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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31화 (31/179)
  • #31

    그 소리는 느닷없이 생겨났다.

    탁.

    아주 단단한 것이 무언가를 스치는 소리였다. 흔히 들을 만한, 그러나 누구나 ‘잘못 들었나?’ 하며 금방 잊을 만큼 작은 소리.

    그러나 이후 탁.

    다시 소음이 울리자 그것은 착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탁……. 탁…….

    탁. 탁. 탁. 탁.

    잠시 후.

    네발 달린 짐승이 거실에 나타났다.

    튀어나온 샛노란 눈동자가 껌뻑거리지도 않고 주변을 살폈다. 새롭게 재생된 혀는 이전보다 더 붉어졌으며, 등은 녹색과 붉은빛이 섞인 비늘로 덮여 있었다.

    나무 바닥과 부딪힌 발톱은 움직일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탁. 탁. 탁.

    멈춰 선 곳은 쓰러진 남자의 옆이었다. 그의 위로 큰 그림자가 기울었고, 긴 혀가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훑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혀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곧은 콧대와 입술, 목과 상체까지. 혀는 그의 팔을 스친 이후에야 모습을 감추었다.

    다음 순간, 마물이 입을 크게 열었다. 그러나 시원하게 열린 시작과 달리.

    “키엑?”

    커다란 입은 그의 몸을 바로 집어삼키지 못했다. 입이, 닫히지 않았다.

    “켁!”

    처음 느끼는 생소한 경험에 마물의 샛노란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뒤늦게 혀를 움직인 마물은 곧 자신의 입천장에서부터 턱까지 이어져 있는 굵고 긴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얼음 기둥이 그의 입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네 다리 역시.

    눈 깜짝할 새 얼음으로 뒤덮인 마물이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케엑!”

    그때, 라샤드가 눈을 떴다.

    “지금!”

    급히 일어난 그의 손에는 두툼한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쓰러지기 전, 그가 몰래 몸 아래에 숨겨 둔 것이었다.

    소금이 마물의 입안으로 거침없이 쏟아졌다.

    “키에에엑!”

    통렬한 비명과 함께 마물의 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흔들어 대는 머리 앞에서 남자는 빠르게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마물이 가까스로 입안의 얼음 기둥을 부순 바로 그 순간.

    푸욱!

    “캬아악!”

    오러를 띤 검은 매끄럽게 도마뱀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발버둥에 가까운 도마뱀의 움직임이 멎은 것은 바로 직후였다.

    쿵! 마물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자 라샤드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검을 회수했다.

    “……해치웠나?”

    “아닐 겁니다.”

    디온은 그제야 기둥 뒤에서 나왔다. 라샤드는 짜증스레 그를 보았으나 일단 또, 참기로 했다.

    “어째서?”

    그의 발치에 쓰러진 도마뱀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보였다.

    “혀가 바로 재생하더군요. 이런 경우는 코어……. 그러니까, 꽤 큰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움직입니다.”

    헌터들이 주 수입원으로 삼는 마정석은 마물의 마력 보관소였다.

    마물들은 마력으로 신체를 변형하거나 마법을 사용한다. 마물의 종류에 따라 그 마정석에 깃드는 마력의 양과 질이 다르며, 또한 사용법도 차이가 있다.

    이 경우는 재생의 힘을 빌리는 쪽이었다.

    “그걸 부수지 않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거군?”

    “혹은 몸에서 떼어 놓아야 합니다. 여길 보세요.”

    디온이 쓰러진 마물을 발로 툭, 때렸다. 라샤드가 낸 상처에서 긴 애벌레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디온은 서슴없이 바로 그 마물의 흉측한 머리를 집어 들었다.

    “일단 세이나부터 꺼내죠.”

    다시 얼음 기둥이 생겨났다. 활짝 열린 마물의 목구멍은 컴컴한 동굴을 연상하게 했다.

    좁고, 냄새도 지독했다.

    “어서 들어가세요. 저는 마법을 고정해 두고 있겠습니다.”

    마물의 입속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 안에 불길을 두고 한참을 태웠다고 해도 좋을 광경이었다. 매캐한 연기와, 역한 비린내에 라샤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 녀석. 좀 커지지 않았나?’

    분명 2층에서 봤을 때는 이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마물은 이제 소파만큼 커져 있었다.

    새까만 목구멍은 사람 2명도 금세 삼킬 것만 같았다.

    혹시 세이나를 소화해 버린 에너지로 커져 버린 걸까? 라샤드는 조급한 마음에 더욱 깊숙이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목구멍 안쪽의 살은 아직 검게 변하지 않은 채였다. 그 속에서 라샤드는 넘어가지 못한 다리 한 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반가움에 그 발목을 덥석 잡은 순간.

    “어!?”

    갑자기 몸이 기울었다.

    라샤드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지고 점점 냄새가 심해지더니…….

    꿀꺽.

