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22화 (122/179)
  • @122

    정신없는 난투였다.

    “젠장, 끝도 없군!”

    “저기 1마리 더! 오웬!”

    “윽, 빌어먹을!”

    “하나 더!”

    휘익! 챙! 서걱! 날이 선 소음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판갈레스들은 가시 돋친 줄기를 채찍처럼 부리며 세이나와 라샤드, 그리고 오웬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다섯.

    제각각 가진 줄기가 최소 3개이니 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세이나는 전생에서 보았던 레이저로 방범 체계를 만든 방을 떠올렸다. 그것과 비슷하게.

    스치면, 죽는다.

    “가시에 독이 있어요! 절대로 맞으면 안 돼요!”

    그들은 이제 엘렌의 집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벽면이 반쯤 날아갔기에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명을 지른 여자는 어느새 도망쳤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젠장, 접근을 못 하겠어!”

    “오웬! 총 어디 있어요?!”

    “네가 싫어해서 안 들고 왔지!”

    “왜 그런 것만!”

    말을 잘 듣고 그래!?

    ……라고 쏘아붙이려던 순간, 맬빈이 외쳤다.

    “끝났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숙였다. 곧바로 뜨거운 열기가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화르륵!

    엘렌의 작은 집 1층이 화마에 휩싸였다.

    판갈레스의 움직임이 잦아들 무렵, 세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그들의 뒤에 서 있는 맬빈은 완전히 땀에 젖어 있었다. 앞으로 내뻗은 그의 팔이 파들파들 떨렸다.

    ‘마탑주…… 맞긴 하네.’

    한 번에 없애야겠으니 시간을 좀 끌어 달라고 한 것이 불과 5분 전이었다.

    그가 약속보다 이르게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세 사람의 고생은 이보다 더 길게 이어졌을 것이다.

    판갈레스의 약점은 불이었다. 그 뿌리까지 모두 태워야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타닥타닥.

    불꽃이 엘렌의 집안 곳곳으로 튀어 올랐다. 한때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세이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된 거지?’

    이전에도 마물은 종종 나타났었다.

    엘렌을 노리고 온, 그녀의 피를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몰래 수도에 숨어들어온 마물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작은 크기였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감지하기 어려운 마물이기도 했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도 분명 알아챘을 텐데. 치안대는 오고 있는 건가? 다른 거리도 설마?’

    그제야 떠올린 사실도 있었다.

    “자, 잠깐! 엘렌이 안에 있을지도 몰라요! 맬빈!”

    “네?! 이 불은 쉽게 잠재우기 어렵단 말입니다! 젠장, 엘렌부터 찾았어야 했는데!”

    “둘 다 침착해! 여기는 확실히 엘렌이 없어! 있었으면 내가 봤겠지!”

    “이 소란 속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라샤드의 말에 세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이 소란 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둘 중 하나.

    이곳에 없거나. 이미…….

    “꺄아아악!”

    날카로운 음성에 다시 세이나의 발이 움직였다.

    허겁지겁 달려 나간 대로는 이미 혼잡했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제각각의 비명이 쏟아지며 요란한 발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마, 마물이다!”

    “으아악!”

    “도망쳐!!”

    세이나는 달아나는 사람들의 뒤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로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커다란 형체. 붉은 털.

    ‘1마리 더!’

    새로운 레드 켈티르에 세이나의 눈빛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힘껏 달려 나가려는데, 뜻밖에도 오웬이 붙잡았다.

    “잠깐. 뭔가 이상해.”

    비명으로 주변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늑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으르렁대며 사람을 위협하지도 주변을 둘러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머리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늑대와 세이나가 눈이 마주쳤고, 누군가도 몸을 돌렸다. 그녀의 금색 머리칼을 확인하자마자.

    “아, 세이나.”

    세이나는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콰드득!

    푸른 검이 매끄럽게 늑대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세이나는 지체 없이 힘껏 검을 휘둘렀다.

    쉬익! 쿵!

    잘려 나간 늑대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연이어 쿵! 그것의 몸도 맥없이 추락했다. 뜨거운 피가 그녀의 얼굴 위로 튀어 올랐다.

    “하아, 하…….”

    모든 것이 끝났음에도 세이나는 충격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조금만 늦었다면 벌어졌을 참혹한 미래가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거친 호흡도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힘들게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엘렌이 보였다. 옷에 피가 조금 튀었지만 다행히 그 외는 상처 하나 없었다.

