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39화 (39/179)
  • #39

    6. 학부모는 힘들어

    “하하하! 세이나, 너 남의 일 돕기 좋아하는 건 여전하군?”

    헌터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치안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된다.

    이전에 감옥에 갇혔을 때는 아니었지만, 오늘 만난 사람은 세이나도 익히 잘 아는 기사였다.

    그러나 세이나는 그에게 인사도, ‘좋아하는 건 아닌데요.’라는 식의 쏘아붙이기도 할 수 없었다.

    펼쳐진 광경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네 할아버지랑 똑같네. 하하하!”

    “그, 그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으아아아아앙!”

    그녀의 물음에 답하듯, 한 아기가 돌연 울음을 터트렸다. 기사들의 얼굴이 동시에 새파랗게 변했다.

    안고 있던 사내가 아이를 흔들어 보았으나, 한번 터진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한 아이가 울자 연이어 다른 아이들도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끄아아아앙!

    “언제부터 치안대가 미아보호소가 된 거예요?!”

    그녀의 말 그대로.

    현재 치안대 건물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점령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갓난아이에 가깝다는 점에서, 미아보호소보다는 병원에 가까웠으나 그 부분을 지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기사가 소리쳤다.

    “너도 보고만 있지 말고 뭐든 해 봐!”

    ‘학부모라는 건 말장난이었는데!’

    사방을 채운 입체감 있는 울림들 속에서, 병사들은 정말 눈물겨운 노력을 보였다.

    안고, 업고, 들고, 달래고…… 어떤 이는 저도 따라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제발 조용히 해 달라고 사정하는 이도 있었다.

    세이나는 한숨을 쏟으며 그에게서 아이를 받았다.

    그녀의 손이 닿자 놀랍게도, 아이는 울음을 뚝 그쳤다. 부드럽게 안아서 등을 두들겨 주자 아이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역시 넌 애들을 잘 봐. 소질이 있어. 응.”

    “나 참. 헌터가 언제부터 이런 걸 하게 됐는지.”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다음 아이를 받아 들었다.

    그녀의 주도하에 치안대는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세이나는 마지막 아이를 눕히며 그 수를 세었다.

    모두 다섯.

    “누구 집 애인지 아는 거 없어?”

    로벤에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세이나에게 물었다.

    “빨리 부모를 찾아 줘야지.”

    “누구 집 애냐니…… 어떻게 얼굴만 보고 알아?”

    “넌 아는 사람이 워낙 많잖아. 할아버님 친구분들하고 아직 연락하지?”

    “그분들에게는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래도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는걸?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찾아온 부모는 없어?”

    “없어. 찾을 거였다면 길바닥에 버리진 않았겠지.”

    “길바닥……?”

    로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길바닥.”

    사정은 이러했다.

    협회에서 일을 구하지 못해 길거리를 떠돌던 로벤은, 골목 어귀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대충 주변에 있는 천으로 감싸서 치안대를 찾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와 비슷한 사연으로 찾아온 사람들이 둘이나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셋, 넷이 되었고. 치안대에 아는 사람이 많던 로벤은 발이 묶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담당인 자들은 모두 아이를 다뤄 본 경험이 없었고, 도움을 요청하러 허겁지겁 협회로 간 차에 세이나를 만난 것이었다.

    “버려졌다고? 전부?”

    세이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요즘 살기 팍팍하기로서니 동시에 다섯이나?

    “그래, 씁쓸한 현실이지.”

    그리 말하는 로벤의 안색이 어두웠다. 그는 혀를 한 번 차더니 품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 습관적인 행동에 세이나의 손이 그의 등을 가격했다.

    퍽!

    “안 돼!”

    “윽, 깜빡했어.”

    “단정 짓지도 마. 저녁이 되면 부모들이 찾으러 올지도 몰라.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그러나 저녁이 되어도 찾아오는 부모는 없었다.

    ‘이야, 진짜 우울하네…….’

    아이들은 이제 하나둘 일어나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기사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도 세이나의 조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속, 문득 로벤이 결심한 듯 말했다.

    “나 오늘은 여기서 잘 생각이야.”

    사람 돕기 좋아하는 헌터 여기 하나 더 있네.

    속으로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세이나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뻐근해진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고생하고. 나도 한번 알아볼게. 내일 다시 얘기해.”

    “내일? 오늘 좀 도와주라! 이거도 임무라니까? 돈 줄게!”

    “뭐? 안 돼. 집에 돌아가야 해.”

    “뭘 그렇게 팍팍하게 굴어. 너 어차피 혼자 살아서 늦게 들어가도…….”

    말끝을 흐린 로벤이 돌연 눈을 크게 떴다.

    “뭐 생겼냐?”

    퍽!

    마지막 발길질과 함께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상세하게 적어 둔 메모를 남긴 후에야, 세이나는 치안대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도 걱정이었다.

    치안대의 병사나 기사 중에는 아이를 가진 아버지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밤 담당 인원 중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로벤은 동생도, 아들도, 조카도 없었다. 평생 검만 잡아 온 그가 아기들을 잘 돌볼 수 있기나 할는지.

