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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52화 (52/179)
  • #52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녀의 머릿속에 등장했다. 세이나는 급히 외쳤다.

    “집이 어질러져서, 잠깐만요! 정리 좀 할게요!”

    그녀는 그를 밀치듯 지나치며 급히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몹시 급했지만, 들어간 후에도 문을 제대로 닫고 오웬이 들이닥치는 상황에 대비했다.

    집 안은 고요했다. 소파 앞 테이블에 찻잔이 놓여 있는 걸 보면,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라샤드의 방에도 아무도 없었다.

    ‘오, 다행이다! 나갔나?’

    뒷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고 반쯤 열려 있었다.

    막 나간 걸까? 하지만 뒷문을 열어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나간 듯하다.

    “이…… 일단 들어오세요.”

    오웬은 그녀의 허락이 떨어진 후 현관문을 넘었다. 들어오자마자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집 안을 훑었다.

    어떤 ‘의도’가 담긴 다분히 기분 나쁜 눈길이었지만, 세이나는 미처 보지 못했다.

    집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그녀의 걸음을 재촉했다.

    “물건들은 모두 2층에 있어요. 따라와요.”

    오웬은 그녀의 뒤를 따라 거실을 지나쳐 복도로 들어섰다. 따라가는 걸음은 조금 느렸다.

    회색 눈동자가 집 안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이윽고 시선이 닿은 곳은 뒷문이었다.

    “어떤 마도구인가요? 전부 제가 확인했으니까 말해 주시면…….”

    세이나는 계단을 반쯤 오른 후에야 오웬이 자신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난간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있는 입을 꾹 닫은 채 뒷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느냐고 세이나가 물으려던 순간.

    오웬이 품속에서 총을 꺼냈다.

    세이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세이나,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고급스러운 은장식이 붙어 있었지만, 그가 손에 쥔 것은 결코 관상용이나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얹어지고 눈빛은 더욱더 매서워졌다.

    “이곳에 도둑이 든 것 같습니다.”

    “예!?”

    “저기. 열려 있지 않습니까.”

    그가 가리킨 방향은 뒷문이었다. 방금 전 세이나가 공작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했던 바로 그곳.

    너무 급해서 제대로 문을 닫지 않아 반쯤 열려 있다.

    세이나는 그걸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그의 손가락이 이젠 아래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 발자국도 있네요.”

    그것만은 오해가 아니었다.

    아직 아침 청소를 하지 않은 복도 위에 흐릿한 발자국이 남아 있다. 너무 흐릿해서 정말 유심히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밖에서부터 들어온 것. 그리고 큰 남자 발자국. 도둑이 틀림없습니다.”

    세이나는 또 무어라 하려고 했다.

    그게 아니고요, 디온이…… 아니지, 친척 동생이 남긴 거예요.

    라든가.

    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이 미친놈이 갑자기 총을 꺼내?!

    라든가.

    또라이야! 내 집에서 꺼져!

    ……라든가.

    “집을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오웬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세이나는 그때서야 그의 회색 눈동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놈.

    공작 잡으러 왔구나.

    “저만 믿으세요, 세이나! 마물이든, 사람이든, 제가 퇴치해 드리겠습니다!”

    왜 이 소설 남주 후보라는 것들은 이 집을 못 뒤져 안달인 건지.

    결국, 또 험한 말이 속에서 메아리쳤다.

    ‘너를 퇴치하고 싶다. 이 새끼야.’

    * * *

    아마, 그 선물들부터였을 것이다.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양.

    그리고 어떤 물건인지 바로 알아보기도 힘든 마도구들. 그중 어느 것 하나 ‘터질지 모른다.’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말은 거짓.

    그저 이 집에 들어올 계기일 뿐이다.

    세이나는 1층을 두리번거리는 오웬을 보며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저 미친놈.’

    존경하는 헌터는 마족에 미친 놈이었다. 그의 얼굴에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 묻어 있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물론, 그가 추적자였다.

    그리고 물론, 그가 악역이다.

    ‘이상한 인테리어에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마물의 형상을 본뜬 조각상들. 어쩐지 살기가 느껴지는 형형한 눈빛의 그림들. 그리고 해골과 해골. 딱 봐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마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아니라.

    세이나는 그 사실에 깊이 절망했다.

    거짓말까지 해서 집에 들이닥친 자다. 지금 저 표정을 보라. 오늘 안에 공작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집에서 잠복을 할 것이라 다짐한 것 같다.

