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2. 사람은 첫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세이나가 있는 집 근처는 그다지 치안이 좋지 않았으니.
흔히 말하는 어두침침한 뒷골목이 많은 곳. 그녀가 서 있는 장소가 딱 그러했다.
그래서 더 불안해졌다.
‘설마.’
쿵! 또다시 뭔가 쓰러졌다. 세이나는 바로 방향을 틀었다.
달려 나가는 동안에도 소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쿵! 퍽! 윽! 누가 들어도 사람이 구타당하는 소리였다.
세이나는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설마. 설마. 설마.
‘디온!’
하얗고 예쁜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얼굴이 피떡이 되어 쓰러진 장면도.
곱게 자란 도련님 분위기의 그다. 이런 뒷골목에서는 당연히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가진 돈을 전부 다 털리는 것으로 끝난다면 차라리 행운일 것이다. 그 곱상한 얼굴이 정말 질 나쁜 놈에게 걸리면…….
‘안 돼에!’
끔찍한 상상을 떠올린 세이나의 발이 더욱 다급해졌다. 와중에도 착실하게 소리는 이어졌다. 퍽! 퍼억! 퍽! 쿵!
마지막 소리는 거의 코앞이었다.
퍼억!
누군가의 주먹이 누군가의 얼굴에 꽂혔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빛에 희끄무레하게 비친 인영이, 볼품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세이나가 그걸 보자마자 재빨리 모퉁이 뒤로 몸을 숨겼다. 어쩐지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폭력이 일어난 건 맞았다.
도합 여섯의 사내가 바닥을 구르고 있다. 그리고 1명.
단 1명의 사내가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막 싸움을 마친 그에게 지친 기색은 없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하나씩, 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쯧.”
툭. 툭. 갈색 가죽 장갑이 쓰러진 사내의 몸 위로 떨어졌다. 쓰러진 그가 꿈틀거리자, 공격자의 발이 무자비하게 그의 어깨를 짓밟았다.
“윽!”
“미안하지만, 내가 오늘 기분이 무척 안 좋아서.”
그 순간 거센 바람이 일었다.
세이나의 다리를 지나 골목을 굴러, 쓰러진 사내들과 공격자를 스쳤다. 그녀의 시선이 바람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마지막에 보인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은색 머리칼이었다.
“거기.”
디온이 말했다.
“거기. 나와.”
세이나에게.
‘저요!?’
* * *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거기. 나와.”
힘껏 달려온 여파도 있었다. 모퉁이 뒤에 숨은 세이나는 제 입을 틀어막은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나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방금 전 보았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그러니까, 디온이 엄청난 거구의 사내를 한 방에 쓰러트렸고…….
‘세상에, 맙소사.’
제 눈으로 직접 본 광경임에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눈에 익은 코트. 익숙한 목소리. 기묘한 빛의 은발. 쓰러진 사내를 짓밟는 발끝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보였던 형형하게 빛나는 살기 어린…….
“이봐.”
눈빛.
‘디온.’
그가 맞았다.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던 천사님은 지금 저기, 몇 걸음 뒤에서 사람을 밟고 있다. 더는 부정할 수도 없었다. 저런 신기한 색의 머리통이 세상에 흔하게 널린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제는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가 골목을 울렸다.
“안 오면 내가 가야겠군.”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아플 지경이었다. 신나게 달리던 다리는 이제 고장이라도 난 것 같다. 세이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와, 도와주려고 했는데. 제가 좀 늦었네요.’ 하면서.
그러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떡하지?’
그때였다.
“터너?”
의아한 이름이 들렸다. 그 목소리가 다소 떨어져 있었기에, 세이나는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벽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디온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또 다른 골목길에서 누군가 양손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덩치가 큰 사내였다. 얼굴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왜 숨어 있어?”
“하하. 워낙 살벌해 보여서 말이죠. 죽였습니까?”
디온이 쓰러진 남자의 손목을 짓밟으며 말했다.
“아직.”
“끄아아아악!”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야.”
“제, 제발 살려…….”
“흠?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으아악!”
그의 발이 호되게 남자의 허리에 꽂혔다. 퍽!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울렸을 때, 불현듯 터너가 말했다.
“그만.”
발길질이 멈췄다. 디온이 옆을 돌아보았다.
“……하는 게 어떻습니까? 소리를 듣고 치안대가 오면 골치 아플 겁니다. 그, 그보다,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고?”
“일단 요즘 늦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열심히 알아보고 계시다고.”
“아.”
“재촉하긴, 하셨습니다만.”
