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40화 (40/179)
  • #40

    전에 없는 일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요즘 사는 게 하도 팍팍해서 그런가 보다. 헌터들도 먹고살기가 힘들어졌어.

    그 모든 것을 고려해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모두 갓난아기였어요.”

    “서, 설마 우리도…….”

    “아뇨. 더 어려지진 않을 거예요.”

    창백해진 라샤드를 향해 세이나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책에 적힌 대로라면.”

    “책?”

    “아마…… 이번에도 마물 때문인 것 같아요.”

    “뭐? 이런 마물이 있나?”

    “있긴 한데……. 하, 전 그냥 전설인 줄 알았어요. 이건 드래곤만큼이나 희귀한 마물이란 말이에요.”

    “마법도 아닙니다. 마법이라면 제가 알아차렸을 겁니다.”

    “그럼 역시, 마물 짓인 것 같은데…….”

    이번이 벌써 몇 번째더라. 세 번째?

    아무리 헌터가 마물과 친근하다 못해 찰싹 붙어 있는 운명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되니 지긋지긋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질 대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이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공작은 고작 12살.

    아이에게 따지듯 묻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을 듯하니까.

    “엘리엇 라프만의 책을 한 번 더 확인해 봐야겠어요.”

    “아, 그 책이요?”

    디온이 기억하고 있는지 끄덕거렸다.

    저 어린애에게 야설을 보여 줬다니. 어쩐지 죄스러운 기분이 드는걸.

    “날이 밝는 대로 도서관에 가 봐야겠네요. 일단 두 사람은…….”

    라샤드가 책에 대해 더 묻기 전에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세이나는 말끝을 흐리고는 제 옆의 두 소년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12살과 7살. 어른의 옷을 훔쳐 입기라도 한 듯 맞지 않아 줄줄 흐르는 큰 옷. 그녀는 그들을 알아보았으나, 다른 이들은 아마도…….

    “두 사람 모두. 한동안 여기서 지내야겠네요.”

    * * *

    아론은 정오가 지날 무렵 나타났다.

    “혹시 공작님 못 보셨습니까?”

    올 것이 왔구나.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 질문임에도 덜컥 말문이 막혔다. 세이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모, 못 봤어요!”

    이 저주받은 연기력 같으니.

    다행히 아론은 딱히 수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생각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한 쪽에 가까웠다.

    “그래요? 어딜 가셨지.”

    “아, 혼자…… 조사할 게 있다고 하셨던 것 같기도 하네요.”

    “나 참. 또 어디 감옥에 갇혀 계신 건 아닌지. 아시겠지만,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검도 제대로 챙겨 가셨고.”

    “흐음, 그럼…….”

    아론이 신중한 눈으로 제 턱을 매만졌다.

    그동안 세이나는 열심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제발 넘어가라, 제발 넘어가라, 제발…….

    “휴가!”

    그러다 돌연 아론이 외쳤다.

    “휴가군요!”

    “예, 예?”

    “나중에 봅시다, 세이나!”

    미처 붙잡을 틈도 없이 그가 뛰쳐나갔다.

    10초도 못 뛴다고 골골대던 사람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에, 세이나는 일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옆에서 작은 얼굴이 삐쭉 튀어나온 건 아론이 막 모퉁이를 지날 무렵이었다.

    “저 녀석, 감히 놀겠다?”

    새로운 옷까지 맞춰 입은 공작님은 이제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살벌하게 아론의 뒷모습을 째려보아도,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도.

    하나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성질 더러워 보이는 소년?

    “아론에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게 어때요?”

    “절대로 안 돼. 이건 자존심 문제다.”

    “자존심?”

    “……날 봤을 때, 무슨 생각부터 들었지?”

    그야, 당연히 귀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

    당장 지금도 그랬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모양새는 이전과 같지만, 앳된 얼굴이라 그게 너무 외모와 어울리지 않았다. 딱 세상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짜증을 부리는 소년.

    혹은 어른스러운 티를 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 같다.

    바락바락 화를 내도 “어이구, 그랬어요?”라고 하며 머리를 헝클어 주고 싶다.

    “그래. 그래서 안 돼.”

    그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그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짧은 다리로 성큼성큼 내딛는 꼴이 또 우스워 미소 짓자, 디온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하나 봐요. 별꼴이네요.”

    “다 들리거든?”

    두 남자가 아이가 된 지 이틀째.

    세이나는 색다른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 시작부터가 참 범상치 않았다.

    노기등등한 눈으로 식칼을 보는 소년과 그 옆을 얼쩡거리는 또 다른 소년.

    12살 소년이 요리를 시작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한 번, 까치발을 들고 그 옆에 서 있는 소년이 귀여워 설렘이 한 번. 정답게 서 있는 형제 같아 보여 흐뭇함을 한 번.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당황을 한 번.

