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30화 (13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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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의 여름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아니이이, 세이나! 그걸 그렇게 그대로 쓰면 안 되지!”

3개월에 걸친 조사도 그러했다.

세이나가 쓰고 있던 보고서에 동료 1명이 씩씩대며 끼어들었다.

E급 헌터, 맥스가 종이의 상단을 가리켰다.

“5일만 더 추가해! 딱 5일만! 날씨도 좀 넣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의욕적으로 성실히 임무에 임했습니다.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하, 너 지금 의뢰인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거야?”

“당연히 의뢰인한테는 제대로 말해야지! 양해를 구하는 거야. 곧 승급을 앞둔 헌터가 셋이나 되니까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아? 어때!”

“멍청이. 신용에 흠집이라도 나고 싶어?”

그의 목소리를 듣고 뒤따라온 이는 또 다른 D급 헌터, 아나히였다.

그녀가 맥스의 반대편, 즉 세이나의 오른쪽에서 고개를 기울이며 짓궂게 웃었다.

“아니면 승급에 자신이 없는 건가? 어쩐지 요즘 ‘떨어진다’에 유난히 예민하더니. 얘, 어제는 책이 ‘바닥에 딱 달라붙었다’라고 하더라니까? 웃겨 진짜.”

“여기! 이 마물은 좀 특이하잖아! 우리 꼬맹이가 아니었으면 여기에 있는 걸 발견도 못 했을 거라고! 이쪽에서 찾은 건 우리가 최초일걸?!”

“공부도 잘 안 하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단정 지을까.”

“이 대단한 걸 그냥 ‘찾았다’고 하니까 너무 멋이 없단 말이지. 맨손으로 절벽도 오르고, 강도 헤엄치고, 잠수도 하고? 응?”

“산책 다니듯 걸었으면서, 무슨.”

“우리가 고생했다는 걸 팍팍 넣으란 말이야! 심사관들이 확 몰입되게!”

“맥스 바보. 겁쟁이!”

“아니야!”

“얘들아……. 나 보고서 좀 쓰자…….”

양쪽에서 소리를 질러 대는 마당에 정신이 사나웠다. 세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펜을 움직였다.

“나 좀 도와주라……. 응?”

맥스가 풀이 죽어 중얼거리자 옆에서 또 큭큭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나는 어쩔 수 없이 비어 있는 왼쪽 손으로 맥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충분히 승급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치마아아안…….”

“내가 출발하기 전에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기억하지?”

“……팀원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흐음, 그런데 맥스는 세이나를 하나도 안 믿나 봐?”

아나히가 키득대며 말하자 맥스가 그녀를 확 째려봤다. 곧 또 싸움이 날 조짐이 보여 세이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지난 3개월에 걸친 조사는 아주 원만했다.

장기 투숙으로 빌린 여관에서 눈을 뜨고, 음식을 먹고, 출발. 종일 산을 돌아다니며 식물과 마물들을 체크한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복귀. 또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위험한 마물은 하나도 없었지.’

몇 번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딱히 특이 사항은 없었다. 의뢰인이 전달해 준 리스트와 다른 것이라곤 단 한 가지.

그마저도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일반적인 민들레와 똑같이 생긴 그것은, 잘 살펴보니 독약의 재료로 쓰이는 마물이었다.

‘이 정도면 깔끔한 임무 완료지.’

의뢰인은 그들이 머무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의 시장으로, 매년 마물의 수가 많아지는 여름마다 주변 생태계를 조사한다.

갑자기 변종 마물이 나타나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시에서 장기 계약 헌터들에게 맡기는데, 그들이 패싸움을 말리다 다쳐서 수도까지 의뢰가 온 케이스였다.

아주 운이 좋았다.

평화로운 지역에 의뢰 기간도 넉넉. 보수도 적당하고 거처도 제공해 준다. 이런 ‘거저먹는’ 의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맥스는 의뢰 내내 걱정했다. 너무 거저먹어서 심사관들이 흠을 잡지 않을까.

“이번에도 떨어지면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고! 네가 내 심정을 알기나 해!?”

벌써 세 번이나 승급에서 미끄러져서 더욱 염려했다.

그는 세이나와 동갑. 보통 E급 헌터들이 20살 안팎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늦은 나이였다.

“내가 옛날부터 자잘한 것들도 좀 하라고 했잖아. A급들 뒤만 졸졸 따라다니니 심사관들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누가 봐도 걔들이 다 해 주는 거잖아?”

그리고 아나히는 맥스와 동기. 예전부터 그를 놀리길 좋아했다. 맥스가 하는 의뢰마다 졸졸 따라오는 걸 보니 좋아하는 게 아닐까.

“다 해 주다니! 그리고 내가 대규모 레이드를 우선하는 건 더 배우고 싶어서야!”

“네네, 이자벨라 프라벨 열혈 팬님.”

……비록 표현법은 좀 이상했지만.

두 사람의 언성이 점점 더 높아지자 다른 이들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날까지 부부 싸움이야?”

덩치 큰 사내, D급 헌터 라울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옆에 붙은 키 작은 소년, 루카스가 작게 물었다.

“부부 싸움이요?”

“응, 쟤들 서로 좋아하거든.”

“아니야!”

“아니야!”

“투덜거릴 거면 그냥 다른 걸 하지 그랬어?”

