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64화 (64/179)
  • #64

    오웬은 남주인공 후보다.

    갱신을 마친 뒤 탐지 부서가 있는 층으로 향하면서 세이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그 문장을 외었다.

    그러니 나중에 뒤통수치는 일은 없지 않을까.

    다소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오늘도 미안합니다. 앤디 로스웰 씨.’

    당신의 무사 출장을 빕니다.

    하나 변명을 하자면, 세이나는 아직 바로 그 ‘앤드 로스웰’ 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를 만나면 몰래 주머니에 넣어 주려고 했는데.

    그리고 그녀는 오늘도 앤디 로스웰 씨를 만나지 못했고, 탐지 부서를 방문할 일이 또 생겨 버렸다.

    ……타이밍도 좋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이에게 오늘도 한 번의 사과를 적립하고서 세이나는 조심스럽게 탐지 부서의 방으로 향했다.

    아직 이름표가 달린 열쇠는 매끄럽게 문구멍에 들어갔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고풍스러운 나무문이 열렸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웬은 고요한 사무실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나아갔다. 반면 세이나는 주의 깊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책장 사이도 살피고, 혹시나 해 책상들 아래도 모두 점검했다.

    “세이나, 이것 좀 보세요.”

    그가 점령하고 있는 곳은 언젠가 디온이 앉았던 바로 그 책상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서류는 물론, 서랍 안에 있는 것들까지 낱낱이 파헤친 듯했다.

    그러나 오웬이 들고 있는 것은 가장 특색 없는 서류였다.

    내용도 간단했다.

    이상 없음.

    “수도 내부의 동향을 감시한 결과일 겁니다.”

    “정말 마법사들이 모르는 걸까요?”

    “처음 집 근처에서 마물이 나타난 게 언제라고 하셨죠?”

    두 사람은 가장 아래에 있는 서랍장에서 비슷한 종이들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이상 없음.

    날짜가 바뀌고, 한 달을 거슬러 올라도, 1년 전체를 돌이켜도 내용은 같았다.

    어디에도 수도에 마물이 나타났다는 기록은 없었다.

    의아함에 뚫어져라 종이만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오웬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이제 말없이 옆에 있는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책장이었다. 얇은 책 몇 권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식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오웬?”

    그가 책장 위에 손을 올렸다. 마치 청소를 검사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슥 그 위를 한 번 닦아내고는, 다른 곳에도 모두 손을 올려 보았다.

    그 후에는 책장의 옆면도 모두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바닥에 난 거친 흔적들을 발견한 그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네요.”

    “네?”

    그와 동시에, 책장이 움직였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오웬이 책장의 옆면에 힘을 주자 스르륵, 책장이 부드럽게 밀려나 버렸다. 꽁꽁 언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비누칠한 바닥 위를 구르듯, 아주 매끈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둠에 잠긴 새로운 방이 나타났다.

    “제 친구가 그러길, 탐지 부서에는 마물을 포착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마도구가 있다더군요.”

    “와, 어떻게 찾았어요?”

    “제 전문이니까요. 유적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치들이죠. 그리고…….”

    오웬이 품 안에서 작은 마정석을 꺼내 들었다. 그걸 가볍게 벽에 부딪히자 안에 오렌지빛 불이 생겨났다.

    그가 방 안으로 마정석을 던졌다.

    툭. 투툭. 툭.

    소리가 멎었다. 안은 고요했다.

    “방범 마법은 따로 없어 보이네요.”

    세이나는 오웬을 따라 방 안으로 조심스레 걸어 들어갔다.

    창문 하나 없는 구조였지만, 먼저 들어간 마정석 덕분에 발을 헛디디는 일은 없었다.

    내부는 연구실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선반들이 그 위에는 온갖 것들이 빽빽하게 놓여 있다. 말린 종이, 책, 유리병들과 단지들, 금속으로 만들어진 정체불명의 도구들도 보인다.

    방의 가운데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세이나는 그 앞에 있는 커다란 구슬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전 본 것 중 가장 거대한 구슬이었다. 내부에 사람 하나가 들어가 있어도, 아니 황소 한 마리가 들어가도 될 만한 크기다.

    그 크기 탓인지 그것은 마치 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주변에서 느껴지는 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구슬의 주변에는 또 다른 구슬들이 놓여 있었다.

    차마 개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커다란 구슬에서 뻗어 나온 긴 선들이, 각기 다른 구슬들로 연결되는 식의 구조다.

    구슬과 선이 닿는 이음새는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모습은 마치…….

    “문어?”

