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3화 (13/179)
  • #13

    칼만 공작 각하께서는 감옥에서 나올 때도 위풍당당했다.

    높은 키와 넓은 어깨. 특유의 냉담함이 서린 매끈한 얼굴은 한없이 엄숙하다. 그가 감방 밖으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 기사들의 고개가 일제히 아래로 향했다.

    감히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공작을 감옥에 잡아 두고 있었다니. 기사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들어갔다. 경력이 꽤 있는 자들은 가족을 회상하고 있었다.

    오늘 무사히 집에 들어가긴 글렀다.

    냉혈한이라 소문이 파다한 그였다. 당장 검을 빼 들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공작은 기사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기사들은 당황했다. ‘뭐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바람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공작이 급히 걸어간 방향을 확인했다.

    좁은 방의 입구. 검은 머리칼의 여자가 서 있었다.

    세이나는 공작이 무사히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완전히 회복하셨네.’

    걱정에 빠져 있던 순간이 거짓말 같다. 어찌나 씩씩한지 개선장군 같다. 그녀는 뒤로 물러서 공작이 오는 길을 열어 주었다.

    드디어 그가 좁은 방에 들어섰다.

    싸늘한 눈이 방 안을 훑었다. 테이블 하나. 의자 2개. 노인이 1명. 책임자로 보이는 기사가 1명.

    마지막으로 그녀까지 확인한 라샤드는, 다시 앞을 보았다. 집사와 기사.

    그의 입술이 열렸다.

    “아론.”

    “네, 넵!”

    부관이 황급히 그의 옆으로 튀어나왔다. 그러나 직후 방 안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무서운 얼굴의 공작 각하는 꽤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집사를 더욱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주름진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이는 하나 더 있었다.

    부관이 외쳤다.

    “호, 혼자 다니실 땐 절대로 찾아다니지도 말고, 귀찮게 하지도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넵.”

    “내가 시킨 일은?”

    “거, 거의 마무리했습니다.”

    “거의?”

    “그게……. 저, 저자가 각하를 때리겠다고 했답니다!”

    급작스럽게 화제의 대상이 된 집사는 화살에 맞은 표정이 되었다. 그가 급히 허리를 접으며 말을 시작했다.

    “고, 고, 고, 공작 각하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

    “싸우자는 건가?”

    “아뇨! 묶어 두고 때리겠답니다!”

    “모, 목숨만은…….”

    “그리고 각하께서 때린 놈은 고자가 되었답니다!”

    “사실인가?”

    다시 들어도 소름 돋게 낮은 음색이었다.

    집사는 감히 칼만 공작의 표정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세이나는 생각했다.

    저 살벌한 눈이랑 마주치면 노인네 심장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집사의 등이 점점 더 굽어졌다.

    “예, 예에.”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

    그러고 라샤드는 제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조금 뒤, 그가 선언했다.

    “내 직접 방문해서 확인해 봐야겠어.”

    “안 됩니다!”

    벼락같은 외침이 튀어나왔다. 소리를 내지른 집사는 곧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 있는 그는 세이나의 예상처럼 그대로 쓰러지진 않았다.

    집사의 고개가 아래로 향했다. 관자놀이를 스친 식은땀이 뚝, 뚝, 바닥에 떨어졌다.

    “왜? 나 때문에 피해를 보았으니 만나서 사과해야 하지 않겠나.”

    “아, 아닙니다! 도, 도련님께서 큰 충격에 모든 방문을 거절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약을 먹고 기절하고 계십니다! 아주, 아주 아프니 그렇지요! 하하하…….”

    늙은 집사는 청산유수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친히 방문하신다면 가문의 영광입니다만, 집안에 큰 환자가 생겨 마님께서도 주인님께서도 경황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큰일이니까요.”

    ‘오, 오 개소리.’

    “그러니 부,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각하께서 크게 염려하셨다는 말은 제 주인님께도 꼭 전달드리겠습니다. 꼬, 꼭이요!”

    공작의 부관이 끼어든 건 그다음이었다.

    “보상금은?”

    “전혀 주실 필요 없지요. 그럼요!”

    “하! 때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제가 나이가 드니 가끔 깜빡하기도 하고, 마, 말도 제멋대로 튀어나오곤 합니다! 지금도 보세요! 마, 막 더듬지 않습니까! 요즘 치매가 오는지 어제 일도 가물가물하고. 차, 차암 문제랍니다. 하하.”

    말을 마친 집사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슬쩍 눈을 굴려 위를 확인했다. 공작은 그때, 세이나를 보고 있었다.

    집사의 탁한 눈에 빠르게 이채가 스쳤다. 돌연 그가 외쳤다.

    “도, 돈은 저 여자만 내면 됩니다!”

    “뭐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세이나가 불같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누가 준대요?! 100만 루펜은 심하잖아!”

    “이 녀석이! 반성의 기미가 조금도 없구나! 이쪽은 가문의 대가 끊길 위기에……!”

    “내가 내 주지.”

    세이나는 다시금 충격을 느끼며 공작을 돌아보았다.

    뭐? 뭘 낸다고?

    하지만 집사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그가 씩 웃으며 재차 허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각하.”

    “싫어요! 왜 내 돈을 내 줘요?”