라울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묻자 맥스가 우울하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을 줄 몰랐지…….”

이대로 수도에 돌아가면 아슬아슬하게 심사 기한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사이 다른 의뢰를 할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세이나가 제일 편하단 말이야.”

아나히의 눈빛이 좀 날카로워졌다. 어젯밤 세이나가 ‘나는 맥스에게 털끝만큼도 관심 없다.’라고 한 말을 벌써 잊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평화롭네.’

지난 3개월은 그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지.’

그리고 곧 마무리될 예정이다. 세이나가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출발하자. 나중에 맥스 몰래 써야겠어.”

“세이나아아아.”

“추천서 써 줄게. 추천서.”

“한 줄만 더, 응?”

“맥스.”

세이나는 나가다 말고 그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진중해진 분위기에 맥스가 움찔, 어깨를 떠는 것이 보였다.

화를 내려나? 그런 걱정을 하는 눈이었다. 그래 버릴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팀 분위기를 해칠 것이다.

미안하지만 잠깐 속일 수밖에. 세이나가 그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돌아오는 길에 뭔가 이상한 게 있었던 것 같기도…….”

맥스는 그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방을 뛰쳐나갔다.

* * *

그러나 마지막 날까지도 산은 평화로웠다.

“다 끝났지?”

저녁. 저물어 가는 태양을 확인한 세이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맥스가 축 처진 어깨로 쭈그려 앉아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나, 난 저쪽을 더 찾아볼게!”

동시에 아나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스! 어휴, 정말!”

“저쪽에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야! 느낌이 왔어!”

맥스는 그녀가 붙잡기도 전에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나히의 걸음도 빨라졌다.

“1시간 뒤에 꼭 데려갈게! 숲 입구에서 봐! 맥스으으! 같이 가!”

팀장은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통솔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럼 이번 의뢰는 세이나에게 ‘실패’였다. 너무 친해서 종종 저렇게 제멋대로 굴어 버리니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결판냈으면 좋겠는데.’

아나히는 맥스에게 고백할 타이밍만 보고 있었다. 노을도 예쁘고, 낯선 장소에 단둘이니 조건도 좋았다.

이번 의뢰는 두 사람에게만은 ‘성공’이 될지도 몰랐다.

“여기요!”

그리고 작은 소년, 루카스에게도.

“야광초예요!”

평생 수도에서만 자란 루카스는 야생의 모든 것을 신기해했다. 꽃봉오리에 은은한 빛이 맺힌 풀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정말이네.”

“네! 야광초가 마탑에 들어올 땐 다 해체돼서 들어오거든요. 꽃잎은 따로, 줄기도 따로…… 아, 뿌리는 말린 것만 봤는데!”

“약재로는 그렇게 쓰지.”

“파헤쳐 봐도 될까요?”

세이나가 끄덕이자 루카스가 작은 손으로 조심스레 야광초 근처의 흙을 걷었다. 단단히 박혔는지 제대로 뽑히지 않아 라울이 거들었다.

루카스는 영웅이라도 만난 양 라울을 우러러보았다.

“그렇게 신기해?”

“네!”

“더 찾아볼까?”

“네!”

벌써 일은 다 끝났는데. 라울과 루카스는 탐사를 계속 이어 갔다. 세이나는 웃으며 머리를 맞댄 두 사람을 보았다.

‘라울은 남동생만 셋이라고 했지.’

2달 전에는 아들이 생겼다. 장모님이 크게 다쳐 병원비가 필요하지 않았다면 계속 아내의 곁을 지켰을 것이다.

‘빨리 돌아가야겠네.’

세이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반반한 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내일 의뢰인을 만나서 의뢰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는 비용까지 구체적으로 계산하자 1시간이 금방 지났다.

하지만.

“왜 안 오는 거야?”

1시간 반을 기다려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이나와 라울, 루카스는 결국 그들이 떠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야광초의 진물로 만든 잉크가 보였다. 방향을 알리기 위해 아나히가 나무 위에 남긴 것이었다.

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으로 가자 탁 트인 곳이 나왔다.

들판 가득 무성히 핀 야광초가 마정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아주 커다란 빛의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와아! 야광초가 이렇게나 많이!”

“낮에는 몰랐는데. 이거 나름 새로운 발견인걸?”

그때까지도 세이나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시야 가득 야광초가 피어 있는 풍경은 그녀마저도 감상에 젖게 했다.

“나도 이런 건 처음 봐.”

“장관이야. 관광지로 만들어도 되겠어.”

“여기 봐요! 라울! 세이나!”

루카스는 야광초 사이를 마음껏 뛰어다니며 손을 흔들었다. 그와 부딪힌 꽃잎들이 흔들리며 빛의 조각들이 위로 떠올랐다.

세이나가 물었다.

“여기서 기다릴래? 루카스도 좋아하고. 딱히 멀리 있을 것 같지 않네.”

“응?”

“운치 있는 장소잖아. 고백하기 딱 좋지.”

“아.”

아마 저들끼리의 기분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것이다. 라울은 동감하며 씩 웃었다.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신호탄을 띄워.”

세이나는 끄덕이며 화살표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뒤에서 루카스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평화로운 시간.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말했던 다섯 가지.

절대로 일행과 따로 떨어지지 마라.

“맥스! 아나히! 어디 있어?!”

자신이 어느새 그것을 어겼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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