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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87화 (87/179)
  • #87

    셀론 프라벨은 첫 만남에 이렇게 말했다.

    - 마법도, 마도구도 쓰지 못하면서 왜 토벌에 참여한 거지? 이해가 안 되는군.

    첫 토벌. 처음으로 나간 원정이었다.

    - 애초에, 왜 헌터가 된 거야? 마도구도 쓰지 못할 정도면 심한 수준 아닌가?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거야? 아니면, 스릴을 즐기는 편?

    - 난 오러를…….

    - 아아, 들었어. 입문급의 오러라고? 스승이 따로 없는 걸 보면 대단한 자질도 없는 것 같은데.

    가슴을 푹푹 찌르는 묵직한 팩트들은 세이나가 할 말을 잃게 했다.

    그때 그녀는 고작 열일곱이었다. 이제 갓 헌터가 된, 부모와 조부모마저 잃은 외톨이.

    - 왜 헌터가 된 거지? 세이나 로힐.

    그런 그녀에게 8살이나 많은 A급 헌터는 너무나 크고 거대했다.

    - 말해 줘. 정말 궁금해서 그래.

    첫 만남.

    고작 첫 만남에서 셀론 프라벨은 어린 세이나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특유의 표정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란. 한동안 꿈에서도 나올 만큼 끔찍했다.

    결코, 셀론이 세이나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너는, 그냥 자선 사업 같은 거라고.”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셀론의 어조에 세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보니 그때의 셀론과 나이대가 비슷해 보인다.

    그의 언어에는 사회성이라는 게 없었다.

    남에 대한 배려라든가, ‘혹시 이걸 듣고 기분 나빠 하려나?’ 하는 염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그런 생각 따위 조금도 하지 않는 남자가 바로, 셀론 프라벨이었다.

    궁금하면 묻고, 말하고 싶으면 말한다. 그런 그를 세이나는 이렇게 불렀다.

    ‘저, 저 파멸의 주둥아리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어떤 사람은 그가 너무 잘나서 그런 성격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형님은 협회장에, 자신도 A급 헌터다. 순수한 전투 능력만 두고 보면 S급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어서, 귀족들도 그의 눈치를 보곤 했다.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형님도 가끔 느닷없는 팩트 폭력의 상대가 되니 그나마 공평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잘 들어, 디온. 자선 사업. 알고 있지?”

    그리고 그의 조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쌍한 애들에게 봉사도 하고, 돈도 주고. 그런 것 있잖아? 물론 너는 그 아이들보다는 조금 나은 입장이지. 일단, 가문에 이름이 올라갔으니.”

    디온은 사나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의 뒤에 있던 엘렌이 뭐라고 말하려는 듯 앞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디온의 팔이 다시 그녀를 막아섰다.

    셀론은 지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다른 자식들과 같다고 생각해선 안 돼. 양자와 친자식은 근본적으로 달라.”

    “……양자?”

    “그래. 마지막은 안 좋게 끝났지만, 그래도 옛 시절을 함께한 아내에 대한 마지막 배려인 거지.”

    그의 뒤에 있는 두 청년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럼, 그럼, 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도 이제 알 건 알 나이잖아. 진실을 외면해서 좋을 건 없어. 딱히 비참해질 필요도 없어. 은근히 흔해, 이런 일. 요즘 시대에 고아야, 많으니까.”

    비참.

    디온이 입술을 깨문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셀론은 그러든 말든 제 할 말만 했다. 끄덕끄덕. 두 남자가 고개를 움직인다.

    “너는 형님과도, 형수님과도 닮은 구석이 하나 없고.”

    “…….”

    “나나 이자벨라와도 너무 다르지.”

    “…….”

    “솔직히, 너는 형님이 고아원으로 보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해.”

    엘렌은 디온의 옷을 세게 잡았고, 라샤드는 “허.” 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세이나는.

    “생각해 봐. 형님이 널 정말 아들로 인정했다면, 네 어머니가 그렇게 죽는 일도 없었을…….”

    참을성을 잃었다.

    “야! 너!”

    느닷없이 들려온 외침은 복도를 크게 울릴 만큼 거대했다.

    그에 가장 놀란 사람은 셀론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훌륭한 충고가 돌연 뚝,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흠칫한 순간 뭔가가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퍽!

    바닥에 떨어진 구두를 보았을 때, 당황은 배가 되었다. 셀론은 얼떨떨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주먹을 불끈 쥐고 테라스에 올라섰다.

    칠흑 같은 검은 머리카락. 금빛 눈동자.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인은 마치 1마리의 거친 짐승 같았다.

    그녀는 정말 그를 씹어 삼킬 것 같은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셀론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뭐야, 저…….”

    그러나 할 말은 잊지 않았다.

    “귀족처럼 차려입었지만 귀족 같지 않은 여자는?”

    * * *

    이름 모를 남자의 팔을 꺾으며, 세이나는 생각했다.

    ‘오, 이거 생각보다 더 쉬운데? 꿈이라서 그런가?’

    발길질하자 쿵, 남자의 몸이 힘없이 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는 열심히 버둥댔지만 안타깝게도 꿈속의 세이나는 무척이나 강했다.