    신분이 훨씬 높은 공작 각하께 하기엔 퍽 예의 없는 말버릇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이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화가 난 얼굴 그대로 공작을 홱 노려보았다.

    당연했다. 100만 루펜.

    그것은 며칠 전 공작의 입에서 나온 금액이었다. 세이나의 머릿속에서 순조롭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보상금을 빌려준 공작이, 돈을 갚으라며 집을 빼앗는…….

    아주, 아주, 끔찍한 상황이.

    “절대로 돈 안 빌려요! 돈을 줄 필요도 없어! 집사님! 어서 앞장서요! 확인하러 가자고요! 진짜 깨졌는지 내가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무, 무례한 녀석! 지그음 도련님으은!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아니라니까!”

    “내가 내지.”

    “안 받아요! 자, 어서 가요! 집사님!”

    “이, 이거 놓아라, 이 무례한 녀석!”

    “같이 안 가면 나 혼자 가죠! 마르셀의 집 따위,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자, 잠깐! 거기 서지 못해?!”

    “……감방 동기는.”

    세이나가 밖으로 이어진 문을 열어젖히기 직전. 그리고 집사가 그녀의 머리를 막 잡아당겼을 때.

    또 한 번 낮은 목소리가 대기를 울렸다.

    그 낮은 음성은 이미 벌어진 난장판 속에서도 이상하게 유난히 잘 들렸다. 그가 입에 담은 단어가 특이하여 더욱 그랬다.

    세이나와 집사의 몸이 동시에 정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고개도 동시에 뒤를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는 라샤드는 다소 불편해 보였다.

    미간도 좁아져 있고, 한쪽 눈썹도 살짝 비틀려 있다. 그도 그걸 잘 아는지, 그 위를 꾹꾹 눌렀다. 붉은 눈동자가 곧, 세이나를 향했다.

    그가 손을 내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한배를 탄 것과 다름없다며.”

    “……예?”

    그리고 모든 이들이 굳었다.

    가장 정신을 차린 이는 이번에도, 보좌관이었다.

    그는 집사처럼 사색이 되어 라샤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각하. 호, 혹시 뭐 잘못 드셨습니까?”

    너무 큰 소리였다.

    “조용히 해.”

    다 들릴 만큼이나.

    * * *

    소란은 밤이 다 되어서야 정리되었다.

    공작의 의지를 확인한 아론은 빠르게 사태를 수습했다. 세이나가 차마 무어라 하기도 전에, 집사를 데리고 옆방으로 빠르게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60만 루펜’이라는 양쪽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책임자인 기사도 그에 안도했다. “이제 공작 각하께서는 석방이십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잘도 튀어나왔다.

    불쾌한 이는 세이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저만 빼고 돌아가는 자신의 일을 잔뜩 인상을 구기며 지켜보았다. 막아 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저들끼리 합의했다며 이야기를 듣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너무 황당해서 짜증이 치밀었다. 세이나는 집사의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해 치안대를 박차고 나갔다.

    발 가는 대로 무작정 걷다 보니, 문득 제 뒤를 따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칼만 공작이었다.

    ‘왜 졸졸 따라오는 거야?’

    그녀와 그의 거리는 꽤 애매했다.

    동행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미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충분히 의식할 만한 거리를 두고 그녀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몹시 거슬린다.

    의문은 오래지 않아 해소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면, 단 하나였다.

    우뚝. 세이나가 멈춰 섰다.

    “안 팔아요!”

    라샤드도 멈춰 섰다.

    세이나는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외쳤다.

    “집! 안 팔아요!”

    이상하게도 그는 당황한 듯했다. 세이나는 그것도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뜻이었군.”

    “안 팔아요, 절대로!”

    “안 팔아도 돼.”

    “거짓말!”

    전생과 현생에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사기 사례들이 그녀의 뇌리를 무수히 스쳐 지나갔다.

    호의로 주는 것이라고 해 두고, 엄청난 이자를 붙여 사람을 거지로 만드는 악덕 업자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세이나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반면, 라샤드는 맥이 풀려 있었다. 공작으로서의 위엄도, 늘 보이던 날 선 눈빛도 없다. 지금의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한숨처럼 말했다.

    “정말이야.”

    “그럼 왜 돈을 주는 거죠?”

    “저번의 일에 대한 사과.”

    “사과라면…….”

    “앞으로 집을 팔라고 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단언하는 어투였다.

    그게 믿기지 않아 세이나는 더욱 유심히 그를 관찰했다. 하지만 공작은 그녀를 피하듯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하지만 팔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와.”

    “정말요?”

    “그래.”

    “정말, 그냥 주는 거예요?”

    “맞아.”

    “왜……?”

    “그럼, 이만.”

    정신 차렸을 땐 벌써 공작이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세이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지켜보았다.

    걸어올 때처럼 떠날 때도 빠른 남자였다. 어찌나 빨리 가는지 감히 붙잡을 엄두도 못 내겠다.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 건 그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그녀는 벌써 집 근처에 있었다.

    ‘왜 따라오나 했더니. 설마 데려다준 거야?’

    마찬가지로 뜻밖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세이나는 알쏭달쏭하다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쟤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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