    ‘나도 거기서 보내야 하나.’

    치안대를 벗어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직 울음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결정도 내리지 못했는데, 벌써 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녀가 막 손잡이를 잡으려던 찰나 갑자기 휘익 문이 열렸다. 나타난 이는 은발의…….

    “늦었네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세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을 열던 자세 그대로, 그녀의 몸이 그만 굳어 버렸다.

    마법이거나 몸에 이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찬찬히 살핀다.

    “혹시 아침 일 때문에 기분 상한…… 건……?”

    “그, 그, 그렇진 않은데요.”

    가까스로 입을 뗐을 때도, 세이나는 쉽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만 조용히 움직인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아래…….

    그녀가 물었다.

    “디온?”

    “네.”

    “그……. 음……. 왜 키가 작아졌죠?”

    “아.”

    그러자 그녀보다 한참 키가 작은 은발의 소년이 심각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그게 문제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 * *

    긴 정적을 먼저 깨트린 쪽은 라샤드였다.

    - 다음 권.

    평생 귀족으로 살아왔기에, 명령조가 입에 밴 그였다. 하지만 제 앞에 있는 은발은 순순히 들어주지 않겠다 싶어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마침 그가 책을 건네주었다.

    - 자, 여기요.

    라샤드는 조금 놀라 디온이 내민 책을 빤히 보았다. 이상함을 알아차린 건 바로 그때였다.

    - 이건 다음 권이 아니라 다다음 권이잖아. 너 일부러…….

    그리고 다음, 또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 라샤드는 의아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 그런데. 너…… 그렇게 팔이 짧았었나?

    “하하하!”

    세이나는 결국 참다못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라샤드가 우울하게 말하며 이마를 짚었다.

    “웃을 일이 아니야.”

    짧은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을 쓸고, 움직임에 따라 긴 소매가 스르륵 흘렀다. 세이나는 그걸 보고 또 웃었다.

    “푸흡! 그게 무슨! 하하!”

    “그만 웃어. 난 심각하다고.”

    “언제 아빠 옷을 빌려 오셨어요, 공작님?”

    그러자 어린 얼굴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 홱 돌아갔다. 그 토라진 옆모습을 보며, 세이나는 또 웃음을 흘려야 했다.

    기껏해야 12살쯤 되었을까.

    그녀의 어깨를 조금 넘는 키와 작은 얼굴. 여린 어깨 위, 옷은 맞지 않아 흘러내려 와 있다.

    잔뜩 좁아진 미간과 붉은 눈동자는 익숙한 것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세이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진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귀여워 보인다.

    그가 제 옷을 주섬주섬 접는 광경을 보며, 세이나는 웃지 않기 위해 숨까지 참아야 했다.

    라샤드의 입술이 어느새 빼쭉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삐친 어린애다.

    위엄 있는 공작님, 어디 갔어?

    “그러니까, 둘 다 책에 푹 빠져서 어려졌다는 것도 눈치 못 챘다는 말이죠?”

    “……그래.”

    “그리고 디온도…….”

    두 사람이 동시에 시선을 옮겼다. 은발의 소년은 소파 위에서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역시 긴 옷소매와 코트 자락.

    저 옷을 질질 끌며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기에, 세이나는 빙긋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7살?”

    “놀리지 마세요.”

    날카롭게 대꾸했으나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경고는 아니었다. 푸른색 눈동자가 영롱하게 빛나며 그들을 빤히 주시했다.

    단언컨대, 지금의 디온은 세이나가 평생을 보아 온 소년 중 가장 예뻤다.

    아니, 소년에 국한할 수도 없다. 모든 소녀, 이 대륙 전체를 뒤져도 저만한 얼굴을 찾을 수 있을까.

    찡그려도 예쁘고, 눈을 부릅떠도 예쁘고, 입술을 깨물어도 예쁘고, 화를 내도 예…….

    “세이나!”

    “아.”

    엄숙한 호통에 세이나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아주 잠시. 그녀는 곧 다시 멍해져 버렸다. 맙소사, 어떻게.

    목소리도 귀여울 수 있지?

    “디온, 우리 어디 대회라도 나가 볼까요? 예쁜 아이 콘테스트? 그런 거 여기에도 있나?”

    “절대로 안 나갑니다. 절대로.”

    “볼 한 번만 찔러 봐도 되나요?”

    “읏, 안 돼요!”

    그가 긴 소매로 붉어진 뺨을 확 가리며 물러섰다.

    문득 변태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세이나는 일단 물러서기로 했다.

    재워 두고 몰래 만져 볼까?

    “그런데 두 사람, 공작님이랑 디온 맞는 거죠? 혹시 질 나쁜 장난이라면…….”

    “누가 이런 장난을 합니까.”

    “계약서 내용을 다시 외워 주면 되겠나?”

    저 확신에 찬 눈빛을 보니 공작님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세이나는 눈을 현혹하는 두 미소년에게서 애써 시선을 돌리며, 끌어낼 수 있는 심각함을 총동원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가 다섯이나 치안대에 들어왔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