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28화 (28/179)

#28

문은 그 후로도 계속 열리지 않았다.

디온이 하는 것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서 세이나가 현관문을 잡았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고, 이어서 세이나의 부름을 들은 라샤드가 와서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이나는 뒷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곳의 손잡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창문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걸개는 열려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그대로 얼어붙은 것 같다.

“이게 도대체 왜…….”

“마침 잘됐네요. 자고 가겠습니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차마 말도 못 잇고 있는 와중에, 디온이 속 편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 어느새 거실로 돌아와서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 있었다.

세이나는 또 한 번 그를 꼬집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혹은 걷어차 버리거나!

“내일 아침에는 다 열리겠죠.”

아무래도 그의 머릿속은 ‘모든 문이 안 열리는 이상 현상’ 쪽보다는 ‘오, 안 가도 되잖아?’가 더 우위에 있는 듯했다.

그러나 세이나와 라샤드는 아니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세이나.”

고작 한마디 이름뿐이었지만 그 부름이 뜻하는 바는 너무 명확했다. 세이나는 바로 제 바지 주머니 안으로 손을 가져갔다.

낡은 회중시계는 이미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에 손이 닿는 순간 세이나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충격 속에서 열어 본 회중시계의 안. 붉게 물들어 버린 보석이 달칵거리는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말도 안 돼. 말도…….

“마물이…… 맞…… 맞아요.”

“이런 종류도 있나?”

“자, 자, 잠깐만요. 생각 좀 해 볼게요.”

세이나는 회중시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반응, 이 색, 저번과 같이 마물이 확실하다.

하지만 머리는 저번과 달리,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 집에 마물이 있다고?’

꿈에서조차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단 한 번, 상상해 본 적은 있었다. 뒷집에서 마물을 잡았을 때.

설마 내 집에서도 저런 게 나오진 않겠지.

그런 걱정에 원인을 찾아다닌 것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닥치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왜? 왜 내 집에?

‘침착해. 세이나 로힐. 넌 헌터라고.’

세이나는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고도 진정이 되지 않아, 꽉 물었던 입술을 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회중시계는 그 와중에도 달칵거리고 있었다.

그 작은 소음이 그녀의 정신을 붙들었다.

세이나는 거침없이 제 앞의 창문으로 주먹을 뻗었다.

쿵!

디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말없이 그녀를 기다리던 라샤드도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두 남자의 경악에 찬 시선을 받는 여자는 몹시 태연하기만 했다. 그녀는 붉게 변한 손을 한 번 흔들며 중얼거렸다.

“안 깨지네요.”

분명히 힘껏 내리쳤다.

이 정도 힘이면 창문이 깨지고도 남았을 텐데, 창문은 흠집 하나도 없이 멀쩡했다.

세이나는 결국 최악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갇혔다.’

두 가지씩이나.

‘마물이 맞아.’

보통의 마물들은 도시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기가 짙게 깔린 곳들을 선호했다. 힘이 강한 마물일수록 더욱 깊숙한 곳에 영역을 펼치고 둥지를 만드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사람의 영역으로 내려오는 경우는 두 가지. 마물 간의 싸움에서 밀려 나온 약한 종이거나, 배가 고픈 경우.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수도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수도는 신전도 있고, 결계도 있다.

마물은 절대로 수도의 결계를 넘을 수 없다.

‘생각. 생각해 봐.’

머릿속에는 이미 그동안 직접 겪고, 들어 왔던 마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도 많고, 떠오르는 순서도 산발적이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이어 가며 상황을 정리했다.

지금, 이 집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갇힌 것과 다름없다. 마물이 보통 무언가를 가둬 놓는 건 당연히 먹기 위해서다. 그들은 마물의 식량이다.

가둔다.

하지만 이 방식을 쓰려면 제약이 크다. 창문과 달리 벽은 때려도 흠집이 나는 걸 보면, 출입구만 막아 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물은 탁 트인 장소에서 거대한 결계를 만드는 종류는 아니다. 아마 좁은 장소, 오가는 출입구가 있는 곳.

동굴?

아니면 던전? 미로?

‘혹시…….’

그때, 디온이 말했다.

“그런데, 여기 너무 덥지 않습니까?”

세이나가 무언가를 떠올린 것은 바로 그다음 순간이었다.

‘엘리엇 라프만!’

* * *

깊은 밤. 거센 가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시간.

라샤드는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졌다.

셔츠의 단추를 풀자 그의 단단한 목선이 드러난다. 세 번째 단추에서 그는 손을 멈췄다. 낮은 신음을 뱉은 후에 한숨을 뱉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긴 손에는 땀이 흠뻑 묻어 나왔다.

또다시 뜨거운 한숨. 그러나 답답함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맞은편의 사정도 그와 같았다.

양팔의 셔츠를 다 걷어 올린 디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냉랭한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잠깐 보였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창백해 보였다.

숨 막히는 더위였다.

깊은 밤. 쌀쌀한 바람이 연이어 창문을 때리는 시간.

그러나 어떤 집에 ‘갇혀’ 있는 두 남자는 극도의 더위를 맛보고 있었다.

