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9화 (19/179)

#19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먼저, 세이나가 이웃들을 진정시켰다.

노후된 집이라서 무너졌다고 하자 그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서성이던 이웃 중에는 엘렌도 있었다. 세이나는 걱정하던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세이나는 왜 여기에 있나요?”

라는 질문에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 이사를 도와 드리고 있었어요!”

엘렌은 더 궁금한 부분이 있어 보였지만 캐묻지 않았다.

그러기엔 세이나의 몰골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워하는 눈으로 세이나를 살피다 집으로 돌아갔다.

“도울 일이 있으면 꼭 말해 주세요.”

다음 방문자는 아론이었다.

공작의 연락을 받은 그는 허겁지겁 뒷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공작을 보고 한번 놀라고, 세이나를 보고 두 번, 이마에 단검이 꽂힌 노인의 얼굴을 보고 기겁했다.

다행히 그는 빠르게 차분해졌다. 정신을 차린 그가 구석에서 자루를 꺼내 왔다.

“주세요. 조사해야겠습니다.”

세이나는 의심하지 않고 자루 안에 마물을 넣었다. 하지만 공작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루 안의 끔찍한 얼굴이 아니었다.

마물을 잡고 있던 손바닥은 붉게 변해 있었다. 손바닥 전체가 화상을 입은 듯하다.

“다쳤군.”

“금방 나아요.”

세이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주먹을 꽉 쥐고 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후에도 라샤드의 집요한 시선은 그녀의 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의사를 불러야겠어.”

“이 새벽에요? 됐어요. 혼자 치료해도…….”

“아론.”

“네, 알겠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뭐라 끼어들기도 전에 아론이 집을 떠났다.

다시 둘만 남게 된 집 안, 세이나는 숨 막히는 어색함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의자 하나를 골라 그 위에 앉자마자, 공작이 몸을 돌려 거실을 떠났다.

‘뭐 하는 거지?’

기다림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이나는 공작이 가져온 물에 젖은 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 내놔.

……라고 말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할게요.”

수건을 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공작은 가만히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겁에 질려 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에게는 특유의 서늘함이 돌아와 있었다.

세이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 다시, 까칠한 검은 고양이가 그녀의 앞에 돌아와 있다.

세이나는 다른 쪽 손을 내보였다.

“어서요.”

헌터 생활을 하며 온갖 사람을 만나온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낯선 남자가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걸 두고 볼 정도로 무르진 않았다.

무엇보다 민망하지 않은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어쨌든 세이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법 긴 눈싸움이 지난 후, 세이나는 결국 물수건을 받을 수 있었다. 닦는 동안에도 앞에서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진짜 겁나 어색하네.’

손바닥이 불에 닿은 듯 화끈거렸다. 하지만 세이나는 눈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미 몇 번 겪었던 일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마정석을 터트린 자국이었다.

세이나의 몸은 마법과 완전히 상극이었다. 아주 작은 마력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다던 스크롤도 그녀는 쓰지 못했다.

단 한 톨의 마력도 그녀에겐 없기 때문이다.

마정석은 본래 마법을 더 수월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간의 몸에서 부족한 마력을 그쪽에서 함께 끌어다 쓰는 원리였다.

마력이 약한 사람도 비싼 마정석과 함께라면 그럴듯한 마법 한두 가지는 쓸 수 있다.

세이나는 그 마력을 끌어다 쓰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면 모든 마정석은 새까맣게 변하고 만다. 마정석 내부에 있는 모든 마력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마법과 상성이 좋지 않은 이들이 가끔 겪는 현상이다.

처음 그걸 알았을 땐 얼마나 좌절했는지.

하지만 세이나는 이제 자신의 특성을 다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마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간 마정석은 강렬한 빛을 발산하며 연기와 열을 뿜는다. 그리고 운 좋게도, 조금 전 잡은 마물은 ‘열’을 굉장히 싫어하는 약점이 있었다.

마정석이 터지기 직전.

마나의 흐름이 뒤틀리자 환영들이 잠시 흔들렸다. 세이나는 줄곧 마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로 마정석을 던졌다.

마물은 갑자기 쏟아진 열에 당황하며 실체화했다. 그것이 다른 마법을 쓰려 하는 순간을, 그녀는 바로 포착했다.

단 한 번 휘두른 단검은 정확히 마물의 이마 정중앙에 꽂혔다.

다음에, 바로 목을 졸랐다.

빠르게 대처했다고 생각했지만 마물의 저항은 생각보다 심했다. 그것이 일으킨 바람이 지하실을 흔들었다.

이런저런 과정에서 지하실은 엉망이 되었다. 세이나의 몰골도 엉망, 마정석을 잠깐 쥐고 있던 손도 빨갛게 변했다.

결국, 무사히 끝내긴 했지만.

아직 의문은 남아 있었다.

‘왜 마물이 수도에 나타났지?’

