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75화 (75/179)

#75

점술가는 어제와 달리 화려한 복장이었다.

와인빛 드레스에 진주 목걸이, 귀에는 큰 에메랄드가 반짝이고 있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점술가’는 없고, 완벽한 ‘세르본 부인’이 올라왔다.

그녀는 아주 우아하게 인사한 후 환영 인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이나는 모두 듣지 않고 있었다.

“어디예요?”

“구석. 5시 방향.”

여전히 손은 맞잡고 있었으나,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힐끗 뒤를 살폈다. 5시 방향.

키 큰 여자가 서 있었다. 어제 현관에서 그녀와 엘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자였다.

“들켰을까요?”

“그럼 세르본 부인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쫓아냈을 겁니다.”

“제 연기가 부자연스러웠던 탓이겠네요.”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 오웬이 손등에 입 맞춘 후에 시선을 거두었으리라. 세이나는 추측했다.

그녀는 지금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어둠에 잠겨 옷도 검은색이었다. 오웬이나 세이나처럼 예민한 자가 아니었으면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감시하는 걸까요?”

“네. 무슨 이유에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그런 분위기였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맞춰 세이나도 앞을 보았다.

세르본 부인은 여전히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뒤에는 검은 천이 내려와 있다. 지금 당장, 저기서 마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혹은 마족이나.

“후, 좋아요. 제대로 해 보죠.”

세이나는 의자를 움직여 오웬의 옆으로 다가가 붙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오웬이 놀라 눈을 깜빡였다.

“네?”

“제대로 하자고요.”

어깨가 닿고, 그녀의 팔꿈치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세이나가 다시 오웬의 손을 맞잡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또 뭘 할까요?”

이번엔 오웬이 굳어 버렸다. 그의 회색 눈이 맞잡은 손과, 세이나를 번갈아 봤다.

그녀는 아주 의욕적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건 다정한 게 아니라…….

이제 준비가 됐으니 같이 맞서 싸우자는 표정이다.

“왜요?”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풉, 아니, 아니에요.”

“……나도 노력하고 있어요.”

“네, 느껴지네요.”

아주 뜨겁게.

그녀의 손바닥 안에는 열기로 가득했다.

오웬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손을 움직였다. 부드러운 살결이 손끝을 쓸었고, 이윽고 두 손이 깍지를 꼈다.

훨씬 자세가 편해졌다. 그제야, 세이나는 앞을 볼 수 있었다.

세르본 부인이 말했다.

“……그리하여 오늘, 새로운 ‘축복’을 여러분께 선보이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톤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 확신이 가득한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시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부인의 손짓에 따라 어떤 여자가 상자를 들고 무대 위로 올랐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반지였다. 세르본 부인의 손이 닿자마자 반지의 보석이 영롱한 빛을 뿜었다. 이어서 그녀가 상자 안에서 단검을 집어 들었고.

상자를 든 여자의 팔을 그었다.

붉은 피. 꽤 큰 상처임에도, 여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누군가 터트린 탄식이 긴장된 공기 속으로 퍼졌다.

세르본 부인은 무심한 얼굴로 반지를 낀 손을 그 위에 얹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을 땐.

상처가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어?”

“어떻게……?”

눈의 착각은 아니었다. 여자의 발치에는 아직 붉은 피가 남아 있었으니. 그러나 그녀의 팔은 깨끗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제가 찾은 새로운 힘은 바로 이것입니다.”

“설마, 그 반지가……?”

“네. 치유력입니다.”

세르본 부인이 미소 지었다.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세상에!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면 세이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팔에 손을 얹자마자.

‘검은 연기가 있었어.’

분명 그레타의 어깨에서 봤던 그것이었다.

“봤어요? 방금…….”

그러나 오웬을 돌아보았을 땐, 그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웬은 멍하니 세르본 부인만 보고 있었다. 입을 살짝 열고, 초점 없는 눈으로.

“오웬?”

잡고 있는 손을 들자 스르륵 그의 손이 힘없이 빠져나왔다. 그는 완전히 넋을 놓은 사람 같았다. 세이나는 본격적으로 그를 흔들었다.

“오웬!”

그 무렵 세르본 부인의 인도에 따라 단상 위에 어떤 손님이 올라섰다.

그가 팔에 감긴 붕대를 풀자 붉은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세르본 부인은 뜻밖에도 그에게 반지를 벗어서 건네주었다.

“직접 해 보셔도 됩니다.”

“제가요?”

그리고 남자의 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남자는 잠시 주춤거렸으나 그녀가 했던 것처럼 상처를 쓸어내렸다.

조금 후 거짓말처럼 상처가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세상에!”

세이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검은 연기야.’

남자의 손에서 피어올라, 방금 그의 팔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뱀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녀처럼 알아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깨끗하게 나아서 다행이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뒤이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났다. 저도요! 저도 봐 주세요!

한창 아우성이 이어지는 도중,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들고 있는 상자들을 보고 사람들의 표정에 흥분이 섞이기 시작했다. 각 테이블에 상자들이 전달되었다.

