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2화 (12/179)
  • #12

    “드디어 나가는군!”

    맞은편의 헌터가 크게 외쳤다. 홀가분한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세이나를 겨냥한 말이었다.

    어느덧 감옥에 들어온 인원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이는 단둘이었다. 세이나는 철창을 꽉 움켜쥔 채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흘리며 걸어갔다.

    “나중에 보자고, 세이나 로힐!”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는데, 그가 문득 멈춰 섰다. 홱 고개를 돌린 그가 크게 외쳤다.

    “내일까지 있으면 면회 와 줄게!”

    “야! 꺼져! 꺼지라고!

    아오, 저걸 진짜. 분에 차서 휙 주먹을 휘둘러 봤지만, 당연히 닿을 리가 없었다.

    헌터는 몇 가지 인사를 더 남겨 준 후에야 지하 감옥을 떠났다. 잘 살아 봐. 감옥도 꽤 안락해. 집세도 안 내도 되고, 얼마나 좋아?

    ‘난 내 스위트 홈이 따로 있어!’

    대단하신 귀족과 맞서 싸워 사수한 소중한 집이다. 다름 아닌, 바로 그, 유우명한, 칼만 공작으로부터 지켜 냈다!

    “감방 동기랑도 잘 지내보고! 잘 달래 봐! 걔 그러다가 굶어 뒈지겠다!”

    “아오! 너 이리 와! 이리 와 보라고!”

    그리고 바로 그 공작 각하께서는 아직 세이나의 뒤에 있었다.

    철창 밖에 있던 기사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턱짓했다.

    세이나는 쉽게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짜 굶게 하려고? 황당한 질문이었다.

    먼저, 세이나는 그에게 음식을 권했다. 제발 먹어 달라고 뜨겁게 바라보며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공작은 구석에 등을 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빵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방금 전 헌터처럼 홱 고개를 돌렸다.

    반찬 투정하는 것도 아니고.

    세이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고한 검은 고양이는 이제, 토라진 소년처럼 보였다.

    하마터면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다.

    동시에, 물어보고 싶었다. 진짜 안 먹어? 정말? 그럼 내가 다 먹어도 돼?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안 돼. 나 때문에 들어온 사람이잖아. 놀리면 안 되지.’

    공작은 이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세이나가 말한, ‘부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라는 가능성을 곰곰이 검토해 보는 듯 보였다.

    그건 꽤 위험한 가설이었다.

    혹 공작저에 큰일이 생긴 걸까? 부관이 주인을 잊을 정도면 꽤 큰일이지 않을까. 칼만 공작의 안색은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세이나도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그녀가 몰래 기사에게 말했다.

    “저어기, 기사님. 제 동료가 말이죠. 귀족인데 빨리 빼내야 우리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요?”

    “뭐? 귀족이 왜 가만히 잡혀 와?”

    그러게 말입니다.

    “그리고. 귀족이 잡혀 있으면 누군가 데리러 오겠지. 하지만 아무도 안 오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수 쓰지 말고 조용히 있어. 너처럼 귀족이라고 둘러대고 나가려는 놈들은 숱하게 봐 왔다고. 제대로 된 증명이 없으면 못 나갈 테니, 그리 알아.”

    그러니까요.

    세이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듯했다.

    ‘내가 마르셀과 제대로 담판을 지어야겠군.’

    담판이란 물론 사죄였다. 몇 년간 거쳐 왔던 것을 오늘 또 겪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속이 뒤틀린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무고한 ‘감방 동기’도 있으시니 말이다.

    ‘어차피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이래서 평소 마르셀을 열심히 피해 다녔던 건데. 그가 아버지를 입에 올리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자신이 마무리 지어야 했다. 세이나는 다짐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구석에는 아직도 빵과, 우유와…….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그녀는 바로 그 앞에 멈춰 섰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빼내 드릴게요!”

    시름에 잠긴 굳은 얼굴이 천천히 위로 향했다. 그가 고개를 제대로 올리기도 전에, 마음이 급해진 세이나는 먼저 무릎을 접어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어차피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제가 합의를 잘 보면 되겠죠. 각하는 그냥 절 도와주려고 하신 거고, 마르셀과 원한도 없잖아요?”

    공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꾹 닫힌 입술이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인다. 눈매는 여전히 사나웠다. 당장 발톱을 세워서 할퀼 것처럼.

    세이나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갔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말투다.

    “그냥…… 휘말린 사람이라고 할게요. 잘 말하면 그냥 풀어 줄 거예요. 괜찮아요. 곧 나갈 수 있어요.”

    정말, 잘 말해야 할 것이다. 마르셀과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골이 지끈댔다. 그래도 티를 낼 순 없었다.

    “걱정하지 말고, 저만 믿고 계세요. 응?”

    그러나 잠시 뒤.

    “……뭐, 뭐라고? 하셨…….”

    “100만 루펜.”

    좁은 방 안.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팔짱을 끼고 고압적인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다. 마르셀의 가문에서 보낸 집사였다.

    “치료비로 100만 루펜을 청구합니다.”

