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세이나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이 집 안에 있을 거예요.”
그사이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원래 서식지가 사막인 놈이에요. 이 정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숨어 있는 건가?”
“네. 이 집의 방 어딘가에…….”
마물이 있다. 거기까지만 생각한 세이나는 뜻하지 않은 소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집에, 내 방에 마물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다시금 스스로를 다그쳤다. 일단 빨리 이 상황부터 해결하자.
집을 지켜야지.
“이 집 안에 있어요.”
엘리엇 라프만은 이 마물이 먹잇감이 있는 공간에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마물에 박식한 그도 직접 만나 본 바가 없었다.
이 마물에 관한 내용은 모두 전해 들은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엘리엇 라프만이 이 마물과 조우해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도 연구에 실었다는 사실이다.
세이나는 다시 책의 내용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마물은 먹잇감이 있는 공간에 있다. 그 말인즉 마물을 찾으려면…….
“방문을 모두 열어야겠어요.”
그 말에 라샤드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계약의 네 번째 조건, ‘닫힌 방문들을 열지 말 것.’ 그것은 ‘다른 방들을 보여 주지 않겠다.’라는 뜻과 같았다.
세이나의 의도도 그랬다. 하숙인을 들이긴 했지만, 그녀는 이 집의 모든 것을 그와 공유할 생각 따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세이나는 의자를 꽉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한쪽 발을 겨우 바닥에 디뎠을 때, 양팔을 꽉 잡아 주는 힘이 느껴졌다.
어느새 다가온 디온이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습니까?”
“……안 괜찮아요. 어느 것도.”
빌어먹을 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끔찍해지기만 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다. 온몸의 땀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방을 보여 줄 생각 따위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안나도 모르는 사실을 이제 보여 줘야 하다니.
세이나는 서랍장에서 굵은 머리 끈을 꺼내 들었다.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뒤에 있는 머리까지 모두 모아 높이 질끈 묶었다.
매끄러운 목선이 드러났다.
열기에 붉어진 얼굴로 세이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쳐 반쯤 감긴 눈이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더위를 견디려고 몇 번이나 씹었던 입술이 부어 평소보다 더 붉어 보였다.
“이 마물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잘 안 돼요. 하나씩 다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제 턱을 손등으로 쓸며, 세이나가 계획을 정리했다. 그러다 문득 라샤드와 눈이 마주쳤다.
라샤드는 곧바로 고개를 홱 돌렸다. 살짝 보이는 그의 귀가 매우 붉었다.
‘더위를 귀로 느끼는 편인가?’
그녀는 저를 보고 있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퇴치법을 듣긴 했는데……. 확실하진 않아요. 디온은 혹시 알고 있나요?”
디온은 그녀를 부축해 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꽤 가까웠기에, 세이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요?”
“마법사이고 주변에 헌터들이 많을 테니까…….”
“저는 마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세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묶인 머리카락이 같이 기울었다.
“응? 아버님이 협회장이시잖아요.”
“마물과 싸워 본 적도 없습니다.”
그것만은 정말 의외였다. 협회장의 아들이라면 마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불량배들을 쓰러트리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아 마물과 마주친 적도 꽤 있을 줄 알았다.
‘역시 곱게 자란 도련님이 맞았던 걸까.’
협회장의 다른 자식들과는 확실하게 달랐다. 그들은 모두 이름난 헌터들이었고 등급도 높았다. 유명세도 꽤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디온의 ‘또라이’라는 소문도 그들에 비교해서는 그리 존재감이 있지도 않았다.
연회에도 협회 행사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데 두 사람은 어디서 만난 거예요?”
문득 잠시 접어 두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디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난 적 없습니다.” 그러나 라샤드의 대답은 달랐다.
“예전에 스쳐 지나갔을 뿐이야. 지인이 말해 줘서 알고 있었지.”
“아, 뭐라고 하던가요?”
……라고 디온이 직접 물었다. 라샤드는 잠시 그를 노려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조심하라고.”
그 말에 디온이 미소 지었다.
정말 악당 같아 보인다고, 세이나는 생각했다.
* * *
세이나의 집 구조는 단순했다.
정문 현관으로 들어서면 넓은 거실이 보인다. 넓은 소파의 뒤로는 식당으로 향하는 통로가, 더 안쪽에는 주방과 욕실이 있다.
왼쪽에는 방이 3개가 붙어 있는데, 가장 뒷문과 가까운 것이 라샤드의 방이었다.
현관에 가까운 곳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10년 전에는, 조부모의 침실로 쓰였다. 그리고 지금도…….
“깨끗하군.”
잘 정리된 침실을 보며 라샤드가 중얼거렸다. 넓은 침대는 주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옆에 있는 탁자에는 먼지 한 톨도 없었다.
“수상하게 여겨야 할까요? 쓰지 않는 방이 이렇게…….”
“수상할 것 없어요. 제가 치운 거니까.”
세이나는 침대의 프레임을 꽉 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색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방은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만들었다. 도저히 이곳을 치울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방을 둘러보던 세이나는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가장 먼저 방을 나섰다.
