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낡은 골목길이 지독한 백색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폭발음. 귀를 먹먹하게 하는 충격 속에서 작은 형체는 멈칫하기를 반복했다. 이제 끝났나? 싶어 발을 떼던 순간.
콰광!
쿵!
두 번째 마정석이 터졌다.
연이어 세 번째, 네 번째.
저를 습격하는 강렬한 빛 속에서 마물은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살짝 열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그것이 소리쳤다.
콰르릉!
그러나 앙칼진 외침은 소음 속에 완전히 파묻혀 버렸다. 작은 발이 조금 움직이니, 바로 쿵! 몸을 들썩이자 다시 콰르릉!
결국, 참다못해 털을 부풀리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후에도 마물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앞. 뒤, 심지어 위까지도, 두꺼운 연기가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맞지 않는 기이한 열감도 그의 발목을 묶어 두었다. 고양이의 작은 머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잡았다!”
세이나는 그 머리를 확 움켜잡았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그것이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해를 가하기엔 그 팔다리가 너무 짧았다.
고양이를 노려보며 세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쉽잖아?’
사실 반신반의했다.
몸체는 작아도 레블로테는 S급. 폭발하는 마정석 따위에 크게 흔들릴 줄은 몰랐다.
너무 열 받아서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 던진 것이 다행히 통했다.
시야가 어지러운 상황에도 마물의 위치를 잡아내는 세이나의 예민한 감각과 민첩성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순전히 운과.
“술래잡기는 끝이다. 레블로테.”
마정석이다.
녀석을 잡느라 가지고 온 마정석을 모두 사용해 버렸다.
속으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지금 그녀의 입가에는 승리의 쾌감이 물씬 묻어나 있었다.
얄미운 마물은 주변에서 정신없이 터지는 마력 때문에 그녀가 다가온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어리둥절하고 있던 머리를 잡을 때의 쾌감이란.
“킥. 킥킥.”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목을 잡힌 고양이는 몸을 축 늘어뜨린 상태였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모습. 그런데 기이한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이게 또 무슨 수작질일까. 유심히 바라보니 문득 그것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도 찾고 있어?”
새파란 눈동자가 가늘게 접혔다. 알 수 없는 말에 세이나의 눈썹이 구겨졌다.
“무슨…….”
“아아, 재밌었다.”
그러나 채 묻기도 전에 고양이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붙잡혀 허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몹시 얄미웠다.
그것은 전혀 위기감 따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졌어.”
“……너, 나를 알아?”
“그럼.”
고양이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오랜만이야.”
“무슨…….”
“세이나!”
그녀가 부름에 응하려 몸을 돌리자 돌연 고양이가 사라졌다.
아차, 싶었던 것도 잠시.
곧 멀찍이 다시 나타난 하얀 고양이를 보며 세이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연기는 어느새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소원은?”
아마 저 마물의 짓일 거라고, 세이나는 생각했다.
“레블로테와의 놀이에서 이기면 소원을 빌 수 있어. 소원을 말해.”
“……오랜만이라니, 무슨 뜻이야?”
그러자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머. 그 답변을 소원으로 치면 되겠어?”
세이나는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마물 같으니.
“전부 다 원래대로 돌려놔.”
“좋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때마침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나는 저를 향해 오는 두 소년을 보며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엥?”
소년. 소년이었다.
다 큰 청년이 아니라, 소년과 더 작은 소년이. 짧은 팔다리를 흔들며 그녀에게 달려오고 있다.
당황한 그녀를 비웃듯, 고양이가 나른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시선을 끈 후에 뱉은 말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지금 즉시, 라고 말하지 않았잖아?”
“이 사기꾼 고양이가!”
“킥킥킥. 걱정하지 마. 약속은 지켜.”
다시 저 목을 졸라야 하는 걸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고양이의 모습이 벌써 흐릿해졌다.
“또 보자. 꼬맹이.”
꼬박 한나절을 이어 간 추격전의 결과가 이거라니.
이제는 텅 비어 있는 어둠밖에 남지 않은 골목길을 보며 세이나는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저 할 말만 다 하고 가 버리네! 아오!’
해소되지 않은 의문만 답답하게 쌓여 버렸다. 왜 마물이 수도 안에 들어왔는가. 왜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시 목을 졸라서 흔들어 대고 싶었으나 마물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소원으로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마물은?”
막 달려온 사람치고 라샤드는 매우 침착한 어조였다. 물론,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긴 했지만 그리 지쳐 보이지도,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지도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체력이다 싶었다. 심지어는 구멍에 안 빠지려고 매달려 있기까지 않았던가.
“일단 끝났어요.”
“끝?”
“네.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언제인지는…….”
세이나는 설명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시야 속, 흑발의 소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은발의 소년은 달려오다가…….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디온!”
* * *
눈을 떴을 땐 집 안이었다.
디온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신음을 흘렸다.
눈에 익은 거실 풍경. 그리고 눈에 익지 않은 작은 손이 하나 꼼지락거린다.
그것이 제 손임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영 쉽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를 바꾸려 눈을 비비기도 여러 번. 그러다 그녀가 보였다.