마치 뜨거운 화덕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뜨거워진 공기는 불길한 냄새마저 섞여 있는 듯했다.

라샤드는 턱을 타고 흘러내린 땀을 한 번 더 훔쳐내었다.

시선을 돌린 곳에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은 여자가 있었다.

세이나 로힐은 말 그대로 익어 가고 있었다.

“살려 줘어…….”

“괜찮아?”

“죽을 것 같아…….”

불과 5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변의 온도는 도저히 가을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더운 데다가 습도도 높았다. 한증막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찜통에 들어 있는 만두의 심정을 느끼며, 세이나는 가죽 부츠를 벗어 던졌다.

손님을 둘이나 앉혀 두고 하기엔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그녀를 탓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물의 짓이라는 거지?”

“네에……. 사람을…….”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침을 꿀꺽 삼켰다.

끔찍한 열기. 입술이 바짝 마르고 숨쉬기조차 답답했다.

‘아, 진짜 죽을 것 같다.’

마물의 정체를 알아내자마자,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올랐다. 열기에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 세이나는 곧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위에 약한 그녀였다. 남자가 둘이나 옆에 있는 상황이라 옷을 벗어 열을 식히는 방법도 불가능했다.

“사람을 찜통 속에서 익혀서 잡아먹는 놈이에요. 희귀종이고.”

“희귀종?”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그 녀석 딱 하나밖에 없어요. 하지만 도심은 물론이고 이쪽 지방에 살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희귀종인데도 알고 있었군?”

“그……. 읽었어요.”

엘리엇 라프만의 야설에서.

세이나는 마지막 말을 꾹 삼켰다.

그때 그 책을 읽어 둔 게 도움이 될 줄이야.

엘리엇 라프만의 연구는 ‘몽마’만 포함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신계 능력을 사용하는 모든 마물들에 대한 내용을 종합해서 정리해 두었다. 거기에는 오늘과 비슷한 사례도 적혀 있었다.

동굴에서 죽은 사내의 이야기였다. 출구는 멀지도 않았고, 날씨는 오늘과 같은 가을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곳에서 쪄 죽었다.

엘리엇은 사내에 대한 내용을 연구에 정리해 넣었다. 그다음 페이지에는 뒷집에서 발견된 마물이 있었다.

그 말인즉.

두 마물은 같은 종류라는 것을 의미했다.

“저번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공작님?”

라샤드가 세이나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 모습이 얄미워 째려봤으나 곧 더위에 지친 세이나는 다시 몸을 좀비처럼 늘어뜨렸다.

“어쨌든, 이대로 있다간 열사병으로 죽을 거예요.”

“안 되겠습니다.”

“네. 안 되죠. 어떻게든 빨리 잡아서……. 응? 디온? 뭐 해요?”

디온은 양쪽 팔을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있었다. 올라간 소매 아래로 얼굴빛과 마찬가지로 하얀 피부가 보인다.

큰 손에 걸맞게 제법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세이나는 그의 오른팔에 그려져 있는 검은 문신을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순간, 허공에 물줄기가 나타났다.

“어……?”

열에 의한 착시현상은 아니었다. 여러 번 눈을 깜빡였음에도, 허공에 나타난 기이한 푸른색 곡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디온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로 뭉쳐진 물줄기들은 곧 하나로 뭉쳐져 커다란 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뚝.

컵 위로 떨어졌다.

몇 분 전, 더위에 견디다 못해 떠 왔지만 금방 비워 버린 바로 그 컵이었다.

디온은 망설임 없이 컵을 입가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그림 같은 턱선을 가로지른 땀이 이윽고 그의 목 위로 흘러 내려왔다. 눈을 반쯤 감고 물을 삼키는 그의 모습은…….

전생에 보았던 청량음료의 광고 같았다.

물을 해치운 디온이 세이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다시 문신이 그려진 팔을 움직였다.

새로운 물이 채워졌다.

“드세요.”

“와! 마법사였어요?!”

“잘하진 못합니다.”

들어 올린 잔은 놀라울 정도로 차가웠다. 세이나는 급히 그것을 들이마셨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차가운 물이었다.

“하, 살 것 같다……. 고마워요, 디온.”

“마법을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라샤드도 물을 단숨에 삼켰다. 입가를 닦아 내는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가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

디온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공작님을 위한 불덩이는 있습니다만.”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상황을 더 잘 견뎌 낼 수 있는 방법 말이야. 얼음을 만들어 낸다든지…….”

“이렇게 더운 곳에서 만들어 봤자 금방 녹을 겁니다. 생각이 퍽 단순하시네요.”

“너…….”

라샤드가 미간을 잔뜩 좁혀 그를 노려보았다.

디온은 거만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발목을 허벅지 위에 올린 자세가 불량스럽다.

세이나는 엘리엇 라프만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동굴에서 죽은 사내. 그의 옆에는 3구의 시신이 더 있었다.

더위에 미친 자들이 서로를 찔러 죽인 결과였다.

“간곡히 부탁하시면 한 잔 더 못 드릴 것도 없습니다만.”

디온의 말에 라샤드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