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오늘도 욕을 먹는 이는 바로 그 남자였다.
‘망할 엘리엇 라프만 같으니! 뭘 얼마나 힘껏 놀아 주라는 거야!’
골목을 뛰어다니며, 세이나는 벌써 그에 대한 욕을 몇 번이고 쏟아부어 주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은 완전히 깜깜해진 상황. 하지만 ‘잡았다!’ 하는 희열에 넘치는 목소리는 없었다.
‘힘껏이 대체 뭐냐고, 힘껏이!’
좀 구체적으로 써 주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하는지.
엘리엇은 ‘나도 본 적이 없다.’라고 맨 뒤에 작게 적었으나, 지금의 세이나로서는 그것조차 떠올리기 어려웠다.
엘리엇 라프만! 다시금 그 이름을 씹으며, 그녀가 발을 내디뎠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입니다! 샤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두 남자는 작아진 체구로도 열심히 골목을 누볐다.
몸이 작아져도 체력은 그대로인 건지, 아니면 아이들의 체력이 더 좋은 건지. 20분을 전력을 다해 뛰어다니고 있는데도 포기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쌩쌩해진 듯하다. 희미하게나마 뒤쫓던 작은 등들은 이제 세이나의 시야에 잡히지도 않았다.
그들이 서로 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방향을 찾아갈 뿐. 그래도 나름대로 그녀도 악을 써 보긴 했으나.
“사람이 적은 쪽으로 몰아야 해요! 디온! 공작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쿵!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들 뿐.
대체 뭘 하는 걸까, 처음엔 걱정했지만 이쯤 되니 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야 이 자식들아! 내 말 듣고 있냐고!”
세이나가 지쳐 멈췄을 땐 벌써 주변이 캄캄해진 후였다.
골목의 모양으로 봤을 때 대충, 어디에 있는지 짐작은 된다. 길은 잃지 않았으나 문제는 또 두 꼬마였다.
그들은 이곳이 어딘지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이곳은 대로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으슥한 곳이다. 무엇보다.
‘여긴 아무도 안 살 텐데.’
그녀의 왼쪽.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복잡하게 어질러져 있다. 어떤 마법사가 한 마법 실험의 여파로 이렇게 되었다고 들은 바 있었다.
급히 마법사를 체포하고, 실험을 중단시켰으나 마력이 남아 있어 황실에서는 이곳을 급히 폐쇄했다.
곧 신전에서 정화 작업과 함께 새로 집을 짓는다고 들었으나, 황실이 하는 일답게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버려진 구역.
이름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골목길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광원은 오로지 희미한 달빛뿐. 어둠 속에서 세이나는 허리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혹시, 이쪽으로 유인한 건가?’
마물은 마기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이곳은 실패한 마법 실험의 흔적이 남았고, 신전도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장소였다. 마물은 무의식중에, 저에게 친숙한 기운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그때였다.
까르르.
뜬금없이 웃음이 들려왔다.
들려올 리가 없는 소리에 세이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디온은 아니다. 아주 어린 아이,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다.
왜, 여기에?
탁탁탁탁.
뒤이어 들린 것은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그 역시, 1명이 아니라 여럿이다. 멀리서 시작된 발소리는 매 순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까르르르……. 웃음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벽 사이로 울려 퍼지는 기이한 소리의 한가운데에서 세이나는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소리의 방향이 계속,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를 두고 빙빙 돌고 있나? 아니, 그렇다기에는 너무 빠르다. 착각? 환청?
아니야, 하지만 저쪽에서 분명히…….
“노올자.”
나직하게 전해져 온 부름에 우뚝, 세이나의 걸음이 멈췄다. 동시에 주변도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숨소리 하나 없는 기이한 정적 속.
세이나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바로 그녀가 좀 전까지 노려보던 그 어둠을 향해.
“세이나.”
세이나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뭐?”
동시에, 메아리처럼 들리던 웃음들이 그쳤다.
세이나는 품속의 단검에 손을 올리며 차차 뒷걸음질 쳤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나타났다.
고양이.
마치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돌연 그것이 생겨났다. 세이나는 우스운 짓임을 알면서도, 묻게 되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고양이는 그녀의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쫓았다.
‘왜 내 이름을 아냐고!’
딱히 꼭꼭 숨기는 비밀은 아니다. 엘렌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알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물이 내 이름을 부르다니! 소름 끼치잖아!’
그들을 잡고, 죽이며 생계를 유지해 온 그녀다.
갑자기 그 대상에게 이름을 불리니 으스스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쉽게 잡아 죽이던 벌레가 갑자기 이름을 부른 것과 같다.
역시 S급은 보통 마물과 다른 걸까.
그런 생각이 드니 다시 또, 소름이 돋았다. S급은 ‘전설’로 분류되는 마물이었다.
이런 골목길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종류가 아니라고!
“거기 서!”
고양이는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고 유유히 그녀를 앞서가고 있었다.
