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81화 (81/179)
  • #81

    10. 꿈에 밟히다

    엘리엇 라프만.

    최초의 마물 ‘도감’을 완성한 3인의 공동 저자 중 1명.

    ‘마물에 미친 자’라는 평가처럼 그는 일평생을 마물 연구에만 쏟았으며, 마물에 등급의 개념을 제시한 사람. 그리고 스스로 마물의 함정 안으로 걸어 들어가,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한 괴짜.

    오늘만 사는 도전자를 위한 정신계 마물 연구서.

    ‘아마, 그런 제목이었지.’

    몇 주 전 도서관에서 읽은 표지를 회상하며 세이나는 오웬을 계속 주시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랑 그 사람이랑.

    “제 고조부이십니다.”

    “그, 그럼 엘리엇도 마물이었나요?”

    그러고 그녀는 손날을 세워 제 얼굴 사이에 세웠다.

    양손을 기준점에 두고 나누어진 금색 눈이 빠르게 깜빡인다. 그녀가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반만?

    “세이나가 긴 이야기를 싫어하니 최대한 간추리겠습니다. 엘리엇 라프만…… 그보다 더 윗세대에도 ‘라프만’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가문이 아닌 산악 부족을 일컫는 말이었죠.”

    오웬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마치 자신과 관계없는, 전혀 남이라는 듯.

    “마족이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이 땅에는 기이한 변화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돌연 나타난 거인들도 그중 하나였죠.”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 같았던 그를 기억하고 있기에, 세이나에게는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상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서.

    “거인과의 전투에서 일족이 전멸되기 직전, 한 마족이 찾아왔습니다. 거인을 무너뜨릴 힘을 주는 대신 복종하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마법인가요?”

    “거인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정신을 파괴하는 힘이었습니다.”

    라샤드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저는 이걸 ‘꿈 먹기’라고 합니다.”

    세이나는 그 힘이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일족은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머리 색이 이렇게 되었죠. 보통의 붉은 머리랑은 다르죠?”

    확실히. 지금껏 붉은 머리는 꽤 보았지만, 오웬은 남달랐다.

    더 강렬한,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색.

    “그래서 엘리엇이 그렇게 자신 있게 마물에게 몸을 던진 거군요.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네. 우리는 마물의 정신에도 관여할 수 있습니다. 조종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죠.”

    세이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좀 남다르긴 했지.’

    제 몸을 살피지 않는 머저리라고 생각했는데. 엘리엇 라프만의 과감한 여정은 이런 특별한 힘 덕분에 가능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작용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부작용?”

    “이 힘은 시전자의 정신도 파괴합니다.”

    오웬이 자신의 이마 옆을 가리켰다.

    “비유하자면 우리의 정신을 흰 천, 상대의 정신을 염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단단히 준비해도 상대의 의식이 내 정신에 묻게 됩니다.”

    흰 천은 어느 색으로나 물들 수 있다.

    비록 끝자락이 조금만 물들더라도, 그걸 두고 ‘그대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너 혹시, 성국을 돕는 이유가…….”

    “지금부터 디온 프라벨의 꿈 안에 들어갈 겁니다.”

    라샤드의 말허리를 끊고서, 오웬이 손을 내렸다.

    그는 묘한 시선을 라샤드에게 보내고는, 이어서 세이나를 보았다.

    “말한 대로, 저는 통로 역할입니다. 저는 도련님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들어가는 사람은 세이나. 괜찮습니까?”

    “저요?”

    “모쪼록 대상이 호의를 가진 사람이 좋습니다. 그래야 공격받지 않아요.”

    “윽, 공격이요?”

    “네. 말하자면……. 꿈속에 들어가면, 제 힘이 세이나의 정신을 보호하는 결계를 만듭니다. 공격당하면 그 결계가 파괴되고, 세이나는 돌아오는 길을 못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길을 못 찾게 된다는 건 저도 깨어나지 못한다는 건가요?”

    그러자 오웬이 싱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하다는 표정이었다.

    “부자연스러움이나 위화감을 일으키는, 그러니까 눈에 띄는 짓만 삼가면 안전합니다.”

    “들어가서, 디온을 깨우는 거죠? 어떻게?”

    “때리면 됩니다. 아주 세게.”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이나는 자신을 보는 오웬의 눈에서 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주 강한 충격. 당장 몇 시간 전, 그녀가 꿈에서 겪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오웬이 직접 본 것이기도 했다. 트럭에 치이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잊지 않았구나.’