“일어났어요?”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이마를 스쳤다.
제 이마에도 손을 올려, 열을 확인하던 세이나는 이내 눈썹을 꿈틀거렸다. 분명, 조금 전보다 낫긴 한데. 아주 다 내렸다고 하긴 그렇고.
“열병입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디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보통 폭주 직전에 오는 현상인데…… 몸이 어려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마력을 허용치 이상으로 쓰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일시적이고, 큰 이상은 없어요.”
“의사도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그렇죠? 쉬면 곧 나을 겁니다.”
하지만 쉽게 마음을 놓긴 어려웠기에 세이나는 그 어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쓰러졌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쓰러진 직후에 일어나려는 기미도 없어서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급히 끌어안은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막 의사에게 달려간 것이 바로 1시간 전.
의사의 말대로, 디온은 늦지 않게 정신을 차렸다.
대화까지 나누었으면서도 세이나는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아서 흔들리는 눈꺼풀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흐릿한 시선도 세이나에게 맞춰져 있다.
그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다는데도.”
어려진 그는 일전보다 더 안쓰럽게만 보였다. 일전, 그러니까,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때보다 더.
그래서 더 레블로테와의 마무리가 찝찝했다. 확 목을 틀어 버리기 전에 저주를 다 풀라고 협박했어야 했나.
“푹 쉬어요. 다 끝났으니까.”
세이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려 주며 소파 옆에 주저앉았다. 얼마 전에 샀던 카펫에, 담요까지 바닥에 깔아 놓으니 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소파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는데 그가 물어 왔다.
“레블로테는요?”
“일단 되돌려 주겠다고 말하긴 했는데, 언제인지를 모르겠네요.”
“흠…….”
“곧 돌아올 거예요. 안심하고 푹 자도록 해요.”
“공작님은?”
“저기.”
왼편의 안락의자에는 라샤드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서재로 들어가서 자라고 했는데, 기어코 말을 듣지 않고 거실을 지키고 있다.
의자에 억지로 욱여넣은 몸이 불쌍하게 보인다.
‘미안해서 저러는 거겠지.’
디온의 열병은 마법을 쓴 여파, 즉, 라샤드를 지키려다 얻은 것이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는 사이라도 자신을 지키려다 몸이 상했으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온종일 뛰어다녔으니 결국 지쳐 잠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따져 묻지도 못했네.’
또, 마물이 나타났다.
벌써 세 번째.
막 나타났을 때는 해결이 먼저라 일단 접어 두었으나, 마물도 잡아 낸 지금은 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내 집 근처에 계속 마물이 나타나는 걸까.
‘혹시 이것도 원작의 영향인가?’
만약, 마물들의 등장이 원작의 영향이라면.
‘정말 이사를 가야 하나?’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세이나는 저도 모르게 가로저었다. 집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절대로 떠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꼭 알아야겠어요.”
세이나는 공작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도?”
“왜 상관이 없어요? 벌써 세 번이나 휘말렸는데.”
“그건…… 그렇네요.”
“디온도 위험해졌고.”
위험. 그 단어를 떠올리자 공작저에서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디온은 위험해질 수 있어서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고 세이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 모르는 상황에서도 위험이 닥쳤다. 그렇다면 알고 있는 게 훨씬 나았다.
그래야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폭주한 마력은 다시 잠재우기 힘들고, 잘못하면 목숨까지 앗아 간다면서요.”
“……저도 처음 겪은 겁니다.”
“그럼 제 생각보다 더 위험했네요.”
급작스러운 변화는 보통, 안 좋은 일의 징조가 된다. 특히나 건강에서는 변화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체한 적이 잘 없었는데 체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병을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를 걱정해 주는 건가요?”
한없이 심각해져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디온이 물어 왔다. 세이나는 너무 황당해서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당연하죠! 죽을 뻔했다고요!”
“그렇긴…… 하죠.”
“그렇긴 하죠?!”
이 도련님은 도무지 위기의식이란 없는 건가. 기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세이나는 공작에게 따져 물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 디온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옆집의 거주자라 휘말렸다 쳐도. 디온은 그저 이 집에 드나든 죄밖에 없다.
게다가 머문 이유도 공작과 함께 지내게 된 세이나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하, 일단 푹 쉬어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
그리 말하며 담요를 더 끌어 올려 주던 그때였다. 디온의 시선이 유난히도 끈질기게 제 얼굴에 붙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더 원하는 게 있는 걸까?
그런 눈이었다. 동그란 눈을 깜빡깜빡. 빤히 그녀만을 바라보던 그가 이윽고 낮게 말했다.
“그럼 다르게 있을래요.”
“다르게?”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세이나는 의아하여 조용히 움직이는 작은 몸을 주시했다.
느리게 소파에서 내려온 그는 덮고 있던 담요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그러고 제 어깨에 망토처럼 덮더니…….
바로 세이나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세이나는 제 다리 위에서 꼼지락대는 작은 머리를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다르게라니. 무릎베개였던 거야?
“안 불편해요?”
“전혀요.”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의 귀는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디온은 그것을 감추듯 담요를 더욱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