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94화 (94/179)
  • #94

    “내가 바보입니까?”

    거짓.

    “그건 공작님일 겁니다.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짓.

    “너희 지금 질문을 이상하게 쓰고 있지 않아?”

    “질문으로 말하면 안 된다니까요!”

    거짓.

    “다들 정신 차리지 못해욧?!”

    “그럼 이자벨라는 어때?”

    거짓.

    “그 여자는 좋아해?”

    “절대로 아닙니다.”

    진실.

    “오, 진짜다. 불 들어왔다.”

    “당연하죠. 그 여자를 어떻게 좋아합니까? 한 치의 호감도 없습니다.”

    “이자벨라?”

    거짓.

    “그 여자가 누구길래?”

    “아, 그 여자가 누구냐면, 아주 무시무시한…….”

    “무시무시하죠.”

    “다들…….”

    한창 이어지던 수다가 멈췄다.

    돌연 느껴진 음산한 기운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빠르지는 않고 느리게, 점점 긴장에 휩싸이며.

    그리고 그 끝에 있는 세이나는.

    “그만 노닥거려…….”

    진짜 무시무시한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녀가 손끝을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 오웬이 먼저 사죄했다.

    디온은 멋쩍은지 목을 긁었다. 라샤드는 차마 그녀를 보지도 못하고 다시 시선을 내렸다.

    알레데이아는 까르르 웃었다.

    거짓!

    ……이라는 뜻의 붉은 날개를 팔랑이며.

    방금 전했던 말을 “이자벨라가 누구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판정한 것이다.

    세이나의 머리에 있던 클로버가 또 한 잎을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기회는 두 번. 남은 진실은 이제 4개였다.

    “침착해집시다. 우리.”

    그녀의 살벌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오웬이 어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와중에도 계속 세이나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저 딱밤을 또 맞으면 진짜 죽음이다. 그리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이, 이제 장난 안 칠게. 진지하게.”

    “……오웬.”

    “응?”

    “글 쓰는 건 좋아하죠?”

    “응? 그렇지.”

    그러고 오웬은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무심코 뱉은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세이나를 달래려고 무슨 말을 하든 반사적으로 끄덕이고 있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 버렸다.

    알레데이아도 오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의 대답에 따른 판결이 내릴 차례. 그리고 대답은.

    “오, 오? 들어왔다!”

    일곱 번째 구슬의 불이 밝혀졌다.

    그제야 비로소 세이나는 조금이나마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을 깊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단순하게 그냥 좋다, 안 좋다만 생각하는 거죠.”

    “하, 다행이다…….”

    오웬이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도 믿기지 않는지, 정수리를 매만지며 클로버를 확인했다.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해요.”

    “알겠어. 맡겨만 둬.”

    그가 디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머리 위. 마찬가지로 1개의 잎이 남아 있다.

    “도련님을 위한 필승법이 있으니까.”

    “거절합니다.”

    “믿어 줘. 사실 이걸 믿고 놀았던 거야. 남은 진실은 3개지? 이건 무조건 진실이야. 그럼 2개밖에 안 남잖아?”

    무조건 진실이라니. 그런 게 있나?

    세이나는 덩달아 의심스러워 오웬을 보았다. 저렇게 자신하는 것 보면,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하…….”

    디온은 제 눈썹을 매만지고 있었다. 시리도록 새파란 눈이 오웬을 훑었다. 또 한숨이 새어 나왔고.

    “해 보세요.”

    허락이 떨어졌다. 오웬이 신나 하며 디온 쪽으로 몸을 틀었다.

    “디온, 너는…….”

    그러고 이어진 정적이 또, 세이나를 긴장시켰다.

    생각을 깊게 하지 말라고 한 게 불과 30초 전인데. 또 말을 끌고 있다. ‘무조건 진실’이라니. 좀처럼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역시 묻기 전에 의논하자고 해야겠어.’

    그리 생각하며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은 그때였다. 오웬이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이나를 좋아하지?”

    디온은 짧은 침묵 후 답했다.

