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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45화 (14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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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건조한 목소리가 의식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거친 손이 어깨를 흔들자 세이나는 더욱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아으……. 10분만 더…….”

“안 됩니다. 아침 기도에 가셔야 해요.”

“으…… 지금 몇 시인데요?”

조금 뒤 답이 들려왔다.

“새벽 4시 30분입니다.”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미친!’

험한 말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머리를 더 파묻었다.

이틀 내내 얼굴을 마주치긴 했지만, 아직 면전에 대고 욕을 할 정도로 신관들과 친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대신관이 시켜서 이러는 거겠지. 이해하고 싶어도 계속 불쑥 화가 튀어나왔다.

어제는 6시였잖아!

사람을 괴롭히려면 일관성을 좀 가지라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평소 기상 시간은 정오 무렵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보단 ‘조금’ 늦은 편이긴 하다. 인정한다. 그럼 4시 30분은? 이건 정상이야?

“성녀님.”

‘저 이틀 전에 감옥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이불을 걷겠습니다.”

홱, 거친 소리와 함께 결국 보호막이 사라졌다.

겨우 눈을 뜬 방은 아직 캄캄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저를 보는 신관의 매서운 눈빛은 또렷하게 보였다.

대신관이 첫 만남 때 앞으로 시중을 들 거라며 소개해 준, 바로 그 여자 신관이 차갑게 뱉었다.

“일어나시죠.”

‘착하다며!’

“어서요.”

세이나는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그저 일어나서 바닥에 발을 디디는 과정도 어찌나 힘들던지.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바로 침대로 다이빙할 생각으로 열심히 눈치도 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신관들은 무서웠다. 여러모로.

‘이래서 오기 싫었다고.’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한 지 고작 이틀째.

세이나는 벌써 갑갑함과 지루함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저 창문을 열어젖혀서 도망칠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바로 그 직전까지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렇게 눈이 마주칠 때면.

“3분 안에 옷을 갈아입고 나오세요.”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리는 것이다.

“……네.”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평지에 지어져 있던 걸 확인했는데. 마치 고산 지대에 있는 것처럼 숨이 빠듯하다.

신전에서의 생활은 상상한 그대로였다.

먼저, 신관들과 함께 새벽 기도. 이걸 몇 시간을 계속한다. 짧은 아침 식사 후 다시 기도. 기도가 끝나면 경전 공부.

그리고 다시 기도. 정오엔 신관들과 다 같이 기도. 끝나면 신도들과 기도. 점심 식사를 마치면 고아원의 아이들과 기도. 신전으로 돌아와서 견습 신관들과 기도. 오후엔 다시 신관들을 만나서 기도…….

기도. 기도. 기도.

‘눈앞이 빙빙 돈다…….’

신전에 들어오기 전과 정반대의 일과였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청소 정도일까. 그런데 그마저도 성녀님은 항상 청결해야 한다며 곧장 빗자루를 빼앗아 가 버린다.

여러 사람과 만나지만 딱히 일상적인 대화를 할 틈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자, 함께 기도할까요? 그리고 시작.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리 팍팍하게 사는 사람은 이 신전에서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신전을 거닐다 보면 어린 견습 신관들은 물론, 다른 이들과 심지어 대신관들까지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 나누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신전의 규율은 그렇게 엄격하지 않다. 그저 그들이 세이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내가 성녀라서 어렵겠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소스라치게 놀라며 꾸벅 인사한 후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다. 그게 어쩐지 대화를 방해한 듯하여 미안해서, 어제는 내내 바닥만 보면서 걸었다.

‘돌이켜 보니까 성녀가 아니라 희귀 동물을 보는 느낌인데.’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빼면 결국 제 옆을 지키는 신관들밖에 남지 않는데.

‘너무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어.’

딱히 수다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표정이 하나도 없어서 가면을 쓴 건지 무심코 턱 주변을 확인하게 된다. 그쪽에서 걸어오는 말도…….

“늦으셨습니다. 성녀님.”

“아, 네. 나갈게요.”

“대신관님들을 기다리시게 하면 안 됩니다.”

저런 것밖에 없으니. 어떻게 정을 붙이겠는가.

“하…….”

한숨부터 나오는 아침이었다.

* * *

“……이러니까 반가울 수밖에 없죠!”

한껏 설명을 쏟아 낸 세이나가 다시금 밝게 웃었다.

너무 열을 올렸던 탓일까. 복도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고, 예상대로 뒤에서 헛기침이 들렸다.

“크흠.”

체통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뒤통수도 따끔거리기 시작하자 차마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한 번 신관의 수식어에서 ‘착하다’를 지우며, 세이나가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오웬.”

“낯선 사람에게 할 법한 인사네.”

오웬이 싱긋 웃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세이나의 뒤쪽. 그녀를 따르는 신관을 살피는 눈초리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몸을 돌렸다.

“걸을까?”

몇 분 전.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에 그와 세이나는 마주쳤다.

처음 봤을 땐 어찌나 반갑던지.

오웬이 여자였으면 바로 달려들어 끌어안았을 것이다.

이 삭막한 공간에서 만난 ‘아는 사람’의 효과는 굉장했다. 세이나가 밝게 웃으며 그의 옆에 붙자 뒤에서도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신관들은 두 사람만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오웬은 흘끗 뒤를 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도망치지 않은 게 신기하네.”