    세이나는 가까스로 다시 입을 뗐다.

    “알겠어요.”

    “세이나.”

    “믿을게요.”

    라샤드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세이나는 다시 디온을 돌아보았다. 옆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데, 미동 한번 없었다.

    정말 죽어 있는 것 같다.

    그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쓰러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 것이다. 좀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세이나가 말했다.

    “이대로 계속 재워 둘 순 없어요.”

    오웬은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디온의 몸이 반듯하게 눕혀졌다. 그 옆에는 세이나가, 그들의 머리맡에는 오웬이 자리를 잡았다.

    라샤드는 세이나의 옆에 있었다. 오웬이 디온의 손을 잡고, 반대쪽 손을 세이나에게 내밀었다.

    세이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그를 잡았다. 아주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통로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이어져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오셔야 합니다.”

    오웬이 세이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제가 미치기 전에.”

    꿀꺽. 세이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뒤늦은 긴장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들어가도록 하죠. 시간을 끌었다간 꿈이 더 복잡해질 겁니다. 잠든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기억을 기본 토대로 꿈이 구성되고 있을 거예요.”

    “네. 준비됐어요.”

    세이나는 상체를 바닥으로 갖다 대었다. 낯선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느리게 눈을 굴리니 디온과 오웬, 그리고 라샤드가 스쳐 지나갔다.

    “다녀올게요.”

    마지막에 보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해 주고, 세이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런데 말이지.

    ‘이다음부턴 어떻게 해야 하지?’

    사방이 캄캄하기만 했다. 당연하다. 눈을 감고 있으니까. 푹신한 카펫의 촉감도, 서늘한 공기도 아직 잘 느껴진다.

    ‘이대로 나도 자면 되나?’

    그런데 도무지 졸리지 않았다.

    당장 몇 시간 전에도 꿈속에서 헤매지 않았던가. 뒤이어 또 꿈이라니.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거기다 전생의 꿈일 줄은.

    ‘한 번도 그런 꿈은 못 꿨는데.’

    전생을 자각한 것도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삭막한 사무실은 답답했지만, 묘하게 반갑기도 했다.

    꿈을 꿀 때는 ‘이쪽이 현실인가?’ 고민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람들의 생김새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고양이도…… 이상했고.’

    젠장, 소원을 말하라고 할 때 물어볼 걸 그랬나. 하지만 그 얄미운 고양이는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오웬이랑 의논도 해 봐야겠는데.’

    이 능력도 그렇고. 완전히 낯선 풍경에도 침착한 것이, 그는 꿈에 관해 꽤 전문가 같았다.

    세이나는 디온을 깨운 뒤에 그와 같이 꿈에 대해 논의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세르본 부인에 대해서도…….

    ‘그냥 지금 눈을 떠서 다 논의한 후에 디온을 깨우러 갈까? 꿈 내용을 잊어버리기 전에?’

    일어난 뒤에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 꿈이지 않은가. 더 늦어지기 전에 먼저 다시 그 꿈을 되짚어 봐야겠다.

    그리 다짐한 순간이었다.

    ‘어?’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꺼풀에 접착제를 딱 발라 놓은 느낌이다. 세이나는 손을 들어 눈을 만져 보려고 했지만,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 내가 손을 움직이려고 했어?’

    손이 뭐였더라? 발은? 눈꺼풀은? 머리는 어디에 있지? 사고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게 뭐지? 어떻게 하는 거더라? 숨 쉬는 건? 냄새는? 어,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는 어디지?

    사방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고 있다. 지독한 어지러움. 그래, 이건…… 멀미와 비슷하다.

    ‘멀미가 뭐더라?’

    그 와중에 신음이 나온 건 거의 기적이었다.

    “윽.”

    “세이나?”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던 라샤드는 저도 모르게 세이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물으려고 했다 ‘괜찮은 것 맞아!?’

    하지만 그녀를 붙잡은 순간부터, 돌연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라샤드는 끔찍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풀썩, 라샤드가 쓰러졌다.

    오웬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

    세이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다’까지 생각하는 데에는 꽤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일단 ‘나’를 알아야 했고, 다음에는 ‘숨’부터 쉬어야 했다. 그러면 ‘숨’이 무엇이냐, 그건…….

    어쨌든 그녀는 노력했고 마침내 깨달을 수 있었다.

    세이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또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누군가를.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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