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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18화 (118/179)

#118

「내 말 안 듣더니 결국 시작하기도 전에 차여 버렸네?」

목소리는 끊임없이 떠들어 댔다.

「내가 죽이자고 몇 번을 말했니? 응? 내가 너 이렇게 될까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 듣고 있어?」

엘렌은 다시 빗자루를 움직였다.

라샤드는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그의 인도에 따라 세이나가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멍청한 엘렌. 바보 같은 엘렌. 착하게 살면 누가 알아주니?」

마침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걱정스레 쳐다보던 순간이었다.

엘렌은 입을 닫고 계속 빗자루를 움직였다. 이제 쓸 것도 없으면서 괜히 계속 바닥을 노려봤다.

「아, 또 무시하시겠다?」

생각을 닫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머릿속을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두고, 고개를 흔들 때마다 쓰레기가 떨어지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이어 떨어진 곳을 빗자루로 쓰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아.

엘렌은 속으로 그 말만을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정말 머릿속이 텅 비어 가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도움이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꺄아아아아악!」

귓가를 가득 채운 비명에 엘렌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그것’이 다시 외쳤다.

「꺄아아악! 꺄악!」

여러 번 고개를 흔들어 봤으나 비명은 끊이질 않았다.

엘렌은 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또 그 ‘이상한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내 말을 안 들어주잖아.」

그것이 킬킬대며 웃었다. 엘렌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잡고 있던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쾅!

그러나 목소리는 더욱더 즐거워하며 속삭였다.

「원래 공작이 관심 있던 사람은 너야. 저 여자가 빼앗은 거라고.」

“아니야!”

「그때 와서 험담한 것도 다 저 남자와 널 떨어트리려고 수작 부린 거야. 불쌍한 엘렌. 그것도 모르고 저 여자에게 이것저것 퍼 줬지?」

“아니야! 세이나는 날 도와주려고…….”

「그럼 왜 저 남자랑 지금 친하게 지내는데?」

“전부 오해라고 말했어.”

「바보. 그걸 믿어?」

쾅! 다시 테이블이 흔들렸다.

“시끄러워! 닥쳐!”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소리로 외친 후에야,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엘렌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마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아……. 하…….”

정적.

그에 비로소 안도한 엘렌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

엉겁결에 바닥을 짚은 손바닥 위로 뚝, 뚝,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흐윽, 흑……. 흑…….”

쉼 없이 솟아난 눈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엘렌은 그대로 몸을 웅크려 흐느꼈다.

“왜……. 도대체 왜…….”

이 이상 현상을 설명하려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 * *

처음은 아마, 1년 전쯤 되었을 것이다.

「엘렌.」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신전의 아이들을 돌보고, 숲에서 약초를 캐고, 빨래하고, 저녁을 준비했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걷던 와중 엘렌은 문득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엘렌?」

잘못 들었겠지.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이따금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환청. 혹은 이명인가? 피곤해서 그런가?

「엘렌, 나 여기 있어.」

온 기억도 없는 숲 한가운데에서 잠이 깼을 때부터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엘렌은 그 후로도 종종 숲에서 깨어났다.

분명히 침대에서 잠들었는데 눈 떠 보니 밖이었다.

사제는 흔한 몽유병 증세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몸을 묶고 잠을 자도 소용이 없었다. 일어나 보니 손에 이상한 상처가 생긴 적도 종종 있었다.

그 이후부터 엘렌은 주기적으로 사제에게 축복을 받았다. 그러자 일상이 돌아왔다.

「여기. 안 보여?」

그것을 마지막으로 목소리도 사라졌다.

엘렌은 돌아온 평화에 감사하며, 더욱 신실한 종교 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고 몇 개월을 보냈을까.

- 미안하구나. 더는 널 도울 수 없겠어.

항상 그녀를 돌봐 주던 사제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신성력이 사라진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라며 껄껄 웃었으나, 엘렌에 대한 걱정은 잊지 않았다.

-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괜찮아요.

- 수도로 가는 게 어떠니?

- 네?

- 신성력으로 너의 이명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그 목소리는 일종의 저주로 보이는구나.

- 저주요?

- 짐작 가는 부분이 없니?

짐작할 수 있을 리가. 엘렌은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제 이름 정도. 글 쓰는 법도 새로 배웠다.

- 수도에는 마물을 막아 주는 결계가 있단다. 마기를 차단하는 기능도 있으니 네 병을 어느 정도 눌러 줄 것이야.

가장 존경하는 분의 조언이었기에, 엘렌은 주저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그동안 모아 온 돈에 신전의 도움까지 합치자 수도에 집을 살 수 있었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신전에서 빌려준 비용을 갚고, 사제에게도 그동안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큰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엘렌은 씩씩하게 잘 지냈다. 장사도 꽤 잘되었다.

그리고 2달 전부터.

「드디어 들리는구나?」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엘렌, 나 심심해.」

「뭐라고 말해 봐. 응?」

전보다 더 선명하게, 반복적으로.

너무 자주 들려서 이따금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불편을 겪을 정도였다.

