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72화 (72/179)

#72

“마음에 드는…… 분이 있으신가 보군요?”

“네? 아, 네. 네.”

일단 연애 문제로 상담하러 왔다고 했으니 이렇게 말해야겠지. 세이나는 생각했다.

“그분은 그리고……. 부모님이 소개해 주셨군요?”

하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세이나가 고개를 젓자 점술가가 또 엘렌을 쳐다봤다. 그쪽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한 순간 돌연 발목에서 서늘한 느낌이 느껴졌다. 세이나는 살짝 몸을 기울여 발 부근에서 손을 휙휙 저었다.

창문이 열려 있나?

“지금 뭘 하는 거죠?”

점술가가 날카롭게 눈을 치켜떴다. 마치 새로운 가면을 갈아 끼운 듯 점술가의 인상이 싹 바뀌었다.

험악한 기세에 옆의 엘렌이 흠칫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반면 세이나는 태연했다.

“네? 조금 추워서요.”

“집중해 주세요.”

“아, 네……. 미안합니다.”

그런데 몸을 일으킨 후에도 발치의 위화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세이나는 보이지 않게 발만 조금씩 뒤로 빼냈다. 그러다가 확.

뭔가를 밟는 듯한 촉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계세요!”

“예, 예!?”

“정신 사납잖아요!”

좁은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이었다. 덕분에 세이나는 물론, 엘렌도 동시에 얼어붙었다. 여자가 다시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좀, 가만히……. 가만히.”

어차피 따라오기 위해서 둘러댄 거짓말. 뭘 해도 그렇다 하고 대충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점술가는 결국 카드를 고르지 못하고 다시 섞었다. 그리고 그레타와 시선을 교환했다.

벌써 세 번째.

‘이거 어째 느낌이…….’

딱 사기꾼들 같은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아니, 당장 당신도 읽히지 않는군요. 그쪽. 정말 점괘가 궁금해서 온 사람이 맞나요?”

꽤 정확한 지적이라 세이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점술가는 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날 시험하러 온 건가요?”

그레타가 벌떡 일어난 건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잘못 데리고 왔어요!”

“나가요! 어서!”

그녀는 뭐라 대답할 틈조차 주지 않고 세이나와 엘렌을 밖으로 잡아끌었다. 세이나는 얼결에 일단 끌려 나왔다. 엘렌도 당황한 눈치였다.

“무서운 사람이네요.”

“그러게요.”

그레타는 다시 안으로 돌아갔다.

장막 너머로 죄송하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인데, 점술가는 괜찮다고 한마디 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너무 오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는데. 저렇게 무례한 사람일 줄은…….”

겪을수록 이상한 집이다. 목소리가 잠잠해진 것은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세이나는 조심스레 장막을 들췄다. 엘렌도 그녀의 옆에 붙었다.

“대체 뭘까요?”

‘사기꾼 맞는 것 같은데.’

충성스러운 고객의 친구를 끌어들이는 수법. 흔하지 않은가. 그레타가 사전에 엘렌의 정보를 줬을지도 모른다.

점술가가 카드를 섞기 시작하자, 그레타가 그 앞에 얌전히 앉았다.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일 그 사람과 연극을 보기로 했는데, A열이 좋을까요, B열이 좋을까요? 아, 좌석 번호는 몇 번으로 할까요?”

‘진짜 별걸 다 묻는다.’

뜻밖에도 점술가는 바로 카드를 뽑아 주었다.

대답도 깔끔했다. “B열이 좋겠네요.” 쟤는 저렇게 쉬우면서 왜 자신에게만 신경질적이란 말인가?

그레타가 테이블 위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또, 팔찌에 흠집이 난 것 같아서요. 칠이 벗겨졌어요.”

“그렇네요.”

중요한 물건이라고 붕대 위에도 꼭 하고 다니던 그것이었다. 소중히 여기기에 빵집이 준 줄 알았더니.

점술가의 손길이 붕대 위에 닿았고, 아픈지 그레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세이나는 또 서늘함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창문이…… 없는데?’

밖에서 봐서 좁은 방이 더 한눈에 잘 보였다. 사방을 채운 음산한 검은 천들은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방금, 이렇게 또 바람을 느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손이 한 번 더 제 발목을 쓸었다.

점술가의 뒤, 움직이는 것이 보인 건 그때였다.

길고 검은 형상, 그리고 제법 크기도 크다. 점술가의 머리를 지나 천장에 닿을 듯 커지더니 이윽고.

뚝.

뭔가 떨어졌다.

정확히 그레타의 팔찌 위로.

“자, 괜찮아졌죠?”

“와! 정말이네요!”

그때까지도 검은 것은 남아 있었다. 올라올 때처럼 스르륵 물러나더니, 다시 점술가의 뒤로 숨어들었다.

세이나는 그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바닥.

바로 세이나가 앉아 있던 곳까지.

“저, 그분과 계속 함께 있을 수 있겠죠?”

“네.”

점술가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녀가 입꼬리를 길게 위로 죽 찢으며 말했다.

