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6화 (16/179)
  • #16

    우스운 질문이었다.

    ‘아, 죽었으면 대답을 못 하지.’

    그리고 어리석은 질문이기도 했다.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형체에는 분명, 움직임이 있었다.

    세이나는 그의 떨리는 어깨를 보며 여러 번 눈을 깜빡거렸다. 검은 머리칼. 검은 옷. 넓은 등. 하지만 아직도 확신은 없었다.

    ‘내가…… 헛것을 보나?’

    제 귀를 틀어막은 인영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덜덜 떨고 있었다. 누가 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세이나는 의심스러웠다.

    ‘그’ 공작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공작님?”

    “소리, 소리가…….”

    까드득. 까드득. 가열 차게 들려오는 소음 속 두 사람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세이나는 이제 다른 가설을 떠올려 보았다.

    ‘공작은 여기에 없고 그의 쌍둥이 동생이 여기에 있다.’ 아주 합리적인 가설이었다.

    세이나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저기요.”

    “젠장, 그 여자야. 그 여자가…….”

    “공작 각하? 아니, 동생분……?”

    “어떻게 해야…….”

    “동생……분이…… 아닌데?”

    “내가 아니야, 내가…….”

    “이봐요! 공작님! 라샤드! 정신 차려요!”

    그의 어깨에 닿은 세이나의 손길이 거칠어졌다. 목소리도 더욱 커졌으나 공작은 한 번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세이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휘두르기 전, 잠깐 생각했다.

    ‘어, 이게 복수인가?’

    짜악!

    세이나의 손바닥이 라샤드의 등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 멍청아!”

    우렁찬 외침이 집을 크게 울렸다. 까드득. 그 소음마저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드디어 공작과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깜빡. 깜빡. 그의 붉은 눈이 정확히, 세이나를 찾아냈다. 동시에 그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넌…….”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마침 잘 왔군.”

    “네?”

    벌떡 그가 일어섰다.

    세이나는 당황하며 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를 때리기 위해 가까이 서 있던 탓이다.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상황에서도 공작은 거침이 없었다.

    늘 차갑던 그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기 시작했다. 열띤 분노가 머리 위에서 쏘아 내려왔다.

    “이 소음.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았지? 이 거리에 이런 게 있다면 있다고 미리 말해 줬어야지!”

    “미리 말하다니, 언제……. 엑, 설마 처음 만났을 때?”

    “젠장, 이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혼자 남지 않았어, 너야? 네가 낸 건가?”

    “내가 이런 소리를 왜 내요!?”

    “호두라도 깐다든지!”

    “누가 남의 집에서 이 야밤에 호두를 까요!”

    ‘이 멍청한 인간아아아!’까지 쏘아붙여 주고 싶었으나.

    아직은 티끌만큼 남아 있는, 예의범절이 그녀의 혓바닥을 잡아당겼다. 저건 공작이야!

    세이나가 그의 신분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던 찰나를, 괴상한 소리가 파고들었다. 까드득. 까드득. 세이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두통을 느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빨리 저 문제를 해결하러 가야 했다. 그렇게 막 생각하며 외투의 품속을 뒤지고 있는데,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저건 대체…….”

    “글쎄요, 유령일 수도 있고?”

    순간 라샤드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세이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외투 주머니들을 뒤지던 그녀는 곧 작은 마정석들을 발견해 냈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소음이랑 향기라면, 역시 그것이겠지.’

    유령은 그냥 무심결에 한 말이었다. 그녀가 단검을 고쳐 쥐었다.

    “찾으러 가 보죠.”

    “차, 찾다니?”

    “소리가 가까워지는 쪽으로 걸어가면 돼요.”

    “지, 진짜 유령이면 어쩌려고?”

    세이나는 픽 웃었다.

    “세상에 유령이 어디 있어요?”

    “방금 유령일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그냥 농담인데.”

    “농담이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라샤드는 미처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줄곧 다른 곳을 향해 있던 세이나의 두 눈이 라샤드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화가 나서 따져 묻고 있던 차라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충분한 거리. 충분한 시력. 그리고 막 마정석을 부딪쳐 이젠, 충분한 빛도 있었다. 세이나가 조용히 물었다.

    “공작님. 혹시 유령 무서워하세요?”

    라샤드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세이나는 마정석을 들고 1층 곳곳을 돌아다녔다. 뒷집은 그녀가 밖에서 파악한 대로 넓지 않았다. 막 이사를 떠난 곳이라 가구도 적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가 남는다.

    2층과 지하.

    그녀는 일단 2층부터 뒤지기로 했다. 계단에 오르자마자 끼익, 하는 소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따라올 거예요?”

    라샤드는 이번에도 표정으로 답했다. ‘혼자 있기 싫어!’

    “아, 예……. 그럼 따라오시든가.”

    열심히 이 방 저 방을 살폈지만 역시 수상한 기척은 없었다. 2층 가장 안쪽 방에서는 소음이 아예 들리지 않기도 했다.