    다른 1명은 이미 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셀론에게 구두를 던진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감히!”라고 외치며 뛰어든 바로 그 사내였다.

    아마 셀론의 부하거나 그 비슷한 사람이겠지.

    “요즘은 깡패도 연회에 초대를 받나?”

    셀론은 놀라워하며 세이나가 벌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게 자신의 능력을 두고 한 감탄이 아닌, ‘정말 깡패도 연회에 초대를 받는군!’의 의미임을 알기에, 세이나는 헛웃음조차 내지 않고 손을 툭툭 털어 냈다.

    이제 남은 건 셀론 프라벨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게 지금, 아이한테 할 말이야?”

    이 시점의 어린아이, 디온은 있던 자리에서 더 몇 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좀 전보다 훨씬 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셀론과 세이나를 번갈아 보고 있다.

    옆에는 아직 엘렌을 끼고 있었다.

    세이나는 그가 여차하면 그녀를 끌고 도망갈 생각임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말한 건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12살이면 이미 알건 다 아는 나이지.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눈치 보는 것보단 뭐라도 아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 자식이, 말이면 다인 줄……!”

    “이 구두를 던진 건 당신인가?”

    셀론의 손안에서 은색 구두가 반짝 빛났다.

    저 반반한 뒤통수를 후리고는 싶고, 거리는 너무 멀어서 한 선택이었다.

    충동적으로 했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인 듯했다. 셀론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나는 널 오늘 처음 보는데. 그럼 우리 가문과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끼어든 거지?”

    “그건…….”

    “이런 불쾌한 방식으로.”

    그 말에 세이나는 하마터면 크게 미소 지을 뻔했다.

    셀론은 남의 복장을 뒤집어 놓는 놈으로 유명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이로도 유명하기도 했다.

    남이 욕을 해도 진지하게 생각하다 ‘음, 사실이군.’ 하는 식으로 인정해 버려서 욕한 사람을 더 화나게 하곤 했다.

    그런 녀석이 불쾌감이라니. 이거 기분 꽤 좋은데?

    “크흠.”

    무심코 올라가던 입꼬리는 뒤에서 들리는 헛기침에 그대로 멎어 버렸다.

    라샤드는 아직도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분주하게 손짓했다.

    빨리 나와.

    세이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거 꿈이었지.’

    셀론이 너무 현실과 똑같아서, 성격대로 손이 먼저 튀어 나가 버렸다. 오웬의 말이 돌연 그녀의 머릿속을 울렸다.

    부자연스러움이나 위화감을 일으키는. 부자연스러움이나 위화감……. 부자연스러움……. 위화감…….

    그때, 셀론의 말이 선고처럼 떨어졌다.

    “이상한 사람이군.”

    세이나는 또 이렇게 속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웬, 아직 미치지 않았죠?

    “사과해.”

    셀론은 아직 그녀의 구두를 들고 있었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어 주지 않겠다는 듯, 구두의 양옆이 접히며 손아귀에 힘줄이 솟아났다.

    “사과하면, 없던 일로 생각하고 넘어가 주지.”

    “사과?”

    세이나는 또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이번에는 너무 기가 차서였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은퇴하게 된 동료를 두고 ‘딱히 아까워할 재능은 아니었어. 더 맞는 일을 찾아봐.’라고 말했던 그가, 지금 그녀에게 사과를 종용하고 있었다.

    세이나가 싸늘하게 말했다.

    “사과라면 네가 해야지.”

    “내가? 누구에게?”

    “……저 아이에게.”

    “왜?”

    슬쩍 기울어진 고개가 보기 싫어 세이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래, 이렇게 말해서 들을 놈이었으면 예전에 다 고쳐졌겠지.

    “아니다. 됐다. 시킨 내가 바보다.”

    통쾌한 사이다도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나 유효한 법이다. 허탈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뒤에서도 후우, 한숨이 들려왔다.

    셀론과의 말싸움을 포기한 세이나를 보며 라샤드가 안도하는 소리였다. 점점 양심이 아파졌기에, 세이나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아, 셀론 프라벨을 합법적으로 팰 기회는 흔치 않은데.’

    아쉬움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힘겹게 앞으로 떼는데, 비어 있는 한쪽 발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세이나는 다시 돌아섰다.

    “내놔.”

    바로 앞까지 팔을 쭉 뻗어 보였지만, 셀론은 되레 신발을 등 뒤로 숨겨 버렸다. 세이나는 코웃음을 쳤다.

    “사과를 받아야겠는데.”

    “뭐? 넌 맞아도 싼 놈이야, 알아? 더 성질 건들지 말고 그거 두고 꺼…….”

    그때였다.

    “세이나!”

    “물러서!”

    갑작스레 울려 퍼진 두 종류의 외침에 세이나의 시선이 재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줄곧 기둥 뒤에 있던 라샤드가 일어서려는 남자를 제압하는 장면이 처음. 두 번째는…….

    디온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사내였다.

    “다가오면 이 녀석을 떨어트리겠어!”

    그리고 세 번째는.

    열심히 버둥대며 허공을 걷어차고 있는 작은 발이었다.

    “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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