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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41화 (41/179)
  • #41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겠어요.”

    골목을 뒤진 지 3시간이 지났을 무렵, 세이나가 지쳐 중얼거렸다.

    야옹. 나른한 울음을 뱉으며 고양이가 그녀의 품에서 뛰어 내려갔다. 이로써 3마리째.

    평소에 비하면 적은 수였다.

    그녀의 집 근처는 고양이가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겨우 3마리. 그리고 그녀의 오랜 감으로 그들은 모두 마물이 아니었다.

    “유인할 방법은…… 없나?”

    라샤드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3시간 동안 그는 계속 뛰어다니기만 했다. 땀으로 젖은 얼굴이 꽤 안쓰럽게 보인다.

    “흐음 글쎄요. 어려워요. 치안대에 있던 아기들은 모두 상처가 없었거든요.”

    “상처?”

    “마물은 보통 사람을 잡아먹죠. 그런데 아기로 만든 후에도 안 먹었다는 건, 그냥 ‘놀이’라는 뜻이에요.”

    “이것도 아닙니까?”

    야옹, 또 다른 고양이를 붙들고 디온이 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세이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심히 고양이를 보았으나, 이번에도 아니었다.

    야옹……. 고양이가 사라지는 것을 보던 라샤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든 이들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거군. 악취미야.”

    “정확히는 갖고 노는 쪽에 가깝죠.”

    “정말 끝도 없겠는데요. 다른 골목으로 가 볼까요?”

    “역시 다른 헌터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해야겠어요.”

    땀을 닦던 라샤드가 홱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제법 따가운 시선이지만, 세이나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마물이 나타난 것을 숨기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심각한 사안이에요. 더 피해자가 나타나기 전에 붙잡아야 해요.”

    “하, 그건 그렇지만.”

    “되도록 나랑 친한 사람들로 모아 볼게요. 마침 로벤이 이 사건을 알고 있으니까…….”

    “로벤?”

    돌연 디온의 표정이 굳었다.

    “누굽니까, 그 ‘로벤’은?”

    세이나는 그 질문을 다소 늦게 인지했다. 지금 수도에 누가 있더라, 수를 세느라 잠시 저만의 생각에 빠졌다.

    디온의 눈빛이 가라앉은 건 바로 다음 순간부터였다. 그의 시선을 느낀 세이나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저랑…….”

    “어머, 세이나?”

    그때, 골목에 긴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세 사람은 동시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긴 금색 머리, 하늘색 눈동자. 예쁜 눈웃음을 짓는 소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옆에는 친척 동생들인가요?”

    엘렌의 품에 안겨 있는 통통한 고양이가 나른하게 울었다.

    야오옹.

    * * *

    그 고양이는 엘리엇 라프만의 설명대로 꽤 얄미웠다.

    엘렌의 무릎에서 내려온 고양이는 그녀의 발치에서 한가롭게 제 앞발을 핥았다. 그러나 디온이 확 손을 뻗자 가볍게 휙 뒤로 물러나 버렸다.

    다시 잡은 자리에서는 곧 잠이라도 들 듯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것이 둥글게 몸을 웅크렸고, 디온이 도약했다.

    그리고 다시.

    쿵!

    아슬아슬하게 제 손을 빠져나간 고양이를 노려보며 디온이 바닥에 엎어져 부들부들 떨었다.

    고양이는 그에게 떨어진 곳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틈에 디온이 손을 뻗었고 고양이는 다시…….

    쿵!

    “귀엽죠? 제가 키울까 해요.”

    ‘저게 귀엽냐?’

    신랄한 평가를 속으로 내리며, 세이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눈에 봐도, 저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고양이가 저렇게 얄미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몸놀림도 아주 잽싸다. 디온이 달려들었다. 쿵! 그리고 다시 또, 쿵!

    “그러다 다쳐!”

    우려 섞인 외침이 울리는 순간에도 술래잡기는 이어졌다. 폴짝! 고양이가 뛰었고, 쿵! 디온이 넘어졌다.

    안 울고 씩씩하네.

    ‘엘렌은…… 괜찮은 건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꽃집 소녀는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더 어려지지도 않았고, 불편해하는 기색도 없다. 고양이를 보고 미소까지 짓고 있지 않은가.

    ‘혹시 여주인공이 어마어마한 성력의 보유자?’

    세이나는 엘리엇의 책을 다시 떠올렸다.

    여주인공은 보통 특별한 능력 하나씩은 꼭 갖고 있다. 성력과 엘렌은 썩 잘 어울리기도 한다.

    원체 선한 인상이고, 착하기도 하니.

    ‘그럼…… 어떻게 저 마물을 데리고 나가지?’

    갑자기 확 빼앗는 건 좀 이상할 듯해서 따라가다 보니, 얼떨결에 꽃집에서 차까지 대접받게 되었다.

    이곳까지 이르는 내내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엘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졌나 싶었더니 저렇게,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닌다.

    그나마 닫힌 공간이라 다행이지.

    마음 같아서는 ‘위험 마물이니 데려가겠습니다. 키우다가 죽어요.’라고 하고 싶은데, 옆에서 라샤드가 계속 눈치를 줬다.

    마물이라고 밝히지 말라는 뜻인데, 그럼 거짓말을 해야 한다. 세이나는 짜증스레 이맛살을 구기며 머리 옆을 짚었다.

