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30화 (30/179)
  • #30

    라샤드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건 디온의 날카로운 한마디였다.

    “아직 아닙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눈썹을 넘어 한쪽 눈으로 스며들어 갔다.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라샤드는 그녀가 있던 방향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아직 세이나가 있었다. 다만, 흐릿했다. 그녀의 몸이 투명해지며 뒤의 나무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라샤드는 재빨리 옆에 있는 검을 쥐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 있는 세이나의 형체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망간다!”

    틀림없이 그런 움직임이었다.

    세이나의 몸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본 라샤드는 먼저 서재의 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고민했다.

    ‘어디를 베어야 하지?’

    그녀의 몸은 이제 거의 사라져 있었다. 희미하게 남은 것은 어깨선 정도다.

    찰나의 시간 속, 라샤드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검에 오러를 둘렀다.

    만약 투명한 어떤 생물이 그녀를 삼켜, 배 속에 넣은 채 움직이고 있다면…….

    틀림없이 머리는 이쪽이리라.

    그리고 그의 예상이 맞았다.

    다음 순간, 라샤드는 자신이 노려보며 검을 찌르려던 자리에서 긴 혀가 튀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검이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붉은 형체가 툭, 라샤드의 발치에 떨어졌다.

    성공적으로 혀를 베어 내었음에도, 라샤드는 어딘가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의 풍경 속.

    노란 눈을 가진 도마뱀의 얼굴이 허공에 나타났다.

    보라색 피를 뚝뚝 흘리는 혀를 입 안으로 굴려 넣은 그것은, 다시 입을 열었을 땐 완벽하게 회복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무슨…….”

    “비켜요!”

    날카로운 외침이 떨어지자마자 얼음 창들이 라샤드의 얼굴 바로 옆을 매섭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마물의 행동이 더 빨랐다. 얼음 창들이 벽에 꽂히는 것을 본 디온은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도마뱀의 머리는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천장에 얼음창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음, 그다음도 얼음들은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매번 마물을 놓치고 말았다.

    그 움직임이 너무 기민했다. 디온이 작게 욕설을 내뱉은 그때.

    라샤드가 그의 위로 쓰러졌다.

    쿵! 쿵! 쿠당탕!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너야말로 제대로 갈 수 없……!”

    라샤드는 통증에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디온이 그를 거의 밀치다시피 하여 서재를 뛰쳐나가자 그는 곧바로 그의 뒤를 따라 복도를 뛰었다.

    급한 마음이 발길을 더욱 재촉했다. 그리고 계단에 이른 후에도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디온이 멈춰 있는 것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마물은?”

    “비웃고 있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엉망이었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땀에 젖었고, 막 바닥에 넘어진 뒤라 둘 다 아직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라샤드는 이제 눈앞까지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세게 흔든 후 얼굴을 쓸어내렸다.

    “미안하군.”

    “정신 차리세요. 늦어지면 세이나가 소화될 겁니다.”

    그들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찾아온 1층은 조용했다.

    현관문 쪽에 있는 마정석의 불빛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걸 보며, 라샤드는 눈을 질끈 감고 한 번 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더 이상 날아드는 공격은 없었다.

    그리고 마물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또 익어 가길 기다리고 있군.”

    “세이나는 아직 덜 익었는데 왜 잡아먹은 걸까요?”

    “그 녀석 눈 못 봤어? 배고파 미치기 직전이라고.”

    마물이 실체화된 그 순간. 라샤드는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는 소름 끼치는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마물의 눈을 보고 그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느끼기만 했다.

    그 마물은 완전히 미쳐 있었다.

    라샤드가 투지를 불태우며 검을 다시 잡자, 디온이 옆에서 말했다.

    “아, 그럼 먼저 익어 주실래요?”

    “뭐?”

    “녀석이 각하를 삼키려고 입을 열었을 때 제가 제대로 마법을 때려 박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디온은 매우 침착했다. 라샤드는 그에게서도 어떤 기색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미쳐 가고 있군.

    “지금은 겁을 먹어 숨은 것 같고. 더 바싹 익으면 나타나지 않을까요?”

    “너, 나는 그냥 희생양으로 쓸 생각이지?”

    “아니면 제가 구워 드리겠습니다. 처음 하는 거지만 열심히 해 볼게요.”

    “하……. 누가 누구더러 정신 차리라고 한 건지.”

    또다시 흘러내린 땀이 눈을 찔렀다. 라샤드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약점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세이나는 불안한 어조로 자신도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주 어처구니없는 게 약점이지 않을까?

    “빨리 찾아야 합니다. 저도 슬슬 한계예요.”

    “왜? 너도 오아시스라도 보이나?”