    “……네.”

    하지만 알레데이아의 판결은 달랐다.

    얇은 날개가 붉은색으로 물들며 마물이 위로 치솟았다. 그것이 가느다란 팔을 교차하여 ‘X’를 만들어, 디온의 앞에 들이밀었다.

    동시의 디온의 머리 위, 클로버가 마지막 잎을 떨구었다. 디온은 다급히 입을 열었고.

    “젠장 또 쓰러…….”

    쿵, 말도 채 완성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기이한 침묵 속, 알레데이아가 한 번 더 날아올랐다.

    그의 작은 손가락이 오웬을 지목했다. 그러나 오웬은 차마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아, 아니야?!”

    “아니었어?”

    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장 당황한 사람은 세이나였다.

    “이러고 쓰러지면 어떡해!”

    * * *

    ‘디온 프라벨은 세이나 로힐을 좋아하지 않는다.’

    느닷없이 나타난 그 문장은 거실에 있는 이들의 머릿속에 많은 의문을 남겼다. 특히, 그 당사자였기에 세이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저 문장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온은 나를, 싫어하나?’

    왜? 왜지?

    나름대로 괜찮은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는 동생을 넘어서, 이제는 친구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오늘 아침도 괜찮았고…….

    “이것도 틀리면 대체 뭐가 진실이란 거야?”

    오웬의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도 전혀 귀에 닿지 않았다.

    왜? 왜 나를 싫어하는 거야? 응? 그런 전조가 있었어?

    “한번 확인하고 했어야지.”

    “각하께서도 방금 당황하지 않으셨습니까.”

    “의외의…… 결과긴 하지.”

    “나는 정말 확신했어요. 돈을 걸 수 있었으면 무조건 걸었습니다. 그, 그리고 진실게임이면 이런 것 하나쯤은 물어야죠! 정석 아닙니까!”

    내가 뭘 실수했나? 잘못했나?

    “어쨌든 계속하지. 아직 3개 남았어.”

    정말 잘 모르겠는데!

    “고, 공작 각하는.”

    ……등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오웬이 질문을 시작하고 있었다. 세이나는 퍼뜩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또 이상한 질문을 했다간 저 뒤통수를!

    “공작을 그만두고 싶다?”

    “아니. 절대.”

    여덟 번째 구슬이 밝혀졌다.

    그를 붙잡으려던 세이나의 손도 툭 떨어졌다. 세 사람에게서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 남은 진실은 둘.

    세이나의 부담감도 한층 줄어들었다.

    “세이나,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질문해도 돼요. 쉬운 거로!”

    “그럼…… 엘렌을 좋아하지?”

    “네!”

    확신에 찬 대답이 아홉 번째 구슬을 밝혔다. 남은 진실은 단 하나. 세이나는 또다시 안도감에 한숨을 쏟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역시 디온은 날 싫어하는 거야?’

    세이나는 슬픈 눈으로 디온을 보았다. 쓰러진 그는 아이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세이나, 일단 생각은 다음에 하고.”

    “네……. 알겠어요.”

    라샤드가 다독이지 않았다면 언제까지고 계속 그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세이나는 한숨과 함께 오웬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신중하게 물어봐야 해.”

    “아, 알고 있어요.”

    “내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또 얼굴에서 고를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도 자랑스럽게 말했으나 결국 거짓이 되었으니. 이제 오웬에게 남은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세이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거쳐 그에 대해 되짚어 보았다.

    “집…… 잘 꾸미셨던데.”

    “마물을 좋아하진 않아.”

    “아니, 마물 말고. 거기 엄청나게 큰 것 하나 있었잖아요. 저택 안에.”

    그녀가 허공에 큰 직사각형을 그렸다. 오웬은 찌푸리고 그걸 바라보다, 곧 떠올렸다는 듯 외쳤다.

    “아, 그거?”

    “네! 그거요!”

    “좋아. 그걸로 가자.”

    “오, 오웬! 오웬은 그럼……!”

