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10화 (10/179)
  • #10

    짧은 머리카락. 어두운 피부. 당장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된 눈. 비틀린 미소.

    세이나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마르셀.

    그녀가 알기로, 이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싫어하는 남자였다.

    하필 이 녀석을 지금, 여기서 만날 줄이야.

    “죽었다더니? 이렇게 잘 걸어 다니잖아? 어때, 눈은 잘 보여? 말도 잘 나오고?”

    “제대로 답을 못하는 걸 보니 정신이 나간 모양입니다.”

    “에이, 설마. ‘그’ 세이나 로힐이?”

    “걱정 고맙습니다. 마르셀 선배.”

    마르셀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옆머리를 툭, 치기 직전.

    세이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비웃음으로 가득한 사내들의 얼굴이 당장 폭소를 터트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선배는 무슨. 이제 같은 헌터인데. 편하게 불러, 편하게.”

    마르셀은 부하를 둘이나 거느리고 있었다. 세이나는 3명 모두 무너뜨릴 자신은 있었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아, 네. 마르셀. 인사 다 끝나셨으면 이제 가도 될까요?”

    그러고 세이나는 그들을 빠르게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나온 덩치 큰 부하 1명이 그녀의 진로를 가로막았다.

    “회장도 참 대단해. 아직 너를 제명하지 않은 걸 보면.”

    세이나는 주변이 점점 더 조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뻔뻔스러워. 또 누굴 사지로 끌고 들어가려고, 응?”

    “…….”

    “아, 하긴. 그 일 이후로 전 재산을 다 날렸다고 했던가? 가진 재주가 별로 없으니 어떻게든 협회에 붙어 있어야겠지.”

    “…….”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더니. 어쩜 그렇게 하는 짓이 똑같아?”

    “마르셀, 진정…….”

    “아, 그렇군. 그럼…….”

    마르셀이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로비를 울렸다.

    “너도 비참하게 죽으려나?”

    수군대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마르셀과 세이나를 알아본 이들이었다.

    그들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이 옆 사람에게로, 또 다음 사람에게로 전달되었다. 이윽고 도달한 곳은 세이나의 귓가였다.

    세이나 로힐. 몇 달 전에 강등당한 여자.

    그리고 그 아버지는…….

    “아버지는.”

    세이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놓았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도 평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눈에 담긴 분노는 여전했다. 그녀가 마르셀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살아 계셔.”

    “뭐?”

    “말 함부로 하지 마. 마르셀.”

    “하, 세이나. 너 아직 그런 우스운 희망을…….”

    “그리고 되도록 아는 척하지 말고.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꼬박꼬박 인사 질이야? 예의 없게.”

    거친 언사에 마르셀의 미간이 구겨졌다. 세이나는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왜? 이제 선배도 아니라며? 그리고 한마디 더 하겠는데…….”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좌중은 물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

    그녀에게 꽂힌 이들의 시선 중에는 칼만 공작의 것도 있었다. 세이나는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결국 마주쳤단 말이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피해 다녔는데. 그 노고가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받은 대로 돌려줘야 했다.

    그녀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입에서 냄새나니까 저리 꺼져. 더러운 새끼야.”

    “너…… 너……!”

    “제대로 씻고는 다니는 거니? 그러니 매일 여자에게 차이기나 하지.”

    “로힐!”

    “그래, 과거 이야기를 하니까 참 반갑네. 이렇게 된 거 아주 케케묵은 이야기까지 다 꺼내 볼까? 네가 쫓아다닌 여자들을 다 나열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텐데, 괜찮아?”

    “다, 닥쳐!”

    “시비 좀 그만 걸어. 마르셀.”

    그녀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이윽고 떠오른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는 주제에.”

    그때, 마르셀의 부하가 움직였다.

    세이나는 덩치 큰 사내가 주먹을 말아 쥐는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크게 1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곧 그것을 휘두를 자세를 했을 때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전개. 유도한 것이기도 했다.

    ‘됐다.’

    맞고 난 후엔 모든 것이 정당방위다.

    소란을 먼저 일으킨 쪽이 마르셀이라고 한다면, 협회장도 그녀에게 뭐라 할 수 없다. 수군대는 이들은 곧 목격자가 되어 주리라.