    라샤드를 삼킨 마물이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디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서두르라니까.”

    * * *

    마물의 몸이 커졌다. 아니, 커지고 있었다.

    좀 전보다 훨씬 부푼 몸은 이제 천장에 닿을 듯 높아져 있었다.

    라샤드가 찌른 부분은 이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활기를 띤 꼬리가 세차게 서랍장을 부쉈다.

    콰직!

    더 커진 입으로 으르렁대며 마물이 샛노란 눈을 바로 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눈이 향한 곳은 바로 앞.

    디온은 미동도 없이 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라샤드마저 삼켜 버린 괴물에게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턱을 매만지며, 점점 형체가 변하고 있는 마물을 관찰했다.

    그것이 제 발을 삼킨 얼음들을 부수기 시작할 땐 감탄사도 나왔다.

    콰지직! 콰직!

    “오.”

    더 커진 콧구멍이 거친 숨결을 뿜었다. 한층 더 흉흉해진 이빨 아래, 검게 변한 부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마물이 커다란 머리를 그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디온의 눈이 반짝인 것은 그때였다.

    “그럼 이건?”

    화르륵! 맹렬한 불길이 마물의 노란 눈동자를 삼켰다.

    “키에에엑! 캬악!”

    마물은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흔들었다. 그의 큰 꼬리와 다리가 쿵쿵대며 벽을 때리자 집 전체도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아차, 집을 부수면 안 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이 다시 요동쳤다. 이번에 솟아오른 것은 얼음이 아닌 연기였다.

    검은빛의 그것이 촉수처럼 움직이며 마물의 몸을 뒤덮었다. 마물의 움직임이 다시 완벽히 봉쇄된 순간이었다.

    “키에엑! 캬악!”

    디온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스치지 않았다.

    한 생물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오히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다시 천천히 손을 움직였고.

    “자, 그럼 이제…….”

    그때, 마물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천장을 향해 머리를 든 채, 마물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알 수 없는 행동에 디온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쿠에에에엑!”

    마물이 구토를 쏟아 냈다.

    “케엑! 켁! 켁!”

    역한 냄새와 함께 진득한 용액이 마물의 입에서 솟구쳐 나왔다.

    디온은 그마저도 재미있다는 얼굴이었지만, 발걸음은 착실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것이 토해낸 것 중에는 건장한 남자도 있었다.

    끈적끈적한 액체를 뒤집어쓴 라샤드의 몸이 그의 발치까지 미끄러졌다.

    디온은 무릎을 접어 그를 환영했다.

    “좀 늦었네요.”

    “너 때문이잖아.”

    라샤드가 가볍게 기침을 쏟아 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디온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이 몸부림치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랬구나.”

    “이 자식. 너 일부러…….”

    “세이나는요?”

    그제야 그는 자신이 품 안에 끌어안고 있는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세이나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 여기저기가 녹은 것을 보고 디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사해. 숨도 제대로 쉬고 있고.”

    “……코어는?”

    세이나를 잡지 않은 다른 쪽 손이 열렸다. 그의 주먹보다 더 큰 커다란 마정석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마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물은 라샤드와 세이나를 토해낸 자세 그대로 벌벌 떨고 있었다. 머리부터 몸체, 꼬리까지 전신이 격한 진동이 이어졌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라샤드는 마물의 몸이 점점 어둡게 변하는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저렇게 쉽게 사라질 줄은…….”

    꼬리 끝에서 시작한 어둠은 삽시간에 마물의 몸을 집어삼켰다. 곧이어 버서석 소리를 내며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마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이제 검은 재밖에 남지 않았다.

    “세이나? 세이나, 괜찮아요?”

    디온의 관심은 이미 마물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는 끈적거리는 것이 손에 묻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세이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세이나?”

    하지만 닫힌 눈꺼풀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라샤드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디온의 표정이 확 바뀐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제 일어나요.”

    “으음…….”

    “세이나?”

    라샤드는 그대로 뻣뻣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세이나의 손이 그의 몸을 완전히 끌어안았다. 얼굴은 그의 넓은 가슴팍에 바짝 붙이고 있었다.

    라샤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귀에서 시작된 붉은 기운이 삽시간에 그의 얼굴까지 옮겨붙었다.

    세이나가 더욱 그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엄마,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학교 안 간단 말이에요. 좀만 더 잘게…….”

    그 순간, 라샤드가 문득 불길함을 느꼈다.

    그의 바로 앞, 디온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손에서 마물의 용액이 뚝뚝 떨어지고, 눈은 반만 떴다.

    마음에 안 드는 눈빛.

    ‘이 녀석, 역시 세이나를…….’

    디온이 라샤드를 노려보며 팔을 움직였다. 그의 손끝이 닿은 곳에는 공교롭게도.

    소금이 있었다.

    “설마 너 그걸 던……. 앗! 그만! 그만둬! 따가워!”

    라샤드에게 여러모로 힘든 하루였다.

    “따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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