무대 위와 똑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손님들이 반지를 끼고, 자신의 상처를 쓸었고.

‘마법인가?’

검은 연기가 그들에게로 스며들었다.

‘저 여자 것은 아닌데.’

평생 마법사들을 부러워하며, 옆에서 그들을 관찰했기에 알 수 있었다.

검은 연기는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마력과는 달랐다. 그보다 더 괴상하고, 흉측하기까지 하다. 치솟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세이나는 오웬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이분도.”

바로 등 뒤에서.

“봐 주시겠어요? 선생님.”

* * *

떨리는 눈으로 바라본 뒤에는 키가 큰 여자가 서 있었다.

하얀 얼굴. 새까만 머리카락. 오싹한 분위기. 어제 현관에서 마주친, 그리고 조금 전까지 구석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바로 그 사람.

‘전혀 못 알아차렸어.’

돌연 찾아온 인기척에 소름이 쫙 끼쳤다. 헌터들은 무척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그런데 눈치채지 못했다.

언제부터 있었지?

그리 묻기도 전에, 오웬이 일어섰다.

“오웬?”

그리고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세이나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저도 모르게 돌아본 뒤에는 낡은 의자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여자는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그걸 확인했을 때, 오웬은 벌써 무대 위에 오른 후였다. 갑자기 등장한 정체 모를 인물에게 수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이는 세르본 부인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오웬은 인형처럼 미동도 없었다. 세르본 부인은 그를 지켜보다, 느닷없이 한쪽 구석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창문도 빛도 없는, 그저 검은 그림자만 있는 공간.

그러나 마치 누군가에게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세르본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코앞에 선 후에도 오웬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다는 뜻이겠죠.”

“소원…….”

“네, 소원.”

혼이라도 나간 듯 생기 없는 얼굴을 마주 보며 세르본 부인이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소원을 이뤄드리죠.”

그리고 그녀가 그대로 턱선을 쓸어내려도 오웬은 묵묵히 손길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저와 계약하면,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계약을 원하시나요?”

하지만 그리 물었을 땐 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초점이 나간 회색 눈동자에 일순 기묘한 광채가 스쳤다. 부인은 여전히 그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입이 느리게 열렸고, 이윽고 목소리가 나오려던 찰나…….

“아니요!”

세이나는 힘껏 소리쳤다.

“절대로 안 돼요!”

그땐 반지에 정신이 팔려있던 다른 손님들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씩씩거리며 올라간 세이나는 거침없이 오웬을 잡아당겨 세르본 부인에게서 떨어트렸다.

세르본 부인은 상당히 놀란 듯했으나 곧 세이나의 손목에 있는 팔찌를 발견하고는 크게 뜬 눈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잊으셨나 본데, 계약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필요 없어요!”

세르본 부인은 다시 충격받았다. 세이나는 그녀의 반응을 모두 놓치지 않았다.

팔찌를 향한 시선은, 고객임을 확인한 것. 다행히 바로 위장이 들키진 않았다.

이제 무사히 나가기 위해서 변명해야 할 차례.

“계약하지 않아도 돼요! 우린, 어! 우린 너무 사이가 좋으니까! 너무 좋아서 과하다 싶을 정도니까요!”

“……네?”

“선생님이 도와주신 대로! 아주 잘 지내요! 무탈하게! 그러니 더 안 봐주셔도 돼요!”

“그게 무슨…….”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세이나는 고개를 까딱한 후 바로 오웬을 잡아끌고 무대를 내려갔다.

의아함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방을 가로지르고, 들어올 때 미리 봐 둔 출구로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오웬이 무대에 오른 순간이 반복되고 있었다. 세르본 부인은 홀로 무대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분명 뱀이었어.’

장막 뒤에서 흘러나온 긴 그림자는 부인을 거쳐, 오웬의 발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직전.

그녀가 잡아당긴 것이다.

‘뭐지? 마물은 아니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일반적인 뱀이었다. 하지만 그녀 외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세이나는 점술가와의 첫 대면에서 발치에서 느껴진 위화감을 떠올렸다.

그때도 뱀이 있었던 걸까. 그 뱀으로 무엇을 할 속셈이지? 대체 점술가의 정체는…….

“세이나!”

그러던 중 몸이 뒤로 홱 기울었다.

세이나는 어느새 자신이 완전히 저택을 벗어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계속, 오웬의 손을 잡고 끌었던 것도.

반사적으로 뒤로 돌자 당황한 오웬이 보였다. 세이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왜 그걸 멍하니 당하고만 있어요!”

“네?”

“계약하려고 했어요! 기억 안 나요?! 헬트레일이 있을 거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향기에 약하면 들어가기 전에 미리 준비했었어야죠!”

“그 말은 제가…….”

“네! 홀렸어요! 완전히!”

설명을 들은 후에도 오웬은 바보같이 멍한 표정이었다.

“그럴 리가.”

다시 그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더 보기 싫어 외면하려는 순간, 오웬이 말했다.

“그럼 왜 세이나는 멀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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