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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61화 (61/179)
  • #61

    식당.

    세이나와 디온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식탁 위에는 비싼 디저트들이 가득 올라왔다. 모두 고급 상점가에서 산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세이나와 달리 디온은 이미 나이프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웨이터처럼 한쪽 팔에 흰 천을 낀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찻주전자를 기울여 디온의 찻잔을 채웠다. 디온은 한 모금 마시더니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차 맛이 좀 별로네요.”

    웨이터…… 아니, 오웬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아났다.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디온은 태연자약했다. 오웬이 이를 악물고 식탁 위로 손을 뻗었다.

    “다시 해 오겠습니다.”

    “아니요. 됐습니다. 어쩔 수 없죠. S급 헌터라고 다 잘하는 건 아닌가 봐요.”

    명백한 비웃음. 그러나 오웬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말없이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디온이 오웬에게 내세운 제안은 이러했다.

    -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세이나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오웬은 고민도 하지 않고 제안을 수용했다. 그때의 그가, 어떤 생각인지는 세이나도 알지 못했다. 다만 안타까웠을 뿐이다.

    ‘좀 신중하지 그랬니.’

    그렇게 오웬은 디온의 시종이 되고 말았다.

    불쌍하게도.

    “뭐 하세요? 청소하러 가셔야죠.”

    빠드득. 드디어 오웬에게서 격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흰 천을 든 오웬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것을 보며 세이나는 일순 굳어 버렸다.

    싸우나? 싸우는 건가?

    하지만 그뿐. 곧 오웬은 터덜터덜 힘없이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 축 처진 어깨와 굽은 등. 잠시 후 손에 쥔 것은 걸레였다.

    세이나는 디온을 보았다.

    ‘대체 저 예쁜 머리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

    이제 막 두 번 본 사람을 부려 먹고 있음에도, 그에게 어색함 혹은 불편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식탁 위에 있는 간식도 모두 오웬의 돈이었다. 달콤한 것을 먹으면 세이나의 마음도 풀어질지도 모른다 했던가.

    그런데 저렇게 잘 먹는 걸 보니 자신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독. 넣지 않았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맛은 일단 괜찮네요.”

    그가 자신이 먼저 맛보았던 타르트를 조각내어 세이나의 접시로 옮겨 주었다.

    “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역시 세이나는 마음이 약하네요.”

    “그게 아니라…….”

    세이나는 다시 오웬을 보았다.

    무릎을 꿇고, 소파 앞의 테이블을 열심히 닦는 청년을.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주홍빛 머리카락이 격하게 흔들렸다. 사과를 위해 입고 온 깔끔한 옷은 벌써 구겨져 버렸다. 역시 아무래도 그래도 이건 좀…….

    “생각해 보세요. 세이나. 그 총 말입니다.”

    그때, 디온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을 걸어왔다. 은장식이 달린 매끈한 총구를 떠올리며 세이나가 끄덕였다.

    “그게, 왜요?”

    “그거 쐈으면 집에 구멍 하나쯤은 생기지 않았을까요?”

    잠시 후. 세이나는 정색하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더 꼼꼼하게 해 주세요. 오웬 씨.”

    오웬은 울상이 되었다.

    * * *

    오웬은 제법 청소를 잘 해냈다.

    투덜거림도 없고, 이따금 날 선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착실하게 묵묵히 손을 움직일 뿐이다.

    디온이 비아냥댄 것과 달리, 세이나가 느끼기에 차 맛도 꽤 괜찮았다. 그저 오웬을 놀리기 위한 트집 잡기였던 모양이다.

    지금만 딱 떼어 놓고 본다면, 그는 불행한 여주인공에 썩 어울릴 테다. 그리고 세이나는 못된 새언니.

    ‘그럼 계모는 디온이려나?’

    디온은 한 번도 오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가 느릿하게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일 뿐인데도 그가 하면 어쩐지 기품이 흘러넘쳤다.

    입가에는 가루 한 톨도 없었다. 놀랍도록 깔끔한 시식이었다. 살짝 내리깐 눈이 새초롬하게 보였다.

    그래서 더 계모 같다.

    “풉.”

    세이나는 찻잔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쌀쌀맞은 계모가 금세 놀란 얼굴로 바뀐다.

    “세이나?”

    “아니, 아니에요. 크흡.”

    하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상상력은 미쳐 날뛰었다.

    이제 세이나는 디온이 공작 깃털이 달린 화려한 모자를 위태롭게 걸치고 있는 모습을 겹쳐 보았다.

    동화 속 계모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소품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썩 잘 어울릴 것 같다.

