로 만난 적도 없었다.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뒤에 있던 신관이 끼어들었다.

    “성녀님께서는 아직 신전에 적응하지도 못하셨으니까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한시가 급한 사안입니다.”

    “하이든 대신관님께 성녀님을 맡기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녀가 날카롭게 째려보자 오웬이 입을 닫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반면 신관은 조금의 동요도 없어 보였다.

    “대화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벌써 기도 시간입니다. 성녀님. 가시죠.”

    그러곤 홱 세이나의 손목을 잡아당겨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도 잠시, 곧이어 다른 손길이 느껴졌다.

    신관에게 이끌린 세이나의 팔을 붙잡은 채 오웬이 낮게 말했다.

    “아직 얘기 안 끝났는데.”

    “죄송하지만, 신전의 시간은 밖과 달리 유연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 않으시면 다른 분들이 기다리실 겁니다.”

    “그럼 오늘은 그냥 넘기는 게 어때요?”

    “……기도를요?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신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다소 노골적인 적의. 오웬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채로, 세이나는 빠르게 좌우로 번갈아 눈을 굴렸다. 어느 쪽도, 그녀를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요, 오웬. 기도 시간을 놓칠 순 없죠.”

    긴 대치를 끊은 이는 세이나였다. 그녀가 슬며시 신관을 돌아보았다.

    “오웬을 배웅하고 오고 싶은데, 괜찮죠?”

    “따르겠습니다.”

    “아뇨. 둘이서만 대화 좀 할게요.”

    신관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세이나는 애써 웃으면서 달래듯 말했다.

    “신전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금방 돌아올게요.”

    신관은 그녀를 막을 명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세이나는 곧바로 오웬을 끌고 복도를 벗어났다. 잎사귀 하나 없이 마른 나무를 지나, 신관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신전의 문으로 향하기 직전, 그녀가 오웬을 다른 방향으로 잡아끌었다.

    “가죠.”

    “응?”

    “하이든 대신관을 만나러 가요.”

    오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었다.

    “이쪽이야.”

    두 사람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도둑처럼 몸을 숙이고 살금살금. 벽에 달라붙어서 민첩하게 움직였다. 다시 찾은 정원은 다행이 한산했다. 신관들도 없었다.

    세이나는 생각에 빠졌다.

    ‘왜 내 각성을 돕지 않지?’

    하이든 대신관이 마족의 부활을 막고 싶어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 그가 후작의 편이라면 왜 재판에 끼어들었겠는가.

    신전의 담벼락 안에 있다면 마족의 ‘완전한’ 부활을 막을 순 있을 테다. 그러나 엘렌의 몸에 깃든 마족을 가만히 두는 것도 좋은 방책이라 할 수는 없었다.

    ‘……디온은 어떻게 봉인석을 벗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성녀의 힘을 각성해서, 마족을 봉인하는 것을 우선해야 할 텐데.

    ‘혹시 성녀의 피 외에도 봉인할 방법이 있나?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법?’

    대신관들이 거주하는 건물에 이르렀을 무렵 오웬이 말을 꺼냈다.

    “사실 신관들 때문에 못 했던 이야기가 있어.”

    “어떤 거요?”

    “신전에도 파벌은 있어.”

    “……신관들이?”

    “깨끗한 척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뜻이지. 하이든 외에 다른 대신관들을 만난 적 있지?”

    “아, 네. 처음 온 날 인사했어요.”

    “모두 각자 다른 파벌 소속이야. 성황과 뜻을 함께하기도 하지만, 반대하는 자들도 있지.”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오웬은 말을 이어 갔다.

    “각자의 이념은 결국, 성국과 교단을 위한 것일 테지만…… 방법의 차이란 뜻이야. 극단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혹은 중도거나.”

    “아, 네. 이해했어요.”

    “아마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아.”

    “음, 그래도 각성은 일단 해 두면 좋지 않나요?”

    “……신관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하이든은 네 각성을 돕는 쪽, 다른 대신관들은 널 성국으로 피신시켜야 한다는 쪽. 이럴지도…… 아무튼, 뭔가 있는 것 같아.”

    “네, 그건 저도 동의해요.”

