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 여주의 옆집에 살고 있습니다-9화 (9/179)

#9

“오랜만이야, 안나.”

“몸은 괜찮아요?”

“……그럭저럭?”

“뭐예요. 대답이 엄청 수상하네.”

안나가 생긋 웃었다.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소녀는 세이나가 가깝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1명이었다.

“카일을 감싸 주다 다쳤다면서요? 안 그래도 그 녀석, 볼 때마다 아주 울상이에요. 병문안이라도 가라고 했더니, 혼날까 봐 못 가겠대! 정말, 얼마나 바보 같은지……!”

“카일은 내가 가르쳤으니까. 그러네. 혼을 못 내 줬어.”

“엉덩이를 걷어차 버려요.”

“그 전에.”

세이나는 접수대에 팔을 올리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비밀스러운 분위기에 안나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세이나가 낮게 속삭였다.

“디온 프라벨. 알아?”

“디온 프라벨?”

“응.”

“갑자기 왜…… 만났어요?”

“응. 만났어.”

“잘생겼어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다니요. 세이나. 그게 제일 중요한 부분 아닌가요?”

안나가 대번에 미간을 좁혔다. 더없이 진지한 표정에 세이나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잘생……기긴 했는데…….”

안나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그녀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 잘생긴 미친놈이 왜요?”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알아?”

“글쎄요. 그 집안사람들이 전부 정상이 아니라서?”

납득할 만한 설명에 세이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장은 이상한 사람이었고, 그 형제들도 이상하다. 그렇다면 아들도 이상한 사람이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농담이고. 일화가 있어요. 아주 무시무시한.”

“일화?”

“네.”

안나가 더욱 몸을 기울였다. 그녀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디온 프라벨이 첫째 부인의 아들인 건 알고 있죠?”

“응, 알아.”

“그 첫째 부인이, 회장의 형제들과 아주 사이가 안 좋았대요. 출신이 천하다고 엄청나게 괴롭혔다던가? 첫째 부인이 일찍 죽은 이유도 그 사람들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세상에, 정말?”

“네. 그래서 디온 프라벨은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하죠.”

“……어떻게?”

“3년 전에, 셀론 프라벨의 약혼이 깨진 것. 기억나요?”

세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셀론 프라벨은 협회장의 남동생이었다. 임무 차 타국에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귄 귀족 영애와 미래를 약속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귀족 영애는 결혼식 바로 이틀 전에 셀론 프라벨에게 이별을 고했다.

더하여 셀론에게 약속되어 있었던 예비 장인의 투자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게 디온의 짓이라고?”

“네.”

“……왜?”

“그 여자를 꼬셨다고 들었어요.”

“……꼬셔?”

“네. 그 약혼녀가 자기에게 푹 빠지게 만든 거죠. 셀론 프라벨은 더 눈에 안 들어올 만큼.”

“정말이야?”

“그 약혼녀가 아직도 상사병을 앓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면 벌써 3년이에요! 3년!”

안나가 그에 맞춰 손가락을 접어 보였다. 그녀가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또?”

“이자벨라 프라벨. 협회장 여동생 있잖아요. 그 여자의 약혼이 깨진 것도 바로 그 장남 때문이에요.”

“설마, 고모를……?”

“아뇨.”

안나가 씩 웃었다. 세이나는 그 미소가 악당 같다고 생각했다.

“약혼자를 꼬셨죠.”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자, 이제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알겠죠?”

* * *

안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영웅담을 읊듯 디온 프라벨의 과거를 늘어놓았다. 셀론의 약혼녀를 빼앗을 때 그가 겨우 열아홉이었다는 것도.

“셀론, 그 자식이 평소에는 맹하지만 결정적일 땐 잔인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 녀석 성격상. 조카든 뭐든 바로 죽이려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못 죽였죠. 왜 그랬을까요?”

“……회장이 말려서?”

“아뇨. 디온이 숨어 버렸거든요.”

“뭐?”

“디온이 나타났다고 하면, 셀론은 열을 올리며 쫓아가죠. 하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사라졌어요. 그리고 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면 사라지고, 그리고 또…….”

“잠깐, 그게 가능해? 셀론은 A급 헌터잖아.”

“그 A급을 농락하며 도망 다닌 거죠. 누가 회장 아들 아니랄까 봐. 대단하죠?”

확실히, 남을 엿 먹이고 도망치는 건 회장의 특기였다. 그는 자신이 미워하는 이는 정말 갖가지 방법으로 괴롭혔다.

‘싫어하는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라면 남자도 유혹할 위인이긴 해.’

물론, 회장은 그런 능력까진 없었다. 하지만 디온은…….

혼란스러웠다.

세이나는 그가 사람을 유혹하는 모습을 정말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직 신관님의 이미지가 너무 강고했던 탓이다.

“회장이랑 똑같죠?”

“치, 친아들은 맞나 봐.”

“전 듣고 쌤통이라고 생각했어요. 셀론이든, 이자벨라든 둘 다 얄밉기로 유명하잖아요. 특히, 셀론 그 인간은…… 아주 잘되었어요! 그런 놈은 잘 풀리면 안 돼요.”