    ‘아는 사람 고양이라고 해야겠는데.’

    그 짧은 순간, 고양이가 뛰어올랐다. 폴짝폴짝. 디온도 따라 움직였다. 폴짝, 폴……짝!

    쿵!

    “그만! 정신 사납잖아!”

    무심코 그녀가 뱉은 외침이 꽃집을 울렸다. 동시에 모든 움직임이 일시에 멎었다.

    정적 속에서 세이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저를 보고 있는 디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고양이도.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니, 나쁜 사람이 맞았다. 저 어린애에게 고함을 내지르다니. 내가 미쳤지.

    “미, 미안해. 소리 질러서.”

    그 사과에 엘렌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른 쪽을 수습하기에는 무리였다. 디온의 눈썹 사이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란 눈에 눈물이…….

    세상에 점점 더 어려지네.

    “디……. 아, 아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말고, 응?”

    그렇지 않아도 그의 우는 얼굴에 약한 그녀였다.

    거기다 지금은 어려진 상태. 바닥에 쓰러져 있기까지 하니 더욱더 안쓰러워 보인다. 세이나는 급히 무릎을 꿇고 디온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그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진짜 어린애가 다 되었네.’

    그의 어깨를 다독이는 중, 뜨거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세이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엘렌에게 말했다.

    “친척 동생이에요. 하하하.”

    그리 말하기가 무섭게 디온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또 뭐가 문제인 건지. 가까이서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여린 뺨 위에 눈물 따윈 없었다. 아, 일부러 우는 척을 한 거군.

    갑자기 울컥 짜증이 치밀었다.

    거짓말이 얼마나 힘든 건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공작님처럼 가만히 있으란 말이야!

    “저기 저……!”

    디온이 또 머리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엇에 토라졌는지 모르는 그 손짓은 덜컥, 세이나의 말문을 막았다.

    공작님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데.

    그럼, 음…….

    “샤샤를 본받아서 가만히 있으라고!”

    “풉!”

    마시던 찻물을 그대로 뿜어 버리는 라샤드를 보며, 세이나는 생각했다.

    미안해요. 공작님.

    난 작명 센스도 지옥이야.

    “어머! 괜찮니?”

    엘렌이 조심스레 물었으나 라샤드는 대답할 여유조차 없었다. 세이나는 찌릿한 그의 시선을 피해 살짝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고 끅끅대는 디온이 보였다. 그나마 소리를 죽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마저도 오래 안 갈 듯싶었다. 엘렌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샤…… 샤? 라고?”

    라샤드는 이제 기절이라도 하고 싶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나, 그도 당황하여 마땅히 제대로 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그가 입가를 닦아 낸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꽉 쥐어진 주먹에는 어떤 각오마저 느껴졌다.

    대답은 한숨 같았다.

    “그래…….”

    “예쁜 이름이네. 잘 어울려요.”

    오, 제발. 여주인공님. 더 말하다가는 진짜 공작님께서 혀라도 깨무실지도 몰라.

    “친척 동생들이라고 했죠?”

    “네, 네! 하하하. 며칠 맡아 주기로 했어요.”

    “어쩐지. 세이나랑 조금 닮은 것 같아요.”

    “어, 어디가요……?”

    엘렌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가 답했다.

    “음, 눈빛?”

    이건 칭찬인가 욕인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세이나와 라샤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보던 시간을 깨트린 건 이번에도 디온이었다. 그가 머리를 잡아당기자 아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야.”

    “고양이요.”

    아, 참. 그게 있었지.

    “엘렌. 미안한데, 아까 그 고양이 제가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어머, 그래요?”

    “네. 제가 아는 사람이 그 고양이를 잃어버려서…….”

    급조한 거짓말을 술술 흘리던 그때였다. 세이나는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는 라샤드, 앞에는 디온.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에는 분명히.

    고양이가, 있었는데.

    “어디 갔지?”

    바닥은 어느 샌가부터 텅 비어 있었다.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두 소년과 엘렌도 급히 좌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화분이 놓여 있는 꽃집 안은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다소 어지럽기도 했다. 저 안으로 들어갔나? 세이나가 인상을 찌푸리던 바로 그때.

    “저기!”

    라샤드가 가리킨 방향은 꽃집의 입구였다.

    분명히 단단히 닫고 들어왔던 그 문이 어느새 활짝 열려 있다. 쌀쌀한 저녁 바람이 꽃집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저물고 있는 붉은 하늘이 나타났다.

    그 안에,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네발로 우뚝 선 모습 뒤로 긴 꼬리가 기이하게 흔들렸고, 파란 큰 눈이 가늘어지며, 입은…….

    “비웃었어?!”

    “감히 날 비웃어?!”

    그저 착각이라고만 하기 어려운 표정에 두 소년이 격분했다.

    이윽고, 고양이가 가볍게 문밖으로 뛰쳐나가자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바로 뛰어나갔다.

    세이나는 두통을 느꼈다.

    엘리엇 라프만이 말한 레블로테의 퇴치법. 그것은…….

    그저 힘껏.

    놀아 주면 된다. 지칠 때까지.

    “학부모는 힘들어요…….”

    “네, 그래 보이네요…….”

    세이나를 보는 엘렌의 시선에는 동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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