“당연히! 크흠, 당연히 생각했죠.”

또 언성을 높일 뻔했다. 목을 가다듬은 세이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데, 나가면 또 마족이 들이닥칠지도 모르잖아요. 난 답답한 건 죽도록 싫지만 죽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저렇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면 안전하긴 하겠네.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내 정신 건강도 좀 걱정해 주면 안 될까요?”

그러자 오웬이 또 피식 웃었다.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덧 다른 복도에 들어와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정원은 다소 황량했다. 밤이 되자 쌀쌀한 바람마저 불어 더욱 스산해 보였다.

정원 한복판에 잎새 하나 없이 홀로 선 메마른 나무가 어쩐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녔지만 외로움을 지우기 어렵다.

‘오웬도 신전에서 지내면 좋을 텐데.’

사실, 말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관이 칼같이 거절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신관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성황의 의뢰는 기밀이라고 했었지.’

마족의 부활 역시 아직 알릴 수 없다. 대신관은 더 큰 혼란은 막고 싶다고 했다. 최소한의 인원만 동원하여 일을 수습하고 싶다고.

더군다나 오웬은 꽤 눈에 띄는 외모였다.

그가 오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다른 이들의 이목도 집중될 텐데, 보통 헌터처럼 거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이기에 신관이라고 거짓말하기도 어렵다.

외부인인 라샤드는 출입조차 허락이 필요했다. 오웬조차 자유롭게 드나들기 어려웠다.

“괜히 말이 나오면 안 되니까…… 최대한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시간에 들어오라고 해서. 늦게 보러 와서 미안해.”

“……괜찮아요. 밖의 상황은 어때요?”

“일단 집은 무사해.”

그래서 오웬은 지금, 세이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그가 집을 망가트릴까 하는 불안감은 없었다.

“엘렌의 집은 박살이 났지만.”

“찾은 건 있어요?”

“아니, 그냥 평범했어. 놀랍도록 소박한 살림이라는 것 외엔.”

열 벌도 안 되는 옷. 단 두 벌뿐인 싸구려 외투. 여러 번 고친 흔적이 남은 신발들.

엘렌의 짐에는 흔한 장신구조차 몇 개 없었다고, 오웬은 말했다.

“……선물도 다 거절했을 거예요. 받아도 아이들에게 줬겠죠.”

꽃집의 손님 중에는 동전 한 푼도 없는 거리의 아이들도 몇 있었다.

그들에게도 기꺼이 문을 열어 주고,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이 바로 엘렌이었다.

“그레타와는 이야기가 잘 끝났어.”

세이나의 표정이 점점 우울해지자 오웬은 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아, 네. 그랬군요.”

“네게 사과를 전해 달라고 했어. 욕심에 눈이 멀어 하면 안 될 짓을 했다고. 루카스와 로브엘 백작 부부도 무사히 수도를 떠났어.”

“다행이네요.”

“데일 협회장은 후작이 옛날 사건을 공격했을 경우에 올라올 예정이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 했지. 뭐, 딱히 순서를 빼앗겨서 짜증 난 것 같진 않았어.”

“네?”

“나보고 잘했다고 했거든.”

의외의 소식에 세이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회장은 내 생각보다 날 신경 쓰고 있구나. 조금 감동적인걸.

“후작은 황성에 잡혀 있어.”

오웬은 뒤를 따르는 신관들을 의식하며 낮게 말했다.

“당당히 소환에 응했다더군. 제 발로 찾아와서 칼만 공작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떠들었대.”

“조사는요? 어때요?”

“공작님이 직접 후작의 저택을 뒤지고 있지만…… 어제까진 별말 없었어. 오늘 밤에 만나서 이야기를 더 들어 봐야겠지.”

“마족은?”

오웬은 고개를 저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연이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오웬도 살짝 미간을 좁혔다.

“영지의 성을 뒤져야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수도의 저택은 이따금 생활하는 곳일 뿐이니까.”

“그럼…… 지금 상태에서 후작의 죄를 밝히기는 어렵겠네요.”

그러고 세이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 마족, 스키아를 잡지 않는 이상.”

새하얀 머리칼. 푸른 눈. 요염한 자태와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 손짓만으로 마물을 부르고, 또한 만들 수 있는 존재.

입 안의 여린 살을 깨물며 세이나는 그녀와 만난 때를 회상했다.

한심하게도 너무 놀라서 멍하니 있던 자신을. 그 어깨에 검을 꽂은 순간의 감각을.

그리고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엘렌의 목소리를.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반드시 마족을 다시 봉인해야 한다. 다시금 각오를 단단히 하자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눈빛이 사나워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진도는 어때? 잘 되어 가?”

“진도?”

“엘렌을 구하기 위해선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네. 그랬죠.”

세이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오웬의 미간이 좁아진 건 그때였다.

“……대신관님이, 네 훈련을 돕겠다고 했는데.”

“대신관님이요?”

“그래. 안 했어?”

그 말에 세이나의 미간도 덩달아 구겨졌다. 그녀는 턱을 매만지며 지난 이틀을 회상했다. 기도와, 기도와, 기도. 기도. 기도. 기도.

그중 훈련이라 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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