    심지어 드레스를 입혀 놔도 아주 잘 소화해 낼 것이다. 저 남자는.

    “왜 웃어요?”

    세이나의 미소를 포착한 디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 왔다. 세이나는 그대로 그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디온이 너어무 잘생겨서요.”

    “……그거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크흠, 그럼 이제 일어날까요?”

    “네?”

    “먹었으니 움직여야죠.”

    조금 뒤 세이나는 빗자루를 들고 1층에 나타났다.

    오웬은 잔뜩 긴장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여 새로운 일거리를 떠맡길까 염려하는 눈빛.

    그러나 세이나는 그에게 어떤 말도 걸지 않았고, 그를 지나쳐서 창문들을 열고, 다시 빗자루를 쥐었다.

    디온은 한숨을 내쉬며 접시를 치웠다.

    “마음 약한 것 맞잖아.”

    그렇게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세이나는 능숙한 솜씨로 빗자루를 움직였다. 매일 아침 온 집 안을 쓸고 닦은 그녀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범위가 좀 넓어지긴 했으나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기에 그다지 지치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오웬이 거실의 물건들을 모두 다 닦았을 때쯤, 세이나는 이미 다른 곳의 청소를 끝내고 책을 옮기고 있었다.

    라샤드와 디온이 읽었던 소설들을 2층의 서재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었다.

    “디온. 저 좀 도와줘요.”

    두 사람은 2층을 열심히 오르내렸다. 딱히 지시가 없었기에 오웬은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뭘 하면 될까?’라는 식의 눈짓을 몇 번 보내기도 했으나 세이나는 그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다소 매몰찬 태도였다.

    그녀가 오웬에게 말을 건 것은 모든 책이 2층으로 오른 뒤였다.

    세이나는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내려와 그의 앞에 두었다. 연이어 쿵, 디온이 다른 상자를 그 옆에 두었다.

    “자, 괜한 고생 말고 어서 돌아가세요.”

    오웬은 그 상자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것도 모두 돌려드릴 테니, 이젠 오지 마시고.”

    모두 그가 선물로 준 물건들이었다. 가득 채운 마정석에, 책과 마도구들.

    세이나는 그걸 다시 보자 잠시 미뤄 두었던 분노가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며 현혹하던 며칠 전의 오웬이 떠올랐다.

    ‘불쌍하긴 개뿔. 더 부려 먹었어야 했는데.’

    한때 존경했던 남자는 이제 불쾌감을 심어 주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말에 기뻤던 과거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누구에게든 다시는 그딴 거짓말 하지 말아요.”

    세이나가 마지막으로 그를 냉담하게 쏘아보고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이었다.

    “전부…… 거짓은 아닙니다.”

    다시 마주한 오웬은 매우 진지했다. 그의 회색 눈이 세이나가 내려놓은 상자를 보다가, 올라와 세이나를 바라본다.

    후회하는 걸까.

    확실히 그런 눈빛이긴 했다. 그가 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말을 이었다.

    “세이나는 유망한 헌터고.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전부 당신을 위한 게 맞습니다.”

    흔들림 없이 단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가감 없는 진심이다, 부디 들어 달라. 그런 간절함도 섞여 있는 듯했다.

    감동은…….

    없다.

    “그쪽 일꾼들 불러서 가져가세요.”

    “때리세요.”

    그땐 그녀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오웬이 계속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러는 게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원하는데 때리는 게 어떻습니까.”

    “때려도 됩니다.”

    세이나의 손끝이 꿈틀거렸다. 누군가는 비이성적인 행동이라 비난할지도 모르겠으나, 폭력은 세이나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였다.

    학교 다닐 무렵에도 휘둘러 왔고, 지금까지도 그러했다. 세이나는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오웬의 태도가 묘하게 도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진짜 때리면 어쩌려고 저러지?

    “아주 세게 때려도 됩니다.”

    “그럴 순 없어요.”

    “왜죠?”

    “제가 지금 때리면…… 힘 조절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됐어요. 폭행죄로 잡혀가는 건 한 번이면 족해요.”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믿고.”

    “그럼 이마를 때리세요!”

    그가 제 머리카락을 확 까뒤집었다. 그의 돌발 행동에 세이나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오웬은 뭐가 좋은지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가벼운 놀이의 벌칙인 겁니다. 이러면 됩니까?”

    “아니, 그게…….”

    “자, 어서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매끈한 이마가 그녀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오웬은 제 머리를 쓸어 넘기고 꾹 눈꺼풀을 닫았다.

    ‘또라이 맞네.’

    저를 때려 달라며 매달리는 변태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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