    위풍당당하게 지하 감옥에서 걸어 나오던 공작 각하께서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문을 열 땐 이랬다.

    “엽니다?”

    “자, 잠깐만 마음의 준비를 좀…….”

    “열어도 된다고요?”

    “잠깐! 잠깐만!”

    “우아아아! 연다아아!”

    “윽! 잠깐……!”

    놀랍게도, 위엄 있는 공작 각하께서는 유령을 미치도록 무서워했다.

    그는 문을 열 때마다 아이처럼 놀랐다.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세이나의 어깨를 덥석 잡을 때도 있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는 민망함에 시선을 피했다.

    그게, 너무 웃겼다.

    “큽!”

    처음엔 놀리는 건가 싶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못 가겠으니 네가 알아서 다 조사해 와!’라고 하면서 시켜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착실히 세이나의 뒤를 쫓아왔고, 작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헉!” “큽!” “흑!” “윽!” 따위의 놀라움의 감탄사 4종 세트를 내뱉었다.

    세이나는 그에게 쉽게 이 소음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 줄 마음이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안에 아무것도 없네요. 정말 다행이죠?”

    라고 물을 때마다 물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세이나는 웃음을 꾹 참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럼 다음 방!”

    그렇게 즐기다 보니 어느덧 집을 다 둘러볼 만큼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제 남은 곳은 단 하나였다.

    “정말 들어갈 생각인가?”

    지하실 입구에서 라샤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다시 확인한 그의 안색은 정말 좋지 않았다.

    세이나는 자신이 앓던 감기가 혹시 공작에게 옮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들어가야죠. 원인을 찾아야 잠을 잘 거 아니에요.”

    “하지만…….”

    “각하는 여기 계세요. 혼자 내려갈게요.”

    “그럴 순 없어.”

    “왜요?”

    “유령이 아닐 수도, 있으니.”

    세이나는 빤히 그를 살폈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그러니까, 유령이 아니라 지하실에 사람이 있다면 세이나가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세이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세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높은 키. 굵은 팔뚝. 확실히 그는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세이나는 다시 그의 속내를 파악했다.

    들어갈 거야? 들어갈 거니? 들어갈 거지? 응, 알겠어. 네 말은 알겠는데. 꼭 들어가야겠니?

    들어가지 말자, 들어가지 마! 안 들어가겠다고 말해!

    아, 너무 재밌다.

    “걱정 마세요. 전 프로 헌터랍니다. 절대로 쉽게 당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혼자는 위험해.”

    “만약 제가 당하거든…….”

    세이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크흡! 흐느낌을 참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새어 나왔다.

    세이나는 제 눈을 가리며 애처롭게 말했다.

    “제 집은, 공작 각하께서 가져도 좋아요.”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들과 달리, 소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여섯 번째 까드득이 지난 후.

    세이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너!”

    “엄청 놀라셨네! 아, 죄송. 풉! 농담이에요, 농담!”

    “이 상황에 지금 농담이 나오나!”

    그럼 이런 상황에 놀리지 언제 놀린담?

    그녀가 장난스럽게 눈앞에 손을 저어 보이자 라샤드의 미간이 대번에 좁아졌다. 겁 많은 공작님이 사라지고 원래의 신경질적인 눈이 돌아와 있다.

    세이나는 그에게서 잠시 공포가 사라진 것을 보고 빙긋 웃었다. 역시, 분노는 겁을 이기기 가장 좋은 감정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건 제 전문 분야니까.”

    “전문……?”

    라샤드가 제대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휘익 문이 열렸다. 그리고…….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더욱 선명해진 소음이 해일처럼 밀려와 고막을 습격했다. 라샤드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울림이 큰 지하실에서부터 시작된 소리는 단숨에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 상황에서 그가 세이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제대로 지켜 드릴게요.”

    세이나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은 채 지하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에게 보였던 의기양양한 미소를 입에 걸친 채, 어둠을 쏘아보았다.

    그녀가 줄곧 손에 쥐고 있던 단검에 푸른빛이 스며든 그때부터.

    갑자기 소음이 점점 느려졌다.

    까드득. 까드득.

    까드득.

    까득. 까드…….

    뚝.

    뭔가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마지막으로 집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세이나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마정석을 앞으로 뻗자 낡은 계단이 나타났다.

    어둠에 잠겨 있는 그것은 언뜻 마귀의 소굴처럼 보였다.

    “이제 돌아가지.”

    세이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라샤드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드물게 작은 미소도 입에 걸고 있고, 안색도 한결 편안해졌다.

    “소음이 멈췄으니 해결된 게 아닌가. 문을 닫고 돌아가서 내일 낮에…….”

    그러나 또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세이나의 발이 먼저 움직였다.

    ‘뭐래.’

    세이나는 그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악에 휩싸인 목소리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이, 이봐! 집주인! 어디 가…… 아니지? 설마, 정말 들어가는…… 이봐! 집주인! 집주인! 세이나!”

    거의 절규였다.

    “세이나아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