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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32화 (13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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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감옥 안에 세이나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멀리서 지켜보는데 갑자기 루카스가 땅으로 꺼진 듯 사라졌다고 했어요. 곧바로 비명이 들렸다더군요.”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녀는 어깨가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비단 장소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라울은 급히 따라갔지만 그보다 스펙터들이 더 빨랐어요. 그들의 발톱은 날카로워서 땅속을 헤엄치듯 다닐 수 있거든요. 제 등에 먹잇감을 매달고.”

    이야기를 듣는 라샤드의 표정은 몹시 차분했다.

    이따금 고개를 올릴 때마다 마주치는 눈빛이 따뜻해서 세이나는 점점 더 편하게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첫 만남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그 거대한 두더지들은 등에서 10개의 덩굴이 자라요. 팔과 다리, 몸 전체를 붙잡고도 남아 입까지 가려 버리죠. 루카스는 작아서 저항도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지?”

    “찾으러 갔어요.”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두려움이 일었다.

    이제 그녀의 곁에 남은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1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

    혹시 공작님도.

    나를 의심할까.

    “설마…… 혼자?”

    “아나히는 빨리 의사를 만나야 했어요. 라울은 스펙터들과 싸우다 어깨를 다쳐서 아나히를 업기 힘들었죠.”

    “…….”

    “그리고 나는 리더니까. 지금도 그랬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창살을 붙잡은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세이나의 시선이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빛이 닿지 않은 캄캄한 어둠을 보며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 * *

    “무모해!”

    맥스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바로 소리쳤다.

    “늪의 마물들이 올 거야! 그리고 이곳 마물들도……! 레벨 4라면 최악의 경우, 이미 변형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어! 너도 잘 알잖아!”

    “스펙터는 먹잇감을 제 둥지에서 먹는 습성이 있어. 아나히처럼 독에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커. 라울, 루카스는 꽃밭에서 사라졌지?”

    “……그래.”

    “옷에 야광초의 꽃가루가 묻어 있을 거야. 그걸 따라가면 되겠지.”

    “너 혼자선 무리야! 사람을 더 데려와서…….”

    “그럼 너무 늦어.”

    “녀석도 마법사니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마법이라도 쓰면……!”

    맥스는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루카스는 귀하게 자란 귀족 가문의 막내아들이었다.

    저택의 온실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온화한 성정의 소년. 수도를 떠난 적도 없고, 배운 마법도 보조 계열뿐.

    마물에게 공격당한 것도 처음이다.

    “여기서부터 뛰면 곧 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라울. 달릴 수 있지?”

    “넌 어쩌고!”

    “루카스를 찾아서 돌아갈게.”

    마지막으로 검을 점검하고 세이나가 맥스를 돌아보았다.

    “네가 말했잖아. 나라면 승급은 당연하다고.”

    일행에는 승급을 앞둔 사람이 셋이었다. 라울과 맥스, 세이나. 이번 심사가 끝나면 그녀는 B급 헌터가 된다.

    B급 헌터는 홀로 B급 마물 다수를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늪의 마물은 대부분 B급, 대체로 그녀가 아는 개체들이었다.

    일행 중 루카스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세이나가 씩 미소 짓자 맥스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건 네가 해 준 말이잖아.”

    “아, 그랬나?”

    “세이나…….”

    “찾을 수 있어.”

    그러나 B급 마물이라 하더라도 마기가 짙은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포악해진다.

    더군다나 늪은 마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곳. 높은 등급의 헌터라고 해도 수십, 수백 마리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맥스가 손까지 벌벌 떨며 할 말을 찾는 도중, 돌연 라울이 한쪽을 가리켰다.

    “끌려간 건 저쪽이야.”

    “라울!”

    “야광초의 꽃가루가 끊기면 바로 돌아와. 약속해.”

    “응. 약속할게.”

    “미쳤어! 저건 자살 행위라고!”

    맥스는 끝까지 그녀를 반대했다. 말리는 라울을 뿌리치고 세이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마지막은 거의 애원이었다.

    “안 돼. 제발…….”

    하지만 그녀의 의지가 너무 강고했다.

    “살아서 만나자.”

    그 말을 끝으로 세이나는 야광초 꽃밭을 거침없이 가로질렀다.

    * * *

    ‘찾을 수 있어.’

    예상대로 꽃밭을 벗어나자마자 빛나는 가루들이 보였다.

    다행스러운 마음에 환하게 웃은 그때, 무언가 돌연 그녀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세이나는 바로 검을 움직여 저를 붙잡는 줄기들을 베어 냈다. D급 마물 알레네가 알려진 것과 달리 매섭게 채찍처럼 줄기를 휘둘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알레네를 다 처리하자 몸이 흠뻑 땀에 젖었다. 그러나 가루는 아직 남아 있었다. 세이나는 바쁘게 움직였다.

    ‘찾을 수 있어.’

    언덕을 넘으니 또 원숭이들이 나타났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것들을 이리저리 피한 후 세이나는 강하게 큰 나무를 걷어찼다.

    쿵! 하는 울림 다음 우수수 위에서 뭔가 쏟아졌다. 그녀는 뒤를 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찾을 수 있어.’