“이곳은 괜찮네요. 나가죠.”
“옆방도 갈까요?”
“거긴…….”
디온이 서재와 침실 사이에 있는 작은 방을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보던 세이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하죠.”
세 사람은 1층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모든 것이 먼지 없이 깨끗했다.
지친 발걸음들이 나무 계단을 올랐다. 2층의 방은 모두 3개였다.
세이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문을 열었다.
커다란 창문 아래, 낡은 나무 책상이 자리하고 있다. 창문 너머에는 엘렌의 꽃집이 보인다.
모두 잘 정리된 다른 장소와 달리, 책상 위는 여러 책과 종이들로 어지러웠다.
그러나 두 남자의 시선이 먼저 꽂힌 곳은 바로 그 엉망진창인 책상은 아니었다.
“무기네요?”
왼쪽 벽면, 온갖 종류의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단검과 장검, 그보다 훨씬 검신이 크고 넓은 것, 휘어져 있는 것까지 아주 다양했다.
무기상을 방불케 하는 광경에 두 남자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구석에는 갑옷들도 있었다.
“아버지의, 수집품, 이에요.”
2층에 오른 후 세이나는 거의 탈진에 이르고 있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살짝 풀어 헤친 옷깃을 열심히 흔들어 보았지만 더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관리도 잘되어 있군.”
라샤드가 들고 있던 마정석을 벽 쪽으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빛을 받은 검신은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그가 검날이 휘어진 무기에 대해 물으려고 몸을 돌렸을 때였다.
어느새 디온이 무릎을 접고 세이나를 흔들고 있었다.
“세이나, 괜찮아요?”
세이나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며 금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녀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디온, 또 마법을 썼나요? 저기 오아시스가 있는데…….”
“틀렸어. 완전히 맛이 갔군.”
“차가운 물이라도 끼얹어 드릴까요?”
“청소하기 싫어어…….”
“싫다는 뜻으로 대충 알아듣겠습니다.”
그녀의 눈이 다시 감겼다. 디온은 세이나의 얕은 숨소리를 확인한 후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우리끼리 살펴보도록 하지. 빨리 마물을 잡는 게 세이나를 돕는 길이다.”
서재는 꽤 넓었고, 그들이 각자 들고 있는 작은 마정석으로 주변을 모두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빛이 닿지 않은 부분은 모두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두 남자는 자연스럽게 양쪽으로 갈라져 방을 둘러보았다.
“찾고 싶어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약점이 뭐라고 했었지?”
“그러고 보니 못 들었네요.”
그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세이나는 눈을 내리깐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일단 찾아보죠.”
그들은 다시 각자 하던 구역으로 고개를 돌렸다.
라샤드는 마정석을 천천히 움직이며 찬찬히 살폈다.
반질반질한 날붙이들 위로 주황색 빛이 차례로 내려앉았다. 진열대의 아래, 심지어는 갑옷의 뒤까지도 살폈으나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디온이 찾고 있는 곳은 책장 쪽이었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규칙 없이 쌓여 있다. 그 주변에는 종이들이 흩어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세심하게 살피던 그의 눈에, 문득 어떤 종이가 들어왔다. 가까이 살펴본 그것은 지도였다.
“이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흔한 지도였다. 지역은 제국의 동쪽, 다른 나라의 국경으로 향하는 길이 펼쳐져 있다.
검은 동그라미는 그 길목 중 하나에 표시되어 있었다. 그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은 커다란 물음표였다.
“세이나? 이 지도는 뭡니까?”
그리고 라샤드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자, 디온이 세이나가 있는 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쪽 손에는 웬 종이를 들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닿은 채 완전히 굳어 있다.
눈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돌연 불길한 예감이 라샤드의 목덜미를 스쳤다.
그는 천천히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야가 움직이는 순간이 몹시 길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서재의 입구가 보였고.
라샤드는 혼란에 빠졌다.
“각하. 저도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너도?”
“엄청 덥나 봐요. 그렇죠?”
“그래, 아주 더워서 그렇지.”
“얼마나 더우면 이런 게 다 보일까요.”
“그,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이거…….”
디온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물었다.
“환각. 맞죠?”
서재의 입구. 그곳에는 아직 세이나 로힐이 있었다. 지쳐 눈을 감은 채, 완전히 넋을 놓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명백하게도,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라샤드는 공중에 떠 있는 세이나를 보며 충격에 찬 신음을 흘렸다.
마치 보이지 않은 누군가 그녀를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다리는 여전히 바닥과 닿아 있지만, 상체는 완전히 일어난 상태.
“이게 대체 무슨…….”
그리고 그때, 세이나의 머리가 사라졌다.
라샤드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세이나의 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말 그대로 목만, 뭔가가 그 위를 가린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빨려 들어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기이한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졌던 머리가 살짝 다시 나타나더니 뭔가가 그 위에서 튀어나왔다.
길고 붉은 그것은 순식간에 세이나의 다리까지 내려왔다.
라샤드가 그 정체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마물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꿀꺽.
마물이 세이나를 완전히 삼켰다.
“세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