    푸흡, 옆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웬과 눈이 마주친 세이나는 멋쩍음을 느끼며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오웬은 문어의 촉수…… 아니, 선들을 따라 점점 마도구의 중심으로 다가갔다. 그의 큰 손이 문어의 머리-얼굴인가?-를 매만지자 그 표면에 은은한 빛이 생겨났다.

    “마도구 맞죠?”

    “네, 맞습니다. 다행히 본 적이 있는 물건이네요.”

    “저런 걸요?”

    역시 S급 헌터인가. 경험의 폭이 남다르다.

    잠시 후, 다른 구슬들도 점멸을 시작했다. 형형한 불빛들이 오웬의 얼굴에 기묘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곧 모든 불빛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구슬에 손을 올린 오웬은 이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세이나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오웬이 돌아선 것은 그때였다.

    “큰일이군요.”

    “네?”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했다.

    저도 모르게 마정석을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손가락이 빛을 가려 오웬의 얼굴이 더욱더 어두워진다.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없습니다.”

    뭐가? 라는 물음이 떠오름과 동시에 그녀는 뒤로 물러났다.

    그녀를 보는 오웬의 눈빛이 매우 의미심장했다.

    왜? 뭐가? 뭔데? 계속해서 의문이 튀어 올랐으나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오웬의 손이 움직였다. 동시에 세이나도 손을 움직였다.

    일전에 그가 꺼낸 건 총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세이나는 외투 안쪽에서 단검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그리고 오웬의 손이 향한 곳은…….

    바로 옆에 있는 구슬이었다.

    “마정석에 마력이 없어서 마도구를 가동시킬 수 없어요. 타이밍이 안 좋았네요! 하하!”

    ‘그런 건 빨리 말하라고!’

    경계심과 긴장감으로 굳었던 어깨가 탁 풀렸다. 너무 심각하게 봐서 진짜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다.

    이를테면 공격하려 든다든가.

    “이렇게 큰 마정석은 구하기도 어려워요. 몰래 가동시킬 수도 어렵겠네요.”

    “하……. 그럼 헛고생?”

    “네. 안타깝지만.”

    또 힘이 빠지는 소리였다. 세이나가 한숨을 쏟을 때, 오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말했다.

    “이 방은 기밀문서들이 보관된 것 같네요.”

    ‘기밀?’

    세이나는 오웬을 따라 벽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선반 아래에는 제법 큰 서랍장이 있었다.

    그녀는 지체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세이나?”

    “그럼 온 김에 회장 약점 몇 개 건지고 가죠. 소득 없이 가면 억울하잖아요.”

    “어떤 약점이 필요한데요?”

    “너무 심각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어서, 결국엔 돈 몇 푼 주고 꺼지라고 할 만한?”

    큭큭 대는 웃음소리를 뒤로하며 세이나가 서랍장을 열어젖혔다.

    그의 말대로 안에는 많은 양의 종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제법 정리를 잘하는 이가 해낸 솜씨인 모양이다. 세이나는 가장 일단 가장 위에 있는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들었다.

    표지에 적힌 문장 속, 한 단어가 유난히도 눈에 들어왔다.

    변종 마물.

    ‘오호, 기밀이 맞긴 하군?’

    마물 연구는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오고 있으나, 아직 그 종류가 모두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종류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학자들은 헌터들을 통해 마물들을 조사하고, 협회는 바로 그것을 중계하고 있다.

    변종 마물은 협회가 주목하는 중요한 사안 중 하나였다.

    “회장 돈은 뜯을 수 있을 때 뜯어야 해요.”

    그녀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종이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세이나도 알고 있는, 이미 학계에 보고된 변종의 조사 내용이다. 그녀의 기준으로 옛날의 문서였다.

    ‘공개되지 않은 게 돈이 될 텐데.’

    다음 서류 뭉치도 이미 꽤 오래전 자료였다,

    아무래도 이 서랍장은 이미 지났지만, 버리기는 좀 그런 내용을 모아 두는 곳인 듯했다.

    그녀는 한숨과 함께 다음 서류에 손을 뻗었다. 이제 마지막. 이것도 옛날 자료면 더는 살펴보지 말아야지.

    막 그렇게 다짐했던 순간.

    “이건…….”

    오웬은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서류를 뽑자마자 세이나가 굳어 버렸다. 위의 내용만 빠르게 읽어 내고 거침없이 넘기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는 들고 있던 마정석을 더욱 앞으로 기울였다.

    하얀 종이 위.

    ‘변종 마물’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장황한 제목이 휘갈겨 쓴 글씨체로 적혀 있다. 소제목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두 열둘.

    그리고 그 첫 번째 이름을 읽었을 때, 오웬은 세이나가 멈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리처드 로힐.”

    바로 세이나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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