    비탈길을 내려가자 진흙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습격하기 직전, 세이나가 먼저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진흙 안의 마정석이 부서졌다.

    ‘찾을 수 있어.’

    나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커다란 뱀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몸을 살짝 틀어 피한 세이나는 바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끔찍한 소리와 함께 피가 쏟아졌다.

    “하아, 하아…….”

    슬쩍 본 마도구는 이미 레벨 5를 표시하고 있었다. 책에서도 읽어 보지 못한 유례없는 상황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직, 꽃가루가 남아 있으니까.

    찌르고, 베고, 구르고, 피하고, 다시 찌르고. 밟고, 일어서서 다시 베고.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가 다시 도약.

    또다시.

    “학, 허억……. 헉…….”

    블루 카이만을 다 죽였을 땐 마침내 한계가 찾아왔다. 몇 마리였던가. 20? 21? 그 이후로는 숫자를 제대로 세지 않았다.

    너무 지쳐 의식조차 점점 흐려졌다. 그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검을 휘둘렀다. 상처가 없는 것이 기적이었다.

    불사신.

    왜 하필 그 별명이 떠오르는 건지.

    몇 시간을 싸워도 지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감탄인지 조롱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유명세를 불리기엔 충분했다.

    세이나 로힐은 마물의 천적이다.

    그것들을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들었다. 세이나는 그 평가를 일부 인정하기로 했다. 마물만 없었다면.

    그녀의 부모님은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

    “젠장!”

    살쾡이 무리를 다 죽였을 즈음 검이 부서졌다.

    발치에 쓰러진 C급 마물은 그녀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덩치가 컸다. 제 주먹보다 큰 날카로운 이빨을 바라보며 세이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부서져도 없는 것보단 나을 테다.

    야광초 가루는 계속 이어져 있다. 세이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또 다른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고약한 냄새가 느껴졌다.

    조금 뒤 세이나는 어떤 나무 아래에 쓰러진 커다란 두더지 2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의 뒤엔 커다란 빛 덩어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마물? 아니.

    사람이다.

    “루카스!”

    허겁지겁 달려가 확인한 소년의 얼굴은 눈물로 잔뜩 얼룩져 있었다.

    그는 세이나가 어깨를 잡고 흔들어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초점 잃은 눈동자를 향해 그녀가 다시 외쳤다.

    “루카스! 정신 차려!”

    “세……이나?”

    세이나는 대답 대신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의 몸 전체에 묻은 야광초 꽃가루가 피어오르며 코를 간질였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이 묻어 있어서 그를 찾을 수 있었다. 루카스의 어깨가 달싹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를…… 저를 서로, 서, 서로 먹겠, 먹겠다고 …….”

    “그래, 그래.”

    “아,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 할 수가…… 할 수가…… 없어서…….”

    떨리던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바뀌자 루카스는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큰 소리를 내면 마물이 다가온다.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도 세이나가 한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괜찮아. 내가 왔잖아.”

    “끅! 저는……! 흑……!”

    “더 안아 주고 싶지만 이제 움직여야 해. 루카스. 기억하지?”

    마물의 시신은 오래 남겨 둬선 안 된다. 처리할 수 없다면 바로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다른 마물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깨에 닿아 있는 고개가 아래위로 움직였고, 세이나는 먼저 일어나 루카스의 손을 잡아끌어 주었다.

    그런데 제대로 일어서기 직전, 루카스가 무너져 버렸다.

    “저, 저, 저, 저는, 저…… 제가…….”

    다리가 완전히 풀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민망하여 고개를 푹 숙인 소년에게 세이나가 부서진 검을 내팽개치고 다가갔다.

    “업혀.”

    “네, 네?!”

    “업혀.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또래보다 작은 편이긴 하지만 루카스는 15살이었다. 아이도 아닌 성장한 소년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겠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로서도 크게 자신 있진 않았다. 지금은 자신도 지친 상태. 가는 길에도 마물을 만날 것이다.

    세이나는 마물의 천적이라 불렸지만 사람을 업고 싸우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고 싶었다. 여기서 죽음을 기다릴 순 없었다.

    “미, 미안해요……. 미안, 미, 미, 미…….”

    “간다. 꽉 잡아.”

    세이나가 다시 달려 나갔다. 이전과 달리 무기도 없고 등에는 큰 짐도 이고 있다.

    첫발을 내딛는 것도 힘들었다. 한 번 크게 휘청이자, 루카스가 당황하며 내리겠다고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세이나는 거절하며 호흡을 다잡았다. 지쳤지만 할 수 있다. 힘이 없진 않았다.

    오르막길을 끝내고 평지로 돌아오자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세이나는 거대한 뿌리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불사신이라. 조금은 인정해야 할지도.

    위화감은 자신이 도륙한 살쾡이들을 지날 때 찾아왔다.

    ‘뭐지?’

    시체들은 훼손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귀를 기울여 보니 계속 들리던 마물의 울음소리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있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세이나는 혀를 찼다.

    하나인가? 둘?

    ‘등급이 높은 마물인가?’

    저 마물의 기운 때문에 다른 마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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