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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34화 (134/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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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조사단이 파견되었다.

협회의 헌터들, 황실의 기사들, 그리고 마탑의 마법사들까지.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마을을 방문했다.

특히나 활발하게 움직인 건 마법사들이었는데, 전조 없이 오염이 진행되는 것은 학계에서도 단 한 번도 보고되지 않은 유례없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본디 천재지변처럼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는 하나, 산에서 발생한 오염은 너무나 뜬금없었다. 다른 ‘레벨 4’로 분류되는 지역들과 공통점도 없었다.

그냥 갑자기 마기가 피어올랐고, 동식물들이 변형을 시작했다.

어떤 노쇠한 학자는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것과 유사한 확률’이라고 툴툴거리기도 했다.

산은 대륙의 새로운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문제는 사망자들이었다.

“처음부터 의심을 받았던 건 아니었어요.”

협회에서 파견된 조사단은 열심히 산을 조사했다.

마을뿐만 아니라 근처 도시, 다른 산맥들까지 뒤져 가며 밤낮으로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많은 사람이 물망에 오르고, 또 많은 이들이 언급되었다. 현상금 사냥꾼으로 유명한 S급 헌터까지 조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도 알아내지 못했죠.”

라울을 꿰뚫은 첫 공격은 오른손으로 한 것이 맞았다.

하지만 맥스의 몸에 남긴 상처들은 제멋대로였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 왼손을 쓰다가 오른손을 쓰다가, 스텝을 꼬기도 하고 손이 가는 대로 찔러 넣었다.

마치 맥스의 반응을 실험하듯이.

검이 무기로 사용된 것은 확실했으나 어떤 검인지조차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아무 무기점에 들어가도 그와 비슷한 크기의 검을 10개는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을 다 뒤져도 흉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산을 빠져나왔는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연기처럼, 혹은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유령과 싸우기라도 한 걸까.

조사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자 가장 답답해진 이는 당연히 세이나였다.

들끓는 분노를 참기가 어려웠다. 입맛이 없었고, 잠들 수도 없었다.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죽은 동료들이 떠올라 뜬눈으로 매일 밤을 보냈다.

왜.

그런 질문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단 하나, 복수심만이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느니, 용서는 이기는 것이라느니, 그딴 개소리 따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은 인격자가 아니었다. 또한 두려워 꽁무니를 빼는 겁쟁이도 아니다.

긴 조사에 헌터들이 지쳐 늘어진 날에도 세이나는 검을 들고 나가 훈련했다. 직접 산을 오르고 싶었으나 관계자는 빠져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라도 열을 토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 혹시 세이나 로힐 아니야?

예전부터 그녀와 사이가 안 좋던 B급 헌터였다.

신인 시절부터 계속 시비를 걸어오던 남자. 세이나는 오랜 기억 속에서 결국 그가 자신에게 얻어맞고 패배했다는 것도 떠올릴 수 있었다.

- 이상하잖아. 이렇게나 조사했는데 하나도 안 나오는 게 말이 돼?

- 분명히 범인은 헌터들을 잘 아는 녀석일 거라고. 조사단의 동선을 알고 먼저 가서 흔적을 지웠을지도 모르지.

- 범인은 이 마을 안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젠장, 그게 아니면 이건 말이 안 돼!

- 놈은 지금도 우리를 비웃고 있어. 어디 한번 해 봐라, 골탕을 먹이며 즐기고 있겠지. 범인은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있잖아.

-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지. 그리고 지금, 어떤 사람이 무기를 잃었잖아. 뭐, 제 말로는 버렸다곤 하지만 또 모르지.

- 이 마을 안에서 라울과 맥스를 죽일 수 있는 사람.

- 단 1명밖에 없잖아?

“결국 헌터들은 제 짐을 모두 수색했죠. 처음엔……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냥, 의심받는 것보다 빨리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저도 동의했죠.”

“……그래서 어떻게 됐지?”

“제가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 수상하다고 했어요.”

그는 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데 왜 보고서의 내용이 이것밖에 없냐고 따졌었다. 맥스와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그는 보고서의 내용도 가짜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질 확률.’ 그것이 얼마나 되겠냐고.

숲을 조사한 세이나 로힐의 기록이 모두 거짓이라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냐고.

“그러자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나타났죠.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 아나히와 제가 맥스를 두고 마당에서 했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어요.”

여자는 아나히와 세이나가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나히가 다짜고짜 따져 들었으니.

그러나 세이나가 아니라고 해서 빠르게 오해를 풀었던 일이었다. 여자는 대화의 전반만 듣고 소문을 퍼뜨린 것이었다.

B급 헌터는 세이나가 루카스를 찾으러 갔다는 말도 앞뒤가 안 맞다고 했다. 고작 C급이 어떻게 레벨 4의 숲에서 살아남느냐고.

그동안 했던 모든 일이 부정당하고 의심받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자신을 범인으로 두자, 의혹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산은 애초에 오염의 전조가 있던 곳이다.

무능한 리더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놀면서 3개월을 보냈다.

마지막 날의 조사는 그녀의 변덕. 그러던 중 변형된 마물에게 습격당했고, 루카스가 일행에서 이탈한다. 루카스를 찾으러 가던 길에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한 남자를 두고 일어난 치정 싸움. 도중 아나히가 스펙터의 독에 당하고 맥스가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본 리더는 질투로 분노한다.