    헌터들은 싸움판을 말리지 않았다. 응원하고 부추기는 쪽에 더 가깝다. 그리고 승자는 단언컨대.

    자신이 될 것이다.

    자, 와라, 와서 때려!

    ‘그래야 나도 너희를 때리지!’

    그래도 정통으로 맞는 것은 싫으니, 맞기 직전에 조금 물러나서 얼굴을 틀면…….

    “어?”

    하지만 그녀가 뒤로 물러선 바로 찰나, 기세 좋게 날아오던 주먹은 바로 허공에서 정지해 버렸다.

    막혔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만하지.”

    돌연 그들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하나 솟아났다. 새롭게 등장한 사내는 세이나의 앞을 가로막고 공격자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어?”

    검은 옷. 검은 머리카락. 세이나는 그걸 확인하고도 믿기지 않아서 여러 번 눈을 깜빡였다.

    그녀를 구해 준 이는, 가장 의외의 사람이었다.

    “……칼만……?”

    “여럿이서 1명을 상대로.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 새끼가!”

    또 다른 부하가 주먹을 내찔렀다. 그러나 이번 역시, 좋은 공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남자가 겹쳐져 멀리 나가떨어졌다.

    세이나는 제 옆에 겹쳐 쓰러진 두 남자를 신기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음에 시선이 닿은 곳은 당연히, 공작이었다.

    어마어마한 괴력.

    공작은 처음 그가 붙잡은 남자를 달려오던 사내에게 그대로 던져 버렸다.

    그것도 한 손으로.

    “던졌지?”

    “던졌어.”

    “왜? 뭔데 그래?”

    “방금 저 덩치를 던져…….”

    “괜찮나?”

    한 박자 늦게 시작된 혼란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도 잘 들렸다.

    ‘괜찮으냐고?’

    우스운 질문이었다. 맞지 않은 걸 뻔히 보고 있지 않았나. 당연히 괜찮지.

    다른 의미로는 괜찮지 않긴 했다. 세이나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휘두르지 못한 주먹이 간지럽다.

    ‘아, 팰 수 있었는데.’

    드디어 마르셀 저 밉살스러운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나 기대했었다. 알고 지낸 그 오랜 시간 동안, 마르셀은 단 한 번도 호의적인 적이 없었다.

    세이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칼만 공작은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보았다.

    “혹시 어디 다쳤거나…….”

    “전 괜찮아요. 그…… 고맙네요. 구해 줘서.”

    당신에게 이런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아직 남은 아쉬움에 세이나는 괜히 손을 한 번 털었다.

    마르셀이 공작에게 달려든 건 바로 그때였다.

    “뒤!”

    세이나가 외침과 동시에 공작이 몸을 틀었다. 꽉 쥐어진 손이 이전과 같이 허공에서 멎었다.

    공작은 여유 만만한 얼굴로 마르셀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마르셀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이나는 마르셀의 다른 쪽 팔이 움직이는 걸 보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한쪽은 단단히 땅을 짚고, 다른 쪽은 멋지게 위로 뻗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빈틈!”

    세이나의 발이 마르셀의 다리 사이에 직격했다.

    “끄아아아악!”

    공작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반면, 세이나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드디어 때렸다!’

    뒷일은 전혀 생각지 못한 채.

    * * *

    쇠로 된 감옥 문은 움직일 때마다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끼익, 끽거리기도 했고 날카로운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치안대의 지하. 유치장들은 눈 깜짝할 새 만석이 되었다. 철컹! 철컹! 문이 잠기는 소리가 연이어 축축한 벽을 울린다.

    세이나는 멍한 눈으로 창살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냉담한 얼굴의 기사가 서 있다. 그가 열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철컹!

    그로써 세이나는 차가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미친.’

    죄목은 폭행죄였다.

    그리고 같은 죄목으로 끌려온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15명 정도는 붙잡혀 온 것 같았다. 모두 제각각의 방이 아니라, 2명씩 짝지어져 갇혀 있다.

    그리고 세이나에게도 1명 함께 감옥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감옥의 한구석. 검은 옷의 사내가 제 머리를 감싸고 있다.

    그녀의 감방 동기.

    칼만 공작 각하셨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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