엘렌은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무시했다.

신성력이 통하니 이건 악마의 속삭임이 틀림없다.

매일 밤 신께 기도를 올리고, 사제가 준 축복받은 브로치를 항상 몸에 지녔다. 신전을 방문해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성서도 읽었다.

「나는 옛날부터 널 지켜보고 있었어.」

「널 도와줄게.」

「뭘 얻고 싶어? 돈? 명예? 권력?」

「날 믿어 줘. 엘렌.」

「나는 네 편이야.」

그녀는 단 한 번도 그에 대꾸한 적이 없었다.

현명한 대처라고 생각했다.

이러다 보면 곧 잠잠해지겠지. 내가 단단히 마음먹으면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빗나가고 말았다.

속삭임은 어느 날부터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멍청한 엘렌. 또 내 말을 무시했군?」

「내가 분명히 그 노인네 도와줄 필요 없다고 했지? 인간이란 고마운 걸 모르는 족속이라니까.」

「저 남자 눈빛 보여? 널 잡아먹을 생각밖에 없네. 어떻게 잡아먹냐고? 킥킥. 궁금해? 말해 줄까?」

「머저리. 또 손해 봤네.」

「솔직히 너 따위. 네 친구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당장 네가 쓰러져도 아무도 달려오지 않을걸?」

「그냥 이야깃거리나 되겠지. 착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허무하게 죽어 버렸네? 킥킥.」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1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넌 평생 배신당할 운명이야.」

「넌 죽을 때까지 혼자야.」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누구도 네게 고마워하지 않아.」

쇠를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나를 제외하고.」

속삭임은 귀 바로 옆에 대고 말하듯 가깝게 들렸다.

화들짝 놀라 옆을 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상황의 반복.

「오직 나만이 널 걱정하고, 염려해. 아직도 모르겠어?」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내가 미쳐 가고 있구나.

매일 엘렌은 좌절하고 또 무너졌다. 사람들 앞에서는 웃으며 위장하고, 돌아서서 홀로 숨죽여 울었다.

우습게도, 울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그것’은 입을 다물었다. 정신없이 울다가 고개를 들면 너무나 고요한 것이다. 그래서 엘렌은 확신했다.

내가 미쳐 가고 있구나.

그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 * *

울다 지쳐 잠들어서일까.

“오늘은 조용하네…….”

시도 때도 없이 중얼대는 목소리가 오늘은 들리지 않았다.

엘렌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우습게도 눈치를 살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이후에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바보같이 웃음도 나왔다. 오늘은 마침 꽃집이 쉬는 날이기도 했다.

엘렌은 가벼운 바구니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이상한 시선들이 몇 느껴지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조용해.’

혹시 드디어 저주가 풀린 걸까?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소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 가던 찰나, 아는 얼굴이 보였다.

“공작님?”

그리 부르고도 엘렌은 그를 다시 살폈다.

큰 키에 검은 옷. 보기 드문 붉은 눈. 라샤드 칼만 공작이 틀림없었다. 왜 공작이 신중한 눈으로 가판의 야채를 살피고 있는 걸까.

마치 요리사처럼.

“……오랜만이군.”

하지만 그 어색한 인사는 공작이 틀림없었다. 엘렌은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우리 저번 주에 봤는데요?”

“아. 그랬군.”

아무래도 그는 이렇게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상황 자체를 잘 겪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돌리는 그에게 엘렌이 밝게 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수행원도 없네요?”

기분이 좋아서 평소보다 질문이 더 붙었다.

다행히 라샤드는 불쾌해하지 않고 하나씩 다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식재료를 사기 위해서. 수행원은 혼자 다닐 때는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취미가 요리라니.’

놀라운 정보에 엘렌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라샤드는 그 순간에도 재료들을 살피고 있었다.

공작의 취미가 요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보통 검술이나, 사격, 승마, 이런 것들이지 않나?

‘재미있는 분이시네.’

살벌한 눈빛으로 양파를 다듬는 라샤드를 상상하니 계속 웃음이 나왔다.

엘렌은 그의 옆에서 재료를 고르는 것을 도왔다. 라샤드는 거절하지 않았다.

“요즘 물가가 많이 내렸어요.”

“마물의 수가 줄어서 그렇다더군.”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같이 장을 보게 되었다. 공작님과의 대화는 생각보다 매끄럽게 흘러갔다.

“마물의 수가 줄면 물가가 내려가나요?”

“운송 과정에서 습격당하지 않으니까. 헌터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마차가 파손될 일도 없지.”

“아, 그렇구나. 왜 마물의 수가 줄었어요?”

“마물도 동면에 드는 개체들이 있어.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수가 꽤 많이 줄긴 했지.”

“다 같이 고향에라도 갔나?”

“……실례되는 말인 건 알지만, 엘렌. 마물은 고향이 없다.”

“아, 그냥 농담인데…….”

라샤드의 얼굴이 조금 붉게 변한 것은 그때였다. 그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더니 덧붙였다.

“내가 농담은 잘 몰라서. 미안하군.”

엘렌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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