황제가 사는 수도에는 몇백 년 전부터 결계가 처져 있었다. 어떤 마물도 성벽의 문을 넘을 수 없을 터였다.

‘어떻게?’

세이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라샤드는 여전히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뜻밖에도,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왔다. 세이나는 수건으로 손바닥을 꾹 누르며 말했다.

“예, 헌터니까요.”

그리고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또 제법 긴 침묵이 일었다. 세이나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아, 그러니까 저건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인가?’

방금 전에도 저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말을 꺼내지 않았던가.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 또 뭐가 불만이지? 싶었다.

“빚은 갚았어요.”

“빚?”

“감옥에서 꺼내 주셨잖아요. 저 때문에 큰돈도 내셨고. 이게 60만 루펜의 도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샤드는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눈이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내저어 보인다.

“충분히.”

그리고 웃었다. 아주 살짝. 너무 미묘해서 계속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하지. 내 목숨을 구해 줬으니.”

확실히, 처음 발견한 공작 각하께서는 매우 무기력해 보였다.

예상컨대 그는 후식이었을 것이다. 이 집은 마물이 만든 거대한 감옥과 다름없었다.

그 달콤한 냄새를 맡으면 일단 술을 마신 듯 정신이 혼란스러워진다. 시야가 어지러워지고, 발밑이 흔들거리는 듯 착각이 인다. 환청은 기본.

거기다 악몽 속에서 보던 환영을 만나면 곧 패닉이다. 그때, 마물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공작은 환영 직전에 멈췄다. 유령을 너무 무서워해서 그 원인을 찾으러 가지 않은 것이, 도리어 그에게 행운이었다.

마물은 이미 다른 손가락을 먹고 있었다. 그걸 다 먹고 나서, 공작을 공격할 심산이었다.

‘그럼 다른 희생자가 있다는 건데.’

마침, 그가 말했다.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해도 좋아.”

“그럼, 마물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공유해 줘요.”

“그건 안 돼.”

그녀의 입꼬리가 바로 아래로 향했다. 그녀가 불만족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뭐든지 말하라고 했잖아요.”

“그것만은 안 돼.”

“저는 헌터예요. 게다가 이 구역 사람이죠. 바로 이웃에서 마물이 나왔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아야죠.”

“안 돼.”

“제국 수도에, 마물이 나타났어요!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그래도 안 돼.”

“이봐요, 공작님!”

공작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다. 세이나는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세이나를 마주 보며 답했다.

“말할 수 없다.”

그때, 문이 열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론이 세이나와 공작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그의 뒤에는 왕진 가방을 들고 있는 젊은 의사가 서 있었다. 세이나는 공작을 째려보다,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치료는 제 집에 가서 받겠어요.”

그녀가 홱 몸을 돌렸다. 쿵쿵, 떠나는 발걸음 소리에 화가 잔뜩 실려 있었다.

* * *

2층 창문을 통해 아래를 노려보는 눈빛이 매섭다.

‘흥, 내가 너 아니면 알아볼 데가 없을 줄 알고?’

치료가 끝난 후에도, 그리고 한숨 자고 일어난 후에도, 세이나는 짜증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모두 새벽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오래된 가구들이 빠져나가고, 망치를 든 인부들이 집으로 들어간다.

아론과 공작은 그들을 관리하며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세이나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커튼을 닫았다.

‘왜 말을 못 해 준다는 거야?’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심정은 알겠다. 수도 한복판에 마물이 나타났다는 건 지금의 결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였다.

신문에 대서특필될 만한 일이다.

한번 빚어진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밀로 하고 원인을 찾아,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었다.

칼만 공작은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도 이 사건의 관계자라고.’

그녀는 마물을 직접 대면하고, 제 손으로 죽인 당사자였다. 게다가 그 일이 벌어진 곳은 그녀의 집 바로 뒤였다!

불안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다. 이번에는 꽤 쉬운 상대였다. 하지만 다음은?

‘원인을 알아내야겠어.’

세이나는 그럴듯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우며 외투를 챙겨 입었다.

시끄러운 뒤쪽 골목과 달리, 그녀의 집 앞은 한적했다. 세이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로 엘렌의 꽃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노파 1명이 지팡이를 짚고 꽃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문이 쉽게 열리는 걸 보니 안에는 당연히 엘렌이 있을 것이다.

‘엘렌에게도 알려야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를 재촉한 것은 시간이었다. 마침 곧 점심시간이다. 사적인 일로 누군가를 만나기엔 썩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세이나는 이런 문제에서 도움을 받을 이들을 몇 알고 있었다.

확신하건대, 공작은 헌터라는 직업을 얕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막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불현듯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이나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접근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적잖게 당황했다. 생각이 너무 깊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가,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걸 느끼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손목이 붙잡혔다.

단단한 힘이 붕대가 감겨 있는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세이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떠 확인한 앞에는 키가 큰 사내가 1명 우뚝 서 있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다쳤네.”

디온 프라벨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