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4화 (14/179)

#14

세이나는 곰곰이 오늘 일을 회상해 보았다.

모험가 협회부터 감옥까지. 꽤 바쁜 하루였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녀가 아직 하나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치지도 않았다.

바로 저 남자 덕분에.

‘역시 남주 후보인가,’

라샤드 칼만은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말투가 좀 고압적이고, 첫인상이 엉망이라 그렇지. 남주인공을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원작은 어땠을까.’

공작이 이 집을 사고, 엘렌과 친하게 지냈을까?

그럼 나는…….

‘방해꾼?’

세이나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젠장, 원작 따위! 알 게 뭐람!’

그리고 그 생각은 다음 날 아침 흔들리게 되었다.

* * *

창문을 타고 넘어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세이나는 눈을 비볐다.

아침.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무자비하게 그녀의 시야를 공격했다.

세이나는 연거푸 눈가를 매만지며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겨우 확인한 시계는 역시, 평소 기상 시간보다 일렀다. 그녀는 기시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또 뭐야…….”

저번과 달리,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조금 들리긴 했다. 그러나 저번처럼 아주 많은 수도 아니었다. 그보다 거슬리는 건 웅성대는 소리였다.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상황을 파악한 세이나는 대충 머리를 묶어 올린 후 옷을 갈아입었다. 잠에서 덜 깬 몸으로 휘적휘적 1층으로 걸어가니 창문 너머에 인파들이 보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또 왜. 뭔데.

전생을 자각한 후로는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다. 이렇듯 또, 복잡한 거리를 보니 두통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시해?’

하지만 궁금증도 전혀 없진 않았다.

결국 세이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펼쳐진 광경은 예상대로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끔찍해라…….”

“어디? 어디? 나도 볼래!”

“쉿! 엄마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글쎄. 저 집에서…….”

가지각색의 목소리가 거리에 가득하다. 세이나는 집 앞에 있는 이들 중 낯익은 얼굴들을 몇 발견했다.

모두 이웃 주민들이었다.

“기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똑같은 말만 하죠. 아직 수사 중이라고. 최근 좀 조용하다 싶었더니 또 이렇게 사고가 나네요. 정말 이사라도 가야 할까.”

“범인은요?”

나른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 이상한 단어가 하나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범인? 그 말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망갔다고 들었는데?”

“잡혔다고 하지 않았어?”

“기사들이 제압했다고 들었어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있는 걸, 뒤에서 확…….”

거기까지 듣고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세이나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 인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갔다.

“저, 저기.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저 집에 도둑이 들었대요.”

“도둑?!”

이웃 여자가 왼쪽으로 고갯짓했다. 줄곧 사람들이 보고 있는 방향이었다.

그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세이나는 쉽게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가 어려웠다.

일순 두려움이 일었다. ‘설마.’

바로 그때였다.

“꺄악! 세상에!”

옆에 선 소녀가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음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한 아낙이 제 아이의 눈을 황급히 가렸다. “보면 안 돼!” 그리고 세이나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처음 보인 것은 쓰러져 깨진 화분이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랬다. 이어서 박살이 난 창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음은 그 너머, 안쪽이었다. 제복을 갖춰 입은 치안대 기사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박힌 곳. 이웃 여자가 가리킨 곳. 막 세이나가 확인한 그곳에는.

엘렌의 꽃집이 있었다.

“비켜 주세요! 급합니다!”

세이나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꽃집의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덩치가 큰 기사 1명이 그곳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를 싣고 있는 들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세이나의 두 눈에 불안함이 깃들었다. 설마.

‘엘렌?’

* * *

꽃집에 도둑이 들었다.

소식은 빠르게 거리에 퍼져 나갔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들은 예외 없이 모두 탄식했다.

꽃집은 이 거리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소녀는 짧은 시간 안에 이웃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걱정하며 그녀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한 여인은 “못된 놈!”이라며 직접 때려 주겠다고 빨랫방망이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주민들에게 사건을 설명한 기사는, 안타깝게도 도주 끝에 그를 놓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주민들의 불안은 고조되었다.

그럼 꽃집 소녀는? 엘렌은 괜찮은 거야?

“아무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죠?”

엘렌은 방긋 웃으면서 말했지만, 세이나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것 맞나요?”

“네. 사라진 물건들도 없었어요. 아, 그 기사님이 좀 걱정되긴 하네요. 엎질러진 물 위를 지나가다가 제대로 넘어지셨거든요. 그대로 기절하셨어요.”

