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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23화 (23/179)
  • #23

    인사한 직후 거침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이곳에서 없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떠나도 아무도 붙잡지 않으리라.

    오늘 같은 상황이 벌어질 줄은 엘렌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엘렌을 찾아야 해.”

    세이나도 그랬다.

    ‘유클레스 후작이 정말 엘렌을 찾고 있네?’

    살짝 그들을 훔쳐보려던 세이나는 바로 디온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녀는 여전히 한 손으로는 세이나의 손목을, 다른 쪽으로는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움직이지 마.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추적 중에 있습니다.”

    “엘렌과 닮았다는 꽃집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디온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이 움찔 떨렸다.

    이후 두 사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제 부하를 보내 확인해 봤습니다만…….”

    그 말을 하는 이는 젊은 사내였다. 세이나가 뒤를 따랐던 보라색 머리의 소유자다. 말끝을 흐린 그는 조금 생각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달랐습니다.”

    “어떻게?”

    “처음에는 친절하게 대했는데……. 두 번째부턴 빗자루로 때리며 내쫓았다 하더군요.”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몸을 숨기고 숨죽이고 있는 두 사람을 비롯하여 대화를 나누던 두 남자 역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특히 중년 남성 쪽은 꽤 충격이었는지 무거운 신음도 흘렸다.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 전에, 젊은 사내가 먼저 소리를 내었다.

    “제 부하더러 변태라고 했답니다.”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네 부하가 뭘 잘못한 건가?”

    “그냥 꽃을 사려고 했을 뿐이랍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화를 냈다더군요.”

    “그 무슨…….”

    그의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친 새끼.”

    “뭐?”

    “다음에 찾아갔더니, 그렇게 불렀다더군요.”

    “엘렌이?”

    “미친 XXX XX라고. 인생 똑바로 살라고…….”

    “욕을 했다고?”

    “예. 아주 다채롭게.”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중년 남성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젊은 사내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살짝 숙인 뒤통수에서 그의 걱정이 엿보인다.

    그리고 세이나는 디온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쉿! 제발!’

    그의 웃음은 이미 ‘빗자루’에서 조금 위험한 상태였다.

    ‘변태’에서는 한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본인이 잘 참아 내었다. 그리고 ‘인생 똑바로 살라.’에서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욕’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너지?

    라고 묻는 눈에 세이나는 거짓말하는 아이처럼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그러자마자 바로 위에서 “풉!”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이 심각한 상황에 웃음이 나오나 싶어 홱 노려보니 이미 웃음은 터진 뒤였다. 다음 순간, 세이나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뻗었다.

    ‘다채롭다.’가 들려온 바로 직후였다.

    ‘들키면 안 돼!’

    이미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그의 손 위에 세이나의 붕대 감은 손이 겹쳐졌다.

    세이나는 다른 쪽 검지를 제 입술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눈으로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너지?

    ‘네, 접니다.’

    칼만 공작의 험담을 한 바로 다음 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엘렌은 다음에 그자들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다.

    그래서 알려 줬다.

    -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생활 욕 한두 개는 알아 두는 게 좋아요.

    그때 가르쳐 준 욕이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칼만 공작한테 할 줄 알았지…….’

    내심 바라기도 했다. 여주인공한테 쌍욕을 듣는 것.

    확실히 상처 줄 방법이지 않은가.

    “미친놈이라고…….”

    “…….”

    “개 또라이 변태 XX라며…….”

    “…….”

    “구제 불능 인간 말종에 XX…….”

    “…….”

    “XX에 XXX에 XXX할 XX놈.”

    “그만.”

    중년 사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는 이상한 신음을 뱉은 뒤 낮게 말했다.

    “엘렌은 아니겠군.”

    “예. 확실히 아닙니다.”

    세이나도 그땐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응. 욕하면 엘렌이 아니긴 하지.’

    빗자루를 들고 때리면서 쌍욕 하는 로맨스 여주인공, 정말 흔치 않아.

    “아무튼 하루라도 더 빨리 찾아내야 하네. 제국 전역을 뒤져서라도 찾아내.”

    “부하들을 더 풀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말고 보고하게.”

    “예. 알겠습니다.”

    마침내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였다. 세이나는 안도의 한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자마자 발소리가 들렸다.

    유심히 귀를 기울인 그녀는 움직이는 사람이 1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뒤에 남은 젊은 청년이 말했다.

    “한 번 더 방문해 보겠습니다.”

    발소리가 멈췄다. 중년 사내가 그를 돌아보는 것 같다.

    “어딜?”

    “꽃집 말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도 좋겠지.”

    다시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사내의 것이다. 이전 소리가 바닥을 질질 끄는 걸음걸이였다면 후에 들린 쪽은 정확하고 또렷하다.

    “그런데 엘렌은 자네 얼굴을 알고 있지 않은가. 알아보고 도망가 버리면…….”