저쪽의 낮은 담장을 이용하면 따돌리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일부러 탁 트인 곳만 골라 뛰고 있다.
마치 저를 잡아 보라는 듯.
세이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크게 도약했다.
쿵!
하지만 잡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슬라이딩한 몸을 일으키자 예의 그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놀자. 노올자.”
“저게 진짜!”
“놀자, 세이나.”
“오냐, 아주 하드하게 놀아 주마. 나중에 울지나 말라고.”
그게 아주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던지, 고양이가 킥킥 다시 웃음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다시 쫓아야 하는데, 종일 달려서인지 바로 발이 나가지 않았다.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그것은 계속 그녀를 불렀다.
노올자. 놀자.
“아, 간다고. 망할……. 하, 숨 좀…….”
놀자. 놀자. 세이나.
“스토커 새끼. 너 친구 없구나? 누구랑 똑같네. 하…….”
노오올자.
“아, 알았어. 간다고 가. 망할 엘리엇 라프만. 설명을 좀 제대로…….”
바로 그때.
쿵!
뭐지? 세이나는 소음이 난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끈질기게 들리던 ‘놀자’도 사라져 버렸다. 혹시 잡은 건가?
그 생각에 답하듯 누군가 말했다.
「더 늦으면 다 잡아먹을 거야.」
“젠장!”
그녀는 다시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모퉁이를 돌자,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은은한 달빛 아래 세이나는 패여 있는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막 파 놓은 것인지, 옆에 모래도 남아 있다.
‘이 미친 마물이! 함정까지 파 둔 거야!?’
하지만 경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구멍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뒤, 높은 건물 위에는 벽돌들이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고양이는 바로 그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세이나가 앞으로 뛰었고, 고양이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건물의 벽면이 무너졌다.
벽돌들이 구덩이를 향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세이나가 소리쳤다.
“라샤드!”
* * *
멋진 도약의 결과는 이번에도 슬라이딩이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음에도, 세이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끔찍한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모든 감각을 앗아가 버렸다.
구덩이에, 라샤드가 매달려 있었다.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끈 감은 눈을 차마 뜨기 어려웠다. 조금만 더 일렀다면, 그때 고양이를 잡았다면. 온갖 후회가 그녀를 괴롭혔다.
또, 바로 눈앞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먹먹한 무력감에 목이 꽉 막힌 바로 그때였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습니까, 샤샤?”
장난기 가득한 어린 목소리에 세이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구멍.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소년.
좀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혼란스러워 눈을 여러 번 깜빡이자 뒤늦게 라샤드의 위로 희미한 형체가 보였다.
결계 속, 라샤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진짜 죽여 버린다…….”
“감사 인사치고는……. 후, 거치네요.”
느리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고, 세이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옆에 선 디온이 가쁜 숨을 내쉬며 손등으로 턱의 땀을 닦았다.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가 그 역시 열심히 뛰어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혈색이 없어 창백해졌다.
“세이나, 공작님을.”
“아, 네, 네!”
그녀는 급히 구덩이로 달려갔다.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결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세이나는 손쉽게 라샤드를 구출해 낼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노올자.”
고양이가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세이나는 물론, 라샤드의 인상도 확 구겨졌다.
그런 반응을 즐기듯 그것이 웃음을 흘렸다. 킥킥킥. 들을수록 기분 나빠지는 소리였다.
“도망간다!”
라샤드의 외침과 동시에 세이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어지며 무릎이 조금 까졌지만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세이나!” 라샤드가 조금 늦게 그녀를 불렀으나.
“내가 잡을게요!”
오직 그 녀석, 그 빌어먹게도 얄미운 고양이를 잡기 위해 그녀의 눈이 이글거렸다. 꽉 깨문 입술에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감히 누구 앞에서 사람을 죽이려 들어?’
더 늦으면 다 잡아먹어 버릴 거야.
분명히 그리 말했다. 그리고 장난기 가득하게 부르던 이름. 세이나.
노올자.
마물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이야 산더미같이 있다.
그리고 이쪽이 가진 원한도, 산더미였다.
왜? 어떻게? 하는 물음은 이미 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진 후였다. 저 마물을 어떻게 잡아 죽일지 생각하며, 세이나는 쓰러진 기둥을 뛰어넘었다.
이어서 콰직! 콰직!
낡은 화분들은 그녀가 기둥을 넘느라 조금 자세가 흐트러졌을 때 바로 떨어졌다. 하지만 세이나는 다행히도 모두 피해 낼 수 있었다.
아주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역시 목표는 나야.’
제 발 바로 옆에 부서진 잔해들을 보며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잠시 뒤로 빼냈던 발을 앞으로 향했을 땐, 고양이가 어둠 속으로 막 몸을 돌리고 있었다.
킥킥킥.
괴상한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녹아들듯 몸이 어둠 속으로 반쯤 사라지고, 꼬리마저 사라지려던 순간.
세이나는 예열해 뒀던 마정석을 집어 던졌다.
콰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