    미친, 뭐라고? 하도 어이가 없어 매섭게 노려봤건만, 집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늘 받은 피해와 그동안 그쪽이 우리 도련님께 가했던 심신의 상처를 모두 고려한 금액입니다. 꽤 저렴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100만이라뇨!”

    “결정적으로 오늘. 그쪽이 저희 도련님께 아주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셨습니다.”

    옆을 지키고 있던 치안대 기사가 세이나를 보았다. 책망하는 눈길에 세이나가 급하게 외쳤다.

    “그렇게 세게 안 때렸어요! 정말이에요!”

    “아니요. 아주 심각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 설마?”

    “네.”

    그럴 리가 없다.

    마르셀은 분명, 부축받아 떠나면서 웃고 있었다. 정말 심각한 상처라면 그렇게 웃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닥을 구르고, 들것에 실려 나가야지!

    마르셀이 떠나는 모습을 회상하던 세이나의 머릿속에 불현듯 어떤 가설이 떠올랐다.

    아주,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야, 마르셀 이 새끼.

    ‘날 엿 먹이기 위해 고자가 되었구나.’

    누가 모험가 협회 소속 헌터 아니랄까 봐. 협회장이나 할 만한 짓이다.

    어이가 없어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런 그녀를 제쳐 두고 치안대 기사가 물었다.

    “그동안의 상처는 무슨 뜻입니까?”

    “여기, 이 여자분의 아버님께서 도련님의 스승님을 죽이셨…….”

    “안 죽였어요.”

    세이나가 날카롭게 그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집사는 콧방귀를 뀌며 냉소를 지었다.

    “죽였지요.”

    빌어먹을 새끼. 그녀는 한 번 더 속으로 마르셀에 대한 찬사를 남겼다. 여기까지 그 이야기를 끌어들일 줄이야.

    “그건 임무 수행 중에 일어난 사고예요.”

    “죽이다니?”

    “마르셀의 스승…… 알리야 아셀은 B급 헌터로서 의뢰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의뢰는 제 아버지가 준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함께 가자고 하셨죠.”

    “그건, 알리야가 아버지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뭐, 어쨌든 댁의 아버님 때문에 그 의뢰에 참여한 게 아닙니까. 그리고 몰살당했지요.”

    “알리야는 헌터로서 의뢰를 수락했을 뿐입니다!”

    “알리야 님은 가문의 소속 헌터로서, 오랫동안 마님과 주인님을 위해서 헌신하셨습니다. 마르셀 도련님께 처음으로 검을 가르쳐 주신 분이셨지요.”

    세이나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며 뜨거운 자국을 새겼다. 집사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정도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아세요.”

    경고하는 어조였다. 세이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억울했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마르셀. 그 개자식. 어깨를 붙잡아도 무시하고 지나갔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감정을 다스리려 두 번째 한숨을 내쉬었을 때, 치안대 기사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없냐?”

    “없어요.”

    “빌릴 곳은?”

    “……없어요.”

    “도와줄 만한 사람은?”

    “그리고 그 동행인에게도!”

    늙은 집사의 검지가 다시 그녀를 가리켰다. 법정에 선 변호사처럼 그가 가슴을 확 열고 크게 외쳤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30만 루펜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뭐라고요?”

    “아, 조건이 하나 있긴 합니다.”

    집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였다. 확실하게, 그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사지를 꽁꽁 묶인 채로 도련님께 몇 대만 맞아 주시면 동행인분에 대한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이나가 멍한 눈이 되자, 집사의 입매는 더욱 완벽한 호선을 그렸다. 승리를 확신하는 눈빛. 처진 눈매에 진한 주름이 잡힌다.

    그는 손가락을 거두고 다시 팔짱을 끼었다. 등을 의자 뒤에 붙이고, 다리를 꼬며 턱을 들었다. 그가 명령하듯 말했다.

    “어서 동행인을 여기에 끌고 오시죠. 아,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한 대 정도는 깎아 드릴…….”

    그때였다.

    “각하!”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무너지며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확 들어와 방 안에 쏟아졌다.

    바람과 함께 나타난 이는 커다란 안경을 쓴 젊은 청년이었다. 그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군가 들으라는 듯이.

    “우리 각하께서 여기에 계십니까아?!”

    “뭐야, 당신은?”

    급작스러운 상황에 가장 불쾌한 이는 당연히 집사였다.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상황, 이제 모욕을 주며 밀어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불쑥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지금껏 내내 여유롭다 못해 권태로워 보였던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집사의 잿빛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기사의 것은 이미 뜰 수 있는 최대한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여기, 이곳에서.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자는 단 1명밖에 없다. 바로…….

    “네. 각하께서 계세요.”

    “맙소사!”

    “그리고 방금.”

    이제 잔인한 미소는 세이나의 것이 되었다. 그녀가 곧게 뻗은 검지로 집사를 지목해 보였다.

    “때리겠다고 하셨어요. 각하를.”

    “예?”

    “응?”

    “뭐?”

    갖가지 물음이 세이나를 제외한 각자에게서 떠올랐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들이닥친 청년이었다.

    “누굴. 때리겠다고?”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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