    디온은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 속,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가 말했다.

    “슬슬 이 집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순간 라샤드는 생각했다. 사실 그도 당장 저 기둥과 벽을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왜 안 하고 있었을까.

    어? 왜 안 했지?

    지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 디온과 눈이 마주쳤다.

    “혼날걸요.”

    라샤드는 뒤늦게 깨달았다.

    “찾아야겠군.”

    “네. 찾아야 합니다.”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샤드가 향한 곳은 거실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는 그저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거실은 엉망진창이었다.

    테이블도 넘어져 있고, 소파들도 뒤로 넘어갔다. 아주 커다란 어떤 것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식당도, 주방도 다르진 않았다.

    라샤드는 쓰러져 있는 서랍장의 옆에 잠시 지친 몸을 기대었다. 그때 그의 바로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이젠 환청까지 들리나 싶어 이마를 짚었던 그는, 다시 뜬 시야 속에서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그의 검과 바닥이 바로 맞닿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확히는 혀를 자르면서 그의 검에 묻어 버린, 그리고 잠시 검을 기울인 사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마물의 체액으로부터였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하얀 가루들이 쏟아져 있다.

    라샤드가 소리쳤다.

    “찾았다!”

    * * *

    디온은 완전히 맥이 풀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조금 전에 아주 멋지게 마물 퇴치의 각오를 다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주방. 식기와 식재료들이 지저분하게 바닥에 널린 난장판 속에서 두 남자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식당이었다. 식당을 넘어, 거실과 함께 다른 방들까지 다시 한번 샅샅이 살피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라샤드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는 아주 중대한 임무를 앞두고 있는 전사가 틀림없었다. 앞을 보는 두 눈에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반면, 디온은 정반대였다. 그가 제 손의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영 멋없지 않나요.”

    이건 마물 퇴치가 아니라 요리사인데요.

    그런 뜻을 명백히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지금 각자 하얀 가루를 가득 담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소금이었다.

    “빨리 찾자고! 세이나가 소화되어 버리기 전에!”

    “이걸로 뭘 합니까?”

    “뿌려야……겠지?”

    그 말에 디온의 손이 즉각 움직였다.

    후두둑.

    디온이 라샤드를 향해서 뿌린 소금이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얼굴에 뜻밖의 소금 세례를 받은 라샤드가 짓씹듯 말했다.

    “……내가 아니라 마물에게 뿌리라는 뜻이다.”

    “아. 제대로 말을 해 주셔야죠.”

    놀리는 게 틀림없는 목소리였다. 라샤드는 일단 참아 보았다.

    “그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혹시 계세요? 하고 뿌려야 합니까?”

    참았다, 아주 잘.

    “그럼 마물이 예,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수줍게 손을 들어 줄까요? 그럴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열심히.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럼 눈이 마주칠 텐데 어떡합니까. 징그럽던데. 틀림없이 징그러울 텐데. 소름 돋으면 책임지실래요?”

    “젠장! 투덜거리지 마! 그래도 약점을 찾았잖아!”

    조금 전,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소금이었다.

    소금과 닿자 마물의 체액은 연기를 일으키며 검게 변했다.

    이것이 바로, 세이나가 말한 약점이리라.

    “녀석은 소금에 닿으면 검게 변해. 이걸로 확실히 녀석을 보이게 할 수 있어.”

    라샤드는 디온을 데려와 직접 그 반응을 눈으로 확인시켰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나 어린아이처럼 툴툴대고 있었다.

    아마 더위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거겠지.

    라샤드는 다시 한번 그를 이해해 보았다. 끈질긴 인내심은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디온은 점점 정신줄을 놓아 가고 있었다.

    친밀하지도 않은 그에게 길게 말을 많이 늘어놓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라샤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네 말도 일리가 있군.”

    마물이 소금을 맞아 줄 때까지 가만히 있지도 않을 테고.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하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데, 돌연 디온이 입을 떼었다. 그가 차분한 얼굴로 라샤드를 돌아보았다.

    “도와주세요. 각하.”

    푸른색 눈동자는 지금도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라샤드는 그 안에 있는 비장함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세이나를 구하고 싶습니다.”

    *

    잠시 후.

    라샤드는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바닥에 댄 채, 양팔을 벌린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시체로 의심할 만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또렷했다.

    그는 계속 속으로 누군가를 씹고, 씹고 또 씹고 있었다. 바로 그 대상은 기둥 뒤에서 라샤드를 훔쳐보고 있었다.

    라샤드는 디온의 입가에 스친 비웃음을 보며 이를 갈았다.

    ‘결국 이거잖아!’

    라샤드의 죽은 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디온 프라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