“아니요. 엘렌이요. 다친 곳은 없어요?”

“네에, 없어요. 바보처럼 곤히 자고 있었지 뭐예요. 도둑도 살펴보고 훔쳐 갈 게 없으니 바로 가 버렸나 봐요. 유리창을 뚫고 나가 버릴 줄은 몰랐지만…….”

엘렌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세이나는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유리창 수리에 한창인 인부들이 거기에 있었다.

두 사람은 지금 엘렌의 집에 있었다.

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치안대의 기사들은 빠르게 집을 떠났다.

다친 이도 없었다. 엘렌은 멀쩡했다. ‘피가 뚝뚝’이라든가, ‘끔찍하다.’라는 말은 사람들의 추측에 부풀려진 소문에 불과했다.

‘망할, 정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아.’

세이나는 연거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엘렌의 얼굴을 보고 난 후에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묘한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도둑 건은 이벤트였을까?’

만약 공작이 세이나의 집에 살았다면, 엘렌의 비명을 가장 먼저 들은 이는 공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짠! 나타나서 구해 주고, 두 사람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새벽에는 아무도 엘렌을 구해 주지 않았다. 세이나는 감기약을 먹고 거의 기절해 있었다.

“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후후.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엘렌은 미소를 흘리며 다시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세이나는 그녀의 희고 가녀린 손목을 주시했다. 도둑은커녕, 벌레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저기, 엘렌.”

“네?”

“혹시, 이사 생각은 없어요?”

“이사……라뇨?”

“안 좋은 일도 생겼고……. 이 거리는 치안이 안 좋으니까. 여자 혼자 살기는 좀 위험하잖아요.”

엘렌은 가만히 세이나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나는 작은 희망을 품으며 엘렌에게 낮게 말했다.

“혹시 어디 이사 갈 곳 없나요?”

대답은 매우 빨랐다.

“네. 없어요.”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였다. 세이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공작가라든가. 공작가라든가. 공작가 있잖아.

‘아, 내가 가지 말라고 했지.’

세이나는 그제야, 왜 이 넓은 수도에, 왜 하필이면 이 거리에 여주인공이 떨어졌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동네는 치안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사건도 많다.

즉, 여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 자주 생긴다는 뜻이었다. 남주인공 후보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

다른 후보들은 모르겠으나 공작은 옆집에서 그녀를 지켜 주는 역할이었을 테다.

그런데 옆집에 머물지 못하니, 여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등장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 말해, 나 때문에 엘렌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뜻……?’

세이나는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원작. 제대로 꼬여 버린 게 틀림없다.

그럼 엘렌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걱정하지 마세요!”

한참 고민에 빠져 있는데, 엘렌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엘렌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 이 거리가 너무 좋은걸요.”

“좋, 좋다고요?”

“오늘도 너무 감동받았어요. 저, 사실 잘 적응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이 와서 저를 걱정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건, 세이나도 많이 놀랐다. 오늘 집 앞에 모여든 이들은 구경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울 뻔했어요. 바보같이.”

엘렌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하늘색 눈동자가 당장 눈물을 떨어트릴 듯 젖어 있다.

그때, 세이나의 다른 쪽 손이 그녀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엘렌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바보가 아니에요.”

“……네?”

세이나의 손이 한 번, 가볍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았다.

“운다고 바보면 세상 사람 다 바보지. 엘렌은 잘 적응하고 있어요.”

“…….”

“어쩌면 나보다도. 저는 이웃들 이름도 잘 몰라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도, 엘렌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이나는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엘렌의 집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뒷문이었다. 세이나가 엘렌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날 찾아와요. 알겠죠?”

“아……. 네, 네!”

“그럼 전 이만. 급한 일이 생겨서!”

“네? 갑자기요?”

“네! 갑자기! 그럼 잘 있어요, 엘렌!”

그러고 세이나는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엘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가 떠난 자리를 한참 지켜보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역시, 좋은 사람이야.’

*

한편, 밖으로 뛰쳐나간 세이나가 향한 곳은 엘렌의 집 뒤편이었다.

그곳에서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엘렌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세이나는 지체 없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퍽! 쿵! 윽! 상황이 정리되었다. 세이나는 제 발아래에 쓰러진 남자의 목을 향해 단검을 빼 들었다.

“당신,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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