프라벨 일가의 사람들은 대체로 호불호가 갈렸다. 그리고 셀론 프라벨에 대해 안나는 명백한 불호였다.

디온에 대해서도 같았다.

“그러니 엮이는 건 반대예요.”

“엮이다니?”

“디온 프라벨이랑 만났다면서요.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물어보는 거 아닌가요?”

안나는 눈치가 꽤 빨랐다. 큰 비밀이라도 들킨 얼굴로 세이나가 살짝 물러서자, 안나의 눈이 매서워졌다.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말하자면 또 길어.”

“아, 설마……. 또 불쌍해 보여서 도와준 거예요!?”

역시 눈치가 빠르다. 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나는 너무 마음이 약해서 탈이에요. 뭐,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세이나는 너무 물러요! 확 잘라 내 버려요! 그 녀석도!”

“으응.”

“보나 마나 뻔해요. 이상하죠? 이상한 녀석이죠?”

세이나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어젯밤의 모습은, 충격적인 게 맞았다. 하지만 그걸 ‘이상하다.’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중적인 모습이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디온은 실질적으로 세이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걱정도 해 주고, 약도 챙겨 주고, 의사도 불러 주고, 식사도 챙겨 줬다.

또, 따지고 보면 세이나도 처음 계획은 다소 이중적이었다. 친절한 협회원으로 보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욕설에, 잠버릇에, 온갖 것을 들켜 버렸다.

다시 떠올려도 귀가 뜨겁다.

“세이나. 혹시, 회장 아들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죠?”

“뭐?”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실로 헛웃음이 나오는 추측이었다.

‘그분께서는 이미 연모의 대상이 따로 계십니다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엘렌과 디온의 이야기는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이미 단단히 약속한 후였다. 안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양심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또, 그가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같은 조연이기도 했고, 도움도 잔뜩 받았으니. 착한 모습에는 특히나 감동했다.

‘……정도까지만 말해도 안나가 화를 내겠지.’

세이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요즘 일은 없어?”

거기서부터는 보통의 헌터와 접수원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안나가 제시한 임무들을 보며 세이나의 안색은 시시각각 어두워졌다.

대부분의 임무가 모두 수도를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개의치 않고 맡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또 누가 집을 노리고 들이닥칠지 모른다.

그럼 혹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싶어 종이들을 뒤졌지만, 그녀의 사정에 딱 맞는 일은 없었다.

‘하긴, 헌터가 직장인도 아니고.’

“세이나, 무리하지 말아요. 한번 잃으면 다시는 못 찾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집?”

“건강이요!”

“아, 그것도 있었지.”

“조심해야 해요. 머리를 다치면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고 들었어요. 집에서 쉬는 게 어때요?”

“나도 그러고는 싶지.”

그러기엔 돈이 너무 없었다. 차마 제 입으로 그 말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정말, 돈이 없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다음에 다시 올게.”

“괜찮은 의뢰가 있으면 미리 빼 둘게요.”

“응, 고마워. 그럼…….”

“와! 저 사람!”

몸을 돌리려던 찰나, 안나가 갑자기 그녀의 등 뒤를 가리켰다.

세이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의 손끝이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얼어붙었다.

“잘생겼다! 그렇죠?”

그녀의 대각선 앞.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그러나 안나가 발견한 이는 그들이 아니었다.

방금,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간 사람.

세이나는 순간 숨 쉬는 것도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칼만 공작이 그녀의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저, 저 인간이 왜 여기에……?’

그의 정체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복장도 평범했고, 수행원도 없다. 하지만 원체 미남이라, 충분히 눈에 띄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를 돌아본다. 안나가 멀리서 찾아낼 정도로 잘생긴 사내였다. 게다가 키도 크다.

‘위장하고 몰래 오는 거면 좀 제대로 하든가. 바보냐?’

그러나 역시, 그녀가 알 바가 아니었다.

“나 정말 갈게, 안나. 다음에 봐.”

다행히 협회에는 사람이 많았다. 몸을 숙이고 섞여 들어가면 쉽게 그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세이나는 황급히 그가 선택한 진로의 뒤편으로 숨어들었다. 어젯밤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

전생을 자각한 이후부턴 계속 인생이 꼬이는 느낌이다.

세이나는 계속 공작을 주시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나간 후에도 잘 숨어서 인파 속으로 섞여들어 가야겠다. 막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내딛던 바로 그때.

툭.

누군가의 어깨와 세이나의 머리가 부딪쳤다. 세이나는 이마를 매만지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죄송…….”

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그 사죄의 말은 끝맺지 못했다. 사나운 인상의 사내가 씩 웃으며 소리쳤다.

“이게 누구야!”

주변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일순 멎었다. 그만큼 남자의 목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세이나는 기도했다. 제발, 제발 돌아보지 마라…….

“세이나 로힐!”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늘 적중하기 마련이다. 저 멀리, 칼만 공작이 몸을 돌리는 게 보였다.

‘X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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