    “모습을 바꾸고 갈 생각입니다.”

    “그래?”

    두 종류의 발소리가 동시에 나기 시작했다. 반면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세이나는 그들이 완전히 멀어진 후에야 디온에게서 떨어졌다. 머리카락 아래 목덜미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상태였다.

    “하…….”

    안도의 한숨이 연거푸 흘러나왔다.

    세이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후엔 제 얼굴도 한번 쓸어내렸다. 그러자 곧, 디온의 무릎도 접혔다.

    “푸흐…….”

    그는 참았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책장에 등을 기대고, 그녀처럼 무릎을 굽힌 채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끅끅대었다. 잠깐 웃음이 멈추기도 했지만, 아주 찰나였다.

    그의 시선이 세이나에게 닿자마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이나, 정말 당신은…….”

    비웃음도, 냉소도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난 웃음이었다. 그녀는 민망한 와중에도 그의 얼굴이 순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너무 예쁘게 웃어서 그만 웃으라 하지도 못하겠다.

    “네, 마음껏 웃으세요.”

    “푸흡, 그걸…… 큽. 그걸 왜 가르쳐 줬습니까?”

    “퇴치용이죠.”

    정확히는 칼만 공작을 저격한. 하지만 엉뚱한 사람을 내쫓은 모양이다.

    “실제로 효과도 있었잖아요?”

    “네, 엄청……. 풉. 효과가 있긴 했네요.”

    그가 눈가에 맺힌 물기를 연신 닦아 내었다. 곧 또다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다려 줄 테니 진정 좀 하세요.”

    “아, 정말. 정말……. 너무 웃겨요. 너무 재밌네요.”

    “네. 너무 웃으셔서 돈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렇게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아무튼 잘 쫓아냈으니 된 거죠. 저 사람들 위험해 보이잖아요.”

    세이나는 이미 후작을 악역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대화의 분위기도 꽤 심각하지 않던가.

    어쩌면 일전에 들었던 도둑도 저들이 보낸 자일지도 모른다. 최종 목적은 도둑이 아니라 납치였을 수도 있다.

    ‘점점 집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

    공작에 마물에 보라색 머리에 후작까지. 3명과 1마리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던 세이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주인공의 옆집에 사는 것, 꽤 힘들구나.

    그 여파로 집이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원작이든 뭐든. 다 내 손에 작살나는 거지.’

    굳게 다짐하며 주먹을 꽉 쥐고 있는데, 앞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디온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손등 뒤, 반쯤 가려진 입매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다.

    바라보는 시선은 꽤 따가웠다.

    “왜 그렇게 봐요?”

    꽤 집요한 시선에 세이나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도 디온은 계속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코미디언처럼 보더니 이젠 관찰 대상인가.’

    세이나도 그를 마주 보았다. 뭐, 왜. 어쩌라고. 좋아하는 여자가 쌍욕을 하게 돼서 싫으니? 그래도 결과는 좋았잖아.

    이상한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그가 세이나를 보는 동안, 세이나도 그를 관찰했다.

    참, 다시 봐도 예쁘게 생겼네.

    “세이나랑 있으면 시간이 정말 잘 가네요.”

    그건 네가 아마 처자서 그런 게 아닐까. 세이나는 생각하기만 했다. 생각만.

    “즐겁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는 눈이 가늘게 접혔다. 세이나는 의아했다.

    오늘의 상황을 두고 ‘즐겁다’라고만 하다니. 아무래도 도련님께서는 위기 감지 능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

    곧 보라색 머리의 남자가 엘렌을 찾아올 것이다. 세이나의 머릿속에서 그는 이미 ‘납치범’이라고 커다랗게 이름표가 박혀 버렸다.

    옆집의 로맨스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착한 소녀가 납치당한다고 하면 그래도 좀 찝찝할 것 같았다.

    세이나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아무 생각 없습니다.”

    “아, 역시 아무 생각 없…….”

    무심결에 그의 말을 따라 하던 세이나가 말끝을 흐렸다. 아니, 이 타이밍에서는 ‘막아야죠.’라고 해야 하지 않나?

    “엘렌은요?”

    “아.”

    디온은 그제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세이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는 낯이었다.

    “그러네요. 엘렌을 지켜 줘서 고맙습니다. 세이나.”

    전혀 고마워하는 투가 아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녀에게 디온이 손을 뻗었다.

    “그만 갈까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몸이 움직였다. 디온이 이끄는 대로 얼결에 일어선 후에도 세이나는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아무 생각이 없지?

    ‘너 엘렌 좋아하잖아? 엉?’

    “집으로 돌아가실 거죠? 바래다 드릴게요.”

    디온이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간 옆얼굴은 상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반면 세이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뭐지? 뭐야?’

    혹시, 원작. 이미 박살 나 버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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