라울이 말리자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그를 찌르고, 이어 아나히도 죽이려고 했다. 맥스는 좋아하는 마음에서 갈등하다가…….

“조사 마지막 날에는 아나히의 언니가 마을에 왔죠.”

결국, 모두 죽인 것이다.

“그 헌터, 그 남자가 조사단 모르게 수도로 편지를 쓴 거예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길을 걷다가 그녀를 만났어요.”

“…….”

“광장 한가운데서 뺨을 맞았죠.”

아나히의 언니는 격분하여 소리쳤다.

- 왜!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나올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얼얼한 뺨을 감싼 채 멍해진 세이나를 쏘아보며 그녀가 외쳤다.

- 대체 왜 그랬어. 왜! 아나히가, 아나히가 널 얼마나 믿었는데……. 그런데 네가 어떻게! 어떻게…….

곧 그녀의 몸이 쓰러졌고, 서글픈 흐느낌이 들려왔다. 아나히의 언니가 오열하며 말했다.

- 널 믿었는데…….

세이나는 통곡하는 그녀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세이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이 이야기를 제 입으로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은 처음이었다. 안나에게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울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러나 상상처럼 한마디 할 때마다 눈물이 떨어지진 않았다.

감옥이 너무 춥기 때문일까. 서늘한 온도가 눈시울을 식혀 주는 느낌이다.

“루카스의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바로 범인이 되었을 거예요. 루카스는 조사 내내 거의 쓰러져 있었지만 제 소식을 듣고 바로 정신을 차리더군요.”

로브엘 백작 부부는 아들의 목숨을 구해 준 세이나를 은인으로 여겼다. 하지만 수도에서 권세 높은 백작 부부라도 모든 여론을 바꾸기는 것은 무리였다.

부모님의 실종 사건도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 부모도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쳤으니.

딸이라고 다르지 않겠지.

“모험가 협회는 결정을 내려야 했죠.”

임무는 실패.

동료들까지 모두 죽었으니 당장 자격을 박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용의자로 의심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협회의 위신을 위해 당장 세이나 로힐을 내쫓아야 한다.

매일 협회장의 집무실에 편지들이 쌓였다. 강력하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중에는 몇 년 전 세이나와 주먹다짐을 했던 헌터들도 있었다.

하지만 협회장, 데일 프라벨은 강등 처분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실, 강등은 회장 나름대로 최선이었을 거예요.”

몇 번의 심문과 몇 번의 조사가 더 이루어졌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세이나는 빈손으로 수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자마자 가진 모든 돈을 유족들에게 전달했다. 이후 자신이 어땠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바보처럼 살았던 것 같다.

시계도 제대로 보지 않고 잠을 자고,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자고, 또 일어났다가 다시 눈을 감고.

현실에서든 꿈에서든 죽은 동료들의 모습만 계속 보였다.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안나마저 없었다면 그대로 굶어 죽었을 것이다. 로벤도. 카일도. 그 몇 명 덕분에 죽지 않고 이렇게 살 수 있었다.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세이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됐네요.”

라샤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빛이 내려앉은 반듯한 얼굴에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치는 것이 보였다. 슬픔. 분노. 안타까움.

마지막은 연민인가.

“그 마틴이라는 기사가 저번에도 이렇게 빠져나온 거냐고 했어요. 아마 세르본 부인의 저택에서 발견된 마물들의 구속구 이야기겠죠.”

고저택에서 창살 안에 갇힌 마물들은 모두 발에 주문이 새겨진 쇠고리를 차고 있었다.

조사 결과 그것은 마물의 행동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틴은 1년 전, 루카스를 구할 때도 그걸 이용했냐고 물은 것이었다.

“어찌나 우습던지. 그때 그런 걸 가지고 있었으면…….”

라울은, 맥스는, 아나히는.

죽지 않았을 텐데.

어지간히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조금 이해가 가기도 했다. 레벨 4의 마기를 뚫기에 그녀의 등급은 너무 낮았으니.

의심할 수밖에.

“나는…….”

하지만 그녀는 결백했다.

하늘에 맹세코 지금까지 한 말 중 거짓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삶을 살아왔고, 또 노력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건지…….

“믿어.”

씁쓸한 현실을 돌이키며 눈을 질끈 감았을 때, 라샤드가 말했다.

“네가 한 말 전부. 믿어. 그러니까…….”

세이나는 그제야 아직 그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운 곳에 꽤 서 있었는데도 그의 체온은 따뜻하기만 했다.

“너도, 날 믿어 줬으면 해.”

평생 검을 쥐었다는 손은 거칠었지만 어쩐지 그 손길이 싫지는 않았다. 살벌하던 눈빛은 오늘도 온화하기만 했다. 언젠가부터, 계속 이러했다.

“나는 널 구하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다 할 생각이다.”

“……고마워요.”

“세이나.”

“네.”

짧은 대답을 끝으로 감옥이 다시 침묵에 잠겼다.

무슨 소리를 할 생각이기에 이렇게나 뜸을 들이나. 세이나는 고개를 들었다.

라샤드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것은 그때였다.

“세이나 로힐.”

혹시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

빠르게 눈꺼풀을 깜빡였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라샤드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따뜻한 손길.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가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겠어?”

마침내 그녀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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