    “후우, 괜찮네. 다행이다.”

    “엄청 빠르네요.”

    엘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위기라곤 하나 느껴지지 않는 표정에 세이나가 격분하여 외쳤다.

    “빠른 게 아니라!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었어요?! 하마터면!”

    그러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엘렌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에, 엘렌?”

    “구해 줘서 고마워요. 세이나.”

    엘렌이 조금 떨어져 그녀를 올려다보며 예쁘게 웃었다. 손은 계속 그녀의 목을 안고 있었기에 세이나는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친밀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식의 신체 접촉은 전에 없었다. 너무 놀라서 그런가?

    하지만 웃는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평소보다 훨씬 짙어진 푸른색 눈동자가 예쁘게 반짝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보다. 그래, 평소와 달랐다.

    엘렌이라기엔…….

    “세이나? 앗!”

    엘렌의 몸이 크게 휘청하며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이나가 엘렌을 밀쳐 버린 것이다. 직후에도 쓰러진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착실히 물러나고 있었다.

    ‘뭐지?’

    손은 그녀와 닿은 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속이 울렁이고, 불쾌감이 뒷덜미를 타고 엄습했다. 이건, 도저히…….

    ‘역겨워.’

    견디기가 힘들었다.

    ‘왜?’

    목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구토감까지 밀려오자 도저히 엘렌과 붙어 있기 어려웠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당황한 와중에도 습관적으로 사과는 나왔다.

    “미, 미안해요. 괜찮아요?”

    “아, 다리가 부러졌나 봐요.”

    넘어졌다고 다리가 부러져?

    “일으켜 주지 않을래요? 혼자서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도와줘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계속 발은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이라도 당하고 있는 느낌. 동시에 그 ‘누군가’에게 세이나는 동감할 수 있었다. 저건 너무 위험하다.

    다가가면 안 돼.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맬빈이 참지 못하고 물은 것은 그때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오웬은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맬빈을 붙들고 있는 중이었다. 라샤드도 다가가려 했으나 오웬이, 그리고 세이나도 이상해 보여 일단 멈춘 상태다.

    오웬의 표정은 세이나보다 더 좋지 않았다. 그가 작게 중얼거리자.

    “설마.”

    “세이나.”

    엘렌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하늘을 닮은 색채는 어느새 짙은 바다로 바뀌어 있었다.

    사파이어를 닮은 차가운 푸른빛이 자신을 노려본 그때, 세이나는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어?’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굳었던 발이 다시 움직였다. 일순 자신을 스친 위화감에 세이나는 당황하여 제 몸을 살폈다.

    분명히 방금 굳어 버렸었는데?

    착각이었나.

    “내 말 안 들려?”

    엘렌이 확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윽고 세이나가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자 그녀의 표정이 전에 없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뒤이어 충격이 찾아왔다. 엘렌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너…….”

    그리고 다음 순간.

    “어……?”

    눈물이 떨어졌다.

    엘렌은 깜짝 놀라 제 눈가를 매만졌다. 색이 변한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조도 없이 갑자기, 계속.

    세이나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야?’

    갑자기 유혹하듯 다가오더니,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고, 명령하고, 이제는 운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다. 그중 가장 황당한 것은 엘렌이 제 눈물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흘리고 있는 것이면서도. 왜.

    “하!”

    다시 눈이 마주쳤다.

    세이나는 참지 못하고 다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엘렌은, 엘렌이 아니었다. 눈동자 색이 달라지고 머리칼이 변했다. 그리고 다음엔.

    엘렌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눈이 비틀리고 입술이 양옆으로 찢어지더니 턱이 점점 뾰족해졌다. 얇은 목에 핏줄이 솟아나 꿈틀거렸고 이윽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은 쉼 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눈물 젖은 얼굴로 ‘그것’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엘렌!”

    “안 돼요!”

    세이나는 다급히 앞으로 나서려는 맬빈을 붙잡았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가면 안 돼.”

    “이게 대체…….”

    그 무렵, 변화가 멈추었다.

    엘렌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이나보다 더 큰 키. 긴 팔다리. 피부는 시체처럼 창백했다. 금실을 뽑은 듯 반짝이던 머리칼은 노인처럼 하얗게 세어 버렸다. 갸름한 턱선 위.

    붉은 입술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너였구나.”

    천사처럼 아름다운 얼굴.

    “세이나 로힐.”

    그와 닮은 생김새였다.

    “……디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