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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1화 (11/179)

#11

사건은 이러했다.

마르셀의 비명을 시작으로,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세이나에게 달려들었다. 세이나는 능숙하게 그들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문제는 그러면서 주변 이들도 휘말린 것이다. 그녀가 슥 피한 주먹은 뒤에서 구경하던 이의 턱에 명중해 버렸다.

코피가 터진 그는 격분하여 달려들었고, 마르셀의 부하에 의해 또 한 대 얻어맞았다.

그는 바닥을 구르며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마음대로 뻗은 팔은 또 다른 구경꾼의…… 바지를 잡아당겨 내렸다.

얼굴이 시뻘게진 사내가 구른 사내를 구타했다. 사람들은 그걸 말리다가 또 그에게 얻어맞았다.

아수라장이었다.

마르셀의 부하들을 정리한 세이나는 뒤늦게 주변에서도 싸움이 시작됨을 알아차렸다. ‘뭐야 이거?’ 당혹스러워하던 바로 그 순간.

치안대가 협회에 들이닥쳤다.

- 다들 멈춰!

기이하게도, 모두가 멈췄다.

사람들은 모두 전설 속의 마물과 마주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로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뻗은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세이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 와중에, 기어가는 이가 있었다.

마르셀은 눈물을 쏟으며 기사의 발목을 붙잡았다. 막 도착한 기사의 눈에, 그는 당연히 피해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눈물로 애원했다.

- 저 여자……. 저 여자가 저를…….

기사는 같은 남자로서 마르셀의 상태를 보고 격분했다. 곧, 또 다른 우렁찬 울림이 협회를 강타했다.

- 전부 끌고 가!

세이나는 연행되어 치안대로 끌려왔다. 그 일에 휘말린 모든 이들이 그랬다.

단 1명. 마르셀을 제외하고.

그는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떠나기 전에 세이나를 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였다.

그땐 한 번 더 유혈 사태를 일으킬 뻔했다.

‘마르셀 그 자식……. 별로 아프지도 않으면서…….’

정말 아팠다면 돌아서며 그렇게 웃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세이나도 힘 조절은 했다. 앞으로 그의 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리라, 그녀는 확신했다.

‘진료를 받으면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열 받는다고! 젠장!’

싸움을 시작한 쪽은 그 녀석인데. 정작 그는 이 차가운 지하 감옥 신세를 면했다. 마르셀의 부하들도 여기에 갇혀 있는데 말이다.

세이나는 주요 가해자로 감옥으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동료, 라샤드 칼만 공작 각하도 함께.

……놀랍게도,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순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몹시 당황했다.

귀족으로 평생을 살았던 그다. 양쪽 팔이 결박되어 끌려가는 상황 따위, 접해 봤을 리가 없다.

그래서 라샤드는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제대로 생각해 내지 못한 듯했다.

세이나는 구석에 박혀 있는 그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자괴감에 빠진 것 같았다.

어쩐지 미안했다.

그의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말을 걸기가 어렵다. 세이나는 가만히 앉아서 제 차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폭행죄로 잡혀 왔다고 바로 죄인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합의를 거치면 풀려날 수 있다. 마르셀과의 합의라니,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하, 성격 좀 죽이고 살아야 하는데.’

이곳은 계급 사회였다.

평민이 귀족을 상대로 정의 구현?

꿈에서도 감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세이나는 희망을 품어 보았다.

‘빨리 끝내서 공작님도 풀어 드려야지.’

본격적인 기다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 * *

“림울프.”

“디멘탈리움.”

“나이트 레이스.”

“와일드해시.”

“야, 야! 그건 D급 아니야?”

“C급이야.”

“C급이지.”

그들을 지키고 있던 치안대 기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세이나는 입술을 깨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또, 또 뭐가 있었지.

“포기?”

“잠깐 기다려! 생각 중이니까!”

“딱 10초 기다려 줄 거야. 10…… 9…… 8…….”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치안대의 지하에는 아직 6명이 남아 있었다. 그럭저럭 잘 굴러가던 합의는 바지를 끌어당긴 헌터들에서 딱, 제동이 걸렸다.

저 멀리서 아직도 그들이 논쟁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사들은 갇힌 이들에게 저녁을 제공하기로 했다.

빵과 우유. 맞은편에서 내기를 걸어 온 건 그때였다.

종목은 C급 마물. 무작위로 대답하되, 10초 동안 침묵하는 쪽이 패배.

이기는 쪽은 다른 쪽의 식사를 모두 독점한다.

식사를 가져온 기사는 재미있어 보인다며 스스로 심판을 맡았다.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세이나의 오기를 자극했다. 세이나는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그리고.

“7……. 6…….”

“으으, 잠깐만……!”

“5……. 4…….”

세이나는 저녁을 빼앗길 상황에 직면했다.

상대는 생각보다 고수였다. 그래도 꽤 오래 이어졌으니, 몇 번만 더 주고받으면 이길 것도 같은데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맞은편 헌터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3……. 2…….”

“아트레이븐.”

