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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34화 (34/179)
  • #34

    그제야 다시 뒤늦게, 디온이 마물과 싸운 적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물은 기괴한 생물이다. 종류에 따라 생김새도 흉측하고, 끔찍한 마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초보 헌터의 첫 과제를 ‘마물을 보고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

    디온 역시, 트라우마가 생긴 게 틀림없다.

    세이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기절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는 배고프기도 하고. 음, 식사를 준비해 준다고 했으니 먹고 갈까 해요. 각하께 더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네, 그럼.”

    디온이 홱 몸을 돌렸다.

    세이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떠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거침없는 발걸음에 내딛는 속도도 빨랐다. 전혀 미련 따위 없어 보였다.

    ‘그래도 몸조심하세요, 이런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떠나는 뒷모습이 어쩐지 매몰차게 느껴졌다. 그의 친절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걸까.

    ‘그래, 뭐.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디온은 이 마물 건에 엮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엉겁결에 휘말린 것일 뿐.

    그곳은 그의 집이 아니었고, 그 거리도 그의 거주지가 아니다.

    엘렌도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못 만날지도.’

    점점 더 그가 굳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마물 건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저렇게, 빨리 떠나 버리는 것이다.

    ‘지금이 마지막.’

    달칵, 문이 열리고 디온의 몸이 반쯤 밖으로 빠져나갔다. 방을 빠져나갈 뿐인 그 간단한 동작은 세이나의 눈에 아주 긴 슬로 모션처럼 비쳤다.

    이제 완전히 그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고…….

    다시 열렸다.

    “그러고 보니. 집이 부서졌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네요.”

    “네? 아, 그건 조금 전에 들었…….”

    “꽤, 심각합니다.”

    다음 순간, 세이나는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디온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심각하다구욧?!”

    * * *

    공작저 서재.

    “조금 전 떠나셨다고 합니다.”

    보고를 들은 라샤드는 읽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론이 평소와 같이 피곤함에에 절어 있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돌아갔다고?”

    “네.”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어젯밤 이후로 오늘 정오까지,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했다.

    분명 배가 고플 텐데. 어째서 이렇게 일찍 떠난 걸까?

    ‘따라가 봐야 하나?’

    거기까지 떠올린 라샤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서류로 돌렸다.

    따라가다니, 내가 왜 따라간단 말인가?

    급한 일이 생겼을 수도 있지. 식사하기 싫을 수도 있고.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한들, 따라갈 이유도 없다.

    “무슨 사이냐고 다들 물어보더군요.”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불쑥 아론이 물어 왔다. 라샤드는 그대로 아론을 돌아보았다.

    “무슨 사이?”

    “그렇게 소중히 안고 들어오셨으니 말입니다. 다들 관심을 가질 수밖에요. 하녀장께서는 언제 결혼식을 준비하면 되냐며 마주칠 때마다 물어보십니다.”

    “……환자를 내팽개칠 수도 없지 않나.”

    “앞으로는 행동에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보는 눈들이 많으니 무슨 이야기가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보통 이상한 소문은 이렇게 시작되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아론은 눈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귀찮다는 투로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그가 느리게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런 식으로 가볍게 입을 놀리는 자들은 각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겠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주인과 부하의 눈이 마주쳤다. 아론이 특유의 가느다란 눈을 휘며 말했다.

    “늘 그랬듯이요.”

    그가 안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라샤드는 그에게서 시선을 내려 종이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많은 양이었다. 또다시 지친 목소리가 앞에서 흘러나왔다.

    “말씀 주셨던 자료입니다. 정리하느라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고생했어.”

    “그럼 이제…… 쉬어도 될까요?”

    라샤드가 손을 저어 보이자 아론은 부리나케 방에서 빠져나갔다. 혹여 다시 잡을까 도망치는 꼴이다.

    혼자 남게 된 라샤드는 그가 준 서류 뭉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작업에 몰두하지 못했다.

    ‘무슨 사이긴. 하숙인과 집주인이지.’

    생전 그런 호칭은 처음이었다.

    하숙이라.

    자신이 생각해도 ‘공작’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단어다. 그래서일까. 집주인은 자신을 공작으로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조금 괘씸했다.

    계속 달라붙기에 안아 들고 집으로 와서, 푹신한 자리에 눕히고 하녀들을 불러서 깨끗이 닦게 했다.

    잠자던 의사를 깨웠고, 의사가 별 이상이 없다고 말한 후에도 계속 옆을 지켰다.

    혹여 어딘가 다쳤을까 싶어서. 걱정되어서.

    그토록 강건하던 그녀가 아니던가.

    스스로 가열된 마정석을 손에 꽉 쥐고, 연기 속으로 질주해 들어가 마물을 잡은 여자였다.