“계약 내용이 그거였잖아요.”

마치 뱀 같은 얼굴이었다.

* * *

“래이시 세르본 남작 부인.”

라샤드는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집의 현 주인으로 되어 있더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세이나는 점술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았다. 평소 같으면 며칠은 고생했겠지만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바로 결론이 내려졌다. 권력 만세.

“남편과는 10년 전에 사별. 열여덟이 되자마자 결혼한 모양이다. 둘 다 마탑 소속이었고.”

“마탑이요?”

“그래. 마법사야. 10년 전에 제명당했지.”

“왜……?”

“비윤리적인 실험을 했다는군. 내용도…… 아론이 조사해 주긴 했지만, 알려 주진 않더군. 모르는 편이 좋을 겁니다, 라고 했어.”

“꽤 살벌한 실험이었나 봐요. 제명당할 정도면.”

마탑은 소속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한다. 너무 감싸서, 가끔 신전 혹은 황실과도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그런 마탑이 쫓아냈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라 할 수 있다. 제명당한 마법사는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도록 마력에 제약이 걸린다.

세이나는 혀를 찼다.

‘좋은 사람은 개뿔.’

돌아오는 내내 그레타에게 잔소리를 들어 아직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선생님을 거슬러서는 안 돼요! 선생님은 항상 옳으세요! 선생님은…….

“그것은?”

“네. 마물이 맞았어요.”

바로 그 선생님을, 세이나는 의심하고 있었다.

“헬트레일. B급 정신계 마물이죠.”

이번에도.

“보통은 습지에서 생활해요. 달콤한 향을 풍겨 사냥감을 유인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목을 물어뜯죠. 이빨에는 맹독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뱀처럼 생겼지만 피부가 검고 비늘의 무늬가 독특해요. 보호색이 있어서 잘 안 보이고.”

“확실해?”

“네. 쓰임새가 비슷해요.”

그녀가 앞에 펼쳐 놓은 책을 가리켰다.

“수도 밖에서 헬트레일은 보통 지저분한 일에 쓰여요.”

“지저분한?”

“헬트레일의 향은 진정제 효과가 있어요. 술을 마신 것처럼 정신이 멍해지고, 몸이 나른해지죠. 의존성과 중독성도 있고.”

“환락가에서 손님을 유인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오웬이 덧붙이자 라샤드가 이해한 듯 끄덕였다.

“그레타가 그 점술가를 맹목적으로 따르더군요. 사이비 교도 같았다니까요.”

“엘렌은 성녀라서 통하지 않았고, 세이나는 헌터라서 바로 예민하게 알아차렸나 보군요.”

“네. 하지만 헬트레일은 딱히 ‘저주’를 내리는 종류는 아니에요. 그냥 현혹하는 거죠.”

그럼 그레타의 어깨에 들러붙어 있던 검은 마력은 남작 부인의 마법인 걸까? 엘렌의 미래를 읽은 것도?

마음에 걸리는 건 또 있었다.

“계약, 이라고 했어요.”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이나가 오웬을 돌아보았다.

“혹시 마족일까요?”

“남작 부인이?”

“그건 아닐 거야.”

확답은 라샤드에게서 나왔다.

“내가 본 마족은 괴물 같은 형태였어. 앙상하게 마른 몸에 비정상적으로 긴 팔이 여러 개 등 뒤에 달려 있더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이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설명을 이어 갔다.

“사람 같은 얼굴도 아니었어. 화장하거나, 가발을 쓰는 것 정도로 숨기긴 어려워.”

“마족이었다면 엘렌이 집에 왔을 때 바로 가뒀겠죠.”

그럼 그냥 마법인 걸까.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디온에게로 향했다. 모인 이들 중 가장 마법을 잘 아는 이는 오늘도 영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엘렌이 무사하면 되지 않습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 있을까요.”

가끔 저렇게 협조 안 할 때마다 엄청 얄미워 보인다니까. 세이나가 째려보자 그가 피식 웃었다.

전혀 위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가 창가에서 물러났다. 엘렌은 이제 가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점술가가 엘렌에게 집착한 걸까.

고민하며 창밖을 주시하는데, 돌연 뭔가가 목 부근을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본 등 뒤에는 디온이 지나가고 있었다.

“뭐 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그는 웃으며 말한 후 세이나의 양쪽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엘렌을 잘 부탁드려요.”

떠나는 뒷모습은 어쩐지 개운해 보였다. 탁.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오웬이 입을 열었다.

“세이나. 저 녀석 말입니다.”

“네?”

“혹시…….”

꽃집의 문이 벌컥 열린 것은 그때였다.

어서 오세요, 그 일상적인 환영이 나오지 않자 세이나는 물론, 두 사람의 시선이 곧장 창문 밖으로 향했다. 엘렌은 화분을 든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빠르게 꽃집을 가로지른 이는 세이나도 아는 동네 주민이었다.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큰일이야, 엘렌! 그레타가……!”

쨍그랑! 화분이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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