    이곳까지 와 본 적이 있는지, 오웬은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마침내 도착한 하이든 대신관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옆의 방도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오웬이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회의장으로 가 보자.”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목소리가 들렸다.

    인기척을 확인한 오웬이 먼저, 뒤이어 세이나가 몸을 숙여 창문가로 바짝 달라붙었다.

    오웬이 조심스레 창문을 건드리자 잠그지 않았는지 틈이 생겼다. 더 선명해진 음성들이 그 사이로 새어 나왔다.

    “성국에도 연락을 해야 합니다.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성국의 확답을 기다리다가는 늦습니다.”

    “우리끼리라도 결단을 내려야 해요.”

    살짝 고개를 들어 보니 일전에 만난 대신관들이 보였다.

    세이나는 그중 유난히도 험상궂은 인상의 대신관을 찾아낼 수 있었다. 신관복을 입지 않고 거리에서 만났다면 은퇴한 헌터인 줄 알았을 것이다.

    “저는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있는 백발의 노인.

    “정녕 고집을 부리실 겁니까?”

    하이든 대신관은 주먹을 꽉 쥔 채 맞은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대화를 했기에 저 인자한 노인이 잔뜩 화가 난 걸까.

    ‘혹시 저 무섭게 생긴 대신관이 내 각성을 방해하는 건가?’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지만 새까만 흑발에는 기이하게도 흰 머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엄중하게 말했다.

    “그리 빨리 결단을 내릴 순 없습니다. 이번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더 신중했다간 늦습니다!”

    세이나와 오웬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하이든이 결단해야 한다고 외칠 만한 것이라면 역시 그것.

    ‘왜 내 각성을 막는 거지?’

    혹시 왼편의 대신관은 후작의 사람인 걸까.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후작의 사람이 신전에도 있고 그것도 대신관이라면, 이곳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겨우 이틀 쉬었나.’

    흑발의 대신관은 좀처럼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았다. 굳게 닫힌 팔짱과 입술이 그의 완강한 의지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는 대신관들의 표정도 엄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이든이 열변을 토해도 통할 것 같지 않다.

    - 우습군. 어차피 평생 지명 수배자로 쫓겨 다닐 텐데.

    왜 이럴 때 유클레스 후작의 말이 떠오르는 건지.

    겨우 그의 마수에서 벗어났건만. 아무래도 도망자 신세는 면치 못할 듯하다. 최대한 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서…….

    ‘각성을 준비해야겠지.’

    문제는 아직 그 ‘각성’을 대체 어떻게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는 것이었다.

    도망치기 전에 하이든을 만나서 몰래 물어보고 떠날까. 그리 고민하던 그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마족을 막아 내기에 우리의 성력은 역부족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쾅! 하이든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대신관들의 얼굴에도 당황이 스쳤다. 창문 너머의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 애써 주고 있구나.’

    점점 더 하이든에게 미안해졌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황제에게 직접 맞섰던 사람이 아닌가. 복잡한 일에 끌어들이고 동료들과 싸움까지 하게 만들었다.

    입 안이 써서 계속 입술을 달싹이게 된다.

    회의 내용을 엿듣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세이나가 한숨과 함께 소리 없이 몸을 돌리려던 그 순간.

    “황제 폐하의 말씀대로.”

    하이든 대사제가 말했다.

    “성녀를 죽여야 합니다.”

    세이나는 물론, 그녀에게로 손을 뻗으려던 오웬도 굳어 버렸다.

    그들의 당황을 알 리가 없었기에 하이든은 자신만만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마족의 부활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뿐입니다. 성녀가 사라지면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겁니다.”

    “……그녀가 동의할 리가 없습니다.”

    “설득해야죠.”

    확신에 찬 눈빛. 주름진 얼굴은 노인답지 않게 혈색이 붉었다. 하이든은 좌중을 둘러보며 모든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열린 창문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 땅의 모든 사람과,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성녀로서 자신을 희생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이든 대신관, 말씀이 너무…….”

    “애초에 성녀란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회의장이 적막에 휩싸이고, 대신관들의 시선이 제각각 방황을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흑발의 대신관마저 끝내 고개를 숙여 버리자 누구도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하이든이 낮게 말했다.

    “성녀를 죽여야 합니다.”

    그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것을 알기에.

    “……저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네요.”

    세이나는 벽에 기대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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