    - 나이가 많이 들면 아침잠이 없다던데, 어려져도 공작님은 똑같네요.

    - 나 지금 칼 들고 있다? 안 보이냐?

    - 미안합니다. 살려 주세요.

    ‘더 유치해진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어려져서까지 아침을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 두 남자는 신세를 지게 된 것이 퍽 미안한 눈치였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어 물러나라고 하니 다음부터는 옆에서 나란히 서서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지켜보고만 있다.

    그 시선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 책대로 할게요. 책대로.

    특히 디온 쪽이 유독 그랬다. 세이나는 도무지 눈앞의 소년과 ‘디온 프라벨’을 동일 인물로 여기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의자에 앉으면 땅에 닿지 않는 짧은 다리하며, 스푼을 잡은 작은 손, 우물우물 씹는 도톰한 입술은…….

    “세이나.”

    “……네?”

    “체할 것 같아요.”

    하지만 세이나의 들뜬 마음과 달리, 디온은 영 답답해 보였다.

    결정적인 순간은 외출 준비를 할 때였다. 세이나가 옷을 입혀 주려고 하자, 그는 죽고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혼자 할게요. 제발.”

    하지만 어제저녁 급히 산 옷은 맞지 않았고, 세이나는 그의 소매를 접어 줘야 했다.

    그때 한숨을 푹푹 쉬던 디온은 말 그대로 세상 시름을 다 떠안은 사람 같았다.

    그래서 너무 웃겼다.

    “미, 미안해요. 디온 내가 옷을……. 크흡…….”

    “바지도 접어 줘야 하는 거 아냐? 잘못하면 넘어질……. 풉!”

    “둘 다 오늘 걷다가 넘어졌으면…….”

    그의 기대와 달리 신전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기만 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 이르자 세이나는 디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겼으나,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순순히 맞잡았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에 또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아, 귀여워. 너무 귀여워.’

    그렇게 한쪽에는 아이를 한쪽에는 소년을 낀 채, 세이나는 신전 도서관으로 향했다.

    언젠가 디온과 함께 왔던 그곳에는 뜻밖에도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한때 안나와 같이 협회의 접수처에 있던 사내는 그녀를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아, 너, 너 혹시 로벤이랑……? 그래! 내가 너희 그럴 줄 알았……!”

    안타깝게도, 디온의 발길질은 사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가 씩 웃으면서 디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동이 너를 꼭 빼닮은 아들이구나.”

    ‘왜 내가 기분이 더럽지?’

    어쨌든 출입은 쉬웠고, 이전에 방문한 자료실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책’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세이나는 사다리 위에 걸터앉아 마물에 대한 건을 찾아낸 후에야 내려갔다.

    같이 찾아볼 순 없었다. 어린 애들한테 이런 걸 보여 주면 또다시 감방에 가야 한다.

    이번에는 정말 벌 받을 거야.

    “찾았어요. 레블로테.”

    세이나가 바닥에 책을 펼치자, 양쪽으로 두 소년이 모여들었다. 머리를 맞댄 세 사람은 천천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레블로테. 정신계 마물. S급.

    “……마물의 마력을 사용한 저주이기 때문에 신관에게는 통하지 않으며, 다음으로 오러를 단련한 자 역시 작은 변화에 그친다. 대체로 청소년 시기에서 멈춘다.”

    그래서 공작님은 청소년인 거군. 세이나는 슬쩍 라샤드를 보았다.

    책을 보는 그의 눈은 몹시 진지했다. 오, 지금은 제법 공작님 같은데?

    “다음은 마법사로, 이 경우에는 대부분 8세에서 6세의 어린아이로 줄어든다.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인의 경우에는 순식간에 갓난아이가 되기도 한다.”

    역시 치안대에 온 아기들도 이 마물 때문인 듯했다.

    ……목욕을 시키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세이나는 생각했다.

    “레블로테의 저주를 받은 이는 점점 행동도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고…….”

    거기까지 읽고, 세이나는 다시 두 사람을 보았다. 디온은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려져서 결국 죽음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다음.”

    “가, 가장 최악인 점은, 레블로테가 이 같은 저주를 뿌리고 다니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악이네요.”

    “……한때 마족의 반려동물처럼 키워진 이 마물은 성질도 마족만큼이나 교활하여,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기를 즐긴다. 레블로테를 쓰다듬은 이는 모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귀여운 동물이라고 무턱대고 다가가지 않는 것이…… 쓰다듬어?”

    세이나의 고개가 기울었다.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마물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걸 쓰다듬는다고?

    헌터인 그녀로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래서 자신은 멀쩡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동안, 두 소년의 얼굴은 차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조금 후,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불현듯 외쳤다.

    “그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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