    세이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외쳤다.

    “해골을 좋아하죠?!”

    “그림이 아니었어?!”

    쿵. 두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떨어지는 클로버 잎을 보며 세이나는 그만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림이었구나. 해골이 아니라.

    “하, 하하…….”

    그래, 그것도 크긴 하지……. 직사각형이고.

    “하하…….”

    남은 이는 단둘.

    알레데이아의 손가락이 세이나를 가리켰다.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작은 얼굴은 이제 요정이 아니라 저승사자로 보였다.

    ‘조졌다.’

    남은 기회는 넷. 필요한 진실은 단 하나.

    그래도 세이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말솜씨랑 작명 센스만 망한 줄 알았더니. 질문을 고르는 솜씨도 자신은 엉망진창이었다.

    싫어한다. 좋아한다. 틀리다. 맞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알레데이아의 손가락은 세이나를 향해 있었고, 모래시계도 착실히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3분.

    “고, 공작님은…….”

    “급하게 할 필요 없어. 먼저 떠오른 질문을 질문이 아니게 물으면 돼.”

    “고, 공작님은…… 연극을 아주 좋아하시지…….”

    라샤드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막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고오……. 화려한 카펫을 좋아하느은…… 것도 아니고오……. 제일 좋아하시는 과목은 역사…… 도 아니구나…….”

    세이나는 슬쩍 모래시계를 보았다. 어쩐지 좀 전보다 빠르게 가는 것 같다.

    “서재에서도 책보단 검부터 보셨고, 소드 마스터이시고, 그으럼…….”

    라샤드가 끄덕였다. 세이나는 바로 외쳤다.

    “검을 좋아하시는구나!”

    “네.”

    그러나 판결은 거짓이었다. 세이나는 하나 남은 클로버의 잎을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어, 맞을 줄 알았는데.”

    “……검이라고 하자마자 어렸을 때 스승에게 맞았던 기억을 떠올려 버렸어.”

    세이나와 라샤드는 동시에 각자의 이마를 짚었다.

    “마정석!”

    돌연 그녀가 소리쳤다. 라샤드는 지체 없이 물었다.

    “세이나, 너는 이 마정석을 좋아하지?”

    “네!”

    그리고 세이나의 세 번째 잎이 떨어졌다. 알레데이아의 날개도 붉어졌다. 세이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아차.’

    마정석이라고 하자마자 마물에게서 뜯어내던 기억을 떠올려 버렸다. 그 영롱한 빛을 생각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질척거리던 마물의 내장부터 생각하다니.

    “이, 이제 어쩌죠…….”

    “계속해야지.”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 세이나는 떨어지는 모래에서 어렵게 시선을 돌려 라샤드를 마주했다.

    점점 긴장감이 더해졌다. 그녀의 가슴이 방금 뛰어온 사람처럼 크게 오르내렸다.

    “공작님은…… 공작을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하셨죠.”

    “맞아.”

    “공작령을 위해서, 매일 열심히 일하시잖아요.”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결투를 맞이한 장수 같다 생각하며, 세이나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럼 영지를 사랑하시나요?”

    “네.”

    쿵.

    세 번째 도전자가 쓰러졌다.

    “안 돼에!”

    세이나는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큰 몸이 뒤로 쏠리지 않고 그녀의 품 안으로 툭 떨어졌다. 그러나 머리에 있는 클로버까지 지킬 순 없었다.

    ‘뭘 떠올린 거야?! 내가 사전 밑밥까지 깔았잖아!?’

    일이냐? 일이라고 해서 그래? 역시 모범생도 일은 싫은 거야!?

    품 안에 안긴 공작은 미동도 없었다. 이걸 어쩌지, 입술을 깨물던 찰나 알레데이아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이 자신을 지목했다.

    세이나는 엘리엇의 책을 떠올렸다.

    정령사가 없는 정령과 대화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게임 참가자가 단 1명 남았을 때.’

    다음 순간, 알레데이아가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내 가족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세이나와 똑같은 목소리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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