뚝. 카운트다운이 멎었다. 동시에 세이나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내기를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세이나가 있는 감방의 구석. 긴 다리와 한쪽 팔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상체와 얼굴은 어둠에 완전히 잠겨 있기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는 분명 그쪽에서 들렸다. 세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C급이에요?”

“C급이다.”

“C급이지.”

기사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역전되었다.

상대 헌터의 인상이 급속도로 일그러지더니 그가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세이나는 씩 웃었다.

“으으, 그럼……. 그럼…….”

“10. 9. 8.”

“자, 잠깐! 너무 빠르잖아!”

“7. 6……. 5……. 2. 1. 땡! 거기 기사님! 내가 이겼죠? 그렇죠?!”

“젠장, 반칙이야! 일대일 대결 아니었어!?”

“감방 동기는 한배를 탄 것과 다름없지! 후후. 그럼 시작 전에 먼저 말하지 그랬어?! 기사님! 어서 가져와요! 배고파 죽겠네!”

곧이어 빵과 우유가 철창 사이로 전달되었다. 맞은편 헌터는 이를 갈며 부들부들 떨다,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세이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트레이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우유와 빵의 수가 하나씩 더 추가되어 있다.

총 3개의 빵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세이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공작 몫이군.’

그녀의 것 하나. 전리품 하나. 그리고 예의 감방 동기 것 하나.

세이나는 느리게 그를 돌아보았다. 어둠에 반쯤 잠긴 그는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낯이었다.

와, 저걸 어떻게 말을 걸지?

“저……. 음……. 큼! 흠!”

요란한 헛기침을 해 대며 세이나는 트레이를 들고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다가가기가 어려운지, 양쪽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찬 것 같다.

그래도 다가가니 그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긴 했다. 낮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주시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 각…….”

세이나는 차마 그 호칭을 내뱉을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좀 웃겼다.

그녀의 감방 동기는 ‘무려’ 각하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그 말이 딱 알맞다. 어쩌다 여기 계세요?

“……안 먹어도 돼.”

“예? 정말요?”

“그래. 난 어차피 곧 나갈 테니. 내가 돌아가지 않았으니 내 부관이 곧 찾아내겠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 내부라 그런지 그의 목소리는 정말 동굴 속에서부터 오는 것처럼 들렸다.

세이나는 머쓱함을 느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그에게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땐, 미안했다.”

“……네?”

“제럴드는……. 제대로 벌을 내렸어.”

제럴드. 제럴드라. 세이나는 뒤늦게 그 이름의 정체를 떠올렸다. 분명, 첫 만남에서 그녀를 때리려 들었던 기사였다.

“설마, 잘랐어요?”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어.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고, 다른 이들과 부딪히는 일도 잦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지. 그 아버지가 가문의 오랜 가신이라 아들을 제대로 교정해 달라 부탁했는데…….”

문제아 아들은 공작님의 통제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딱 특권 의식에 젖은 귀족처럼 보이긴 했다.

“물론, 부하를 잘못 교육한 내 탓이 크다. 날 욕해도 돼.”

‘이미 실컷 욕하긴 했어요.’

꿈에서도 욕했다. 잠꼬대까지 했고.

세이나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저번 일을 떨쳐 냈다.

“뭐, 됐어요. 마음에 두지 말아요. 정말 맞은 것도 아니고.”

구해 주기도 했고.

맞기 직전의 상황에서 공작이 도와주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과를 받은 것 역시, 예상 밖이었다.

세이나가 아는 귀족들은 모두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장 마르셀부터 보라. 작위만 남은 귀족임에도 그는 특권 의식에 가득 차 있었다.

학교를 함께 다닐 때도 번번이 먼저 시비를 걸어 온 쪽은 그였으나, 항상 사과는 세이나가 해야 했다.

계급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세이나는 공작이 ‘너 때문에 말려들었잖아!’라며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도 몹시 신기했다.

‘뭐, 곧 부관이 온다고 했으니까.’

공작 각하는 곧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세이나였다. 마르셀의 부하들은 물론, 마르셀과도 합의를 봐야 했다.

세이나는 자신에게 떨어진 빵 2개를 단숨에 해치웠다. 맞은편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고 우유도 싹 다 비웠다.

그리고 1시간 후.

“……드실래요?”

세이나는 여전히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트레이를 밀어 주자, 어둠 속의 희끄무레한 인영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러나 고개를 들진 않았다. 더욱더 짙어진 어둠을 머리 위에 드리운 채, 공작은 제 이마 양쪽을 꾹 누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좌절하는 모양새였다.

“부관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썩 좋은 위로는 아니었다. “무슨 일?” 나지막이 따라 중얼거리던 그가 곧 실소를 터트렸다.

그 분위기가 지독하게도 어둡다. 그래도 세이나는 용기를 내보았다.

“여, 여기 둘 테니까 드세요.”

그러자 드디어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진득한 눈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세이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아마도.

‘경계심 강한 고양이와 신경전 하는 느낌.’

공작 각하께서 감방에 갇혀 계신 지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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