“괜찮아. 좀 늦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세이나와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였다. 한없이 가볍고,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가 제 코트 안으로 손을 넣어 담배를 꺼냈다. 입에 무는 모습이 몹시 자연스럽다.
세이나는 숨어 있는 제 처지도 잊은 채 마음껏 경악했다. 그들이 옆을 돌아봤다면 바로 세이나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뒤쪽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디온이 입술에서 담배를 떼어 내더니 씩 웃었다.
“아, 넌 원래 그쪽 사람이었지.”
먹구름이 사라지며 한층 밝아진 달빛이 골목 위에 내려앉았다. 은은한 빛을 받은 사내는 여전히 우아해 보였다.
“그래서. 가서 이를 생각?”
“아닙니다.”
“터너.”
디온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몸이 한 번, 크게 떨렸다. 세이나도 움찔했다.
당장 그가 사내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분위기였다. 비틀린 입매. 싸늘한 눈.
그리고 침묵이 이어졌다.
주변은 기이하리만큼 고요했다. 다른 누가 지나가는 인기척도, 하다못해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숨이 막힌다고 생각하며, 세이나는 목을 감싼 옷을 잡아당겼다. 후우, 소리 없는 한숨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나온 직후.
디온이 눈을 휘며 웃었다. 천사같이 예쁜 얼굴이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예, 예……. 죄송합니다.”
툭툭 어깨를 두드린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사내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시간을 좀 더 끌어. 내 핑계를 대도 되고.”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디온! 여기 있었어?”
골목길 위에 또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터너의 뒤, 대로로 이어지는 골목 끝에서 웬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디온은 반갑게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기척은 점점 멀어졌다.
세이나는 그들이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의 심정은 마치.
‘우리 애가 불량배였다니.’
착실한 자식의 이면을 발견한 학부모의 기분이었다.
* * *
세이나가 충격에 휩싸여 있을 무렵.
디온은 마차에 탄 채 이동 중이었다. 창틀에 턱을 괴고 있는 자세는 완전히 풀어져 있었다.
‘예절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돈되어 있던 어느 집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디온.”
그녀를 부른 이는 그의 맞은편에 앉은 소녀였다.
이제 12살쯤 되었을까. 긴 갈색 머리칼을 땋아 내린 모습이 더욱 어리게 보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디온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디온의 감은 잘 맞는 편인데.”
소녀는 덩달아 심각해졌다. 마차에 무거운 정적이 일었다.
침묵을 깬 쪽은 이번에도 소녀였다.
“괜찮아. 별일 없겠지. ‘엘렌’도 찾았고 말이야.”
“그게 아니야.”
“아니라고?”
소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생각에 잠긴다.
엘렌이 아니라고? 엘렌 말고 고민할 일이 있었나?
작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곧 감탄사처럼 내뱉었다.
“설마.”
돌연 디온에게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소녀가 그를 향해 몸을 숙였다.
“세이나 로힐?”
디온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대답을 받은 것처럼 밝게 웃었다.
“드디어 만났구나?”
* * *
오랜만에 도착한 모험가 협회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세이나는 접수대 앞의 긴 대기 줄에 섞여 있었다. 답답해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녀는 꽤 침착했다. 어떤 고민이 그녀를 점령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일까?’
어젯밤의 디온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밤새도록 생각했고, 날이 밝은 후에도 회상했다. 곱씹을수록 충격적이었다.
바르고,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 것 같던 도련님께서 사람을 그렇게나 잘 팰 줄이야.
그동안 세이나가 생각하던 디온의 이미지는 이러했다.
책장이 빽빽하게 채워진 서재에서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지식을 탐독하는 학자. 혹은 화려한 연회장에서 흠모의 시선을 받는 귀공자.
또는 조금 더 선한 방향으로 틀자면 경건하게 축복을 내리는 사제.
하지만 어제는 영락없는 불량배였다.
덜덜 떨던 터너라 불린 청년이 안쓰러웠다. 동시에 수상했다. 둘은 대체 무슨 사이일까.
‘혹시, 회장이 보낸 감시자인가?’
‘위’라는 표현도 그렇고, 이를 거냐고도 하고.
회장은 제 아이들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디온도 아마,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니 내버려 둘 수는 없었고 그래서 사람을 붙였다. 그 사람은 이제.
‘디온에게 포섭당했네.’
사내는 디온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역시, ‘위’는 회장일까?
‘역시 협회장의 가정사는 너무 복잡해.’
그즈음 기다림이 끝났다.
“네, 다음.”이라고 사무적으로 뱉던 접수원이 세이나를 확인하자마자 반갑게 인사했다.
“세이나! 오랜만이에요!”