    하지만 세이나는 덜컹거리는 마차에서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열사병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싶어 당혹스러웠다.

    그렇게나 간호해 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사죄는 열심히 들었지만.

    - 진짜 쓰레기 짓 했네.

    무슨 사람에게 닿았다고 쓰레기까지 되냐는 말이다.

    ‘어이가 없군.’

    서류가 책상 위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매만지며 자신의 다른 쪽 손을 내려다보았다.

    귓가에서는 계속 그녀의 목소리가 반복되는 중이었다.

    -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근처에도 안 갈게요!

    자신이 안아서 옮겨 준 일이 그렇게나 기분이 나빴던 걸까.

    ‘손도 잡았으면서.’

    이 안에 안겨 있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기에, 그는 세이나를 그대로 안고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하인들이 이상한 시선을 보낸 것도, 잊지 않았다.

    - 그분은 누구시죠?

    ……라고 했을 때 할 말이 없었던 것도.

    그러나 가장 곤란한 것은 따로 있었다. 라샤드가 그녀를 운반하는 내내, 디온 프라벨은 그의 옆에 딱 붙어서 날이 선 시선을 던졌다.

    마치 시비를 거는 것처럼.

    ‘아는 동생치고는 과한 반응이지.’

    역시, 그 남자는 세이나에게 관심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냥 지인으로서가 아니라 다분히 이성으로서.

    디온은 라샤드가 세이나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를 노골적으로 노려보았다.

    첫 만남이 워낙 좋지 않아, 아직 그때의 적개심이 남았나 싶었으나 그렇다고 하기에도 좀 지나쳤다.

    관심 있는 여자 주변에 다른 남자가 있으면 싫을 만도 하다.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이나 로힐은 그의 감정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아는 동생이라는 호칭에서부터 명백하지 않은가.

    ‘디온 프라벨이라, 그러고 보니…….’

    조금 뒤, 그의 부름에 집사가 서재로 들어왔다.

    잿빛 머리칼을 깔끔하게 넘긴 그에게 라샤드가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디온 프라벨은?”

    “손님과 같이 떠나셨습니다.”

    “같……이?”

    “네. 함께.”

    전혀 이상할 게 아니었다. 디온은 라샤드와 친분이 없었고, 세이나가 떠난 이상 이곳에도 볼일이 없다.

    그러나 라샤드는 계속 두 사람이 같이 떠났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근처에도 안 갈게요!

    자신에게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니, 디온 프라벨에게는 잘도 곁을 내어 준다.

    라샤드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저택을 걸어 나가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다정하게 마주 보는 모습을.

    결코, 집사는 그렇게 보고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그런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디온 프라벨이 안아 줬다면 유난스럽게 반응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안아 준 게 기분 나빴던 거겠지.’

    스스로가 병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라샤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첫 만남.

    역시, 그게 문제다.

    ‘신경 쓰지 말자.’

    라샤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에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비싼 가죽으로 만든 의자는 어느 집의 어떤 소파보다 훨씬 편안했다.

    한쪽 손에는 다시 서류가, 다른 쪽 손에는 펜이 쥐어졌다. 누가 봐도 곧 일이 시작될 것 같은 자세였다.

    그러나 몇 초도 지나지 않고.

    라샤드는 집사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제임스. 여인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조사해 봐 주게.”

    공작저의 늙은 집사, 제임스는 뜻밖의 명령에 놀라 눈을 껌뻑이기만 했다.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지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련한 집사였기에, 그는 빠르게 혼란에서 벗어났다. 그가 조심스레 공작을 살피면서 물었다.

    “찾고 계신다는 여성분을 위한 건가요?”

    라샤드는 조용했다.

    찾고 계신다는 여성분.

    완전히 잊고 있었다.

    * * *

    라샤드가 세이나의 집으로 돌아온 건 저녁쯤이었다.

    사실 오늘 엘렌의 감시를 맡은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능력 있는 기사였고, 예의도 바르고, 아론의 말에 따르면 집주인과 한 번 눈인사를 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라샤드는 그를 보내지 않고 일을 끝내자마자 이 집으로 향했다.

    이유는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세이나의 집은 겉으로 보기에 어제와 같았다. 인부들이 오가지도 않았고, 딱히 무너진 곳도 없었다.

    다행이다, 작게 읊조리며 라샤드는 뒷문을 두들겼다.

    똑똑. 노크 소리 이후 나타난 이는 예상했던 인물이었다.

    은색 머리칼이 흔들리며, 그 사이의 푸른색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디온 프라벨이 매우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 공작님이셨네.”

    원치 않는 손님을 만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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