    엘렌은 물론, 그 어떤 유인책을 동원해도 쉽게 나갈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총도 들고 있었다.

    장전된 총알이 많지 않은 머스킷 권총의 형태지만, 저 역시 마도구일 것이다. 어떤 무기인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달려들 수는 없다.

    세이나는 이를 갈며 빠르게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기절시키는 상황도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고함을 지르고 나가라고 하는 방법도.

    그런데, 어찌 되었든 또 올 것 같다.

    분명히 다시 온다.

    세이나는 재차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아무도 없다는 걸 보여 주자. 그래서 다음부터는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의심이 있다면 확실히 없애 주는 게 낫다. 지금은 공작도 보이지 않고, 디온도 없다. 상황도 딱 적절하다.

    결정을 내린 그녀가 계단을 내려갔다.

    “저건 제 친척 동생이 남긴 거예요. 문은 제가 좀 전에 열어 봤고. 다른 곳에 발자국이 찍혀 있지도 않고, 달라진 곳도 딱히 안 보이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역시, 오웬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세이나는 그의 총을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

    “좋아요, 거실부터 시작해요.”

    세이나의 집이 또 다른 낯선 방문자를 받았다.

    오웬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세이나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혹여 라샤드가 어딘가에 숨어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탓이다.

    하지만 거실과 식당, 주방에 이어, 조부모의 침실에 이를 때까지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웬은 단단히 닫힌 작은 방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긴 없어요.”

    “한번 확인을…….”

    “없어요. 없다면 없는 줄 알아요.”

    다행히 그는 더는 강요하진 않았다. 몇 분 후, 마침내 두 사람이 공작의 방 앞에 도달했다.

    그의 방은 매우 간소했다. 커다란 책상이 하나. 소파가 하나. 테이블이 하나. 옷장이 하나. 거실에 두기는 좀 그래서 잠깐 옮겨 둔 소설들이 구석에 잔뜩 쌓여 있다.

    평범한 서재의 풍경이었다. 모든 가구가 새것처럼 깨끗하다. 마찬가지로 인기척은 없었다.

    세이나가 문손잡이를 잡은 채 물었다.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이제 됐나요?”

    “서재인가요?”

    “……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 답했다.

    “그러세요.”

    오웬은 매우 조심스럽게 옷장으로 다가갔다. 이 방에서 유일하게 숨을 만한 곳이니, 당연했다.

    세이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가까이 가진 않고, 제법 거리를 두어 그의 뒤에 섰다. 이상한 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바로 둘러댈 생각이었다.

    뒤통수를 때릴 생각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S급 헌터는 빈틈을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옷장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새 가구는 이상하게도 낡은 것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느리게 열리는 모습을 보며 오웬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의 총구는 이제 옷장 안을 겨냥하고 있었다.

    “걸어 나와.”

    오웬의 넓은 등 너머 살짝 보이는 옷들이 움직였다.

    부스럭.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세이나는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숨어 있었던 거야?! 도망친 게 아니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한 번 더 부스럭. 그와 동시에 옷들이 더 요란하게 움직였다.

    안에, 누군가 있었다.

    ‘어떡하지? 내가 뒤에서 먼저 습격해야 하나?’

    그래도 상대는 총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뒤를 덮쳤을 때, 놀라 발포해 버리면? 그 바람에 제국의 공작님이 마탄이라도 맞아 버리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기에, 세이나는 조심스레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일단 저 팔부터 잡아야겠다.

    하지만 옷을 헤치고 나온 이는 공작이 아니었다.

    오웬과 세이나가 옷장 안에서 걸어 나온 은발의 사내를 보며 동시에 뱉었다.

    “엥?”

    “뭐야?”

    그때, 옆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방문 뒤에서 튀어나온 검은 인영은 단숨에 오웬을 제압했다. 총을 들고 있는 팔이 꺾이고, 그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세이나는 은발의 사내가 그의 배에 주먹을 꽂는 장면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퍼억!

    잔혹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웬의 몸이 속절없이 책상 위로 기울었다.

    뒤에서 그를 제압한 이는 라샤드였다. 이미 떠났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 방의 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내내 냉정한 얼굴을 고수하던 디온은…….

    떨어진 총을 들어 오웬의 머리를 겨누었다.

    세이나가 소리쳤다

    “잠깐!”

    “세, 세이나, 좀 도와…….”

    “죽일 거면 밖에서 죽여요!”

    그러자 두 남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야.”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세이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불끈 주먹을 쥐어 보인다.

    “나도 한 대만 때립시다.”

    오웬은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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